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 국무회의에서 수도법 일부개정법률안(수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통과된 수도법 개정안의 핵심은 ‘수돗물을 용기에 담아 판매’(병입 수돗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수돗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라고 제안의 이유를 밝혔지만 사실상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용해 정부가 나서 영리행위를 허용한 것이다. 이에 사실상 물을 ‘민영화’한 조치라는 비난 여론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돗물에 대한 나쁜 인식, 병에 담긴 좋은 수돗물로 바꾼다?
정부가 병입 수돗물 판매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수돗물에 대한 인식 개선”은 실제로는 반대의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지난 6월에 국회에서 열렸던 ‘수돗물 병입수 허용판매에 따른 국민대토론회’에서 문경환 고려대 보건대학 교수는 “현재 병입 수돗물을 마시기 좋은 수돗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돗물과 다른 공정, 즉 고도처리 공정을 거치게 된다”라며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수돗물은 과연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일반 수돗물과 다르게 병입 수돗물은 일반 수돗물이 거치는 정수과정을 마친 후 한 번 더 활성탄을 이용한 고도정수 과정을 거치며, 소독 시에도 일반 수돗물과는 다른 특수 염소 화학처리를 하게 된다. 결국 병입 수돗물 판매가 현재의 수돗물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기는커녕 음용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수돗물도 고도정수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을 가능케 해 일반 수돗물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할 것이라는 것.
한지원 물사유화저지공동행동 사무국장도 “병입 수돗물이 별도의 정수처리를 다시 거치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입 수돗물, “수돗물 사용 양극화 불러올 것”
문제는 병입 수돗물 판매가 물 사용에 있어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데도 있다. 일반 수돗물에 문제가 인식된 이상 돈 있는 사람들은 일반 수돗물을 사용하는 대신 병입 수돗물을 사용할 것이고, 결국 돈 없는 사람들은 일반 정수가 된 물을 사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지원 사무국장은 “지자체나 민간위탁 된 수도사업소들의 경우 지금도 일반 수도망에 대한 투자가 없는 상태인데 병입 수돗물을 허용할 경우 일반 수도망에 대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이익을 낼 수 있는 고도정수시설에 투자를 할 것”이라며 “결국 일반 수도망은 방치가 될 것이고 돈 없는 국민들의 경우 일명 저질 수돗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외국의 경우도 필수 불가결할 경우에만 병입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다. 6월 열린 국민대토론회에서 남상호 건국대 명예교수는 “미국의 경우 병입수를 이용하는 상황은 농약으로 또는 하수로 오염된 지역 등 필요악의 여건일 경우”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본도 병입 수돗물의 판매를 하루 85병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것도 비상용으로 부득이 한 경우에만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수돗물에 대한 인식개선 효과나 수돗물 질의 개선 등의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우려 속에서도 정부가 병입 수돗물 판매 허용을 서두르고 있는데는 물 산업으로 수익을 보려는 기업들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물 판매를 위한 사전단계”
지난 10월, 국감에서 권선택 자유선진당 의원은 병입 수돗물 판매에 대해 “대기업 물 판매를 허용하기 위한 사전단계”라고 주장했다.
권선택 의원은 지난 2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규제개혁 건의과제에 대한 환경부의 세부시행계획 문건을 공개하며 “전경련이 정부에 건의한 수돗물 재처리를 통한 영리행위 허가 요청 건에 대해 환경부가 이를 수용해 수돗물 판매 허용할 계획으로 조치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이는 그간 정부가 수도법 개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온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에 권선택 의원은 “수돗물 병입판매와 관련해 단 한 차례의 연구용역도 실시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수돗물 병입판매가 허용될 경우 실제 판매가 가능한 수도사업자 현황 및 예상판매가 등 기본적인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추진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지원 물사유화저지공동행동 사무국장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도광역화 작업과 맞물려 병입 수돗물 판매를 허용하면 수도사업을 대형화 해 민간에 위탁하면 이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이 이윤이 남지 않는 일반 수도망 사업에 투자하기는커녕 병입 수돗물 판매에만 열을 올릴 것”이라며 “병입 수돗물 판매는 물 산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조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