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벽 넘고 아픔도 딛고 이제는 안녕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파업 투쟁 500일, 그 현장에서

구구콘이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십 몇 년 전쯤 처음 구구콘이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500원이라는 가격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서주 아이스주, 빠삐코, 비비빅 등등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팔리던 시절에 500원이라는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 했던 구구콘은 날개 돋친 듯 잘 팔리며 철부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순식간에 쓸어갔다. 지금도 1500원이라는 무려 세 배가 뛴 값으로 팔리고 있다. 그때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연기자 최수종이 정장을 빼 입고 나와 “그래서, 500원입니다!” 당당히 외치던 TV 광고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실 500원이라는 가격은 100원에 다시 100원짜리 네 개를 보태면 간단히 치를 수 있는 값이다. 초콜릿과 마쉬멜로우와 땅콩을 버무렸다는 이유로 400원이나 더 받았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500원은 꼬마 아이에게 맛난 거 사먹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쥐어 줄 수 있는 돈이다. 숫자만 보면 돈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500이라는 숫자는 그 뒤에 만이나 억이 붙지 않는 이상 동전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500이 돈이 아니라 날짜라면? 닷새도 아니고 50일도 아니고 500일이라면? 그리고 500일 동안 펀들펀들 논 것도 아니고 절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며 애인과 연애를 한 것도 아니라면? 생업을 다 제쳐둔 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온 지가 500일이라면? 그때도 500이라는 숫자를 동전 한 닢 떠올리듯 간단히 생각할 수 있을까?

  닷새도 아니고 50일도 아니고 500일이라면?

기륭전자가 이미 오래 전에 1000일을 넘겼다. 콜트-콜텍과 공동 투쟁을 하고 있는 하이텍알시디코리아는 7년째 싸우고 있다. 이른바 ‘장기 투쟁 사업장’들이 너무나 많다 보니까 나도 그렇고 내 주위 사람들도 점점 숫자에 무덤덤해지고 있는 듯하다. ‘500일? 벌써 그렇게 됐나?’ 이렇게 한 번 떠올려 주고는 그대로 다시 자기가 하던 일에 고개를 처박는 것이다. ‘오백일’은 옆집 아이 이름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500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미친 자본과 싸움을 해 왔다는 것은 500일 동안 공과금 고지서를 보며 가슴이 내려 앉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뜻이고 500일 동안 일터에서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며 500일 동안 내일은 뭘 먹고 사나 하는 걱정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노동자들에게 누구도 그런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그런 길로 가지 말라고 온갖 오두방정을 떠는 사람들만 개떼같이 몰려들어,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나오는 기사 밑에다 나쁜 댓글들을 달아 놓는다. ‘억울하면 딴 데 가서 취직해라.’ ‘그러게 노력해서 정규직 되지 왜 이제 와서 징징대느냐.’ ‘합법적으로 해결해야지 이렇게 생떼만 쓰면 어떡하냐.’ 뚫린 입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고 비인간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인간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 뿐인데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뱃속만 생각할 뿐 노동자들이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지는 알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 노동자들만이 자신의 온 삶을 걸고 싸움에 나선다.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자기 삶을 온통 걸지 않았다면 그 고달프고 힘겨운 싸움에 어떻게 500일 동안이나 매달릴 수 있을까?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의 파업이 어느덧 500일째를 맞이했다. 원래 11월 1일은 딱 500일째가 되는 날이 아니었지만 토요일에 일정을 잡아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일부러 파업 500일 집중 집회를 11월 1일 토요일에 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했다.

자전거 행진? 오후 3시에 홈플러스 상암점 앞에 모여 홈플러스 영등포점까지 자전거로 행진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까?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해 보니 만만찮은 거리였다. 영등포점에 적어도 4시에는 도착해야 이후 집회 일정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자전거를 타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밖에 나오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가을아, 어디로 갔니?’ 여름의 끝자락에서부터 조금씩 서늘해진다 싶더니 별안간 겨울이 찾아온 듯한 날씨가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모처럼 두껍게 입고 나온 토요일 오후는 생각보다 푹했다. 등에 땀이 배었다. 햇살이 온몸에 따뜻이 스며들었다. 홈플러스 상암점 천막농성장에 다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전거를 하나씩 골라 잡고 있었다. ‘홈플러스는 대량해고와 파업사태를 해결하라’라고 쓰여진 큼직한 헝겊을 다들 등 뒤에다 붙였다. 자전거들에는 ‘비정규직 철폐하라’, ‘파업사태 해결하라’ 등등이 쓰인 자그마한 깃발이 달려 있었다.

  자전거 행진? 오후 3시에 홈플러스 상암점 앞에 모여 홈플러스 영등포점까지 자전거로 행진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보는 나는 안장 높이를 맞추느라 잠시 애를 먹었다. 내 몸이 자전거 타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싶어서 시험 삼아 근처를 한바퀴 빙 돌아 보았는데, 꼭 비틀비틀 술 취한 사람처럼 자전거가 양쪽으로 자꾸만 흔들렸다. 걱정이 되었다.

마침내 자전거 대오가 출발했다. 홈플러스 주차장을 빠져 나와 마포구청역과 망원역을 지나 양화대교를 건넜다. 안장 높이가 안 맞아 나는 자전거를 차도 가장자리에 몇 번이나 세우고 안장과 씨름해야 했다. 게다가 가방은 또 왜 그렇게 거치적거리는지! 비스듬히 메고 등 뒤에 돌려 놓은 가방은 걸핏하면 앞으로 돌아와 왼쪽 허벅지에 얹혔다. 페달을 밟기가 힘들었다. 차도 한가운데 있다 보니 매연을 한 가득 마시게 돼 콧속이 따가웠다.

결국 페달을 씽씽 밟아 맨 앞 방송 차량 있는 곳까지 가서 차 안에다 가방을 던져 넣었다. 던져 넣고 보니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기도 애매해서 엉겁결에 맨 앞에서 달리게 되었다. 뒤를 돌아 보면 펄럭이는 깃발을 사이로 오십여 명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뒤를 돌아 보면 펄럭이는 깃발을 사이로 오십여 명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안장 높이도 제대로 맞추고 가방도 맡겨 놓고 보니 그제야 좀 달리는 데에 흥이 났다. 하늘은 높고 맑았다. 맞바람 속으로 한없이 질주해가는 듯한 기분이 싫지 않았다. 흥얼흥얼 콧노래도 불렀다.

양화대교를 지나는데 송전탑 중간쯤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콜트-콜텍, 하이텍 고공농성장이 보였다. 고공농성 18일째, 단식은 8일째였다. 순간 내 상쾌한 기분이며 맑은 가을 날씨며 불어오는 맞바람이며 하는 것들이 죄다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가슴이 아팠다. 그 좁은 곳에서 밥도 못 먹고 꼼짝달싹 못하고 있을 두 지회장이 지금은 어떤 얼굴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러고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버릇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랜드 파업 500일 집중 집회 일정 가운데 첫 번인 자전거 행진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내 속에서 느껴지는 위경련 같은 아픔들 중에 어디서부터가 자책이고 어디까지가 위선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정말 가슴이 아픈지 아니면 가슴이 아픈 ‘것 같은지’ 뭐라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달려 어느새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 이르렀다. “동지들, 어서 오세요!” 이경옥 부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회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영등포점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자전거를 모두 반납하고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나니 곧 집회가 시작되었다.

김경욱 위원장이 첫 발언을 했다. 삼성 테스코와의 2차 집중 교섭이 결국 결렬되었고, 교섭 자리에서는 노조를 없애 버리려는 사측의 의도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지금 이랜드 일반노조 홈플러스 지부와 삼성 테스코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가 노조 핵심 간부들의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분회장들은 복직시켜 달라고 사측에게 요구했어요. 분회장들과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복직시켜 주면 핵심 간부들은 복직을 포기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홈플러스 측은 분회장들도 받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앞으로 홈플러스에서 차기 노조 지도부가 꾸려지는 걸 막겠다는 거지요. 외주화나 고용안정, 임금 같은 부분에서는 사측이 전향적인 안을 내놓긴 했어요. 그런데 분회장들을 받아 주지 않는다는 건 결국 노조를 없애자는 의도나 다름이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게 우리 조합원들을 살리는 거니까, 해고를 최소화 하는 게 저희 목표에요. 홈플러스가 그 부분에서는 강경하게 나오고 있지요.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 같아요. 500일 동안 싸운 사람들이 무사히 다 현장으로 돌아가면, 사측이 노조의 활동을 인정하고 그 싸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아마 매장에서 최소한 한 명 이상은 해고자를 만들려 하고 있는 거지요.”

“복직되셔야 하는 분들은 몇 분이나 계세요?”

“해고자가 총 28명이에요. 그 중에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 승소 조합원들이 6명인데 그 조합원들은 사측도 복직시켜 준다고 했어요. 남은 22명 중에서 10명은 복직시키되 유예기간을 둔다고 했구요. 아마 내년쯤에 복직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나머지 12명이 바로 핵심 간부들인데 홈플러스는 이 12명은 절대로 안 받아주겠다는 입장이에요. 핵심 간부들이 한 명도 못 들어가면 노조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거든요. 그래서 2차 교섭 때 우리 위원장이 교섭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노조를 죽이겠다는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2차 교섭은 언제쯤 있었는데요?”

“지난주 주말(10월 25~26일)에 했는데, 아무래도 이랜드 자본과 교섭할 때보다는 많이 입장이 좁혀지긴 했어요. 근데 그 해고자 복직 문제에서 계속 부딪치고 있는 거죠. 이번 주 목요일부터는 영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도 시작했어요.”


삼성 테스코는 삼성과 테스코가 합작해서 만든 회사다. 테스코는 영국계 할인체인점이다. 삼성 테스코의 지분은 테스코가 89%, 삼성이 11%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영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3차 교섭 일정은 혹시 잡혔나요?”

“아직 이후 교섭 일정은 없어요. 아마 11월 중에 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교섭 때 사측에서는 누가 나오나요? 이승한 회장이 직접 나오나요?”

“아뇨. 그 사람은 회장이지 대표이사가 아니에요. 도XX라고 대표 이사가 따로 있어요. 물론 실권은 이승한 회장이 쥐고 있지요. 교섭 때는 인사상무가 나와요.”


뉴코아 노조가 사측과 교섭하면서는 핵심 간부들의 복직까지 죄다 포기했다고 했다. 삼성 테스코도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지부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이랜드 자본이 홈에버노조에 걸었던 손배와 소송들은 이랜드 자본이 홈에버를 삼성 테스코에 매각하면서 고스란히 삼성 테스코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 테스코는 그 손배와 소송들을 교섭 자리에서 이랜드일반노조를 협박하는 무기로 쓰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 개개인에게 걸린 소송들은 거의 다 취하했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걸린 큼지막한 소송들은 아직 남아있다고 했다. 영국의 테스코 자본은 자국 내 노조는 인정하면서 터키나 한국 같은 곳의 노조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상한 자본이라고도 했다. 나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로 들어와 앉았다.

500일 동안이나 투쟁을 하고 있는 이랜드 일반노조 홈플러스 조합원들을 삼성 테스코 인사노무팀은 정말 ‘독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분회장이나 노조 지도부는 결코 받아서는 안 된다고 윗선에서 지령이라도 떨어졌을 것이다. 회사가 떳떳하면 노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노동자들을 고용해 일터를 꾸려나갈 수 있을 텐데, 도대체 삼성 테스코는 뭐가 찔려서 분회장들과 노조 간부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정말 노조를 죽이겠다는 심보일까? 크든 작든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고용주들은 무조건 노조를 싫어하게 돼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 열심히 일하겠다는 사람을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친다면 그것은 노조의 활동을 납작하게 눌러 버리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돈 자루를 쥔 놈들은 참 좋을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인생을 자기 손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내쫓아 버려도 법에도 걸리지 않고 경찰들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돈 자루를 쥔 놈들일수록 이윤에 환장하는 것일까?

집회가 끝나고 김밥과 컵라면이 나왔다. 그동안 이랜드 집회에서 먹은 김밥들만 헤아려 봐도 김밥집 하나는 족히 차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웃었다. 어둑어둑해진 사위에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라면 국물이 더 맛있어지는 계절이었다.

여섯 시쯤에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홍윤경 사무국장이 사회를 보았다. 종이컵과 촛불이 돌려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켜 들었다. 이용석 노동자상에 빛나는 김성만 씨를 비롯한 많은 문화 노동자들이 나와 공연을 했다. 이랜드 일반노조 몸짓패인 ‘새벽’과 ‘신화’가 나와 합동 공연을 보여 주기도 했다. 몸짓 공연 중간에 한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종이컵과 촛불이 돌려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켜 들었다.

“정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투쟁가를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투쟁가가 들리면 어디서 무슨 집회가 있나, 투쟁이 있나 관심을 가지고 그쪽으로 가 보게 됩니다. 제 옆에 늘 함께 했던 조합원 여러분들과 연대 동지들이 저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지부 공식 노래패인 ‘비상’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비상입니다. 매번 공연 때마다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비상을 해체하려는 생각을 합니다.” 장난스런 말과 함께 시작된 공연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연보다도 더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을 흠씬 뒤흔들어 놓았다. 민중가요 가수 명인 씨가 앞에 나와 앉아 지휘를 해 주었다. 노래 중간에 귀엽게 생긴 서너 살배기 아이가 나와 음악에 맞춰 두 팔을 휘저으며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그 모습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배를 잡고 자지러졌다. “너무 귀여워!”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지부 공식 노래패인 ‘비상’이 나왔다.

문득 홈플러스 매장 입구 쪽을 바라다보니 전경들이 입구 안쪽에서 방패를 앞에다 세우고 장승처럼 뻣뻣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이들이 자기 앞에 보초를 세우기 마련이다. 홈플러스는 무엇을 지키고 싶을까? 문화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폭도로 변해 매장을 습격할까봐 겁 먹은 것일까?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디선가에서 만들어 보낸 수많은 물건들을 혹시 홈플러스는 자기네가 만든 자기들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집회에서나 마찬가지로 경찰들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는 합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억지 주장을 일부러 몸소 웅변하러 나온 듯 매장 입구들마다 많게는 십여 명씩, 적게는 서너 명씩 버티고 있었다.

칼자루 쥔 놈들은 참 좋을 것이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자기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 되니까. 무엇을 하든 든든한 뒷배경이 항상 지켜줄 테니까. 그러면서도 법이든 질서든 정의든 온갖 좋은 상징들은 자기네들이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칼자루를 쥔 놈들일수록 폭력 행위에 환장하는 것일까?

  문득 홈플러스 매장 입구 쪽을 바라다보니 전경들이 입구 안쪽에서 방패를 앞에다 세우고 장승처럼 뻣뻣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비상’의 공연이 오늘 문화제의 절정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깜짝 공연이 있을 거라는 홍윤경 사무국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나는 민중가요 가수 지민주 씨가 나와 이경옥 부위원장을 불러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지부 노동조합 지도부가 뭉쳐 만든 몸짓패가 있다. 이름은 ‘우끼시네’. 나도 공연은 딱 한 번밖에 못 봤다. 전설로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우끼시네’의 공연을 봤을 때보다도 나는 더 놀랐다. 지민주 씨의 노래 ‘길 그 끝에 서서’를 온몸으로 열창하는 이경옥 부위원장의 모습에 사람들은 활화산 같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열광을 단번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듯 이경옥 부위원장의 에너지는 정말 엄청났다.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지민주 씨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으니. (이경옥 부위원장님, 멋있었어요! 다음에도 또?) 노래가 끝났지만 사람들은 “한 번 더!”를 외치다 못해 “이경옥!”을 연이어 외쳤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나와서 한 곡을 더 부르고 들어갔다.

혼자 남은 지민주 씨가 ‘이제는 안녕’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왜 그리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사는 일에 절망했던 날들아 고개 숙였던 나의 모습아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흔들흔들 불안했던 삶이었지만 오늘 밤 행복한 꿈꾸며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큰 장벽 넘고 아픔도 딛고 이제는 안녕


안녕이라고 말하려면 먼저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플러스 조합원들은 무엇과 작별해야 할까? 나는 무엇과 작별을 해야 할까? 나쁜 자본가들과, 고약한 점장들과, 말이 안 통하는 사측 임원들과, 걸핏하면 방패질이나 하는 경찰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열등한 낙오자들쯤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아니, 그건 온통 부정과 등돌림으로 채워진 조금은 삭막한 안녕이다. 큰 장벽 넘고 아픔도 딛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하려면 부정만으로는 안 된다.

악덕 자본가들과 맞서고 있는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은 저마다 자기 삶을 긍정하기 위해, 남은 시간 동안 더 힘껏 살아 보기 위해 500일이라는 시간 동안 투쟁해 왔다. 조합원들 각자의 삶에 비하면 차라리 박성수 회장이나 용역 깡패들이나 폭력 경찰들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더 소중한 것들은 조합원들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삶의 영역이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삶, 미움과 증오보다는 사랑과 이해로 가득 찬 삶과 만나기 위해 조합원들은 지난 날들과 작별을 했다. 박성수 회장도 용역 깡패들도 폭력 경찰들도 다 뒤로 흘려 버렸다. 500일이라는 오랜 시간을 이미 조합원들은 넉넉히 끌어안고 있지 않을까? 온갖 하찮은 나쁜 놈들에게 신경을 쓰기엔 조합원들 자신의 삶이 하나같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지민주 씨의 노래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씩 고민한다. 좋은 사람이 나쁜 글을 쓰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나쁜 사람이 좋은 글을 쓰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내가 참세상에다 쓰는 글을 읽고 어떤 이는 눈물을 글썽였다고도 했고 어떤 이는 가슴 뭉클했다고도 했지만, 나는 지금껏 내 글에 나의 좋지 않은 모습들은 전혀 담지 않아왔다. 나는 언제나 내 글 속에서 지나치게 여리고 지나치게 올바르며 지나치게 노동자들을 위한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일까?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나는 그런 게 내 진짜 모습인지 잘 모른다. 나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전부 다 연기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글을 쓰되 혼자 웅크려 쓰고 혼자 숨어 읽는 것이 나 자신에게 더 정직한 게 아닐까 싶어진다. 울지 않으면서도 우는 척하고,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픈 척하는 것에 진저리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랜드일반노조 홈플러스지부 조합원들은 자기 삶을 긍정하기 위해 5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온몸과 온 마음으로 싸워왔다. 그런데 나는? 나는 무엇과 싸워야 할까?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과 맞붙어 싸워야 할까? 연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내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구겨진 헌 옷처럼 꾀죄죄하게만 보이는 내 지난 시간들을 끌어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했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글을 쓰려면?

이제는 안녕. 어쩌면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지, 무엇과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는 안녕’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촛불을 가슴께에 모아 쥐고 환하게 웃고 있는 홈플러스 조합원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조합원들에게도 그렇듯 내게도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꿈꾸던 것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과 과감히 결별해야 할까.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글을 쓴다는 일은 삶을 살아간다는 거대한 사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민주 씨의 노래 공연이 끝나고 홈플러스 면목점에서 왔다는 조합원이 나와 발언을 했다.

“200일 문화제 때 제가 눈을 맞으며 발언을 했었는데요. 그때 발언 마치고 들어오면서 ‘300일 문화제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고 옆 사람에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벌써 500일까지 왔네요. 우리들의 투쟁이 500일까지 갈 줄은 몰랐습니다. 옆에 있는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어제도 새벽 한 시 반까지 잠을 설쳤습니다. 오늘 와서 위원장님을 보는데 너무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 싸움을 끝끝내 해야 나와 내 자식들이 살 수 있고, 내가 당당한 엄마가 될 수 있고, 내가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는 현장에 돌아가고 누구는 못 돌아간다고 생각했다면 이 싸움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힘들 때 힘이 되어 준 분들을 다 잃어 버리고 제가 복직하면 과연 예전처럼 웃으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우리는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이라도 해고자가 생겨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 동지를 가슴에 묻고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 동지들, 사랑합니다!”

다음 순서로, 홈플러스 조합원들이 나와 커다란 종이에 손도장을 찍고 그 옆에다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먹물을 묻힌 손들이 새까맸다. 들쭉날쭉한 손도장들이 종이에 까맣게 찍혀 갔다. 조합원들은 흰 종이에 찍힌 손바닥들을 보며 자신의 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도장 하나씩 찍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은 결국 500일까지 달려 왔다. 하지만 500은 숫자일 뿐이고 500이 501을 지나 502가 된다고 해서 당장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해고 조합원들 모두가 현장으로 돌아가야 이 싸움은 끝난다. 노조 핵심 간부 12명이 끝내 복직되지 못하고 교섭이 타결된다 하더라도 현장으로 돌아가는 조합원들은 모든 것을 홈플러스 현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그러한 자기 마음을 다져 보는 듯 먹물 묻힌 손을 꾹꾹 눌러 손도장을 찍었다.

  다음 순서로, 홈플러스 조합원들이 나와 커다란 종이에 손도장을 찍고 그 옆에다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길고 가느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폭죽이 돌려졌다. 사람들은 들고 있던 촛불로 폭죽에 불을 붙여 하늘을 향해 쏘았다. 휙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불꽃들이 밤하늘로 솟아 올랐다. 사람들이 기쁜 듯 소리를 질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폭죽에서 쏘아 올려진 불꽃들이 그대로 하늘 위에 붙박인 것처럼 별들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제는 안녕. 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큰 장벽 넘고 아픔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은 들고 있던 촛불로 폭죽에 불을 붙여 하늘을 향해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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