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말해주세요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르포문학교실 현장실습 갔던 날

참세상 홈페이지에서도 클릭하면 옮겨 갈 수 있는 ‘삶이보이는창 르포문학교실’은 매주 수요일 1호선 대방역 여성플라자에서 열린다. 오늘(25일)은 수강생들과 함께 현장실습을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현장실습 일정을 짜게 된 나는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콜트-콜텍/하이텍 고공농성장과 홈플러스 상암점 천막농성장, 기륭전자, 이렇게 세 곳을 가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토요일 하루 종일 장기투쟁사업장들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첫 번째, 콜트-콜텍 / 하이텍 고공농성장

다른 장투사업장들을 돌아다니느라 바빴을까? 아니면 게을러서 그랬을까? 양화대교 근처 송전탑 고공농성장엔 며칠 전 목요일에 사전 답사 겸 취재 삼아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이미 금요일에 참세상에다 글을 써서 올렸다. 겨우 두 번째 찾아가는 것이었지만, 송전탑 중간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는 농성장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위에 있는 콜트 지회장과 하이텍 지회장은 어제(금요일) 이미 삭발식을 치르고 단식까지 시작했다.

다른 장투사업장에 가면 조합원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웃으면서, 많이 먹으면서 싸울 거예요. 삭발이나 단식 같은 건 안 하려구요.” 이해한다. 아니,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자신들의 싸움을 그렇게 해 나가겠다는 마음을 나는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늘 함께해 주는 연대 단위들과 공연히 비장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삭발과 단식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도 있다. 사람은 언제 머리를 밀까? 나는 예전에 사랑에 실패하고 나서 술 엄청 마신 다음날에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린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로 뭔가 아주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을 때 여자들은 머리를 깎는다. 머리를 깎는다는 행위는 즉 무언가를 새 기분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를 바깥으로 표현하는 행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들이 머리를 밀 때, 그것은, 생존권이 벼랑에 몰려 머리를 밀어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는 내가 이야기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자신들의 삶이 더 이상 망가지는 꼴을 결코 보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공개적으로 조합원들과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카락을 몸에서 없앤다고 당장 무언가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비웃을 것이다. 그깟 머리 민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다만 고쳐 물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도대체 왜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리려 하는가?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그 물음에 과연 누가 답을 하는지, 답을 하는 그 사람은 어떤 밥을 먹고 어떤 곳에서 잠을 자며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뒤편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르포문학교실 수강생들과 함께 고공농성장에 다다른 것은 낮 열두 시쯤이었다. 사방이 트여 비바람이 훅훅 몰아쳐 들어오던 햇빛 가리개는 어느새 훌륭한 천막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멀찍이서 천막 안을 바라보니 조합원들이 회의를 하는 듯 보였다. 어떻게 할까 서성이고 있는데 빗방울이 흐득흐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천막 쪽으로 가서 우리의 신분을 밝히고 저 뒤쪽에 있는 다른 천막에 가서 잠시 기다리겠다고 조합원들에게 말했다.

천막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주방으로 갔다. 몇몇 조합원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길쭉한 막대기들을 지지대로 세워 놓고 지붕으로 두터운 비닐을 씌운 곳이었다. 프로판 가스통에 연결된 간이 화덕에서 국과 반찬이 맛 좋은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온갖 조미료와 그릇과 냄비가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조합원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나 말고 다른 수강생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다가 적당히 시간 맞춰 주방 밖으로 나가 줄담배를 피우며,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한 느낌으로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빗방울들을 하나 둘 헤아리기만 했다.

주방에서 만난 콜텍-콜트 조합원들과 하이텍 조합원들의 얼굴을 나는 도저히 맞바라볼 수가 없었다. 새로이 취재할 거리는 잔뜩 싸안고 왔는데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주저앉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 냄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조합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을 멀건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말을 못 하겠는 것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한데나 다름없는 곳에 부엌을 꾸며 사람들 먹을 밥을 지어야 하는 조합원들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저께 왔을 때 보고 들었던 착잡한 이야기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 골이 깊이 팬 조합원들의 얼굴을 나는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현장실습 날이라 일부러 몽실몽실한 털이 달린 따뜻한 옷을 입고 왔는데 그 옷조차 미안하기만 했다. 서로가 처한 삶의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 나는 너무나 불편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고작 지지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찾아와 얘기나 듣고 취재나 해 가면 되는 사람이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내 입을 꼼짝없이 봉해 버렸다.

회의가 끝나고, 다시 송전탑 바로 옆에 있는 큰 천막으로 가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콜트 지회 상황실장이라고 하는 조합원이 콜트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싸워 왔는지 첫 순간 첫 투쟁부터 짚어 나갈 때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천막 바닥에 깔린 깔개만 내려다보았다. 콜트-콜텍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자들이 겪었던 참혹한 일들을 모아 취재해 보겠다는 내 처음 마음은 오래 앓은 병자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조합원들을 뒤로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그곳을 나왔을 때,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후배에게 지청구를 먹었다. 나는 한동안 담배를 피우여 말없이 걷기만 했다. 고개를 돌려 바람에 물결이 이는 한강을 바라보는데 느닷없이 황아무개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 하는 순교자 같다.


어쩌면 나는, 노동자들을 단지 불쌍하고 측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대상으로밖에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벼락처럼 떠올랐다. 공장 노동자 신분이 아닌 젊은이가 단순히 자기 양심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적당한 죄책감을 위해 자기 자신을 쓸데없이 짓누른 것은 아니었을까. 노동자들을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떳떳한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불행에 찌들어 동정 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여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런 스스럼없이 조합원들과 깔깔대고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다른 수강생들이 차라리 더 건강한 시선으로 노동자들을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어디서 자든 그 모든 것들을 일단은 제쳐두고 사람 대 사람이라는 관계에만 그 순간에 집중한 다른 수강생들이 나보다도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노동자들을 만나 간 것이 아니었을까.

한숨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것을 후우 뿜으며 나는 여전히 허약하기만 한 내 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 주기 위해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는 말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가 자기 자신의 한계인지 끊임없이 허물고 도전하고 다시 지어야 한다. 물론 그것도 말은 쉽다. 모든 것은 현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하기 마련인데, 나는 아직도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겨울을 코앞에 둔 날씨에 40미터 위 허공에서 비닐 한 장 덮고 버티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슬펐다. 하지만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졌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올곧은 생각으로 자기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주 중에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가서 이번엔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금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도 걱정이 되는 건 있다. 조합원들이 지나가 버린 아프고 쓰린 기억들을 나 때문에 다시 불러내면서 공연히 더 마음고생만 하게 되는 건 아닐지. 복사기처럼 조합원의 아픔을 글로 그대로 옮기는 일이 조합원들에게는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문제와 나는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두 번째, 홈플러스 상암점 천막농성장

천막 안에 들어가니 이경옥 부위원장과 다른 조합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커피를 한 잔씩 들며 이야기를 들었다. 곧 있으면 파업 500일째가 되고 천막농성은 이미 100일을 훌쩍 넘었다.

삼성 테스코 자본과는 아직도 교섭 중이라 했다. 이랜드일반노조 홈에버 지부는 이랜드 자본이 홈에버를 삼성 테스코에 매각해 버린 뒤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 지부가 되어 10월 초부터 삼성 테스코와 교섭을 진행하는 중이다. 역시 쟁점은 첫 교섭 때와 마찬가지로 ‘해고자 복직 문제’였다.

“파업에 온몸으로 가담하지 않은 해고 조합원들 같은 경우는 온전히 복직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노조 간부를 비롯한 징계 해고 조합원들이에요. 회사 입장에서 보면 노조 간부들이 현장에 다시 들어가는 게 앞으로 계속 말썽이 일어날 소지를 끌어안고 가는 것 같겠죠. 저도 제가 쉽게 복직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김경욱 위원장, 이남신 수석부위원장, 홍윤경 사무국장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었다. 홈플러스 인사노무관리는 다름 아닌 삼성이 담당한다. 조합원들이 처음으로 파업을 벌인 까르푸 시절부터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성 인사노무팀은 이미 속속들이 분석하고 나름대로 작전을 짜 놓았을 것이다. 실제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교섭에서는 복직 대신 ‘위로금’을 주겠다는 안을 삼성 테스코에서 들고 나왔다고 했다. 첫 교섭 때는 나오지 않은 새로운 안이었다.

“복직도 복직이지만 사실 조합원들 복직되고 난 이후가 더 문제예요. 복직된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는 게 아니라, 분명 현장에서 또 전과 비슷하게 맞부딪치게 될 문제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요. 근데 이 투쟁 끝나고 다시 현장에 돌아가면 정말 조용히 살겠다고 하는 조합원들도 적지 않아요. 워낙에 고생을 했으니까.”

“먼저 현장으로 복귀한 조합원들과는 평소에 교류가 있었나요?”

“교류가...... 아무래도 서로 볼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것도 걱정예요. 막상 복직돼 현장에 들어갔는데, 먼저 복귀했던 조합원들과 혹시라도 서먹서먹해지면 어쩌나. 다른 조합원들이, ‘어차피 전에 열심히 투쟁했던 사람들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먼저 들고 일어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나. 그러지 않게 되기를 바라야죠. 복직이 돼도 싸움이 끝나는 게 아니라 아마 곧 새로운 싸움이 다시 시작될 거예요.”

“이랜드 자본이 지저분하게 남기고 간 징계나 손배 같은 건 어떻게 되고 있나요?”

“그것도 이랜드랑 계속 얘기를 해 보고는 있는데 잘 되고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징계 건도 앞으로 계속 또 싸워야 하고. 손배도 뭐......”


이랜드 자본은 홈에버를 홈플러스로 매각하기 며칠 전까지 홈에버 조합원들에게 마구 징계를 내리고 손배 소송을 걸었다. 손배 소송은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서 김경욱 위원장과 홍윤경 사무국장에게 무려 7200만 원짜리로 때려 버린 것이었다. 이랜드는 마지막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옛 홈에버 조합원들을 괴롭히려 하고 있었다. 매각하면서 선심 쓰듯 노동자들에게 뿌린 위로금은 파업 조합원들에게는 아예 주지도 않았다.

“이 천막은 언제쯤 걷으실 생각이세요?”

“날씨도 추워지고, 이젠 여기도 이랜드 홈에버가 아니라 홈플러스가 돼 버렸으니 안 그래도 주변에서 많이 물어봐요. 천막 언제 걷을 거냐고. 근데 이 천막농성장이 이랜드 투쟁의 중심점이었잖아요. 모든 싸움이 일단락되면 걷긴 걷어야겠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비록 주변에서는 이랜드 투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이경옥 부위원장은 오히려 투쟁이 끝난 뒤를 더 걱정하는 듯 보였다. 복직된 조합원들과 먼저 일하고 있던 조합원들과의 관계도,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삼성 테스코 자본도, 자기 얼굴에 똥칠하는지도 모른 채 징계와 손배를 거두어 갈 생각조차 안 하고 이랜드 자본도, 그리고 복직될 가능성이 희박한 이경옥 부위원장 자신의 문제도 하나같이 걱정거리였다.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이 삼성 테스코 자본을 어느 정도까지 압박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천막 밖으로 나와 홈플러스 매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십 분 뒤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 흩어졌다.

집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나는 대형 할인 매장을 자주 들락거리는 편이다. 상품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마트 위층에 교보문고가 있어서, 책 구경하러 갈 때마다 꼭 매장 안을 거치게 된다. 예전에는 이마트를 가도 상품들만 눈에 보였지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랜드 투쟁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이마트에 가면 상품들은 배경으로 멀찍이 물러나고 오로지 노동자들만 눈에 들어왔다.

서비스 노동자들은 절대로 앉아서 일하는 법이 없다. 곁에만 스치고 지나가도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며 인사를 한다. 항상 상냥한 말투로 ‘고객님’들을 최선을 다해 ‘모신다’.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 미소 짓다 못해 차라리 찡그린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쥐고 내게 존댓말을 쓰며 다가올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을 정도로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상품 파는 곳에 고용된 노동자고 누구는 물건을 사는 소비자라는 이유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 관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로봇과 사람 관계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서비스 노동자들은 감정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로봇이 아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돈만 있으면 종업원들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이 사회가 누구든 돈을 가지고 있어야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서 누가 물건을 사가겠는가? 그러니 장사꾼들은 늘 돌려 말하는 것이다. 돈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 바로 왕이라고.

시식 코너에서 열심히 두부를 썰어 접시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있는 한 여성 노동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그 노동자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빠른 말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맛 좋고 신선한 두부입니다. 맛보시고 가세요. 싸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큰따옴표 안에 넣어 마치 대사처럼 써 놓았지만 정말 저런 말을 그 노동자가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얼 들었는지 되새길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이었다. 대강 ‘저는 이 두부를 꼭 팔아야 합니다’라는 속뜻이 담긴 말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서서 일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이렇게 물어놓고 나는 아차 싶었다. 분명 그 노동자에게는 나 또한 ‘고객’으로만 보였을 텐데, 고객에게 자긴 지금 일하기 힘들어 죽겠다고 말할 서비스 노동자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고객님.”

그 말조차 빨랐다. 내 어머니 또래로 보이는 노동자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저렇게까지 빨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내친김에 다시 물음을 던져 보았다.

“그래도 계속 서서 일하시니 힘드실 것 같은데요. 하루 종일 서 계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고객님. 두 시간씩 일하고 한 시간 쉽니다, 고객님.”


설마 하루 종일 맞교대로 일할까 싶어 좀 더 캐물어 보려 했지만 접시에 담긴 두부를 집어 먹으러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 노동자는 얼른 표정을 고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아까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맛 좋고 신선한 두부입니다, 고객님......”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의자 하나 갖다 주지 못하면서 방해는 되지 말아야 했다.

매장 안을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녔다. 어딜 보아도 물건들이 천장에 닿을 만큼 쌓여 있었다. 그야말로 상품의 홍수였다. 나는 예전에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다. 밤 열 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끝나 집으로 갔다. 새벽 세 시가 넘으면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다. 나 혼자 계산대 앞에 멍하니 앉아 눈앞에 벌여 놓아진 온갖 상품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저 많은 상품들은 다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얼굴을 한 노동자의 어떻게 생긴 손이 저 상품들을 만들었을까. 답 안 나오는 물음들을 자꾸만 되씹고는 했다. 계산대에서 나와 상품 진열대 사이를 느직느직 돌아다니다 보면 상품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노동의 몫으로 아우성치는 것 같아서, 철커덕거리는 공장 기계 소리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머릿속이 핑글핑글 돌았다.

노동이 없이는 그 어떤 상품도 만들어질 수 없다. 로봇이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고 해도 그 로봇도 결국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굳이 이야기할 것도 없는 그런 당연한 사실을 나는 상품 더미 속에서 밤새도록 일을 하면서야 비로소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홈플러스 매장 안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눈 가는 곳마다 노동이었다. 노동으로 만든 것들을 노동자들이 노동으로 팔고 있었다.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밖에 하지 않는 사람들은 멀리 어딘가에서 높은 의자에 앉아 거들먹거리며, 노동이 노동으로 노동을 판 이익을,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이윤’을 주머니에 쓸어 담고 있을 것이었다. 매장 안에서 상품 하나 팔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늘 가장 많은 이윤을 독차지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윤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을 이랜드 자본은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했다.

2층 매장도 한 바퀴 돌아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경옥 부위원장도 기륭전자로 우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세 번째, 기륭전자

오다 말다 하는 비 때문에 아스팔트가 온통 젖었다. 기륭전자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전경들이 몰려와 길목을 틀어막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이상하게도 전경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아는 사람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기륭전자 오늘 이전했잖아요. 지금 저 공장 안은 텅 비었어요. 회사가 비어 지킬 게 없으니 구사대도 없고 용역 깡패들도 없고...... 전경들도 오늘은 아마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을 걸요?”

전경들과 대치하며 밤을 샐 각오를 하고 온 나는 조금 김이 빠졌다. 10월 25일에 기륭전자가 공장 설비를 통째로 이전해 간다는 소식을 기륭분회 카페 게시판에서 얼마 전에 보았던 기억이 그제야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휑뎅그렁한 공장 안을 담 너머로 넘겨다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 기륭 노동자들은 어떡하라고? 미국 시리우스 원정 투쟁을 하고 있는 기륭 조합원들이 돌아와 저렇게 텅 빈 공장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전경들과 용역 깡패들이 없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을씨년스러운 공장 안에 수류탄이라도 까 넣어야 하는 건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계속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랜드일반노조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었다. 이랜드 집회나 문화제를 많이 가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에게는 개그맨의 피가 흐르고 있다. (수석부위원장님 죄송!) 입담이 무지막지하게 재미나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은 것을 보고, 나는 오늘도 계속 웃다가 끝나겠구나 싶었다.

삼백여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기륭전자 앞을 가득 채웠다. 무대에는 종이 상자를 쌓아 만든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종이 상자 옆면을 벽돌처럼 색을 칠해서, 벽처럼 쌓아 놓으니 정말 벽 같이 보였다. 김소연 분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 장투사업장 대표자들이 한 명씩 무대로 나왔다. 김소연 분회장이었다! 며칠 전 화요일에 망나니 같은 경찰특공대들의 손에 우악스럽게 끌려갔던 김소연 분회장이 밝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김소연 분회장이 맨 먼저 마치 떡메처럼 생긴 망치를 잡았다. 그 망치로 벽을 힘껏 때렸다. 뒤이어 다른 대표자들도 망치를 쥐고 벽을 마구 때려 부수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벽을 허물어 버리는 상징 의식이었다. 종이 상자는 형편없이 우그러지며 뒤쪽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공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회자가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른 길목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고 했다. 모두 다 합쳐 기륭전자 앞에 칠팔백 명 정도는 온 것 같았다.

사회자는 집회 중간에 ‘문답식 구호’를 한 번씩 외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는데 문답식 구호란 사회자가 먼저 소리치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바로 맞소리치면 되는 구호였다.

사회자 : 비정규직!
사람들 : 철폐하라!
사회자 : 인간답게!
사람들 : 살아보자!
사회자 : 기륭투쟁!
사람들 : 승리하자!


그리고 사회자는 지금도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들의 이름을 마치 출석을 부르듯 크게 소리쳤다.

“코스콤! KTX! 이랜드! 강남성모병원! 동희오토! 콜트 콜텍! 하이텍! 재능교육! GM대우! (더 많았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사회자가 사업장 이름을 하나씩 외칠 때마다 사람들은 “승리하자!”를 붙여 외쳤다. 나는 옆에 앉은 후배를 보며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참 많기도 하다. 서울 경기만 해도 저렇게 많은데 지방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사업장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지금도 많은데 또 얼마나 많은 투쟁 사업장들이 앞으로 계속 생겨나게 될까?”

“그러게요, 참.”


생각해보면 그것은 공포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내가 상상도 못할 아픔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 암세포가 게걸스럽게 증식하듯 숱한 일터를 파먹어 들어갈 만료, 해고, 파업, 농성, 구사대, 용역 깡패, 공권력, 폭력, 면담 거부, 교섭 결렬, 벼랑 끝, 눈물, 증오, 상처, 미움, 삭발, 단식, 천막, 침탈과 같은 단어들! 곧 있으면 천만 명이다. 한 나라에 기간제, 파견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천만 명! 공포 영화를 보면 흔히 등장인물이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 다가가다가 먼저 가서 숨어있는 살인마와 만나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많은데 이 시대가 딱 그 짝인 것 같았다. 그쪽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아니,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이 시대 사람들을 자꾸만 그쪽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살인마가 긴 칼을 들고 기다리는 저 후미진 곳으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면 모르겠는데 문제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환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정말 몸서리 쳐지는 공포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은 죽지 않기 위한 싸움이며 공포와 맞서기 위한 가장 작은 한도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재치 있는 진행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열기 때문인지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 전야제는 내내 무척이나 흥겹고 신명이 나는 분위기였다. 아, 한 대목은 빼야겠다. 무대 앞에 하얗고 커다란 천을 세워 놓고, 지난 화요일에 김소연 분회장이 경찰특공대들에게 잡혀가던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이미 인터넷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영상이었지만 나는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또 다시 보기가 힘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철제 구조물로 꾸물꾸물 벌레처럼 기어 올라가던 경찰 특공대들이 너무 징그러웠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열 시 반쯤에야 문화제가 끝났다. 사람들은 준비된 막걸리를 나누어 먹으며 그곳에서 뒤풀이를 할 모양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너무 늦어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자꾸 계속되지 않으려 하는 삶을 여러분들의 손으로 계속되게 만들고야 말 것이라고.

하루 동안 세 곳이나 되는 투쟁 사업장들을 돌아보고 나니 몸도 피곤했고 가슴속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찬 것 같아서 지하철 자리에 앉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말을 나 혼자 내 입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여전히 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그리고 앞으로 계약한지 2년 만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예비 해고 노동자 여러분.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자꾸 계속되지 않으려 하는 삶을 여러분들의 손으로 계속되게 만들고야 말 것이라고. 나는 눈을 감으며 차장에 머리를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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