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 왜 들어왔을까?”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 (25)-기륭전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농성 2일차

8월 2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앞. 기륭문제 해결 요구 농성 2일차.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다들 부스스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앉아있다. 제일 먼저 농성장을 방문한 이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이정희 의원이 밤에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 이정희 의원도 기륭동지들의 고단한 투쟁을 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며칠 전에는 너무 바빠 밤 12시가 넘어 단식 농성장에 왔는데, 눈꼽 낀 이정희 의원의 눈을 보며 조합원들이 고맙고 미안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정희 의원실에서 종류별 일간지와 읽을 책들, 세면도구를 챙겨주고 갔다. 산뜻하고, 유쾌한 소설책이 있나 싶어 나도 들여다봤는데, 모두 사회과학 책들이다.

김정대 신부님은 신문이 오자 쓰레기를 골라내야 한다며 ‘조.중.동’을 빼놓는다. 효진 스님도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은 분 중 한 분이다. “정말 소외받는 약자들이 보수 정치를 지지하는 것은 다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 때문”이라며 어제도 한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다. 김윤옥 씨의 사촌 김옥희 씨의 뇌물수수 축소.은폐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검찰이 법을 몰라서 김옥희 씨와 브로커를 ‘공직선거법’이 아닌 ‘사기 혐의’로 구속했을 리 없다. 마찬가지로 검사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법을 몰라서 제3자 신설회사 운운하는 안을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주장하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동일한 것으로 오해 했을 리 없다.

새벽에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에 와서 원고를 써 보내고, 농성장에 가니 모두 잠들어있다. 이불이 없어 신문지 한 장 덮고들 자는데, 코고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아침에 종희언니가 배 높이와 코고는 소리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여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기에 수면제를 뿌려 놓았나봐.” 김정대 신부님과 어제 밤 우여곡절 끝에 늦게 들어온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 선배님은 평소에 못 주무신 잠을 다 주무시는 것 같았다. 목소리보다 코고는 소리를 더 많이 들려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자는 시간이 많아지면 위에 있는 조합원들의 단식이 그만큼 길어지는데...”하며 미안해하는 김정대 신부님에게 이 곳에 들어온 이유를 들었다.

“내가 여기 왜 들어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닙니다. 또, 노동자들의 절박함도 모릅니다. 노동자들 중에는 당장 천 원이 절실한 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만큼의 절박함이 나에게는 없어요. 그러면 나는 여기 왜 들어왔을까? 저는 꺼져가는 생명 때문에 온 거에요. 저는 이 사람들(조합원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온 겁니다. 다른 회사 갈려고 천일 동안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홍준표 원내대표가 문제를 잘못 읽고, 중재를 한 겁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것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데 절차를 따지면 소통이 힘듭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지난 7월 10일,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방문과 관련하여 절차상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바로 홍준표 의원실에서 호통을 쳤고, 1차 방문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회 [출처: 위키백과]

효진 스님은 “공인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조그만 책임감”을 갖고 이 곳에 들어오셨다고 하셨다. “내가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착착 풀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아 몸으로 때우는 거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지혜가 없는 것이 한스럽다. 이 문제를 꼭 해결해서 서로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기륭전자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자꾸 기륭 투쟁에 오게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평소 에너지가 많으시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스님도 현재의 적막한 상황이 다소 답답하고, 속상하신 것 같았다. 효진 스님은 우리들 중 앉아 있는 자세가 가장 바르셔서 나는 이 곳에 있는 동안 자세를 교정하고 가야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장투 동지들 중에는 집회 때마다 구부정한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 있는 탓에 허리가 좋지 않은 분들이 많이 있다.

오전 10시 20분, 간단하게 회의를 했다. 어제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하고, 이후 일정을 공유했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번 건의 책임이 홍준표 의원에게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같이 하고, 국회 안에서는 홍준표 의원, 국회 밖에서는 홍준표 의원과 최동렬 회장을 압박하는 것을 계속해 나가기로 한다. 농성자들은 이야기 나누는 짬짬이 이 투쟁과 동시에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압력 수위를 보다 높이기 위해 다음 주 초에 진행해야 할 여러 가지 투쟁 방법들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오후에는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실 보좌관이 아기를 데리고 오고, 오병윤 신임 사무총장이 다녀갔다. 3시, <민중의소리> 기자가 농성장 좌담을 취재하고, 그 사이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이 와서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노동부 관악지청 직원도 왔다 갔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결 되냐. 대표이사가 미국에 있는데...” 운운하며 한 농성자에게 본인과 같이 나가자고 하기도 했다 한다.
“이 곳 지지방문자는 막으면서 이런 사람은 들여 보내냐.” 송경동 시인이 항의를 한다. 관악지청 직원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사라진다.

학생 동지들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오늘 저녁,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서 시민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요즘, 촛불집회 탄압이 심해서 들어갈 수나 있을까, 질질 끌려 나오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왔다는 박혜정 씨는 “막상 들어와서 보면서 무관심과, 회피하는 모습, 예상과는 달리 당당한 이 곳에 있는 사람들과 집권 정당 대표의 태도에 많이 답답하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라 포기하지 않고, 니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끝까지 해보자는 것이 연대하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이라고 의지를 밝히고 촛불집회로 갔다.

토요일, 국회 안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호 업무를 하는 분들 외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을 아침에 딱 한 명을 보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5일까지 냉각기를 갖고, 그 이후에 원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했단다. 문이 굳게 닫힌 홍준표 원내대표실은 주말 내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적막한 그 시간이 농성자들에게는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휴가를 간 직원들도 많다고 한다.
“사람이 50일을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휴가 가고, 주말이라고 안 나오고...”
조합원들은 닫힌 문을 보며 속상해한다.

국회 안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호 업무를 하는 분들과 이번 농성 때문에 출근을 한 국회 내에서 직급이 그리 높지 않은 공무원들이다.
한 직원은 “지금 여기서 보이는(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다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높은 사람들은 다 휴가를 갔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경호 업무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채로 들어온 사람도 있지만, 기능직 공무원도 있다. 여기서는 6급 이하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국민들이 선거를 잘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이번 교육감 선거를 이야기하며 안타까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냥 우리끼리 국회를 접수해 버릴까요?”
누군가 이야기한다.
정말 그랬다. 국회 내 농성으로 국회는 비상령이 떨어진 상태이지만, 국회 내에서 그 뒷수습을 하는 이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기륭 조합원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 있는 분들이다. 그렇지만, 본인들 말대로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 분들은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의 움직임을 메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말에 근무하는 분들은 기륭전자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오며가며 많은 관심과 지지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기륭 문제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불편이 억울한 것도 있어서 조합원들이나 공대위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있을 거다.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사람이 왔다.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그만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러 온 것이다. 경호 업무를 하시는 한 분이 내게 농성 중인 한 분의 이름을 물어보러 오셨다. 그 분은 자신은 경호 보조라며 농성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3년 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계속 만나온 분들인데, 상황은 알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난감해하며 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며 ‘이 상황은 또 뭔가?’싶었다.
문득, 이 ‘국회’라고 하는 곳이 습한 여름 날씨처럼 음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주말 내내 그 안에 엉켜 있게 될 삶들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꽤 길고, 지루한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밤이다.
이 투쟁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결과로 잘 마무리가 된다면, 오늘의 씁쓸함도 적막함도 추억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국회’라고 하는 이 공간 안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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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국회농성 , 홍준표 , 기륭전자 , 기륭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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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인

    입력하는데도 영어먼저 뜨게 만드면서 얼어죽을 참세상이냐?
    다음은 한글이 기본인데.............

  • 이창호

    당장 도울 길은 없고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느 대학이든지 그 대학의 학생회 간부를 몇 명 초대해서 젊은이들의 조언을 듣는 게 어떠실지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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