[논설] 인권을 까먹은 권력의 미래는 무엇일까

이 정권은 우리더러 주권자가 아니라 한다

바쁘다. 정말 바쁘다. 광우병 괴담을 추적하고, 촛불집회의 배후를 캐고, 뒤에서 몰래 운하 팔 궁리하고, 허구한 날 사고치는 각료들 꼬리 자르느라 정말 바쁜 정권이다.

그런데 그들의 바쁜 맘과 행동으로 망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본래 자기들 것이 아닌 주권자의 의지와 주권자의 권리를 망치고 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재기발랄한 구호와 손 피켓들이 많지만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은 ‘원칙’적인 구호였다. 바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다.

우리가 죄다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헌법이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를 정하고 있고, 다른 법들은 헌법 앞에 머리를 수그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시민·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인권을 정한 주요 국제인권조약의 당사국으로서 관할권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은 정부가 입 열 때마다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굳게 약속하고 확인을 거듭해 온 핵심 권리에 대해 도발하고 있다. 우리더러 주권자가 아니라 한다. 괴담에 속아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아 움직인다 한다. 주권자의 판단과 행위는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런데 우리 더러 정치구호를 외치고 ‘정치적이 돼간다’고 타박이다. 우리더러 법을 지키라 한다. 그런데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 말고 무슨 법을 지켜야 하는가. 집회시위의 자유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핵심행위이다. 그런데 수백 명이 되건 몇 명이 되건 다 처벌할 것이라 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공감 받을 수 없으니 총칼을 빼들고 설치는 독재자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주권자’로서 행동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은 권력이 빼앗을 수 없는 인권을 가지며, 그런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권력은 언제든지 갈아 치우거나 새로 세울 수 있다는 이념에 기초한 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대들이 좋아하는 미국도 그런 정신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영국 왕에게 반역의 깃발을 들고 새로 자신들의 정부를 세우지 않았나.

주권자는 국가 및 사회의 공적 업무에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가진다. 투표를 통해 대리자를 내세우는 것은 수많은 참여의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 편의이다. 대리자가 주권자의 뜻을 거스를 때 대리자의 권한은 그 권위의 원천을 잃는 것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고 집회를 하고 그를 통해 의지를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권리의 핵심이다. 모이되 봐줄 만하게 굴면 정치 행위가 아니고 권력을 비판하는 소릴 하면 정치 행위가 된다는 해괴한 논리의 근거는 무엇이며, 도대체 누가 그런 판단의 권한을 갖는다는 말인가.

배후가 있다 한다. 그래 좋다. 우리에겐 배후가 있다. 생계에 쫓기느라 직접 나서지 못해도, 야자와 감시에 쫓기느라 숨죽여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장 큰소리 내지 못해도 ‘뭔가 단단히 잘못돼가고 있고, 바로 잡아져야 한다’고 염원하는 수많은 배후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등 뒤’에 앉아 배우고 있다. 광우병 공포를 넘어 육식문화의 폭력을, 인권과 생태의 공존을, 경제발전이 아닌 사회발전을, 절망의 경쟁이 아닌 희망의 연대를 배우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정치적이 돼갈 것이다.

3개월간의 이명박 정권의 갈지자걸음, 그리고 이전 정권까지만 해도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내걸고 쇄신을 약속하는 쇼를 벌였던 경찰의 현 모습을 보라. 우리들 주권자의 눈에는 그야말로 ‘떼’를 쓰는 무‘법’자들이다.
덧붙이는 말

류은숙 논설위원은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