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몸살에 걸리다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감기 몸살 같은 시대에 감기 몸살에 걸렸다

아프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온몸이 불덩어리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몸이 전철을 타자마자 오소소 떨리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계속 망설였다. 학원에 전화를 하고 수업을 미룰까? 그러기엔 목요일부터 하루씩 있는 이런저런 일정들이 걸렸다. 지퍼를 맨 위까지 채우고 등 뒤에 달려있는 모자를 푹 썼다. 순식간에 온몸이 달아올랐고 뱃속은 석유라도 들이마신 듯 우루룩우루룩 보깨기 시작했다. 자꾸만 옆으로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전철 안에서 한 시간을 버텼다.

학원에 가서 애들을 앞에 앉혀 놓고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남자 아이 둘을 앉혀 놓고, “국어 공부란 무엇일까? 문제집만 잘 풀면 국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더운 물로 연방 입술을 축여 가며 세 시간을 떠들었다. 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 이번 주는 보강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집까지 가는 길이 막막했다.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밤거리로 나왔는데도 누가 뒷덜미에 얼음 덩어리를 갖다 댄 것처럼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열흘 가까이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금 몸이 이럴 때 결판을 짓지 않으면 연말까지 계속 끌려 다니게 될 것 같았다. 누구에게? 내가 틀어쥐고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게!

이상하게도 나는 몸이 아플수록 정신이 맑아지고는 했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한 상태가 되면 내가 그동안 속으로만 안달복달해 왔던 고민들이 마치 갓 닦은 유리처럼 깨끗하고 맑게 드러났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첫차를 잡아 타 남들 다 출근하는 한복판을 혼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때, 아침 찬바람이 서늘하게 볼과 목덜미를 핥고 지나갈 때, 내 속에 맑게 드러난 고민들은 마치 얼음보숭이를 와자작 깨물 때처럼 명쾌하게 부서져 버리고는 했고 나는 아무런 대책 없는 자신감에 들려 또 이후 몇 달간을 신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불에 달구어진 벽돌처럼 뜨끈뜨끈해진 온몸과 고량주 한 병을 단번에 들이킨 듯 어질어질한 머리가 갑자기 맹렬하게 담판을 지을 것을 요구했다. 도대체 뭘, 누구랑 담판을 지으라는 거야? 글 안 써지는 거? 글 안 써지는 게 한두 번이었나? 그냥 놔두면 알아서 풀릴 걸 왜 괜히 호들갑이지? 속이 너무 아파 담배를 피워 물 수도 없었다. 입안은 바짝바짝 타 들어 가 불을 뿜으라면 뿜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까? 나는 무엇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며칠 전 일들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기륭전자분회 후원 주점이 있는 날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가느라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용산 철도 웨딩홀에 도착했다. 바로 그저께까지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좋지 않아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점 입구로 가 보니 이미 안쪽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입구 부근에 자리를 깔아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 GM대우 비정규지회 조합원들과 마주쳐 나는 얼떨결에 소주를 한입 크게 마셨다. 박현상 조직부장이 내게 GM대우 비정규직 투쟁 영상 모음 DVD를 선뜻 안겨 주었다. 돈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니 박현상 조직부장은 활짝 웃으며 나중에 천막 오면 달라고 했다. 벌써부터 뱃속에서는 소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GM대우 홍동수 형님은 나를 보며 “왜 병학 씨는 집에서 가깝다는 우리 지회에서는 못 보고 다른 데 가면 보나 그래? 기륭에 와야지 보는 거야?” 하고는 껄껄 웃었다. 생선 가시가 걸린 듯 목구멍이 뜨끔했다. “애들 기말고사 때문에 시간이 좀......”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급히 마신 소주 탓만은 아니었다. 나는 DVD를 가방 속에 쟁여 놓고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북적북적 시끄러웠다. 연영석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고개를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다가 이경옥 전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과 이남신 전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도 함께 있었다. (12월 17일부터 사흘동안 홈플러스-테스코노동조합 간부선출선거가 있다고 하니 前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경옥이 누님은 나를 보자마자 “왜 토론회 안 왔어요?”라며 내 등을 짝 소리 나도록 내리쳤다. 나는 또 민망하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뱃속에 맥주를 들이붓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옆을 지나가길래 팔뚝을 얼른 낚아채고 인사를 했다. 민주노동당 장투사업장지원 활동가였다. 정답게 악수를 하는데 그 분이 내게 슬며시 뭔가를 쥐어 주었다. 펴 보니 주점 티켓이었다. “잘 먹어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기륭전자분회 후원 주점

저쪽에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모여 앉는 게 보였다. 저녁 촛불 문화제를 마치고 이제 온 모양이었다. 거기로 갔다. 조합원들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