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 언니”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27) - 기륭전자분회 故 권명희 조합원님의 명복을 빌며

고맙습니다 살아있어 주어서
그대와 생생하게 함께 살아 있는
이 한 순간 한 순간이 감사합니다


9월 24일 밤, 기륭전자분회 카페에서 문규현 신부님이 쓴 <자기사랑 -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님께>라는 시를 읽었다. 내 마음도, 다른 많은 연대동지들의 마음도 비슷할 거다. 김소연 분회장님이 흥희 언니가, 그리고 단식을 했던 기륭전자분회 모든 조합원들이 살아 있는 것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눈물나게 고마울 거다. 그런 충만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불과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 기륭전자분회와 관련하여 지인에게 메일을 쓰고 있던 중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권명희 조합원이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명희언니, 명희언니...
2005년 8월 24일 파업 농성에 들어가서 2006년 1월에 해고통보를 받고, 그 때로부터 4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암 투병을 했던 명희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분회장님은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 파견 노예 노동의 억울한 한이 남에게 제대로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의 마음속에 아프게 뭉쳐 암세포 암 덩어리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위에서부터 시작된 암세포가 간과 피부에까지 번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인데도 언니는 집중집회와 문화제, 조합원 모임에 꾸준하게 참여하셨다. 나는 언니가 단 한 번도 아픈 내색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조합원들에게 조금의 부담도 주지 않으려는 듯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 조합원들도, 연대동지들도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나는 언니가 농성장에 오는 것이 반갑다고만 생각했지, 언니가 오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언니가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올해 어느 시점 이후로 농성장에서 뵙지 못했는데,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못했었다. 추석 전에 조합원들이 언니를 만나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뵌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한 번 뵈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2007년 7월 6일 기륭전자분회 결성 2년 기륭전자앞 연대집회가 끝난 후에, 중간에 분홍색 모자를 쓴 이가 故 권명희 조합원이다.

“명희언니”
정말 편하고 친근한 이름이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명희”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몇 명 된다.
“명희언니”
하고 나지막이 부르면 금방이라도 수줍은 미소를 안고 돌아올 것만 같은 언니.

명희언니는 참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다.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수줍은 미소와 낮은 목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언니의 얼굴과 미소는 기억이 나지만,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게 언니의 목소리는 이미지와 빛깔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안다. 늘 치마만 입다가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처음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는 언니는 현장 점거 농성 중에도 늘 다른 조합원들을 배려하고, 아픈 조합원들을 챙겼다고 한다.

현장 점거 농성이 55일 만에 공권력 침탈로 끝나고 분회장님이 감옥에 있던 2005년 늦가을은 날씨만큼이나 시리고 아픈 그런 날들이었다. 사흘이면 끝날 줄 알았던 투쟁 길어지자 많은 조합원들이 생계 때문에, 전망 없는 투쟁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즈음, 사측과 경찰은 유언비어를 퍼트려서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 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간부들에 대한 불신으로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때 명희 언니는 “나는 분회장과 조합원들을 믿는다”고 단호하고 명쾌하게 이야기 했었다고 한다. 조합원들에 대한 신뢰를 언니는 그 이후로 줄곧 몸으로 실천해왔다.

언니는 조합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2006년 봄, 투병을 시작하면서도 이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언니가 다니던 순천향 병원에서 가수 김성만 선배가 우연히 언니를 만나게 되면서 언니가 아프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알게 되었다.

3년 넘게 기륭전자분회 취재를 다녔지만, 언니를 따로 길게 인터뷰한 기억이 없다. 투쟁 초기에는 매일 조합원들을 졸졸 쫓아 다니면서 한 명씩 인터뷰를 했었는데, 언니의 존재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2005년 말 경, 최대 주주인 아세아 시멘트 앞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명희언니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언니가 사양하셔서 다른 조합원님만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언니는 옆에 조용히 서 계셨다. 그때 언니는 머리가 길었다... 언젠가 한 번 농성장에서 집요하게 언니를 졸라 짧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언제인지 알 수가 없어 당장 그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륭분회에서 언니 사진을 찾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한참을 뒤적였지만, 원하는 사진을 찾지 못했다. 인물 사진보다는 단순 기록을 위해 스케치 중심으로 촬영을 하는 내게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사진을 뒤지면서 나는 마음이 참 힘들었다.

2006년 이후 사진 속의 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아니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다른 조합원들 뒤로 쏙 들어가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2005년 투쟁 초기에도 고개를 숙인 사진 속 언니 모습은 비슷했는데, 그 때는 언니의 수줍음 많은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투병 중이던 2006년 이후에는 아픈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조합원들이 이야기한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투병 중이던 언니에게 사진 찍히는 일이 이토록 곤혹스러운 일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올해 내 기억으로는 언니가 마지막으로 농성장에 오셨던 날, 이 날은 오랜만에 오셔서 그랬는지 이상하게도 개인 사진을 한 장 꼭 찍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사진을 찾지도 못했다.

언니는 투쟁 중에도 기륭전자분회 카페를 통해 투쟁 소식들을 챙겼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륭 동지들이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을 카페에 부지런히 올리지 못한 것이 죄스럽기도 하다. 지난 여름, 최동렬 회장이 농성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문제가 곧 해결될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을 때, 언니는 남편하게 밝은 목소리로 “나도 꼭 기륭전자로 돌아가서 그동안 고생한 조합원들과 함께 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다고 한다.

언니가 눈을 감은 어제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출근투쟁을 포함하여 총 7개의 일정이 있는 날이었는데, 빈소와 농성장을 사수할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이 전 일정을 다 마쳤다. 바쁜 일정을 하면서 사이사이 많은 눈물을 쏟아냈을 조합원들과 연대동지들이 이 날 마지막 일정으로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을 들고, 명희언니를 추모했다. 조합원들은 언니가 이루지 못한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꿈을 생각하며 가슴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렸을 것이다.

어떤 말로 글을 마무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언니 떠나는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이었는데...

故 권명희 조합원님의 빈소는 부천 순천향 병원이고, 내일(27일) 오전 7시에 병원에서 발인을 한다. 오전 9시에 기륭전자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벽제에서 화장을 하고, 오후 4시 전후로 마석 모란공원 추모의 집에 모시게 된다. 장례는 기륭전자분회장으로 치루어질 예정이다. 오후 5시에는 기륭전자 앞에서 故 권명희 조합원님을 추모하는 천주교 시국미사가 진행되며 농성장에 분향소가 마련된다.

“살아있어 주어 감사한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먼 길 떠나는 명희언니가 외롭지 않도록 언니와 따뜻한 눈 맞춤이라도 한 번 해주시고, 언니 손에 언니의 수줍은 미소를 닮은 국화 꽃 한 송이라도 쥐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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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 기륭전자 , 기륭분회 , 권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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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에서

    기륭투쟁 반드시 승리하여 故 권명희 동지의 한을 꼭 풀어주어야겠습니다.. 대구에서도 파견법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투쟁을 올곧게 해 나가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친구

    권명희 동지가 하늘나라에서도 꼭 기륭동지들께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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