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돈이나 좀먹는 벌레로 아는 대학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연세대, 무인경비시스템 도입한다며 경비직 노동자 집단 해고

"오십 년쯤 지나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에 친구와 시시껄렁한 소리를 주고받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나왔다.

“비정규직이 자꾸만 늘고 있잖아. 한 오십 년쯤 지나면 어떻게 될까? 남한 노동자들 전부가 비정규직이 될까? 그때쯤엔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일 어떤 식으로 고용할까?”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용직이지 뭐. 일용직.”

끔찍했다. 이대로 가다간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판을 벌이듯, 도박판에 판돈을 걸 듯,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들을 자기 것처럼 사고 팔 것이 뻔했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나? 연세대 공학관 앞 화단에 앉아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뭉쳤다 헤쳤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는 낮 열두 시에 공학관 앞에서 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부 연세대분회의 ‘중식 집회’가 잡혀 있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이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뭔가를 들여오면서 연세대 측이 경비 노동자들 열두 명을 강제로 해고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취재를 해 보기 위해 연세대 공학관 앞에 열두 시까지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하지만 낮 집회는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뒤늦게 받고서 오후 네 시 ‘퇴근 집회’ 시간까지 연세대 근처를 어슬렁대다가 세 시 반쯤에 다시 연세대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세 채나 되는 공학관 건물들 주변을 기웃거려 보아도 집회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퇴근 집회도 취소됐나? 나는 네 시 반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하고 공학관 앞 화단에 앉았다. 담배를 후후 피우고 있는데 저 옆에서 “어머나! 여기서 보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두 분이었다. 집회에 참여하러 오신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근처를 헤매다가 결국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보던 조합원이 마침내 내게 손짓했다. 연세대 본관 앞이라고 했다. 본관 쪽으로 길을 타고 올라가 보니 담쟁이인지 뭔지 나뭇잎으로 잔뜩 덮인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펄럭이는 깃발들도 보였다. 집회는 네 시 정각에 시작한 듯, 본관 앞 공터에서부터 본관 입구 계단까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백여 명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집회는 네 시 정각에 시작한 듯, 본관 앞 공터에서부터 본관 입구 계단까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집회에 함께 하면서 발언도 듣고 이것저것 캐묻고 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연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하나. 무인 경비 시스템이란, 건물마다 있던 경비직 노동자들을 없애고 재학생과 교직원들이 마치 지하철 개찰구처럼 카드(학생증 또는 교직원 신분증)를 찍어야 건물에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다. 출입문 자동화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ADF나 CAPS 같은 외부 경비 업체에다 교내 경비 업무를 갖다 맡기는 것이다.

둘. 연세대는 ‘교내 예산 절감’을 위해 이미 올해 초부터 야금야금 무인 경비 시스템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건물 몇 채에 ‘상주 근무’(건물 안에서 살면서 근무하는 방식이란다. 휴가도 없고 휴일도 없다. 불법이라고 한다.)를 하던 경비직 노동자들이 무인 경비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근무가 격일제로 바뀌며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엔 해고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

셋. 연세대 공대와 이과대 건물에는 일찌감치 출입문 자동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평일 밤 11시 이후와 공휴일에는 학생증이나 교직원 신분증이 없이는 건물을 드나들 수 없다고 한다.

넷. 제 1·2·3 공학관에서 근무하는 경비직 노동자들에게 연세대 측은 지난 9월 10일에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 날짜는 10월 10일. 연세대 건물 전체에 들여올 작정인 무인 경비 시스템을 일단 공학관에서부터 맛보기로 시험해 보겠다는 속셈이었다. 문제는 경비직 노동자들과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단지 무인 경비 시스템을 들여온다는 이유로 강제로 경비직 노동자들을 내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섯. 연세대 측은 ‘직접 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엔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믿기에 우리는 이미 숱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서 너무도 많이 속아 왔다. 용역 회사가 원청인 연세대의 의견을 좇지 않을 리가 있을까? 이는 명백한 무단 해고다.


여섯. 연세대 경비직 노동자들은 출입문만 관리하지 않는다. 10월 6일에 있었던 ‘연세대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문건에서 옮겨 본다. "경비직 노동자들은 강의실을 열고 닫으며, 건물 외곽청소를 하고 엘리베이터 등의 학내 시설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더불어 여자화장실 비상벨을 관리하고, 과학관 등의 경우 밤 시간 경사로 출입구가 닫히기 때문에 장애 학우가 경비실로 인터폰을 하면 경사로를 열어주는 업무도 한다. 이런 경비직 노동자의 업무는 단순한 출입문 자동화 시스템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더불어 경비직 노동자가 출입문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된다면 이들이 하던 노동은 미화직 노동자에게 전가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일곱. 실제로 한 미화직 노동자가 집회 중간에 나와 발언을 했다. 10월 10일이 지나 공학관 경비직 노동자들이 죄다 해고된 어느 날, 미화직 노동자들 몇몇이 밥을 먹고 있는데 저쪽에서 소장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경비직 노동자들이 담당하던 구역을 이제부터는 미화직 노동자들이 청소해야 한다고 했다. 경비직 해고 후 경비직 노동자들이 하던 업무를 다른 학내 노동자들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여덟. 연세대 측과 용역 업체가 미화직과 경비직 노동자들에게 주어야 하는 체불 임금이 약 3억 5천만 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용역 업체는 지난 2월 말에 계약이 끝나면서 폐업해 버렸고 연세대 측에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3억 5천만 원이라는 돈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왜 하필 3억 5천일까? 연세대 측이 받은 돈은 업체가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돈을 지불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위약금이라고 한다. 연세대 측은 이미 그 돈을 어떻게든 환원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환원은커녕 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린 그 큰돈은 여전히 연세대 측 손안에 있다. 연세대 측은 아직도 체불 임금 지급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아홉. 미화직 노동자들은 지난 1월에 이미 힘든 싸움을 겪었다. 그때 연세대 측은 느닷없이 정년을 62세로 줄이겠다고 하면서, 현재 일하고 있는 미화직 노동자들 절반 이상을 해고해 버리려 했다. 본관 점거 농성까지 한 끝에 결국 미화직 노동자들은 ‘전원 고용 승계’를 따낼 수 있었다. 더구나 노천 극장 안에는 노조 사무실이 있다고 하는데, 연세대 측은 지금까지 몇 차례나 사무실을 강제 철거하려 했다고 한다. 공공서비스노조 연세대 분회를 학교 측은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열. 낮 열두 시에 잡혀 있던 ‘중식 집회’ 일정은 알고 보니 학교 측이 유령 회사를 동원해 미리 집회 신고서를 제출해서 취소된 것이라 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이란, 건물마다 있던 경비직 노동자들을 없애고 재학생과 교직원들이 마치 지하철 개찰구처럼 카드(학생증 또는 교직원 신분증)를 찍어야 건물에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다.

노동자들을 돈이나 좀먹는 벌레로 여기는 대학

성신여대 미화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끝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비슷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병원이고 대학이고 대기업이고 뭐고, 사회적 공공성 같은 건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린 지 오래였다. 사회적 공공성?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사회적 공공성 아니었나? 그런데 이젠 그런 것도 계산기 두드려 가며 수지가 맞아야 챙길 수 있는 모양이었다. ‘교내 예산 절감’이라는 이유로 당장 생계를 이어갈 대책도 없는 노동자들을 해고해 버린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돈이나 좀먹는 벌레로 여긴다는 뜻이다.

공대 학생회 학생들과 연세대 분회 노동자들 총 일곱 명이 총장과 면담을 하러 네 시 반쯤에 본관으로 들어갔다. 총장이 과연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러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대학 총장들은 저마다 전생에 두더지나 시궁쥐였는지 툭하면 숨고 웅크리고 도망가기만 했다. 어느 대학 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희한한 일이었다.

사십여 분 뒤에 대표단 일곱 명이 본관에서 나왔다. 총장은 역시나 나오지 않았고 관재처장이 “내가 총장님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았다”는 말을 하며 대신 나왔다고 했다. 대표단과 관재처장이 논의한 것은 세 가지였다. 관재처장이 했다는 답변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하나. 체불 임금 3억 5천만 원 : 돌려주겠다. 그런데 학교에서 직접 돌려줄 수는 없다. 지급 절차가 복잡하다. 기다려 달라. (업체가 연세대 측에 돈을 준 게 지난 3월 말인데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다니?)

둘. 노조 인정 : 연세대 측은 어떤 노조 활동도 억압할 의사가 없다. 노조 인정하겠다.

셋. 무인 경비 시스템과 무단 해고 :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겠다. 피해 입는 사람들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다섯 시 반에 집회가 끝났다. 대오는 깃발을 들고 연세대 정문까지 행진했다.

상상 못했던 일들, 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

임기응변이었을까? 아니면 꼼수?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목요일까지 확답을 주겠다”고 관재처장이 말했다고 했다. 목요일, 10월 16일까지 과연 연세대 측은 체불 임금과 해고 노동자 문제를 정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별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학교 측이 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연세대 측은 언제나 제멋대로 힘을 휘두르려고만 했다. 이른바 명문대라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재단이 돈에 눈이 뒤집혀서일까? 미화직과 경비직 노동자들을 하인처럼 부려먹으면서 돈도 떼어먹고 함부로 자르려고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다섯 시 반에 집회가 끝났다. 대오는 깃발을 들고 연세대 정문까지 행진했다. 연세대 학생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정성껏 돌봐주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지금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생계가 뚝 끊기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다 알고 있는데도 신촌 바닥 길거리는 매일 밤마다 흥청거리는 것일까?

고려대 분회 노동자들도 12월이면 계약이 종료된다고 한다. 비정규직법이 뿌린 씨앗이 하나 둘 움트고 있다. 계약 종료와 함께 어디든 해고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생겨날 것이고 싸움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일용직’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지금처럼 전국 9백만 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된다고 십여 년 전에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연세대 정문을 등지고 빽빽한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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