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들에게 슬픔을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들

어제 마신 술이 해가 져 가는데도 깨지 않았다. 뭔가 먹기는 해야겠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물만 들입다 마셔대다가 결국 라면을 끓여 먹고 집을 나섰다. 머리는 멍했고 뱃속은 꼭 석유라도 마신 것처럼 자꾸만 뒤틀렸다. 저 멀리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잔뜩 흐려 끄물거렸다. 한 십 년 정도 깨지 않고 푹 잠들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알약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십 년이 지나면 무언가는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긋지긋한 이 세상을 십 년은 보지 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이니 근심 걱정일랑 접어두고 신나게 즐기며 살자.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잘난 입에 똥이라도 쑤셔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즐기며 살자고?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무엇을 즐겨? 강을 이루며 흐르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이 보이지 않아? 나도 뭔가 글이랍시고 열심히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쓰는 글마다 한숨과 탄식이 담배 연기처럼 뿌옇게 끼어 있었다. 혼자서만 우울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을까? 현장에 가서 취재한 온갖 슬픈 이야기들에다 내 개인적인 고민들을 적당히 버무려 너댓 시간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면 글 한 편이 뚝딱 나왔다. 나는 스스로 지은 틀 속에 갇혀 버린 내 글쓰기가 지겨워졌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지금보다 문장은 투박했지만 내 글에는 힘이 있었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 내 글 속에서는 꿈틀거렸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그런 글을 썼다. 하루 종일 글만 써도 지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몇몇 가까운 사람들만이 내 글을 읽어 주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는 글을 쓰면서 정말 참 좋았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쓰든 상처 받은 경험에 대해 쓰든 쓸 때는 힘들었지만 쓰고 나면 마치 실컷 울고 난 것처럼 후련했다.

지금은? 쓰기 전에는 아뜩하고, 쓰면서는 괴롭고, 쓰고 나서는 전부 다 헛된 것만 같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속에서 불 같이 뻗치는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까짓 글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싶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현장이 너무나 많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에 어쩌다 보니 많이 가게 되었지만 내가 자주 들르는 곳이라고 해 봐야 서울 지역에 있는 몇몇 사업장들이 전부였다. 이름만 알았지 아직도 가 보지 못한 곳들이 많았다. 게을러서 그런지, 아니면 낯가림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나는 펑펑 남아 돌아가는 시간에도 선뜻 다른 사업장들을 찾아가지 못했다.

  지난 10월 28일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앞에서 있었던 문화제

그리고 어디 현장이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뿐인가? 내가 모르는 현장들이 또 너무나 많았다. 이주 노동자, 장애인, 빈민, 철거민, 여성, 성적 소수자.. 한도 끝도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모르는 어디에선가는 분명 누군가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대체 어디를 먼저 취재하고 무슨 글을 써야 할까? 나는 쳇바퀴 돌 듯 똑 같은 물음만 되뇌었고 답이 나오지 않아 술을 자주 마셨다. 이렇게 술 처마실 시간에 다른 현장에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한 잔씩, 한 병씩 더 마셨다.

지하철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은 벌써 저녁이었다. 컴컴한 색도 아니고 어스름한 황혼 빛도 아닌, 푸르스름하면서도 아직 어둡다고는 말하지 못할 그런 저녁 빛을 한동안 올려다보다가 나는 느닷없이 왈칵 울고 싶어졌다. 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도 그랬다. 책 속에는 하얗게 쌓인 눈밭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하얀 빛.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 무언가 깨끗하고 고운 새하얀 빛을 본 게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지난 4월부터 촛불집회다 뭐다 해서 몸 축내고 마음 삭히며 달려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더러운 것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들은 꼭 어두운 밤에만 나타나 쇳덩이를 휘두르고 물을 쏘았다. TV에 나와서는 어진 어버이 같은 말만 골라서 하며 징그러운 눈웃음을 쳤다. 그들에게 우리는 어서 빨리 진압하고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 그런 폭도, 한 놈이고 두 놈이고 얼마든지 두들겨 패도 상관 없는 전자오락 속 상대역,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철부지 부나방 떼였다. 사진으로 보는 흰 빛이었지만 나는 뭔지 모를 먹먹함에 목이 메었고 눈앞이 흐려졌다.

저녁 빛이 너무 슬펐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는 우두커니 서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있으면 학원에 가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고, 시간도 애매해서 저녁도 못 먹을 것 같은데, 내일은 아마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있지? 참세상에 새 글은 또 무얼 써서 넘기나. 현장에는 또 언제 가나. 근데 저 지랄 같은 저녁 하늘은 왜 이리 슬퍼 보일까? 세상 사람들이 흘린 그 많은 눈물이 다 저기 고여 있는 것 같네. 하늘 아래 쪽에 그림자처럼 구석구석 얼룩져 있는 것은 전봇대와 건물 옥상과 가로수 우듬지였다. 사람의 자취였다. 사람의 자취가 함께 있는 저녁 하늘은 왠지 모르게 더 서글퍼 보였다. 해장도 제대로 못했는데 또 술 생각이 났다.

학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생각해 보았다. 뭐가 문제일까? 뭐가 나를 이렇게 꼼짝 못하도록 시달리게 하고 있을까? 나는 슬픈 걸까? 힘든가? 괴로운가? 마음이 아픈가? 무슨 단어를 써야 내 마음을 뚜렷이 드러낼 수 있을까?

한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후배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공무원 신분이지만 그 후배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아예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뽑거나 원래 있던 정규직들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거나 비정규직을 다시 파견직으로 바꾸는, 요새 돌림병처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악랄한 고용 방식을 그 국가 기관도 슬슬 채택하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가뜩이나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마음을 잘 가누지 못해 힘들어 하던 그 후배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그런 문제가 터질 것 같아 보이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게 이 세상이 온통 비정규직 뿐이라고 하면서 후배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숨 섞인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딱히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진실은 감당해낼 수 없대.”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을 위로 삼아 말해 주었지만 공허하기만 했다. “그럼 어쩌냐. 글을 쓰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정색을 하고 현실을 똑똑히 바라봐야지.” 그냥 그렇게 덧붙여 버렸다.

얼마 전에 쓰다가 하도 안 써져서 엎어 버린 글 한 편도 떠올랐다.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가 담긴 기사들에 일부러 나쁜 댓글을 다는 비겁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철제 구조물 위에서 끌려 내려오던 지난 달 하순, 인터넷 뉴스 사이트들을 뒤덮은 기륭전자 투쟁 기사에는 읽기에도 끔찍한 댓글들이 참 많이도 달렸다. 대충 둘로 요약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력해서 정규직 될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더 받으려 떼만 쓰는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그들의 싸움은 시민들도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감해 주지도 않는 그들만의 고립된 싸움이다.’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이런 헛소리들에 일일이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나쁜 댓글들의 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정신 나간 논리를 깨부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과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고민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쟁에 뒤처진 사람은 인간다운 삶에서 배제되어도 좋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이 삶이 어떻게 망가지든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먹을 것만 벌면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는 법과 질서만이 사람살이를 규정할 수 있는 정답이라는 생각, 이런 개 같은 생각들에 대해 먼저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고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쩌니 비정규직법이 어쩌니 입씨름을 아무리 해 봐야 그들은 냉소가 잔뜩 배인 댓글 하나 툭 던지고 잽싸게 도망갈 뿐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정규직 되는 거 아니에요?’ 차라리 이런 댓글은 순진하다.

  10월 21일, 기륭전자분회 관련 기사에 달린 ‘악플’들

내가 뭐라고 반박이라도 하면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가 내 생각 이야기하는데 왜 지랄이냐고 펄쩍 뛰지만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들로 그 민주주의를 말려 죽여 버린다.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지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만, 세상과 삶을 보는 시선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노력하면 되잖아요.’ 노력이란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데에 쓰라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곧 생계의 문제며 생계는 곧 인생의 문제 아닌가! 인생에 대한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지껄이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역겹다.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그 질 낮은 말본새에 구역질이 난다. 정부와 경찰이 그물망처럼 짜 놓은 법과 질서가 마치 자신들의 것인 듯 그들은 법과 질서를 입에 올리지만 사실 이 세상의 법과 질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몰래 댓글을 달아 놓으며 키득거리고 있겠지만 그들의 삶도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옛날에는 저주나 악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이제는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연봉 삼천을 받던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되고 파견직이 되는 거 잠깐이다. 자기 삶이 그 지경으로 엉망이 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노력해서 건실한 삶을 살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나쁜 댓글만 다는 망나니들에 대해 기다란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이 가닥이 잡히지 않아 중간에 그만 두어 버렸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나면 짬을 내서 꼭 다시 쓰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할 말은 아주 많다. 아주.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새삼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또.. 어찌 되었든 써야 하는 산더미 같은 글들! 모 출판사에서 기획하고 있는 비정규직 르포집에 써 보내야 하는 원고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칼라TV에서 프로듀서로 있는 아는 형님은 지방 도시 비정규직 사업장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으려 하는데 구성작가로 참여해 줄 수 없겠느냐고 연락을 했었다. 르포문학모임에서 하고 있는 작업도 요새 들어 마음이 잘 가지 않아 그만 둘까 말까 속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 아, 그리고..

희한하게도 내가 손 대고 있는 일거리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슬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에는 무척 좋아했지만 요새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황아무개 작가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 갈등? 누구나 우울을 말하고 슬픔을 하소연하는 시대라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우울과 슬픔은 주로 바깥에서 왔다. 내쫓는 사람들, 때리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힘 있고 돈 있어 힘 없고 돈 없는 이들을 깔보는 사람들, 그런 나쁜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이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늘 우울하고 슬프게만 보였다. 나는 그들을 힘들게 하는 나쁜 힘들과 글을 쓰며 또 갈등을 했다. 그러다가 나 혼자로는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맨정신으로는 잠을 자기 힘든 나날들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답답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거나 글을 썼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항상 생각은 그곳에서 막혔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아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남 걱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하지 않고 자기 고민만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바깥은 춥고 어두컴컴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라면 한 개가 전부였다. 뱃속이 아파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에서 가슴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었다. 아,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다는 사춘기 소년 같은 감상이 나를 별안간 사로잡았다. 방에 있는 소주 한 병이 생각났다. 또 술이나 마시고 잘까. 아냐. 오늘도 마시면 식도가 타 버릴지도 몰라. 전국노동자대회 때 경찰 기동대를 투입한다던데. 그들이 말하는 합법적인 집회란 대체 뭘까? 나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이 슬픈 건가? 나는 지금 슬픈가? 송전탑 위에서 외로움에 추위에 시달리고 있을 콜트-콜텍, 하이텍 지회장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경들과 용역 깡패들이 쳐들어갔다는 대우자판 노동자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싸우고 있을까? 나는 입력된 것만 처리해서 글을 쑥쑥 출력하는 프린터같이 아무런 고민도 번뇌도 괴로움도 하지 않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 글쟁이가 돼서 하루에도 몇 편씩 척척 글을 생산해 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슬픔에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아프든 누가 눈물을 흘리든 그 모든 것들에 무덤덤해지면 나는 아마 글쓰기 같은 건 집어치우겠지. 더 이상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겠지. 글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하나 둘 거두어들이게 될 거야.

슬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의 슬픔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슬픔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도, 숱한 투쟁 사업장들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아프게 앓는 사람들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려는 나도, 우선 그 슬프다는 감정과 정직하게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무언가가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슬픈 이들에게 슬픔을 자유롭게 지니게 해야 언젠가는 다들 자신의 힘으로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무것에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속은 편하겠지. 한 번뿐인 인생 맘껏 즐기다가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오히려 슬플 때엔 슬퍼하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하지 않을까. 히죽거리며 나쁜 댓글이나 다는 것보다, 골치 아프다며 등돌리고 내 입속으로 들어갈 밥 걱정만 하는 것보다 그렇게 사는 삶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너는 무엇을 위해 스스로를 빛내고 있니?

한참을 거듭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까지 와 버렸다. 집 앞에는 둥실한 가로등 하나가 서 있다. 내 방은 2층이라 밤에 창문을 열면 가로등의 둥글고 환한 얼굴이 바로 창밖에 가까이 와 있다. 한동안 서서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너는 무엇을 위해 스스로를 빛내고 있니.

슬픈 이들에게 슬픔을. 행복한 이들에게는 행복을. 하지만 이미 슬픔이 행복이 되고 행복이 슬픔이 되어 버린 이들에게는, 그들에게는 무얼 주어야 할까? 나는 옛 노래 한 곡조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나뭇잎 사이로 – 들국화

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지붕들 사이로 좁다란 하늘
그 하늘 아래로 너의 작은 얼굴

겨울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따스한 햇빛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여린 별 하나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이

어둠은 벌써 밀려왔나
거리엔 어느새 정다운 불빛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 사람들 물결


덧붙이는 말

들국화의 '나뭇잎사이로'가 배경음악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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