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현장은 어디인가요”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늦은 밤, 어느 후배와의 전화 통화

부평 GM대우 천막 농성장에 취재 삼아 갔던 날이 마침 한 조합원의 생일이라서 나는 엉겁결에 생일 축하 술자리에 끼어들게 되었다. 술을 마시다가 결국 천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나는 해롱대는 정신으로 바닥에 누워 몇몇 사람들에게 손전화 문자를 보냈다. 늦은 밤에 문자질로 치근거리는 게 내 술버릇이라면 술버릇이었다. 다른 조합원들은 다 자고 있었다.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번호를 보니 방금 문자를 보낸 후배였다.

후배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다. ‘인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 인턴 기자가 정식 기자랑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후배는 오마이뉴스에 가끔 기사를 싣고 이삼만 원씩 원고료를 받는다. 아직은 대학생이지만 졸업 후에는 언론사에 들어가 기자 노릇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로 들려오는 후배의 끈적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 녀석이 술을 잔뜩 마셨다는 것을 알았다.

“선배, 선배는 왜 글을 그렇게 써요? 선배 글 읽을 때마다 힘들어 죽겠어.”

“뭐? 얌마,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가 이번에 쓴 거 있잖아. 선배 글은 항상 나를 힘들고 슬프게 만들어. 나도 현장에 가고 싶단 말이야. 노동자들 얘기 듣고 싶단 말야. 선배는 가고 싶은 현장 있으면 가잖아? 가서 얘기도 듣고 취재도 하잖아? 난 그렇게 못해. 난 수업도 들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단 말야. 형 때문에 오늘 술 엄청 마셨어. 그거 알아?”


며칠 전에 참세상에 올린 글(“재능교육, 청계광장, GM대우, 그리고 볶음밥”)을 읽은 모양이었다. 나는 홈플러스 상암점 마지막 문화제 뒤풀이 때 후배에게 술기운을 빌어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났다.

“너는 앞으로 뭐 할 거야? 무슨 글을 쓸 건데?”

그때 후배도 취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나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언론사에 들어가야 해요.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우리집은 내가 안 벌면 안 돼요. 나도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가면 내가 쓰고 싶은 글 못 쓸까봐 두려워요. 하지만 어떡해. 나도 토익 공부 진짜 하기 싫어. 한겨레든 어디든 기자 뽑을 때 요구하는 조건들이 너무 많아. 선배는 좋겠어요. 쓰고 싶은 글 실컷 쓰면서 살고.”

그랬다. 자기 마음 온전히 담아내는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라고 나는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고고한 글쟁이 시늉을 하며 살아가기에 이 시대의 밥벌이는 너무나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후배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했다.

“야, 나는 뭐 돈이 넘쳐서 이러고 사니? 내가 넉넉해서 돈 한 푼 안 되는 글 쓰는 줄 알아? 나도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런 대책이 없어. 너도 나처럼 살라는 거 아니야. 지금 너 잘 하고 있잖아? 졸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문제란 말야. 네 꿈이 꺾이지 않는 방향으로 너도 가야 할 거 아냐.”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시 이경옥 부위원장 옆으로 가서 술을 퍼먹었다. 그날 밤엔 나도 후배도 물처럼 술을 마셨다.

  지난 11월 14일에 있었던 홈플러스지부 상암점 마지막 문화제

GM대우 천막은 난로를 틀어 놓아 따뜻했다. 함께 술을 마시던 조합원 형님은 으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고, 후배는 전화 속에서 여전히 쿨쩍거리고 있었다.

“야, 왜 이렇게 울어? 나 지금 GM대우 천막인데, 너 우는 소리 때문에 형님들 다 깨겠다.”

“천막? 나도 천막 가고 싶어. 밖에 지금 되게 춥잖아? 그렇게 추운데 왜 바깥에서 천막 치고 자야 해? 왜 그래야 하는지 난 너무 슬퍼. 난 그런 걸 뉴스로 밖에 보지 못한단 말야. 난 왜 현장에 가지 못하고 현장을 뉴스로만 봐야 해? 너무 가슴이 아파. 나도 노동자들이랑 같이 술 먹고, 이야기 듣고 하면서 놀고 싶은데.....”

“오고 싶으면 오면 되잖아. 그만 좀 울어!”

“근데 시간이 없어. 핑계인 거 아는데, 정말 시간이 없다고. 그리고 현장에 다녀와서 막상 글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쓰겠어.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려 투쟁해야 하는지, 너무 가슴이 아파서 글을 쓸 수가 없어. 왜 그래야 해?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 때문에 가슴을 앓다가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시간만 보낸 적은 나도 있었다. 내 가슴이 현장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글쓰기고 뭐고 차라리 다 집어 치워 버릴까 하는 생각에 못 견디도록 시달렸었다. 술 처먹고 방황하던 이야기를 기다랗게 써서 참세상에 올리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글 속에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내게 이야기했다. 나 역시 참세상에 올라온 내 글을 보면서 꼴사납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건 내 이야기만이 아닌데. 나의 이야기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근데 이건 완전히 내 일기장이잖아?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가슴을 사금파리로 내리 긋는 듯한 아픔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이런저런 투쟁 사업장 조합원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전처럼 인상을 쓰며 잔을 홱 꺾어 대지도 않았다. 속에 있는 응어리 같은 것들을 힘겹게 토해 내듯 쓰던 글도 나는 어느새 차분히 얼개를 짜고 만듦새를 다듬으며 쓰고 있었다. 나는 노동자들의 아픔에 무덤덤해져 버린 것일까? 벌써 둔감해진 것일까? 그게 아니라 믿고 싶었다. 나는 내가 조금은 단단해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둔감해진 것과 단단해진 것의 차이는 등을 돌렸느냐 돌리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직은 내가 보고 듣는 것들에 등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후배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매일 밤 술을 마시며 허약해 빠진 내 마음을 탓하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일부러 강파른 목소리로 말했다.

“얌마, 나도 너 같은 시간이 있었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힘들어? 감당 못하겠어? 그러면 감당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글로 쓰라고! 네 마음속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걸 쓰란 말이야!”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글 쓰는 사람은 안 힘들까? 다 똑같다. 우리는 쉽게 노동자들이니 민중들이니 이야기하지만 사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많고도 많아서 싸잡아 뭉뚱그리기 힘들어. 그 사람들의 피맺힌 사연들 보면 가슴이 아픈 거 당연한 거 아냐? 글 쓰는 사람은 로보캅처럼 단단해서 그런 사연들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아? 아니야. 가슴이 아프고 슬픈 건 다 똑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거야.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은 아픔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중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게 차이점이야. 네가 정말로 글을 쓰고 싶다면 어떻게든 견뎌 내고 글을 써야 해. 네 손으로. 그런 게 바로 단단해진다는 거야.”

“못하겠단 말야. 으흐흑.”


나는 답답했다. 난롯불 때문에 술기운이 점점 머리로 올라와 마치 누가 내 귓가에서 징을 크게 한 번 치기라도 한 듯 머릿속이 지잉 하고 울렸다. 까닭 없이 성이 났다. 누운 채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도 그거 알아. 그런데 못 하겠어. 뉴스만 봐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현장에 나도 가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선배가 쓰는 글을 보면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야, 아까부터 현장 현장 하는데, 도대체 현장이 뭐야? 네가 말하는 현장은 대체 어디야? 어디가 현장이야? 노동자들이 천막 치고 한뎃잠 자면 현장이야? 현수막 걸고 파업 투쟁하면 현장이야? 기계 돌아가는 소리 들리면 현장이야? 용역 깡패들이랑 구사대가 뜨면 현장이야? 기자들이 몰려가는 곳이면 현장이야? 현장은 너랑 멀리 있는 것 같지? 아니야. 지금 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봐. 네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를 봐. 네 방에 있는 컴퓨터와 책상과 의자를 봐. 사람이 노동으로 만들어 낸 것들을 한 번 보라고. 네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노동으로 만들어진 거야. 컴퓨터며 카메라며 핸드폰이며 하는 것들 하나하나가 다 현장이란 말야! 너 라이터 하나를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 새워 본 적 있어? 이 라이터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했을까 생각하면서 잠 못 자 본 적 있어? 현장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인간의 노동이 흠뻑 깃들어 있는 모든 것들이 현장이야. 현장 못 가서 슬프다고 울 시간에 차라리 네가 갖고 다니는 라이터를 봐. 그리고 잠을 푹 자라고! 잠을 자야지 내일 또 학교에 가서 열심히 활동할 거 아냐! 알바 하며 돈 벌 거 아냐! 네가 생각하는 현장에는 시간이 되면 오면 돼. 나도 시간 되는 때만 가고 있어. 노동자들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현장에 시간 나는 대로 간다고 내 마음의 빚이 청산이 될까? 세끼 밥 다 챙겨 먹고 다니고 잠도 편한 곳에서 잔다는 그런 부채감이 현장에 많이 간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아. 부채감은 부채감대로 안고 가는 거야.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너 기륭전자에 취직할 거야? 나는 GM대우 형님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GM대우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부채감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오만한 거 아닐까?”

“.....”


한달음에 말을 쏟아낸 나는 거진 다 타 들어간 담배를 마지막으로 힘껏 빨아들이고 천막 밖으로 던져 버렸다. 후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나 어떻게 해야 할지.....뭘 해야 할지.....”

“술 먹고 고민하면 답이 나와? 그냥 자. 푹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 봐. 인생 뭐 있어? 일단 잠은 자야 살 거 아냐.”


후배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눈을 붙이지 못하고 천막 벽에 걸린 금속노조 조끼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말을 쉽게 했나? 그랬는지도 몰랐다. 얌마, 나라고 해서 너랑 다를 게 뭐가 있겠냐. 똑같은 이십 대끼리. 글 쓴다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내가 쓰는 글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거긴 한데......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내가 쓰는 글로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11월 28일 동인천역에서 있었던 비정규직 권리선언 선전전

며칠 후 다시 GM대우 천막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다. 동인천역 선전전을 마치고 인천 인권영화제에 조합원들과 함께 가서 GM대우 다큐멘터리 <맞짱>을 보고 온 날이었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 한강대교와 마포대교 투쟁을 오랜만에 다시 영상으로 본 조합원들은 천막 안에서 투쟁 뒷이야기들을 신나게 풀어 놓았다. 새벽 네 시가 넘자 다른 조합원들은 다 잠이 들었고 나와 이대우 지회장 단둘이 남아 술잔을 기울였다. 며칠 전에 어떤 후배랑 전화로 이러저러한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이대우 지회장에게 들려주었다. 이대우 지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잔인하셨네요.”

나도 “그러게요”라고 맞장구를 치고는 함께 웃었다. 그 후배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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