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광우병 발생이 영국 정치에 미친 영향

[광우병 특별기획](3) 광우병에 대한 대중청문회를 실시한 영국

광우병에 대한 영국의 대응조치

지금까지 16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광우병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인해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입은 타격은 산술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파국적이었다. 광우병 발생과 인간 광우병으로 이어지는 1985년부터 1996년 사이의 10년은 영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강력한 파급력을 보였다.

이러한 광우병 파국의 씨앗은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의 출범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 경제적인 문제와 노동당 정부가 보여준 문제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로 인해 새로 출범한 보수당 정부는 당시로써는 강력한 개혁적 정책을 수행하게 된다. 대처 보수당 정부의 기본 개혁정책은 규제완화와 시장 메커니즘에 의거한 정책이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농축산업 분야에서의 규제완화 정책이었다.

당시 축산에 사용된 사료에 동물성 단백질을 첨가하려고 양을 포함한 다른 동물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소위 렌더링을 위한 온도를 낮추는 것을 허용하였다. 문제는 이처럼 낮은 처리과정에서 살아남은 스크래피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이 소의 사료로 유입되면서 광우병의 확산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광우병 파동은 영국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이미 166명의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새로운 유전형을 가진 희생자가 발생함으로써 광우병의 제2차 파동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명씩 인간광우병의 희생자가 나타날 때마다 영국사회는 광우병의 공포에 짓눌리게 된다.

영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육골분을 포함한 동물성 사료의 사용금지 및 학교급식에서 소고기를 제거하는 결단을 내린 이외에 구체적으로 1996년 8월 1일 이전에 태어난 모든 소에 대한 완전폐기정책을 수행하여 541만 마리를 도살처분하였다. 2001년 12월부터는 30개월 이상된 소에 대한 전면적인 전수조사를 통해 도축장에서 도살되는 소의 뇌에 대한 조사를 통해 광우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키우고 있는 모든 소에 대한 의무증명제도 (compulsory cattle passport)의 시행을 통해 각 소에 대한 검역 여부를 증명하는 증명서 발급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정부의 조치로 인해 영국에서 광우병 발생건수는 1990년대를 고비로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광우병에 감염된 소고기가 사람들의 먹거리 체계에 유입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광우병의 발생은 먹거리를 통한 유입 경로 외에 다른 경로로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외과수술에서 이루어지는 수혈과정에서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들이 인간광우병에 감염되면서 1999년 이래 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혈용 혈액에서 감염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 백혈구를 제거하고 혈액응고제와 같은 혈액관련 의약품은 외국에서 혈장을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한,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이 수술도구에 붙어 소독과정을 통해서도 사라지기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후 외과수술 장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독처리를 위해 약 2억 파운드 (4억 달러)의 비용을 투자하고 있으며 일회용 수술도구의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1988년 이후 정부는 에딘버러에 국립 인간광우병 감시센터 (National CJD Surveillance Unit)을 설립하여 인간광우병과 연관질병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조사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광우병이 불러온 정부정책 결정과정의 개혁

광우병이 영국사회에 남겨진 충격과 상처는 결국 1997년 보수당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1996년 3월부터 시작된 인간광우병 파동과 함께 살모넬라, 대장균의 확산 등을 포함한 다른 식품안전성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지면서 보수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1997년 5월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선출되면서 18년 동안 이어진 보수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토니 블레어 정부가 처음 들어서면서 시작한 첫 번째 정책이 바로 광우병에 대한 대중청문회 (BSE Inquiry)의 실시이다. 1997년에 시작된 독립적 대중청문회는 광우병과 관련된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각계의 정책결정자들 300여 명의 증언을 통해 광우병의 원인과 문제 그리고 정책결정상의 문제점을 다루었다. 약 300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어간 이 대중청문회를 통해서 보수당의 무사안일주의와 정책상의 불투명성이 광우병 확산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식품안전성을 평가하고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독립기구인 식품표준청 (Food Standards Agency)을 설치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광우병이 영국 정치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정부정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다. 광우병 파동 이전의 영국의 정책결정은 대중들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형태의 일종의 밀실정책결정이었다. 소수의 정부당국자와 전문가 자문그룹이 정책을 결정하여 실행하는 형태였으며 이러한 방식의 정책결정은 광우병 파동 이후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정책결정방식을 개혁하기 위해 새로 선출된 노동당 정부는 거의 모든 주요 정책결정에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포함했으며 가장 대표적인 방식으로 대중자문과정 (public consultation)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였다.

광우병 파동 이후 유전자조작 식품의 허가문제, 줄기세포 연구의 합법화, 그리고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 등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대중자문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유전자조작 곡물의 재배와 판매가 한시적으로 금지되었고 현재 차세대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정책을 몇 차례에 걸친 대중자문과정을 거치고 있다. 또한, 영국은 미국과는 달리 연구용 줄기세포에 대한 실험 및 연구를 허가하고 최근에는 인간의 유전물질과 동물의 탈핵화된 난자를 결합하여 이종배아를 만들어 실험하는 연구에 대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대중자문과정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광우병은 현재 치료법이나 병원체의 근본 성격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가 완벽하지 않은 신비의 질병이다. 학계는 지난 25년 동안 이 질병의 성격과 치료법을 찾기 위한 논쟁을 해왔으며 아직도 과학자들은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광우병을 단순히 불치병의 하나로 생각하기에는 광우병이 가져올 수 있는 거대한 사회적 파장과 논란 그리고 사회적 비용은 산술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인간 광우병으로 영국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166명이다. 산술적으로 이는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의 경우, 매년 아프리카지역에서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산술적으로 극히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감염된다고 하더라고 그 사회적 파장과 공포감의 수위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본다면 광우병은 그렇게 단순한 질병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질병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말라리아가 중요성이 낮거나 사회적 비용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 광우병이 발생한 후 10년 동안 영국이 치른 대가는 너무나 크다.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과 경제적인 손실뿐 아니라 영국 시민들의 뇌리에 깊은 공포감과 심리적인 상처는 단순 수치로 계산할 수 없다.
덧붙이는 말

김기흥/ 2003년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 과학학 연구소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에서 최대규모의 의사학 연구소인 런던대학교 (Uiversity College London)의 웰컴 트러스트 의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우병과 연관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위해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의 화학공학과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우병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연구인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From Scrapie to Prion" (Routledge, 2007)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를 다룬 ”광우병 논쟁“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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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 쇠고기 , 인간 광우병 , 영국 정치 ,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 보수당 정권 , 정부정책의 투명성 확보 , 영국 광우병 ,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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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좋은 기사 아고라로 퍼 날으세요 다른 독자님들

  • 반광우

    우리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것 같네요. 대중을 배제한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정치와 안일주의 그리고 광우병에 대한 무지가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그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생각하면 참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 반광우

    우리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것 같네요. 대중을 배제한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정치와 안일주의 그리고 광우병에 대한 무지가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그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생각하면 참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 더헉

    전부 사실ㄷ이었다~ 인간광우병~ 혈액수입~

  • ㄹㄴㅇㄹ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하다~! 명박 화이팅~!
    http://cyworld.nate.com/maddog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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