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나를 불온이라 부르라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우수교양도서 선정에 부쳐

살아가기에 날이 갈수록 빠듯해지고 흉흉해지는 요즈음,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은 우스꽝스러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11월 4일에 선정해 발표한 우수교양도서 368권 중 한 권으로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우소꿈)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말로 느닷없었고 어처구니가 없었고 나중에는 재수마저 없었다. <우소꿈>이 대체 왜 이명박 정부의 문체부가 선정한 우수교양도서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기나긴 싸움 이야기를 책으로 꾸며 조합원들 대신 세상 밖으로 내보낸 필자들 중 한 명으로서 문체부와 국방부와 청와대가 저마다 벌이고 있는 엇박자 놀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어 나는 <우소꿈>이 문체부 선정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왜 기쁜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 말하고자 한다.

  문체부 선정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된 <우소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정말 참호 속에 쏙 박혀서 평생 삽질만 하는지 국방부는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인 책들 목록을 지난 여름에 발표해 많은 사람들을 웃겼다. 군대 개그로는 옛날 코미디인 <동작 그만> 이후로 가장 우스웠던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국방부를 시대착오적이라 비난했고, 자기네들이 무슨 연어인 줄 아는지 왜 시대를 자꾸 거슬러 올라가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조롱도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 서점들은 아예 ‘불온서적 마케팅’을 밀어붙여 국방부에 대놓고 엿을 먹였다. 덕분에 ‘불온서적’들이 10배나 더 팔려 나갔다고 한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선정하든 엿 바꿔 먹든 말든 아무런 말이 없던 청와대는? 민주당 양승조 의원의 말에 따르면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노엄 촘스키의 책들을 비롯한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들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염치도 없이 사들였다고 한다. 일본 만화책과 이문열의 소설책, 이명박 자서전 같은 책들도 사들였다는데 그건 제쳐두더라도, 도대체 청와대는 왜 국방부가 골라낸 ‘불온서적’을 사들인 것일까? 유행에 뒤처지기는 싫었을까? 아니면 ‘친북 좌파’들이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했을까? 군바리는 군바리고 민간인은 민간인일 뿐이라 생각했을까?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은 크게 세 부문으로 되어 있다. ‘반자본주의’, ‘반정부/반미’, ‘북한찬양’. 이 세 가지 잣대를 문체부가 선정한 우수교양도서 목록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사회과학 부문 우수교양도서인 <박노자의 만감일기> 목차를 보면 이런 꼭지들이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인가?’, ‘한국 자본주의 미래 비관’, ‘권위주위 사회엔 권위가 없다’, ‘KTX 여승무원들의 단식을 보며’. 자신이 쓴 책이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에 끼지 못해 무척 반성했다는 우석훈 교수의 책 <직선들의 대한민국>도 사회과학 부문 우수교양도서 목록에 올라 있다. 이 책은 이명박 정부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경제지상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다.


문학 부문 우수교양도서인 공선옥 작가의 <울지 마, 쌴타!>는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나라 밖으로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법무부는 지난 12일 경찰과 함께 합동집중단속을 펼쳐 마석가구공단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 100여 명을 연행해 갔다. 공선옥 작가의 책은 말하자면 ‘불법’을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국방부라면 당연히 ‘불온서적’으로 선정하고도 남을 이런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정부’적인 책들이 버젓이 문체부 우수교양도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문체부의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국가보안법 제 1조 1항)을 왜 규제하지 않는가? 청와대는 물대포까지 동원해 가며 촛불집회를 진압하면서 문체부에서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한 ‘반정부’적인 책들은 왜 가만히 놔두는가? 정말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고 국방부와 문체부와 청와대는 서로 모르쇠로만 일관하는 것일까? 아니면, 문체부가 밝힌 대로 ‘대학교수, 작가, 연구원 등 48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4단계에 걸쳐 심사’한 책들을, 문체부장관과 그 휘하에 있는 관리들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은 것일까? 국방부도, 청와대도 막상 ‘불온서적’이든 ‘우수교양도서’든 너무 바빠 하나도 읽지 않는 것일까?

이랜드 일반노조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지 마라

국방부와 청와대와 문체부가 벌이는 엇박자 놀음은 안주거리 삼아 얼마든지 보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우소꿈>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한 문체부와 그 문체부를 위에서 휘어잡고 있는 청와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지금껏 어떠한 태도를 드러내 왔나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 정책은 간단히 ‘인간의 소모품화’라고 말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계승한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이 계약 기간이 끝난 노동자들을 멋대로 해고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들고 일어서면 이명박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고 용역깡패와 구사대들과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 노동부는 비정규직 고용 시한을 4년 정도로 늘리겠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만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건만 정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고용 시한만 슬그머니 늘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문제가 터질 시기를 나중으로 미루려는 것이다.

이번에 사측과 잠정 합의를 한 이랜드일반노조를 보라. 얼마든지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합원들이 500여 일 동안이나 파업을 했다. 날짜로만 치면 국내 최장기 파업이라 한다. 이랜드 자본이 홈에버를 매각하기 전에 노조에 건 소송과 손배를 홈플러스 사측은 협상을 하면서 무기처럼 휘둘렀다. 결국 노조는 회사측과 합의를 하며 끝내 핵심 간부 10여 명을 복직시키지 못했다. 사측은 임금을 올려주고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500여 일 동안 자신과 가족들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운 노동자들의 상처가 아물 수는 없다. 그렇게나 오래 싸웠는데도 그들은 동료 10여 명이 끝끝내 내쫓기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지난 11월 1일에 있었던 이랜드 일반노조 파업 500일 문화제

그 500여 일 동안 정부는 무얼 했나? 악랄한 박성수 회장을 처벌하지도 않았다. 비정규직법을 개정하거나 비정규직을 없애려 하지도 않았다. 기업이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소모품 취급을 하는 동안 정부는 경제 성장과 수출 증대만 떠들어댔을 뿐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랜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가면 경찰은 늘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노동자들을 전경들로 꽁꽁 에워싸기만 했다. 구사대와 용역 깡패들이 노동자들을 두들겨 패도 경찰은 꼼짝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TV에 출연해 제삼자가 개입하지 말아야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어디 이랜드 뿐인가? 기륭전자를 보라. KTX를 보라. 코스콤을 보라. 강남 성모병원을 보라. 전국에 널린 투쟁 사업장들을 보라.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 정부다. 그렇게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

세상에, 그런데 바로 그 정부가, 그 문체부가, 그 청와대가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소꿈>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했다. 웃으면서 뺨 때리겠다는 것일까? 고용 시한을 4년으로 연장해 줄 거니까 이제는 노동자들에게 당당해도 되겠다는 심보일까? 이랜드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사나운 전경들 한 떼거리만 풀어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는 정부가 이제 와서 <우소꿈>을 우수교양도서니 뭐니 하는 것으로 선정하는 것은 이랜드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자 자기네들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들을 그토록 탄압했던 정부가 <우소꿈>을 치켜세워 주다니 이랜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치밀까? 이랜드 투쟁을 곁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이 정부의 우수교양도서 목록을 보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차라리 나를 불온이라 부르라

나는 <우소꿈>이 문체부 선정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몹시 달갑지 않다. 불쾌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일부러 나서서 우수하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소꿈>을 읽고 가슴 뭉클해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한 <우소꿈>은 먼저 투쟁의 길을 걸어간 선배 노동자들의 이야기로서 다른 노동자들에게 거듭 읽힐 것이다. 문체부가 정하는 ‘우수교양’의 기준이 ‘대학교수, 작가, 연구원 등 48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필자들이 정한 기준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필자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것을 써서 책으로 냈다. <우소꿈>은 언론통제와 사상통제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정부가 함부로 손 댈 만한 책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우소꿈>은 충분히 ‘불온서적’으로 채택될 조건을 갖추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자본의 논리를 뒤집어 엎으려 하는 내용이니 ‘반자본주의’적이고, 정부의 노동 정책이 예나 지금이나 미친 짓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니 ‘반정부’적이다. ‘북한 찬양’은 수구 어르신들이 하는 식으로 그냥 슬쩍 갖다 붙이기만 해도 될 것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 시대에 노조 활동이라니, 국론를 분열시키려 하는 빨갱이들이 아닌가!

정부에게 바란다. 생뚱맞게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하느니 뭐니 호들갑 떨지 말고 <우소꿈>에 차라리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달라. 괜히 이랜드 노동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지 말고 차라리 나를 불온이라 부르라. 일과 밥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당신네들 마음대로 이용하지 말라.

※ 이 글은 <우소꿈> 필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 없이 나 혼자서 썼다. 이 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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