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투쟁이 이기는 그 날까지 촛불 들다 갈래요”

연정의 바보 같은 사랑(23) - 기륭전자분회 단식농성 49일 차, 단식농성장 침탈 위험

“초상권 침해에요.”
“찍히기 싫으면 쓸 데 없이 여기 있지 말고 가세요.”
경찰이 쭈뼛거리며 뭐라 하는데, 들리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나는 툴툴거리며 문화제가 진행되는 기륭전자 앞으로 와버린다.

집회도 없는 날인데, 도로 가에 전경차가 3대가 배치되고, 경찰들이 공장 안과 밖에 포진해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를 간 사이 민주노총 앞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조계사와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한 탄압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27일 오후, 진영옥 부위원장이 연행되었다. 26일에는 사무연맹 알리안츠생명지부 농성장이 용역깡패들에 의해 침탈되었다. 1억 원 어치나 되는 금품까지 훔쳐갔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찰은 그런 몰상식한 도둑 잡는 일은 하지 않고, 48일을 굶은 기륭전자분회 여성노동자들을 잡아 가겠다고 농성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교섭 자리에 그렇게 나오라고 나오라고 해도 끝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부르니 쪼르르 달려가 알현하고 기만적인 안을 배영훈 대표이사의 손에 들려 보냈던 최동렬 회장. 그 최동렬 회장이 지난 주에 금천경찰서에 서장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옥상에서 단식농성중인 사람들을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고발을 했는데, 왜 집행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러 갔다고 한다. 경찰이 직무유기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단다. 결국, 23일 날, 체포영장이 발부 되었는데, 그 날은 바로 배영훈 대표이사가 그 기만적인 안을 들고 나온 날이었다. 투쟁 1070일, 단식농성 48일 차가 되는 오늘 뼈만 앙상한 이 여성노동자들을 잡아가겠다고 경찰병력이 출동을 한 것이다.

하루에 물 몇 모금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이 단식자들에게도 모기들이 달려들어 괴롭힌다고 한다. 기륭전자 사측이나 검찰, 경찰 모두 그 모기떼들보다 더한 흡혈귀처럼 느껴진다.

지난 토요일, 신장이 나빠져 평생 혈액투석의 위험이 있는데도 힘겹게 단식을 이어가던 석순언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제 단식농성을 하는 조합원은 3명이다. 오늘 문화제 때, 옥상 위에서 농성 중인 단식자들은 기력이 없어 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걱정이 되어 올라가보니 젓가락 같은 분회장님이 소복 바지를 걷어 부치고 누워 있고, 그 옆에 비슷한 모습의 흥희 언니가 앉아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더니 이내 누워버린다.

“왔냐.”
이 한 마디는커녕 눈 마주칠 기력도 없어 보인다. 하루 종일 그 뜨거운 태양열을 온 몸으로 다 받으며 견디었을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온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폭염 역시 단식 중인 조합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조건이다. 50cm 떨어진 곳도 나와 앉아 있기도 힘든 단식자들을 잡아가겠다고 온 이명박 대통령과 최동렬 회장의 하수인 금천경찰서 관계자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도 아직은 서총련 학생들의 율동 공연을 보며 방긋 웃을 수 있는 현주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기륭 1000일 투쟁 첫날인 5월 14일, 문화제가 끝난 후 지역 동지들과 함께 故 구본주 선생님의 조각상 <노동>으로 만든 촛대 앞에서. 이 날 이후 매일 저녁, 기륭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동지들은 이 촛대에 활활 타오르는 초를 꽂으며 기륭투쟁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진짜 쪽팔려요. 천일 집회 때 오고, 이번 1박 2일 투쟁 때 오고, 오늘이 3번째 오는 거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촛불을 드는 거라면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온 거라 쪽팔려요. 할 말도 별로 없어요. 3년 넘게 무수한 사람들이 무수한 얘기들을 했을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저는 촛불 하나 들다가 갈 거에요. 이 투쟁이 이기는 그 날까지 촛불 들다 갈래요.”

공대위에서 활동하시는 분에게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다는 김성민 씨가 수줍은 발언을 한다.
광화문 촛불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묻혔다며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광화문에서 타오르는 촛불과 기륭전자 앞이나, 홈에버 월드컵점 앞, 코스콤 앞에서 타오르는 촛불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광화문에 촛불이 타올랐던 날들과 거의 비슷한 날들 동안 기륭전자 앞과 고공농성이 진행되던 구로역 앞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광화문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 것이 덜 미안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광화문에 모인 이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잊어버렸다면 우리가 이들을 만나러 가면 된다. 언젠가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기륭 동지들이 건네는 유인물을 마치 신성한 어떤 것을 받아 들듯이 경건한 자세로 받아 읽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곳에서 공유되는 것들은 모두가 신성한 것이었다.

6월 28일, 기륭 동지들의 투쟁 1040일, 집단 단식농성 18일이 되던 날, 서울시청에서 1040인 일일 동조단식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까지 8보 1배를 하며 가다가 5명의 연대 동지들이 연행되었다. 그 날, 저녁 촛불문화제 때, 기륭 조합원이 발언을 하고, 모금함을 돌릴 때,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건네주던 따뜻한 마음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 시민은 배영훈 대표이사가 자신의 친구라며 자신이 잘 설득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한다. 실제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성만 선배가 몸이 좋지 않은데도 와서 음향 지원을 해주고, 노래를 무려 7곡이나 부르는 사이 경찰 병력 배치 문자메시지를 받은 연대 동지들이 속속 도착한다.
“이 투쟁이 이기는 그 날까지 촛불 들다 갈래요.”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도, 같은 시간 광화문에서 촛불 하나를 들고 있을 이들의 마음도 모두 그러할 것이다.

단식농성 49일 차가 되는 오늘 아침, 금천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체포영장 강제집행 고지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는 날까지 기륭 투쟁의 현장에서는 매일 저녁 촛불이 타오를 것이라는 거다.

매일 저녁 7시, 기륭전자 앞(가산디지털단지역 2번 출구, 3번 마을버스 타고 ‘충남슈퍼’ 하차)에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일요일 제외. 목요일은 상도동 최동렬 회장집 앞 문화제) 내일은 ‘단식농성 50일 차 집중 집회’가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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