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선거는 이명박 심판의 기회"

[인터뷰] 조계사 농성 촛불 수배자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얼굴을 보기로 한 10시30분보다 늦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을 뒤로 하고 목소리가 들렸다. 사정을 얘기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서울 조계사에서 농성하는 촛불 수배자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괜찮아요. 저 어디 안 가요.” 그리고 “으허허”하고 털털하게 웃었다. 같이 웃으며 끊었지만 이 짧은 한 마디에 처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어디 가고 싶어도 못 가요”가 될 것이다. 씁쓸했다.

결국 20분이나 늦었다. 그래도 밖에 있을 때보다 조금 여유롭겠다는 생각은 빗나갔다. 회색 바지에 흰색 저고리의 한복을 입고 연신 통화 중이다. 꽤나 바빠 보였다.

“챙겨야 할 일 들이 많네요. 교육본부 일도 그렇고. 다행히 수배 생활을 하면서 농성하는 기간에도 흥사단에서 월급을 주기로 했다고 하네요.”

권혜진(37)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경찰의 2차 출석요구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이틀 뒤인 12일 오후 5시쯤 서울 조계사 ‘촛불 수배자 농성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이 때문에 우스개소리로 ‘막내’라 불리기도 한다.

“출석요구를 거부하고서 지방에 내려가 있었어요. 그러다 농성단 소식을 들었고 잘못한 것이 없기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성단이 촛불의 또 하나의 중심이 되면서 전화, 인터넷, 생중계 등으로 나름대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체포영장은 직접 보지도 못했다. 기자로부터 전해 들은 혐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선동, 배후조정 등이란다. 이미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8명의 수배자와 같은 내용이었다.

“당연히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것이죠. 또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구요. 대책회의에 참가 단체들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생각했고요. 그리고 비난받기 싫었고 신뢰받고 싶어 마이크를 잡고 밤을 샜습니다. 저를 이끈 건 역동적인 시민들입니다. 이게 진짜인데 체포영장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건방진 일이예요.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7명의 촛불 수배자들은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왼쪽 두 번째가 권혜진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광우병대책회의에 어떤 직책을 가지고 활동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속한 단체가 대책회의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로 촛불문화제 사회를 봤고 행진 때는 방송차에 올라 구호를 외쳤다. 처음으로 사회를 받던 5월13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촛불을 처음 들었던 2일도 청계광장에 있었지만 무대에 올라 사회를 보니 또 다르더군요. 시민들과 촛불 소녀들의 소박하면서도 촛불에 담긴 큰 분노와 참여의 희열, 역동의 새로움에 가슴이 설렜어요. 그리고 5월17일 대책회의와 4·15공교육포기정책반대연석회가 함께 한 촛불문화제는 광우병 쇠고기에서 이명박 교육정책의 문제로 한 단계 끌어올렸죠. 올해 처음으로 4·15조치로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들의 요구에 답한 겁니다.”

활동을 하면서‘수배’생활을 한 것은 처음이다. 그보다 넓은 의미인 ‘처벌’로 간추린다면 중학교 때 이미 경험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88년 50~6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민주돌곶이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회 직선제 등을 요구했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바로‘징계’를 받았다.

“이게 처음이네요.(웃음) 그렇게 징계를 먹고 고등학교에 올라왔는데 중학교에서 직선제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죠.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얘기가 맞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요구했다고 하더라구요. 잘 된 일이죠. 어떻게 보면 이때는 제가 배후세력이었네요.(웃음)”

이 일이 계기가 되었을까. 지난 1998년 ‘청소년인권’분야로 처음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흥사단과 인연은 지난 2006년 11월 청소년인권포럼을 준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10년. 권혜진 사무처장 눈에는 ‘청소년인권’은 어떻게 변했을까

“예전에는 청소년에게 인권이 뭐가 있느냐며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죠. 학교에서 그저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말만 잘 들으면 되는 것이 청소년 인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청소년에게도 인권은 있고 체벌 같은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거기까집니다.

그 인권을 어떻게 보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멀었어요. 거의 모든 학교가 학생회 직선제로 뽑는데요. 그러면 뭐합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없죠. 학운위 참여도 못하고 뭘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제는 학생회 법제화 등 구체적으로 청소년 인권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과제입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초중등교육법 18조4항에 인권보장 내용도 들어갔죠. 인권은 보장돼야 하는데 입시 때문에 참아라고 하는 것도 끝나야 돼요”

“청소년인권 10년 후퇴시킨 4·15조치, 7월30일 심판”

얘기는 자연스럽게 4·15조치로 넘어갔다.

“그런 시점인데 4·15조치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마저도 1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조치예요. 그렇게 힘들게 해왔는데 한 순간의 발표로 허물어트리는 것 같아 허무하기도 합니다. 0교시에 우열반도 하라고 하고. 물론 금지했다지만 1교시를 앞당기고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이름만 바뀐 우열반이 진행되고 있죠.

학교는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하는데 오히려 사교육기업이 학교에서도 돈을 벌 수 있게 만들고. 무조건 공부만 하라는 건데요. 이러면 청소년인권을 설 자리 없어집니다. 그야말로 ‘미친 교육’ 만큼 적절한 용어가 없어요. 완전히 미쳐가고 있습니다.”

  108배를 하는 동안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요”.
청소년이 이끈 ‘2008년 촛불 정국’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많이 배웠다.

“지난 2005년에도 내신등급제로 촛불을 들었지만 그 때는 청소년단체에서 조직된 청소년들이었죠.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놀라웠습니다.

체벌과 두발 등 학교에서의 고통이 심한 상황에서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사람이라는 이른바 4·15조치가 불을 지폈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죠. 그리고 바로 퇴진을 요구했어요.

촛불로 퇴진을 시킨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그 과정에 얻은 가치와 민주주의 등이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내 목소리를 내 달라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바꿔가는 것은 청소년들에게도 큰 경험이었죠.”

앞으로의 ‘촛불’을 생각하면 바로 코 앞에 있는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눈에 들어온다.

“두 달이 지난 촛불의 정서는 재협상을 넘어 이명박 심판입니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교육’ 이라는 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명박 정부에 표로써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저도 부재자 투표를 했습니다. 촛불은 계속 모여야 해요. 해결된 것이 없잖아요.

재협상은 물론 촛불 행진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등 어느 것 하나 답이 없어요. 언론장악을 시나리오 대로 진행되고. 촛불을 끄면 안 돼요. 그건 처음 촛불을 든 청소년을 배신하는 겁니다.”

권혜진 사무처장을 포함한 7명의 수배자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조계사 대웅전을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이 ‘108배’다. 권혜진 사무처장을 만난 16일은 5일째였다. 두 눈을 꼭 감고 꼬박 108번을 절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했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요”라며 권혜진 사무처장은 웃으며 말했다.(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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