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해야 하나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10월 20일 월요일 밤, 기륭 전자

일요일 밤 열한 시에 쓰기 시작한 글이 월요일 아침 일곱 시가 되니 어느 정도 얼개가 잡혔다. 이 정도면 조금 자고 일어났다가 맑은 정신으로 다듬어 참세상에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또 두세 시간 동안 글을 다듬었다. 문장들이 자꾸 엇나가기만 했다. 마침내 참세상에 원고를 넘기고 다시 쓰러져 두 시간을 잤다. 뻑뻑한 눈으로 일어나 대강 밥을 챙겨 먹고, 학원으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밤에는 홈플러스 상암점 앞에 있는 이랜드 천막 농성장에 가서 밤샘 천막 지킴이 당번을 서야 했다.

학원에는 여섯 시까지 가면 되었다. 조금 일찍 나온 탓에 느릿느릿 길을 걷고 있는데 손전화 문자가 왔다.

‘기륭 집회 후 상징물 세우는 중 용역 깡패 + 경찰 합동 폭력 침탈! 대치 중’

문자를 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그저 하얗게 될 뿐이었다. 기어이 이렇게 되는 구나! 그 개××들이 또 다시 쳐들어 왔구나! 나는 경찰과 기륭 사측에게 아무것도 기대한 바가 없었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을 수는 있었다. 언제 경찰과 기업이 노동자들 편들어준 적 있었나? 문제는 기륭 조합원들과 그쪽에 와 있는 연대 단위들이었다.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따 밤에 이랜드 천막 농성장이 아니라 기륭에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수업을 하는데 그날따라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귓구멍에 까끌까끌하게 걸렸다. 재깔거리는 소리들이 듣기 싫었다. 조용히 하고 문제 풀라고 을러대도 아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앞과 뒤와 옆을 향해 연달아 몸을 돌리며 마치 내게 자기네들끼리의 우정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또 다시 손전화 문자가 왔다.

‘용역 빠지고 전경이 둘러싼 후 연행 위협. 오늘밤 이랜드 농성장 당번 좀 부탁.’

어쩔 수 없었다. 기륭도 기륭이지만 이랜드 천막 역시 누군가가 가서 지켜야 했다. 몹시 착잡해졌다. 아이들이 대놓고 마구 떠들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교재를 교탁 위에 집어 던지고 교실을 나왔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 수업 끝날 때까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최악의 상황은 이미 닥쳐 버렸다.

일곱 시쯤에 다시 문자가 왔다.

‘계속 강제 진압 중. 전경에게 맞으며 끌려나와 지금 공장 안. 쓰러지신 분 있어서 119 기다리는 중.’

수업을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여덟 시가 되어 학원을 나섰다. 득달같이 PC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알고 있는 뉴스 사이트들을 모조리 검색해 보았지만 기륭 전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고 있는 사이트는 참세상 딱 하나 뿐이었다. 일곱 시 반에 올라온 기사로 대강 그쪽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려 넣고 나는 PC방을 나와 월드컵경기장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이랜드 천막 농성장은 6호선 월드컵경기장 역 1번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서너 명 정도 있었다. 다들 기륭 전자로 갔을 테니 밤에 천막 안에서 나 혼자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 둘 농성장 지킴이 당번들이 천막에 도착했다. 나랑 조합원이랑 동료 세 명까지 천막 안에 모두 다섯 명이 모였다. 지금 기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다들 들어서 알고 있었다. 누가 천막 안에서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만,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사람들에게 천막을 부탁하고 기륭으로 가기 위해 열두 시쯤 그곳을 나왔다.

기륭으로 가기 위해선 가산디지털단지 역에서 내려야 했다. 대림 역에서 전철이 끊겼다. 결국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마리오 아울렛 앞에서 택시를 내려 기륭 전자까지 걸어가는데 저쪽 앞으로 전경 버스들이 보였다.

기륭 전자 정문 앞으로 가는 길목은 두 군데 있다. 기륭 전자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처럼 길가에 바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지 않아서 그 두 군데 길목 중 한 곳을 골라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만큼 파고 들어가야 나온다. 정문을 등지고 서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길목이 도로와 만나 ㅜ자를 이루는 곳에 사람들 십여 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길목은 도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전경들과 전경 버스로 꽉 막혀 있었고 전경들이 방패를 세우고 서 있는 바로 앞에서 젊은이들 한 무리가 전경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기륭 쪽으로 가까이 가긴 틀렸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또 다른 길목을 향해 잰걸음을 놀렸다.

다른 길목으로 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똑바로 걸으면 곧바로 기륭 전자 정문 앞으로 통하는 그 짧지 않은 길목에 많은 사람들이 서서 또는 앉아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문 바로 앞에서는 한 2백여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집회를 열고 있었다. 육중한 전경 버스 한 대가 가로막고 있는 정문 안쪽에는 기사에서 읽은 대로 철제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꼭대기를 현수막 같은 크고 넓은 천으로 둘러쳐 놓았다.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김소연 분회장이었다.


마침 자유 발언 시간인 듯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 발언을 하고는 구호를 외치고 들어갔다. 나는 이리저리 사람들을 헤치고 돌아다니다가 아까 손전화 문자를 보내주었던 사람을 만났다. 그때가 새벽 한 시 반쯤이었다.

기륭 옆 공장 담벼락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이 갑자기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지금 진압조 떴어요!”

앉아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말에 놀라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에 있던 전경 부대가 이쪽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 몇 명이 상황을 살피러 도로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십여 분 동안 기다려 보아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정문 앞에 모여 앉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나는 저녁 일곱 시 반 이후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을 수 있었다.

“여섯 시 반쯤인가? 용역 깡패들이랑 전경들이 확 밀었어요. 그때 저 철제 구조물 위에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올라가 있던 때였는데...... 경찰들 약 4개 중대, 그러니까 350여 명 정도가 투입돼서 기륭으로 통하는 길목 양쪽을 다 밀었죠. 저쪽 길목(내가 처음에 보았을 때 막혀 있었던 그 길목)에 있던 전경들이 빠지고 이쪽 길목으로 몰려왔어요. 그러다가 정문 안쪽에서는 일고여덟 명이 연행됐고......”

“여덟 시 반인가 그쯤에 용역들이 철제 구조물을 막 흔들었죠. 그러자 김소연 분회장이 철봉을 잡고 공중에 매달렸어요. 그 밑에서 철제 구조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끌려들어가 구타를 당했죠. 안쪽에서 잠간 억류돼 있다가 그렇게 얻어맞고 나오더라구요.”

“부상자들 119가 와서 싣고 가고...... 한 아홉 시쯤에 소방차가 오더니 철제 구조물 주변에 매트리스를 깔고 갔어요. 사다리차도 왔었는데 그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몸으로 막아서 결국 못 들어왔구요. 여경들이 몰려와 김소연 분회장 끌어내리려 했는데 사다리차가 없어서 못했어요.”

“저 정문 앞에 있는 전경 버스는 밤 열한 시 반 이후에 온 거예요. 그 전까지는 정문 앞 십여 미터 앞쪽까지 전경들이 도열해 있었죠. 국회의원들 오고 방송 3사 오니까 정문 앞에 있던 전경들이 빠지고 전경 버스가 왔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소강상태예요.”


정문 앞 전경 버스가 미처 막지 못한 틈새로 방패를 세우고 서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갑자기 웬 앳된 순경들 둘이 나타나 현장을 기웃거리자 사람들이 우우 하는 야유를 쏟아냈다. 꺼지라는 외침도 들렸다. 동네 순찰을 돌던 중이었을까? 아니면 몰래 이쪽 상황을 살피러 온 것일까? 순경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꽁무니를 뺐다.

내게 손전화 문자를 보내왔던, 그리고 안쪽으로 끌려들어가 뭇매를 맞았다는 사람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섯 시쯤에 여기 한 200여 명 정도 있었을 때 철제 구조물을 올렸어요. 그러자 전경들이 저 골목(내가 처음에 보았을 때 막혀 있었던 그 길목)에서 치고 들어왔죠. 근데 그쪽이 치고 들어오기가 좀 여의치 않았는지 전경들이 갑자가 공장 안으로 다 들어가 버렸어요. 정문 쪽에서 용역 깡패들이 제일 앞에 서고, 그 뒤에 구사대, 그리고 제일 뒤에 전경들이 서서 또 치고 나왔죠. 결국 정문 앞은 다 뚫리고 전경들이 접수를 했어요. 그 안쪽에 남아있던 사람들 십여 명이랑 같이 철제 구조물을 끌어안고 버티고 있는데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둘러쌌죠. 그때 전경이 한 겹 둘러싸고 그 바깥으로 용역 깡패들도 있고 구사대도 있고, 아무튼 샌드위치처럼 둘러싸인 상황이었는데...... 전경들이 우리를 다 끌어냈어요. 뒤에서 전경이 자꾸 잡아당기는 바람에 철제 구조물 끌어안고 있던 걸 확 놔 버렸더니 저를 붙들고 있던 전경들과 뒤로 한꺼번에 넘어졌죠. 정신없는 상황에서 전경들이 발로 차고 때리고...... 그러다가 공장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어요.”

“혼자 끌려 들어가신 건가요, 아니면 거기 있던 사람들 다 같이 간 건가요?”

“다 같이 끌려 들어갔죠. 전경들이 ‘카메라 없지?’ 막 그렇게 이야기하며 몰매를 때릴 분위기였는데 아직 저쪽에 사람들이 좀 있어서 전경들이 그걸 보고 우리를 그쪽으로 밀어냈어요. 그쪽으로 밀려나니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죠. 전경들이 잡아당길 때 뒤쪽으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상태인데 거기다가 눈까지 얻어맞아 한쪽 눈이 함몰된 분이 한 분 계셨어요. 그리고 목을 다친 분도 계셨고. 119가 와서 그 두 분은 싣고 갔죠. 용역 깡패들이 계속해서 쉬지도 않고 험한 욕설을 퍼부으니까 우리 대오 쪽에서도 맞상대를 해주려고 같이 욕을 했어요. 그러면서 자꾸 싸움이 붙으려 해서 저는 또 그거 말리려 하다가 또 얻어맞기도 했죠. (웃음) 어쨌든 용역들이 다 끌어내긴 했지만 안쪽에는 한 사십여 명 정도가 아직 남아있었어요. 전경들도 여전히 철제 구조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구요. 근데 일 끝내고 달려온 사람들이 계속 오니까 또 저쪽 골목으로 전경들이 몰려가고, 다시 용역 깡패들이랑 구사대가 나와 계속 밀고 당기고...... 아홉 시쯤에 용역 깡패들이 철제 구조물을 흔드니까 김소연 분회장이 ‘뛰어 내린다!’라고 외치면서 정말 뛰어 내리려고 했어요. 그러자 용역 깡패들은 밑에서 ‘죽어봐!’ ‘죽을 수 있으면 죽어보라니까!’ 뭐 그런 소릴 하더군요. 그러다가 홍희덕 의원이 와서 용역들은 일단 물러갔는데...... 김소연 분회장이 저 위에서 막 울면서 울부짖었죠. 그거 보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울었어요. 그리고 사다리차가 이쪽이랑 저쪽 골목으로 계속 들어오려다가 사람들이 계속 더 오니까 못 들어왔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대치 상태인 거죠.”


머리가 긴 탓에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다고 말하며 그 사람은 수줍은 듯 웃었다. 맞은 곳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이따가 날이 새고 집에 들어가 푹 자고 일어나면 끙끙 앓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밤중이라 점점 추워졌다. 차가운 바람이 옷 속까지 파고들어 체온을 자꾸만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종이나 신문지 같은 것들을 모아놓고 그 위에 근처에서 꺾어온 졸가리들을 얹어 불을 때기 시작했다. 따듯한 커피를 끓여 와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밥도 손에 손을 거쳐 여기저기에 돌려졌다. 어떤 사람은 피곤하신 분들은 누워 주무시라고 커다란 깔개를 손수 깔아주기도 했다. 나는 깔개에 웅크리고 앉아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커피를 호호 불며 천천히 마셨다.

아까 잠깐 보았던 아는 후배가 옆에 와서 앉았다. 후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전경들 이야기가 나왔다.

“형, 전경들이 채증하려고 비추는 불빛 있잖아요. 저는 그게 꼭 권력 같아요. 사람들 비추고 채증하고 연행하고...... 그것도 이를테면 권력이잖아요. 촛불집회 때 나왔던 물대포랑 다를 게 뭐예요? 물대포도 사람들한테 정조준해서 쐈잖아요? 물대포는 물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런 것도 권력이라는 것과 꼭 닮았어요. 그게 물대포였으니까 물대포였지 만일 총을 들었으면 그대로 총이었을 거 아녜요? 뭐든지 맘대로 휘두르는 거 아녜요? 그들 손에 쥐어지면 물이든 빛이든 그대로 권력이 돼요. 아까도 제가 사진을 찍으려고 플래시를 터뜨리니까 전경이 불빛을 저를 향해 비추는 거예요. 막 사진 찍으려고 하니까 저도 카메라로 얼굴 가리고 있었죠. 그런 게 권력의 빛이 아닐까 싶어요.”

“근데 걔네들도 어떻게 보면 윗선에서 내리는 명령에 장난감 병정처럼 따를 수밖에 없는 애들이잖아. 카메라로 채증을 하든, 색소 물대포를 쏘든, 방패로 찍든, 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놈들이라고. 근데 물론 개중에는 마음이 여려서 같은 방패질을 해도 시늉만 하고 끝내는 전경도 있을 테고, 사람을 패면서 뭔가 희열을 느끼는 그런 짐승 같은 놈들도 있겠지. 함부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기란 어려워. 그러면 문제는 그거 아냐? 전경들이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집단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굳이 걔네들을 미워할 필요가 없는데, 막상 현장에서 맞닥뜨리다 보면 걔네들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게 되고, 저 윗선 어딘가에 있을 사악한 권력과 굳이 한통속으로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는데도 전경들을 꼭 권력 중심부와 뭉뚱그려서 함께 비난하게 되고, 무슨 말이냐 하면, 전경들을 뭉뚱그려 비난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현장에 있다 보면 걔네들을 자꾸만 권력이라는 것과 함께 뭉뚱그리게 된다는 거야. 그 ‘뭉뚱그림’을 가능하게 하고 또 우리에게 버릇 들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란 과연 무얼까?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갈라놓는 것일까? 난 예전부터 그런 게 궁금했어.”

“제가 말하는 건 그렇게 커다란 게 아니에요. 전경 개인이 나를 지목해서 쏘는 빛이란 게 있어요. 물론 명령을 받고 하는 거겠지만 그 전경은 자기가 선별해서 빛을 쏘는 거거든요. 불빛이 나오는 장치를 들고서 자기 마음대로, 소리가 나는 곳이라면 자기 내키는 대로 빛을 쏘는 거예요. 그러고는 사진을 찍죠. 저는 그게 현 정권이 해 온 짓거리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을 갖고 그것을 휘두르는 모습이 꼭 닮았어요.”


  "형, 전경들이 채증하려고 비추는 불빛 있잖아요. 저는 그게 꼭 권력 같아요. 사람들 비추고 채증하고 연행하고...... 그것도 이를테면 권력이잖아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후배와 내가 들여다보려는 초점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거대한 괴물 문어 같이 생긴 권력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썩어 문드러진 흉측한 문어 대가리에서 뻗어 나온 수 천 수 만 갈래 다리들. 그 다리들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목에 감겨 목을 조르고 있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 경찰이란 모습으로. 군대란 모습으로. 정치인이라는 모습으로. 학교라는 모습으로. 검열이라는 모습으로. 자본이라는 모습으로. 해고라는 모습으로. 그래서 문어 대가리로밖에 상상할 수 없는 그 보이지 않는 음흉한 힘을 나는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싶었다. 그건 일단은 개념과 추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별로 분석적이지 못한 내게 그런 싸움이란 늘 공허하게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후배는 지금 무엇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려 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네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를테면 그런 건가? 휴대용 물대포든 방패든 카메라든 뭔가 도구를 하나씩 들고 있는 전경들이 있고, 그 전경들 개개인들에게 그런 물건들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 전경들 혹은 물대포 같은 것들을 도구로 제멋대로 다루고 있다는 얘기지? 아랫선이 윗선의 도구가 되고 그 윗선에서는 또 자기 바로 아랫선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그 모양들이 서로 닮았다는 거 아닌가?”

“저는 저한테 빛을 쏘았던 그 전경 개인에게 집중하고 싶은 거예요. 불빛을 자기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쥔 채 저한테 빛을 쏠 수 있었던 그 전경. 분명 안 그럴 수도 있잖아요? 히죽히죽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빛을 쏘고, 또 사진을 찍고, 찍은 사람 또 찍고,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잖아요? 방패로 내리치지 않아도 되잖아요? 곤봉으로 때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굳이 때릴 필요가 없는데 걔네들은 때리고 짓밟는단 말예요. 왜 그래야 하죠? 도대체 뭐가 그 전경들 개개인이 자기가 쥐고 있는 도구를 그토록 함부로 다루도록 만드는 거예요?”

“이유야 어떻게든 갖다 붙일 수 있겠지. 위에서 시켜서 그런 거다, 원래 성격 더러운 전경이었다, 자기 방어를 하느라 그랬다, 어쩌고저쩌고. 나도 궁금해. 곤봉을 들어서 사람 머리통에 내리칠 때 길어야 이삼 초밖에 안 걸릴 거 아냐. 그 짧은 순간동안 전경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느라 전경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머리통을 부수어 놓는 걸까?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전경들도 있다. 전경들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지 마라’ 그런 말을 하지.”

“물론 그건 저도 알아요. 전경들 전체가 다 나쁜 놈들은 아니겠죠. 근데 문제는 그중에서도 나쁜 놈들이 분명 있다는 거예요. 자기 손에 쥔 도구가 자기 권력인 것처럼 마음대로 휘두르는! 윗선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채 닿지 않는, 온전히 그 전경이 쥐고 있는 권력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지금 현 정권이 하고 있는 짓과 닮아 보였다는 거죠. 권력과 권력이 겹쳐 보였다는 거죠.”


그제야 나는 후배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했다. 어떤 나쁜 놈들이 손에 쥐고 있는 나쁜 힘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이야기하지 않는 한 어찌 되었든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 추상적인 것을 권력이라고 부르며 쉽게 이야기한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윗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일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권력이라는 말을 쓴다. 권력이라는 말을 사용해 정권을 비판하고 나쁜 놈들을 욕할 수 있다. 후배는 그 모든 추상이 어떤 전경 개인에게 모아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채증을 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광경을 문득 보고 만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닮은꼴로 권력이라는 것을 멋대로 휘두르는 너무나 많은 천박한 존재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치고 만 것이었다. 내가 맞게 이해한 것일까? 하지만 나는 후배에게 더 물어보는 대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연기를 내쉬는 건지 한숨을 쉬는 건지 나 자신도 잘 분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각목을 가져와 불을 때기 시작했다. 졸가리들과 종이 상자들이 불쏘시개로 얹히면 사람들은 그 위에 각목을 부챗살 모양으로 늘어놓아 불땀 좋은 화톳불을 피웠다. 제법 뜨거운 불길이 혀를 날름거렸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섰다. 등을 돌리고 등에다 불을 쬐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전경들과 깡패들은 쳐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 피곤했다. 다섯 시 반쯤에 기륭을 나와 구로디지털단지 역에서 전철을 탔다. 불안했다. 일곱 시 이후가 아무래도 가장 위험할 거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부천 집에 들어오니 여섯 시 반이었다. A4 한 장 정도 쓰고 나서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열한 시 반에 다시 일어나 지금껏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 보니 다행히도 오전까지는 아무도 쳐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알 수도 없는 판국에 철제 구조물 위에 분회장이 올라가 있는 상황을 두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농성장이 쑥밭이 된 마당에 용역 깡패들과 구사대와 경찰들이 사이좋게 짓쳐들어오는 상황을 두고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다행히 김소연 분회장이 위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다행히 기륭 전자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 전원이 연행되지는 않았다고? 우리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두 시, 기륭 현장 속보가 올라와 있다.

‘현재 기륭 현장에서의 속보입니다. 기륭 공장 정문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들을 전경버스로 차벽을 치기 위한 행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악질적으로 용역깡패와 폭력자본을 비호해야 경찰의 '올바른 직무수행'이 되는 걸까요? 여러분의 힘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현재 경찰특공대 투입중이고 아시바(철제 구조물)를 지키던 연대단위들은 모두 밖으로 끌려나왔답니다. 시민 3~4명과 10대 학생 2명 유흥희 조합원, 윤종희 조합원이 안에서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고 살수차까지 동원되어 있답니다. 가능하신 분들 기륭 앞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청계 광장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문화제를 연다. 강남 성모병원에서는 화요 집중 문화제가 열린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원고를 참세상에 막 넘기려는 찰나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이따가 강남 성모병원에서 보자는 말을 하러 걸었다고 했다. 어젯밤에 기륭 다녀온 얘기를 글로 써서 보내는 중이라고 했더니 선배는 지금 김소연 분회장 연행되었고 철제 구조물까지 다 뜯겼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13:00 경찰 특공대와 여경들 무장하고 등장
13:20 살수차 철탑 앞 등장, 칼라TV 차량 견인 시도
13:25 경찰 간부 철탑 위에 사다리차 타고 올라가서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 김소연 분회장과 대화
13:30 이상규 위원장 끌려 내려와 강제 연행
13:35 김소연 분회장 끌려 내려와 강제 연행, 병원으로 후송
14:00 철제 구조물 해체
14:30 현재 컨테이너 박스 철거 시도


아아, 나는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최악의 상황은 이미 닥쳐 버렸다.
덧붙이는 말

박병학 님은 서울 서부비정규직센터(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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