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절망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연대의 힘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홈플러스 상암점과 강남 성모병원의 토요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조금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동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거든요. 참세상에 마지막으로 글을 보낸 게 지난 주 화요일이었으니 일주일 가까이 손을 쉬고 빈둥거리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저런 투쟁 사업장들을 돌아다니면서 조합원들과 농담도 하고 얼굴도 익히다 보니 요새는 제가 쓴 글을 읽어 보신 분들이 방긋 웃으며 제게 말을 걸어 주시기도 합니다. 저는 물론 몸 둘 바를 모르는 기분으로 쑥스럽게 웃고 말지요. 하지만 얼마 동안은 정말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매일 술만 마시며 굴뚝처럼 담배만 피우다가 그냥 자 버리고는 했어요. 무슨 글을 써도 너절하게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져 먹고 찾은 곳이 바로 이랜드 홈에버 상암점과 강남 성모병원이었어요.

아, 더 이상 이랜드 홈에버라고 하면 안 되겠군요. 이랜드가 자기 계열사였던 홈에버를 삼성 테스코에 팔아먹어 이미 홈에버는 홈플러스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게 되었지요. 상암점에 가보니 커다란 간판은 아직도 홈에버였지만 그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 옷에는 홈플러스라고 적혀 있더라구요. ‘홈에버’라는 말을 할 때는 여전히 화가 치밀어 윗니 아랫니를 짓씹게 되지만 ‘홈플러스’라는 말은, 글쎄요, 아직은 그냥 밍밍하네요. 삼성 테스코가 홈에버를 집어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김경욱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조합 대표들과 삼성 테스코 사이에서 여전히 교섭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홈플러스가 아직까지는 밉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교섭 결과요? 이랜드 일반노조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교섭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차별 시정’이라는 부분에서는 성과가 있었지만 ‘해고자 복직’과 ‘파업 조합원 처우’에 대해서는 회사와 노조가 그저 입장 차이만 확인할 수 있었대요. 호환과 마마보다도 더 무섭고 흉측했던 이랜드 자본보다는 삼성 테스코가 그나마 조금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회사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삼성 테스코를 압박하면서 지켜봐야겠지만요.

교섭을 삼성 테스코와 하고 있고 노조 이름도 이랜드 홈에버 지부에서 홈플러스 지부로 바뀌었지만 이랜드 자본은 여전히 손배 소송과 각종 징계들로 조합원들을 괴롭히고 있지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이랜드 자본이 자기네들이 저지른 온갖 더러운 짓거리들을 거두어들일 때까지, 그리고 해고 노동자들이 홈플러스 매장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 조합원들은 싸움을 결코 끝내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이른바 ‘장기투쟁사업장(줄여 장투사업장)’을 지켜보기가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이젠 제발 싸움 좀 접고 편히 쉬면 안 되겠느냐, 어디 일자리가 거기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속 시원히 때려치운 다음에 다른 좋은 곳에서 일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소에 자본가들을 편들지도 않았고 노동자들의 싸움을 낮추어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 처음에는 저도 적잖이 의외라 생각했어요. 이제 와서 싸움을 접으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할 거면 여기서 하지 말고 조합원들한테 직접 가서 얘기해 보지 그래? 저는 그렇게 쏘아붙이며 누군가와 술자리에서 크게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들었던 말들을 속으로 오래 되작거렸어요. 비정규직법이 해고 노동자들을 셀 수도 없이 만들어 내면서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장투사업장들은 오랜 시간 동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몹시도 가슴 아프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랜드는 홈에버를 매각한 마당에 노조에게 7200만 원 짜리 손배를 걸고, 기륭은 아예 깡패들을 풀어 농성장을 쑥밭으로 만들었고, KTX와 코스콤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고, 강남 성모병원은 교섭조차 응해주지 않고, GM 대우와 콜트 악기도 영 안타깝기만 하고...... 집회에 가려고 해도 어디를 가야 할지 도무지 정할 수가 없는 팍팍한 하루하루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해 버린 제 후배도 있었어요. 어느 날 저녁에 전화를 걸어 온 그 후배는 다짜고짜 제게 외쳤지요.

“형!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저는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 잠시 말을 멈추고 있다가,
“갑자기 왜 그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어지면 어떡해? 돈 자루를 쥔 나쁜 사람들이 없어져야지.”
“다들 왜 이래요, 진짜? 세상이 미친 것 같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해고되고 파업하고 투쟁하고...... 왜 이래야 돼요? 왜 자꾸 싸워야 해요?”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몇 백 일 동안 싸우는 현장에는 차마 못 가겠어요. 그걸 보고 오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아요. 말이 이백 일 삼백 일이지. 저는 차라리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회사랑 교섭해서 싸움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제 주변에 은근히 많다는 것을 알고 처음엔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또한 그런 생각을 마음속 한구석에 쑤셔 박아 놓은 채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장투사업장들을 다니면서 조합원들에게 한 번도 “끝까지 힘내서 열심히 투쟁하세요!”라고 말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말, 차마 못하겠더라구요. 저 같이 뜨신 밥 먹고 단잠 자는 사람이 어떻게 그분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투쟁한 것도 옆에서 지켜보기 눈물겨운데 어떻게 ‘끝까지’ 더 싸우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조합원들에게 뭔가 말을 해야 할 때마다 농담으로 어물어물 얼버무리고는 했어요. 민망했지요.

그리고 왜, 구호 외칠 때 모두가 약속한 듯이 함께 외치는 뒷 구호가 있잖아요.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 저는 ‘결사 투쟁’이라는 말을 소리 내서 외쳐 본 적도 한 번도 없어요. 결사(決死)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죽기를 각오한다는 뜻이잖아요. 저는 투쟁하다가 죽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에요. 솔직히 무섭거든요. 그리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다가 막다른 곳까지 몰려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도 결코 보고 싶지 않아요. 살려고 투쟁하는 거잖아요. 분신이나 투신, 자해, 할복...... 저는 노동자들이 제발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제가 노동자들의 삶을 두고 딱 잘라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차마 노동자들 앞에서 ‘결사’라는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외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우리들 중 누구도 더는 죽어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으니까요.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참으로 착잡해지더군요. 자기가 아파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더 아플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더 아플까. 이런 물음만큼이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물음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크기도 성격도 다른 아픔이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커다란 상처를 안고 날마다 속으로 울고 있어요. 겉으로 우는 사람들도 있구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 세상에 결국은 배반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결국 같은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밖에 보아주지 못하더군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사업장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지 않고 다른 투쟁 사업장들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싸움에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도 아니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싸움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일 못지않게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또 이런 생각도 했지요. ‘저 사람들은 단순히 마음이 곱고 여려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상처는 동일하다. 우리들의 서로 다른 힘은 동일한 절망에서 나온다. 똑같이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공통점에서 나온다. <우리>란 누구를 말하는가? 같은 이유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남김없이 <우리>다. 그 모든 상처들은 똑같은 흉기가 무참히 찌르고 들어와 생겨난 끔찍한 상처다. 그리고 그 흉기란 바로, 돈만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면 인간이든 자연이든 함부로 물건 취급해도 된다는 천박한 사고방식을 힘센 것으로 만들어 주는 더러운 권력이다.’

누구는 노동자들이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인간답게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누구는 노동자들이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다른 일터에서 부디 몸도 마음도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겉으로 듣기엔 완전히 다른 말이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대상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아파하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아까 한동안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고 말했던가요. 그랬죠. 한동안이라 해 봤자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니었지만 저는 꽤나 심각했어요. 현장 가서 보고 들은 것들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엇섞어 놓은 글 가지고 도대체 이런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 나는 매번 틀에 찍혀 나온 듯 똑같은 글밖에 못 써내는 것일까, 뭐 그런 것들이 저를 괴롭히더군요. 눈도 머리도 핑글핑글 돌았어요. 이 세상엔 분노도 아픔도 상처도 너무 많았습니다. 가야 하는 투쟁 사업장도 많았고 읽어야 하는 기사들도 많았고 들어야 하는 슬픈 이야기들도 너무 많았구요. 하지만 저는 좀 더 글을 ‘깊게 잘’ 쓰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쓸 수 있을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매일 술 먹다 보니 현장에는 안 가게 되고, 현장에 안 가니 글이 안 나오고, 글이 안 나오니 풀이 죽고, 풀이 죽으니 현장에 안 가게 되고, 현장에 안 가니 글이 안 나오고...... 그만 악순환에 빠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작정 간 곳이 바로 홈플러스 상암점 바자회 현장이었어요. 홈에버가 아직 홈플러스로 바뀌기 전에, 9월 말이었던가, 홈에버 상암점 앞에서 이미 바자회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주변 이웃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 오셔서 조합원들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18일, 그러니까 토요일에 열린 바자회는 그러니까 이랜드 노조가 벌인 두 번째 바자회였습니다.

오후 네 시쯤에 상암점 앞에 이르렀는데요. 지난 번 바자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어 저마다 좋은 물건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천막 농성장 옆에서는 깔개를 깔아 놓은 채 간이주점을 열고 있었는데 파전 한 장에 2천 원, 소주와 막걸리가 각각 2천 원씩이어서 그랬는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조합원들과 인사를 했지요. 저 뒤쪽에서는 이따가 저녁 문화제 때 선보이기라도 할 건지 사람들 예닐곱 명이 음악 틀어 놓고 몸짓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원래는 여섯 시까지 물건을 팔고 여섯 시 정각부터 문화제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바자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삼십 분을 넘기고서야 문화제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무척이나 흥겨웠어요. 이랜드 자본은 여전히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조합원들의 피를 빨고 있었고 홈플러스는 마치 자기네들이 칼자루를 쥔 것처럼 굴고 있었지만, 조합원들은 그 오랜 시간동안 싸워 온 사람들답지 않게 연방 싱글생글 웃기만 했지요. 한 조합원은 저를 불러 세우시고선 막걸리 한 사발을 처억 따라주시며,

“글 쓴 거 보니까 술 잘 마시는 것 같던데, 한 잔 받아요.”

엉겁결에 꿀꺽꿀꺽 받아 마시니 다음으로는 큼지막한 파전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주시더군요.

“이것도 잡숴요. 나 그 긴 글 다 읽었어요. 홈페이지에 올린 거 있죠? 그거.”

저는 좀 놀랐어요. 그리고 죄송하기도 했지요. 나는 누군지 얼굴도 잘 몰라 뵈었는데, 내 얼굴을 알아보시고 내 글까지 읽어 보셨다니.

문화제가 시작되니 첫 공연으로 중앙대 학생들이 나와 몸짓을 보여주더군요. 한창 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어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었어요.

“오랜만예요! 글 잘 보고 있어요. 언제 그걸 그렇게 다 쓰셨어요?”
“예? 그게 그러니까......”
“글 멋져요. 저 되게 감동적으루 읽었는데...... 요새는 좀 뜸하시데요?”
“네...... 그게 좀......”
“참세상에서도 인기 글인 것 같던데. 아니에요? 호호.”
“......”


두 번째 공연으로 황선영 직대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민들레처럼’이었지요. 저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좋게 읽어 주고 있는 글을 왜 나는 너절하다고만 여기고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일종의 오만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칭찬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오로지 자존심으로만 글을 썼던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내가 고민했던 글쓰기란 도대체 뭐였을까......’

세 번째 순서로 아까부터 계속 저 뒤쪽에서 연습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몸짓을 선보이러 나왔습니다. 조합원들과 월드컵 지원대책위 사람들이 함께 뭉쳐 두 시간인가 정도를 연습했다고 했어요. 거기에는 평소에 ‘몸치’라고 자신을 내세우며 몸짓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하던 서부 비정규직 센터 준비모임의 동료도 끼어 있었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몸짓이 시작되었어요. 서투르지만 틀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러 주었지요. 몸짓이 끝나고 조합원들과 지원대책위 사람들이 들어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한 번 더!”를 외치며 몸짓을 더 보여 달라고 했지만, 연습한 곡이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사회자가 밝히자 사람들은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웃음소리. 언제까지고 멎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웃음소리를 50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 10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설레는 일이었어요. 이랜드 노동자들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에 지쳐 힘없는 모습으로 시무룩하게 있지 않고, 마치 오늘 막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처럼 방실방실 웃고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손뼉치고 동네방네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니까요 글쎄. 그 웃음소리는 자신의 아픔을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의 웃음소리였어요. 마음이 든든한 이의 웃음소리였지요.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보같이 따라 웃었어요. 나도 웃고 너도 웃고 우리 모두가 웃던 웃음소리는 월드컵 경기장을 휘감아 돌면서 하늘 위로 솟아 구름과 땅 사이를 가득 채웠습니다.

일곱 시가 돼서 저는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어요. 강남 성모병원으로 가야 했거든요. 일곱 시부터 성모병원에서 ‘단결과 연대의 밤’이라는 행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랜드 문화제를 끝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러다 보면 강남 성모병원에 너무 늦게 다다를 것 같았어요.

강남 성모병원엔 여덟 시쯤에 도착했는데 마침 서울대 몸짓패 ‘골패’가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현대자동차 노조 해고 조합원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어요. ‘넝쿨을 위하여’였지요. 첫 부분 가사가 이랬어요.

처음에 내가 작은 싹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에는
아무도 담장을 뒤덮을 나를 생각하지 못했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병원 안에 천막(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서 차라리 텐트라고 불러야 하는 그런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간 지 벌써 32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요. 병원 측은 이미 깡패를 동원했고 경찰도 불러왔으며 조합원들이 함께 일했던 직원들까지 몰고 와서 조합원들을 병원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병원 측은 조합원들에게 기어이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담당한 판사는 한 술 더 떠 “이건 변호사 선임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말하며 단번에 조합원들에게 뭇매를 내릴 기세라 했습니다.

17일 금요일에 국정감사에 출두하게 된 병원장은 국감에 가서 뭔가 말할 거리라도 만들려는 듯 16일 목요일에 교섭을 하자고 했지만, 16일 당일에 병원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병원 측은 일방적으로 교섭을 미루어 버렸어요. 13일부터 조합원들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지요. 17일 병원장 국감 출석 날에는 국회 앞으로 몰려가 집회를 벌였지만, 음흉한 국정원이 국감을 몰래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느닷없이 드러나면서 국감 판은 깨져 버렸고, 그 바람에 병원장도 별 탈 없이 병원으로 쭐레쭐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 일 참 우습죠. 병원장과 행정부위원장(병원을 쥐락펴락한다는 신부님)이 또 언제 다시 교섭에 응할지는 정말 그들이 믿는다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기죽지 않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병원 안 선전전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천막 농성장 옆에서 촛불 문화제도 열고 있구요. 다른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 집회가 잡히면 조합원 전부는 가지 못하더라도 두세 명 정도는 꼭꼭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합니다.

병원 측은 생각하지도 못했겠지요. 열 명도 안 되는 노동자들이 정말 병원 전체와 맞서 싸울 수 있을지, 끝까지 맞서 싸우려고 할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나 강한 병원 측 나쁜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넝쿨이 담장을 뒤덮을 것이라 처음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합원들이 그동안 찾아와 주신 고마운 분들을 위해 작은 공연을 준비했다고 하면서 전부 앞으로 나왔습니다. 몸짓을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앉아 있는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지요. 조합원들은 앞에 나가서 쭈뼛거리면서도 연방 웃음을 터뜨렸어요. 음악이 흘러 나왔고 조합원들은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몸짓을 손짓 발짓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보여주었습니다.

몸짓 공연이 끝나고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발언을 한 마디씩 했는데요. 기억에 남은 말들이 있네요.

“어제 국회 앞에 갔다가 이랜드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저희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더 열심히 싸워서 진작 승리했어야 다른 투쟁 사업장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직까지 싸우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희가 앞으로도 계속 싸워가면서 지니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이 바로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는 단식도 안하고 삭발도 안할 거예요. 정말 끝까지 웃으며 즐겁게 투쟁하고 싶습니다. 다들 힘들어하는 투쟁 사업장에 가서 발언을 할 때면 분위기 때문에 저도 발언을 하면서 울고불고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 분위기 더 침울해지고...... (웃음) 저희만큼은 꼭 끝까지 웃으면서 싸우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빡세게 싸워야 할 때엔 또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문화제가 끝났습니다. 조합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부침개와 어묵이 날라져 왔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앉기 시작했어요. 문화제에 늦게 도착한지라 뒤쪽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저도 슬며시 끼어들어 앉았습니다.

맛난 음식들을 먹으면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 측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쏙 빼놓고 부천으로 ‘한마음 체육대회’를 갔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아까 홈플러스 상암점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지요. 20일 오전 11시 반에 이랜드 일반노조가 강남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습니다. 호텔 안에서는 홈플러스가 ‘새 가족 환영 행사’를 벌인다네요. 새 가족이란 물론 ‘홈에버’ 식구들일 테지요. 파업 사태부터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놈의 환영 행사를 벌인다는 것인지! 호텔에서 밥만 먹여주면 전부인가? 강남 성모병원 역시 병원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서 공이나 차러 놀러 간 것이었지요. 홈플러스도 그렇고 병원 측도 그렇고 하나 같이 왜 그리 유치하고 치사하게 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관심도 없고 그저 당장 흥청일 수만 있다면 장땡이라는 식이예요.

가을밤이 깊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저곳 둘러앉아 저마다 뭔가 즐겁게 또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열띤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조합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헌걸차게 말하는 조합원들에게도 나름대로 숨겨둔 고민들이 다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 투쟁 그냥 확 접어 버릴까’ 하는 망설임도 미처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싸움에 나서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릴지 모릅니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고, 더럽고 치사해서 여기서 일 안 하겠다고, 당장 승리하기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길게 싸움 끌어서 뭐 하겠느냐고, 조합원들조차 자반 뒤집듯 마음을 하루에 수도 없이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건 강남 성모병원 조합원들만의 흔들림이 아니라, 현재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대 모든 사업장 모든 노동자들을 똑같이 흔들고 있는 그런 흔들림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노동자들의 마음을 얼마간 읽을 수 있다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파업에 나서고 투쟁을 주도하는 노동자들이라 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투쟁 의식’으로 가득 들어찬,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투쟁에 임하는 그런 ‘투사’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도 사람이니까.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고 추우면 따듯한 이불 속을 떠올리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차마 물어보지 못합니다. 집에서 뜨신 밥 먹고 단잠 자는 저는 노동자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흔들릴 때가 있지 않느냐고 못 물어봅니다. 그건 양복 빼입고 악수나 하러 돌아다니는 정치가들이 노동자들 손 덥석 잡고서 하는 질문이잖아요. 그래서 그저 조심스럽게 짐작만 할 뿐이에요. 하루하루가 쉽지만은 않겠지.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은 그깟 투쟁 접어 버리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나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정작 싸움을 가장 때려치우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노동자들 자신일 수도 있겠지. 그런 추측이나 해 볼뿐이지요.

같은 아픔을 지니고 함께 싸운다는 것은, 단순히 집회 현장에서 얼굴 보며 인사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거예요. 나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한다, 나는 아직은 비정규직이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비정규직이 될 것이 뻔하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한다, 이렇게 비슷한 입장이라는 이유로 싸움에 함께 나서는 것이 같은 아픔을 지니고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갑작스럽게 투쟁을 포기하고 천막을 거둬 가 버린다면 어떨까요? 새 삶을 찾아봐야겠다고 병원을 모두 떠나 버린다면? 그때엔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하나요? 지금껏 맨 앞에서 큰소리치며 싸워 왔으면서 이제 와서 손을 털다니, 한국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당신네들 때문에 후퇴했다! 이렇게 말하며 비난해야 할까요? 뉴코아 노조가 결국 전혀 이롭지 않은 조건으로 사측과 합의를 하고 말았을 때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같은 아픔을 지니고 함께 싸우는 것은 지금 그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안다는 것. 미리 정해져 있는 적과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사람이 싸우고 있는 적과 함께 싸운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 벌이고 있는 싸움에도 그 사람을 초대해 그 사람이 내 싸움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나요? 저는 한 일주일 만에 현장에 가서 조합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결국 우리가 ‘연대’라고 부르는 알 듯 말 듯한 것은 조합원들과 늦은 밤에 야참을 먹으며 즐겁게 농담 따먹기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만나야지요.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해요. 앞으로 어떻게 투쟁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듣는 게 아니라, 저녁 때 무얼 먹었는지, 요새 일교차가 큰데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머리 모양이 바뀐 것 같은데 혹시 머리를 한 건지, 오늘 선전전을 하면서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농성하기 전에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뭐가 가장 싫었는지, 뭐가 가장 좋았는지, 사측이 어디가 어떻게 재수 없었는지, 도대체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하는 것들을 마구 물어보고 낄낄대며 웃어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자주 보며 친해지면서 서서히 서로를 믿게 되는 시간들이 저는 에누리 없는 ‘연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열 시 반쯤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토요일이라 막차도 일찍 끊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몸을 돌렸는데 천막 농성장 근처 화단에 ‘연대 동지들께 드리는 편지’라고 씌어진 대자보 두 장이 붙어 있더군요. 조합원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 놓았는데, 기억에 남은 몇몇 부분들이 있어요.

‘오늘은 부침개에 어묵이지만 승리한 그날은 돼지 잡습니다!’
‘세찬 비바람, 천둥 번개 그 무엇도 우리들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동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으니까요.’
‘참 즐겁고 신나는 투쟁입니다. 투쟁이 이렇게 즐거울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네요 ㅋㅋㅋ’

‘참 즐겁고 신나는 투쟁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속으로 ‘옳거니!’ 외쳤더랬지요. 아까 홈플러스에서도 그랬고 이 강남 성모병원도 그렇고, 결국 서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함께 웃어줄 수도 있는 것이었어요.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며 몸짓을 하던 이랜드 조합원들과 강남 성모병원 조합원들의 팔과 다리를, 흥겹게 까딱거리던 고개를, 음악에 맞춰 발을 옮겨 놓던 움직임들을, 부끄러워하던 입가를, 몸짓을 마치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던 모습을 저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떠올리며 혼자서 킥킥거릴 것 같았지요. 나중에 보면 막 놀려댈 생각이에요. 연습 좀 더 하시지 너무너무 어설펐다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싸우고 있는 조합원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정말로 저도 모르게 킥킥대며 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갑자기 오래간만에 글이 쓰고 싶어지는 거 있죠. 그래서 머릿속이랑 가슴속이랑 손끝이 참을 수 없도록 막 간지러워지는 거 있죠.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없이 저 혼자 바보처럼 실실 웃고만 있었더랬지요.

덧붙이는 말

박병학 님은 서울 서부비정규직센터(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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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강남성모 , 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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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벼리

    그래,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진통을 이겨 내며 나오는 글! 써야겠다는 강박(?)으로 쓰는 것보다 고이고 고여 쏟아지듯 세상에 나오는 글! 조금만 더 진통을 이겨 내길 간절히 바라며, 박병학,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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