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운동권’은 100만 촛불에 대답해야한다

[기고] 국민의 압도적 다수와 운동권의 뜻이 이렇듯 하나였던 적이 있는가

6월 10일 밤에 전국적으로 타오른 100만 개의 촛불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참으로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특히 광화문에서는 아이와 함께, 애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나온 촛불의 행렬이 끝을 알 수 없게 이어져서 사실상 행진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였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촛불의 물결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대선과 총선의 연이은 참패로 실의에 빠졌던 ‘운동권’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민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를 드러낸 이명박 정부에게 취임 100일 만에 100만 촛불의 분노를 선물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당황한 이명박 정권은 그 무슨 불순세력이니 배후세력이니 하면서 국가기구를 총동원해 초중고 학생들의 문자까지 들춰보고 수업중인 학생을 끌어내서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5월 17일에 단체로 등교거부하자는 문자를 친구 몇몇에게 보낸 재수생 한 명을 검거했다. 그렇다. 정말로 배후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온 네티즌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촛불의 배후는 나요’라고 나서면서 ‘이명박 퇴진’을 외칠 때 운동권은 그 ‘배후세력’의 뒤꽁무니를 좇아서 나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이명박 정부가 촛불대오를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폭력과 비폭력으로 분열시키려 해도 도대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처음부터 ‘운동권’의 통제 밖에 있던 촛불은 정권에게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광화문 길바닥에서 밤을 새는 것은 기본이고 휴대폰, 인터넷, 무선통신,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를 총동원한 입체적 정보전 때문에 평소에 ‘운동권’을 대하듯 방패와 곤봉을 사용한 경찰은 여론의 집중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촛불대오의 ‘비폭력 직접행동’ 앞에 이명박 정부가 허둥대는 사이 드디어 6월 10일, 촛불은 100만이 되었다.

이제 공은 이명박 정권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이명박은 자기 측근들을 갈아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상전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비폭력 직접행동’을 내세운 100만의 촛불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사실상 6월 10일 100만 촛불바다를 통해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만간 총선이나 대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선거로 정권을 심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6월 11일 새벽에 컨테이너 앞에서 벌어진 ‘스티로폼 논쟁’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 100만의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게만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권’에게도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100만 촛불이 한 달 밤을 새고, 군홧발에 머리를 짓밟히고, 방패와 곤봉에 피범벅이 되면서 만들어 놓은 이 판에서 ‘운동권’ 당신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국민의 80%에 이르는 ‘배후세력’은 운동권에게 엄중하게 묻고 있다.

근래에 국민의 압도적 다수와 운동권의 뜻이 이렇듯 하나였던 적이 있는가. 촛불을 움켜 쥔 국민들은 더 이상 조중동이 덧씌워 놓은 이미지로 운동권을 보지 않는다. 지금 촛불 집회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은 오직 ‘운동권’ 강기갑 의원뿐이다. 운동권인 그가 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우리는 되새겨 봐야 한다. 이 투쟁은 운동권 모두가 강기갑 의원이 되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중요한 투쟁이다. 운동권 모두가 강기갑이 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제 운동권은 100만의 촛불에 대답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도 동시 기고 했습니다. 임승수 님은 민주노동당 당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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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 촛불집회 , 촛불 , 강기갑 ,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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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nspeace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약간 잘못 이해하신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직접행동에는 점거, 봉쇄, 차벽넘기 등 여러가지가 포함됩니다. 촛불문화제나 거리 행진을 하는 것만으로 직접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간접적인 실력행사에 가깝겠죠. 그런 의미에서 스티로폼으로 계단쌓고 청와대로 행진하자는 제안은 가장 제대로 된 의미의, 적극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권'이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효과적인 '직접행동'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티로폼 들고나온 인권단체 활동가님들, 존경합니다.

  • 안습 민노당

    마치 전선에 서있는 운동권이 강기갑 혼자인 것처럼 애쓰는데 웃기지 좀 마시라. 운동권들이 혼연일체로 촛불투쟁에 참여하여 온갖 선동 다하고 있는데 보이는 것만 집착하는 민노당의 한계니라.
    단지 국민들의 대중적 지지자로 강기갑을 내세웠을뿐 마치 민노당전체를 지지한다 착각하지 마시라. 뭘 너희들한테 화답하란 말이냐. 오나전 케안습일 뿐이다. 하던일이나 잘해라.

  • 충고

    불붙은 초가 촛농으로 녹아 새로운 형체를 갖추듯이 그냥 녹아내리세요. 여력이 있으면 헤쳐 모여 까지 하시든가. 제 옷자락에 불 붙은 건 모르시고 먼산 불구경 하듯 '화답' 하라시면 난감합니다.

  • ㅅㅅㅅ

    그나저나 운동권이라는말좀 쓰지말지 징하다 정말로. 그건 시위자를 폭도로 부르는 어법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데 왜 자꾸 우리가 우리를 그런 용어로 부르는지 모르겠네

  • 훈박사

    다수의 글을 써오신 지식인의 입장에서, '운동권'으로서 감정적으로 들뜨기 전에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온 이유를 조금만 회의적으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쇠고기 협상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위기감 때문이고, 직접적인 행동의 가장 주요한 밑바탕이 되었던 전제는 이명박의 협상이 나의 경제적 이익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명박의 쇠고기 수입이 나의 월급을 10만 원씩 올려줄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렇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지도 않았겠지요. 물론, 이후에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보면서 분노에 차 거리로 나오신 분들도 있고, 집회 자체가 재미있어서 나온 분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렇게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두고 사회주의를 꿈꾸는 '운동권과 의식이 일치되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오버입니다.
    대중들에게 비추어지는 강기갑 씨의 이미지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가장 열렬히 반대하는 정치인'일 뿐이에요. 사람들이 강기갑 씨의 대북관이나 과거 활동에 대해서 알기는 할까요? 아니 그건 둘째 치고,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될 거라는) 한미FTA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까요? 대중들의 레드콤플렉스와 광우병 반대는 분명 독립적인 문제입니다. 강기갑 씨가 광우병 쇠고기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대중의 지지는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 훈박사

    일련의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운동권과 대중의 의식이 일치되었다고 보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100만 촛불 집회 이후에도 솔직히 이런 괴리는 거의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모든 운동권이 강기갑이 되자니요? 대중들에게 강기갑 씨가 10만 명이 나타나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건 다른 겁니다. 이 주장이 어떤 의도고 현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도 운동권입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정말 운동권은 판 깔아주는 봉사나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합니다. 닥치고 눈팅하는 게 최선이죠. 지금 시민들에게 지도자는 필요치 않습니다. 앞으로의 진로는 시민들이 알아서 결정할 것입니다. 그들의 의식도 그들 스스로가 결정할 것입니다. 그 인기 좋다는 강기갑 씨가 발언대에 올라가 ‘청와대로 가자!’라고 한들, 따라갈 시민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훈박사

    물론, 가만히 있기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조금 근질근질하긴 할 겁니다. 세상에 꿈으로만 꿔오던 100만인 투쟁을 보고도 저 인원이 청와대로 간다면…이라고 생각 안 해본 운동권이 없겠지요. 가만히 있다가, 좋은 때 잡아놓고 죄다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속이 타기도 하고, 한 며칠 하다가 다들 촛불 끄고 집에 들어가 버릴까 내심 조마조마 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이들을 어떻게든 끌어당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지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 분명 생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바라지 않는다는 대중 그 자체입니다. 운동권이 거기에 끼어들고 싶으면 강기갑이 되기보다 하나의 대중이 되기를 선택하는 편이 낫습니다. 커다란 방송차 갖다 놓고 민가 틀고 정해진 구호를 외치고, 시위대의 진로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느니, 다음 아고라에서 글자라도 몇 개 끄적대는 게, 깃발 내리고 조용히 촛불을 들고 앉아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대중과 운동권의 괴리를 줄이는 길입니다.
    임승수 씨께서 잘 아시는 차베스는 진정, '내가 진리이니, 대중은 나를 따르라!'라는 계몽주의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것입니까? 대중들의 힘을 믿어봅시다. 정작 우리에게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발언대에 올라서 목에 힘주기보다 사회주의가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건강'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할 때까지 한 번 기다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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