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살아남았다. 이명박 정부 내 가장 진취적인 시장주의자며, 미국과의 경제공조, 대형화, 금융화를 통해 재벌중심의 한국경제를 다시 구축하고자 했으며, 물가폭등에 가장 책임 많은 강 장관은 경질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리를 지킨 강 장관은 요즘 자기 신념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집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집권초기 강 장관은 7% 성장을 이룬다며 환율상승을 부추겨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고유가에 환율까지 오르자 물가불안이 가중되면서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확대해야만 했다. 7월7일 강 장관은 정부의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했고, 1050원대로 급등한 외환시장에 7월8일 하루 동안 정부가 퍼 부은 돈만 20억 달러(2조원)에 달했다. (그렇지만 같은 날 주식시장은 외국인들의 매도로 폭락했고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들의 달러 역송금이 폭증하면서 환율하락세는 멈췄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달러를 바꿔가라고 일시적으로 더 많이 환율을 낮춰준 꼴이 되고 말았다.)

뿐만이 아니다. 국제유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강 장관은 언론에 나와 승용차 요일제, 대중목욕탕 격주 휴무, 골프장, 놀이공원, 유흥음식점 등 야간 영업시간 단축, TV방영시간 제한 등 야간 시간대 전기사용 제한 등의 조치를 강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조치들은 단순한 시장개입이 아니다. 강력한 민간통제에 가깝다. 보수언론에서 강 장관의 이런 조치들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펄쩍 뛰는 곳이 있을 법도 하다. 강 장관 스스로 ‘우파사회주의자’라 할 날도 멀지 않은 듯 하다.

시장주의자 강만수 장관이 이러한 강제조치를 취해야 할 만큼 한국경제는 위기다. 만약 그의 소신대로 시장에 내맡기게 되면 한국경제는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판이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촛불집회로 떠넘기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었다, 경제손실이 얼마다 하면서 정부와 재벌집단은 연일 언론에다 촛불집회 때문에 불안해서 경제위기가 가중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촛불 때문에 증시가 맥을 못 추고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촛불과 경제상황, 증시의 상관관계는 차치해 놓더라고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당장 대통령이 물러나야 옳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2008년 1월 종합주가지수는 전달에 비해 273 포인트나 폭락했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2008년 3월 또 하락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촛불이 한참 타오르던 5월의 종합주가지수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이후 최고정점에 달했다. 그리고 정부가 촛불을 잡았다며 강 장관을 살려두고 소폭 개각을 단행하며 샴페인을 터트리던 7월8일 단 하루만에 46포인트나 빠지면서 증시는 패닉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자, 다시 이들 논리대로 주장해 보자. 증시가 말해주듯이 경제가 악화된 것은 누구 때문인가? 촛불인가, 정부인가?

정부는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의 ‘현재’를 보았다. 그리고 대운하, 0교시, 영어몰입교육, 의료산업화,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 시그널로 정부의 ‘미래’에 대한 판단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도 강 장관까지 유임시켰다. 뭐가 부당하고 억울한가? 대운하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한 번 더 받아보겠다고,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비준을 빨리 서두르자는 강 장관이 남아서 할 일이 무엇인가? 이 또한 궁극적으로 인사결정권자의 의지라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