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몸살에 걸리다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감기 몸살 같은 시대에 감기 몸살에 걸렸다

아프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온몸이 불덩어리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몸이 전철을 타자마자 오소소 떨리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계속 망설였다. 학원에 전화를 하고 수업을 미룰까? 그러기엔 목요일부터 하루씩 있는 이런저런 일정들이 걸렸다. 지퍼를 맨 위까지 채우고 등 뒤에 달려있는 모자를 푹 썼다. 순식간에 온몸이 달아올랐고 뱃속은 석유라도 들이마신 듯 우루룩우루룩 보깨기 시작했다. 자꾸만 옆으로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전철 안에서 한 시간을 버텼다.

학원에 가서 애들을 앞에 앉혀 놓고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남자 아이 둘을 앉혀 놓고, “국어 공부란 무엇일까? 문제집만 잘 풀면 국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더운 물로 연방 입술을 축여 가며 세 시간을 떠들었다. 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 이번 주는 보강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집까지 가는 길이 막막했다.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밤거리로 나왔는데도 누가 뒷덜미에 얼음 덩어리를 갖다 댄 것처럼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열흘 가까이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금 몸이 이럴 때 결판을 짓지 않으면 연말까지 계속 끌려 다니게 될 것 같았다. 누구에게? 내가 틀어쥐고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게!

이상하게도 나는 몸이 아플수록 정신이 맑아지고는 했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한 상태가 되면 내가 그동안 속으로만 안달복달해 왔던 고민들이 마치 갓 닦은 유리처럼 깨끗하고 맑게 드러났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첫차를 잡아 타 남들 다 출근하는 한복판을 혼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때, 아침 찬바람이 서늘하게 볼과 목덜미를 핥고 지나갈 때, 내 속에 맑게 드러난 고민들은 마치 얼음보숭이를 와자작 깨물 때처럼 명쾌하게 부서져 버리고는 했고 나는 아무런 대책 없는 자신감에 들려 또 이후 몇 달간을 신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불에 달구어진 벽돌처럼 뜨끈뜨끈해진 온몸과 고량주 한 병을 단번에 들이킨 듯 어질어질한 머리가 갑자기 맹렬하게 담판을 지을 것을 요구했다. 도대체 뭘, 누구랑 담판을 지으라는 거야? 글 안 써지는 거? 글 안 써지는 게 한두 번이었나? 그냥 놔두면 알아서 풀릴 걸 왜 괜히 호들갑이지? 속이 너무 아파 담배를 피워 물 수도 없었다. 입안은 바짝바짝 타 들어 가 불을 뿜으라면 뿜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까? 나는 무엇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며칠 전 일들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기륭전자분회 후원 주점이 있는 날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가느라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용산 철도 웨딩홀에 도착했다. 바로 그저께까지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좋지 않아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점 입구로 가 보니 이미 안쪽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입구 부근에 자리를 깔아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 GM대우 비정규지회 조합원들과 마주쳐 나는 얼떨결에 소주를 한입 크게 마셨다. 박현상 조직부장이 내게 GM대우 비정규직 투쟁 영상 모음 DVD를 선뜻 안겨 주었다. 돈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니 박현상 조직부장은 활짝 웃으며 나중에 천막 오면 달라고 했다. 벌써부터 뱃속에서는 소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GM대우 홍동수 형님은 나를 보며 “왜 병학 씨는 집에서 가깝다는 우리 지회에서는 못 보고 다른 데 가면 보나 그래? 기륭에 와야지 보는 거야?” 하고는 껄껄 웃었다. 생선 가시가 걸린 듯 목구멍이 뜨끔했다. “애들 기말고사 때문에 시간이 좀......”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급히 마신 소주 탓만은 아니었다. 나는 DVD를 가방 속에 쟁여 놓고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북적북적 시끄러웠다. 연영석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고개를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다가 이경옥 전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과 이남신 전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도 함께 있었다. (12월 17일부터 사흘동안 홈플러스-테스코노동조합 간부선출선거가 있다고 하니 前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경옥이 누님은 나를 보자마자 “왜 토론회 안 왔어요?”라며 내 등을 짝 소리 나도록 내리쳤다. 나는 또 민망하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뱃속에 맥주를 들이붓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옆을 지나가길래 팔뚝을 얼른 낚아채고 인사를 했다. 민주노동당 장투사업장지원 활동가였다. 정답게 악수를 하는데 그 분이 내게 슬며시 뭔가를 쥐어 주었다. 펴 보니 주점 티켓이었다. “잘 먹어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기륭전자분회 후원 주점

저쪽에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모여 앉는 게 보였다. 저녁 촛불 문화제를 마치고 이제 온 모양이었다. 거기로 갔다. 조합원들은 해바라기처럼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자신과 동갑내기라는 걸 끝까지 믿지 않던 김세영 조합원에게 나는 하는 수 없이 ‘민증을 까야’ 했고, 그동안 김정화 조합원이라고 알고 있던 분이 실은 박정화 조합원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았다. 잔이 쉴 새 없이 비워지고 끊임없이 채워졌다. 나는 슬그머니 아까 건네받은 주점 티켓을 꺼냈고, 곧이어 안주가 마구 날라져 왔다. 이영미 대표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왜 요새 병원에서는 못 보고 병원 밖에서만 봐요?”

순간 내 입은 조가비처럼 굳게 닫혀 버렸다.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고 자책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나는 내가 요 일주일 동안 한 줄이라도 쓴 글이 있었는지,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 실패한 적이라도 있는지 돌이켜 보았다. 그런 거 없었다. 웃는 내 얼굴 근육이 꼭 고무 가죽 같다고 느끼며 나는 잔을 비웠다.

바깥으로 나와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주방으로 갔다. 르포문학모임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누님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누님은 금세 안줏거리 몇 접시를 갖다 주었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내가 어느새 꽤나 취했다는 것을 알았고, 취한 만큼 뭔가 무모한 행동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방에 있는 사람들 몰래 접시에다 생굴을 두 주먹이나 퍼 담았다. 주방이 바쁜 틈을 타 접시를 들고 얼른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접시를 들고 강남성모병원 조합원들에게 가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낄낄 웃으며 소주를 마셨고 주점 티켓은 희한하게도 어디에선가 연거푸 튀어나왔다.

아는 사람들이 이쪽저쪽에 보여 나는 잔을 들고 열심히 자리를 옮겨 다녔다. 농지거리에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느닷없는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하며 나는 즐거이 잔을 비웠고, 머릿속은 점점 희끄무레해졌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 조합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가 너무 기륭만 와~ 하고 밀어주는 것 같지 않아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륭전자분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 배 아파서, 금속노조 소속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의 투쟁이 꼴사나워 보여서 나온 말은 결코 아니었다. 그도 분명 어딘가 소속된 비정규직 조합원이었다. 기륭 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 가는 투쟁 사업장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사업장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그 조합원이 한숨을 쉬며 기륭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나는 오래 전부터 속으로만 품고 있던 말을 조용히 꺼냈다.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요. 기륭이 만일 서울에 있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처럼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 줄 수 있었을까......”

나와 그 조합원은 굳이 말을 더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기륭전자분회에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기륭전자분회가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제발 다른 사업장에도 좀 몰려와 달라고 애걸복걸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동력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동력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탄 서울 지역 몇몇 장기 투쟁 사업장들 말고 전국 곳곳에 널리고 널린 다른 사업장에까지 흘러 넘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그 조합원과 나는 함께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기륭전자 구사옥에서 열렸던 촛불 문화제

‘기륭전자분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고 해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을 수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륭전자분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이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니,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비정규직 고용 기한을 4년으로 늘리고 최저임금법을 깎는 것을 머저리 국회의원들은 ‘개선’이라고 부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곧 천만을 넘을 것이다. 내년에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폭동이 벌어질지 민란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평소 같았으면 유치한 물음이라고 제쳐두었을 법한 물음을 나는 술기운을 빌어 나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왜 기륭 말고 다른 곳에는 기륭 만큼 사람들이 안 올까? 기륭 만큼 오래 싸우고 있는 사업장도 여기저기 참 많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대학생 후배들 집회 데리고 나가려고 ‘조직화’에 골몰하던 옛 시절이 생각났다. 역시나 유치한 질문일까? ‘네가 다른 집회에는 얼마나 많이 가봤다고 머릿수를 비교하고 있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사람들 마음 모아갈 수 있을 것 같니? 다른 사람들에게 네가 진심을 가지고 한 번이라도 다가가 봤어?’ 예전에 선배가 나한테 하던 말이었는지, 내가 후배들에게 하던 말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식의 논리, 진심만 있으면 다 통하게 돼 있다는 논리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해. 눈에 보이는, 손에 쥘 수 있는 구체적인 동력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이 사악한 시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야...... 이런저런 장기 투쟁 사업장 조합원들이 언젠가 이랜드 홈에버 상암점 천막농성장에 모여 서로 웃으며 나누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 제발 좀 안 좋은 기록들 경신하지 맙시다. 고공농성 며칠 째, 단식농성 며칠 째, 천막농성 며칠 째, 파업투쟁 며칠 째...... 이젠 기본적으로 세 자릿수 이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웃음) 삭발이나 단식 같은 건 웬만하면 하지 맙시다 우리.”

그 말이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면, 밥을 굶지 않으면, 천막 치고 노숙하지 않으면 아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기륭이든 어디든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럼 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지랄 같은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글을 쓰나? 글만 써서 되나? 나는 글이라도 잘 쓰나? 답 안 나오는 물음이 맵짠 돌풍처럼 또 다시 나를 휩싸고 들었다. 에라, 술이나 먹자.

결국 또 엄청 퍼마시고 말았다. “친구 안녕~!!”을 외치며 저쪽으로 멀어져 가는 강남성모병원 김세영 조합원을 바라보며 나는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용산 역으로 부랴부랴 뛰었다. 간신히 막차를 잡아 타고 집에 들어오니 열두 시가 넘어 있었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뉴스들을 읽었다. 최저임금법 개악, 평택 쌍용 자동차 강제 휴업 돌입, 무더기로 징계 당한 선생님들...... 짜증이 났다. 연예 오락 뉴스들을 읽었다. 김연아 모시려고 방송사들 경쟁,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음반, 누구와 누구는 몇 년 만에 이혼......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방긋 미소를 짓는 여배우들을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다가 컴퓨터를 껐다. 베개 있는 곳으로 기어가 죽은 듯 잠들었다.

다음날 점심 때쯤에 눈을 떴다. 수업은 없는 날이었다. 저녁 때 강남성모병원 화요 촛불 문화제에 꼭 가겠다고 간밤에 약속했던 게 떠올랐다. 컴퓨터를 켜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불러냈다. 하얀 화면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글이 내 속에서 쑥 하고 나와줄 것만 같았다. 뭘 쓰지? 대체 뭘 써야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결코 쓰지 못하는, 하지만 이 세상엔 꼭 필요한 그런 글을 내가 쓸 수는 없을까? 너무 개인적인 욕심인가? 차라리 나도 기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 기자는 되기 쉽나 어디?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만 죽이다가 결국 집을 나서야 하는 때가 되고 말았다. 컴퓨터 전원이 꺼질 때 들리는 휘융 하는 바람 소리가 꼭 요놈이 나를 보고 한숨을 쉬는 것 같이 들렸다.

강남성모병원에는 조금 일찍 도착했다. 본조인 보건의료노조와 병원측이 12월 20일까지 교섭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끝내 물어보지는 못했다.) 조합원들은 여전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쪽에 네 친구 왔다” 하는 소리를 들은 김세영 조합원이 웃으며 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간 촛불 문화제를 진행해 온 병원 앞마당은 온통 파헤쳐져 벌건 흙이 드러나 있었다. 병원 여기저기에 ‘사전 공지 없이 공사를 진행하는 점 사과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갑자기 웬 공사일까? 어이가 없었다. 촛불 문화제 무대는 하는 수 없이 병원 입구로 들어오는 수위실 쪽에 세워야 했다. ‘새 시대 예술연합’이라는 이름이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보였다. 이윽고 50여 명이 모여 앉은 채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강남성모병원에서 열린 비정규직 철폐 촛불 문화제

새 시대 예술연합에서 나온 사람들은 마술부터 시작해서 무용, 노래, 몸짓 등등 갖가지 공연들을 보여 주었다. 저녁 빛이 이울며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대며 웃어제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교섭이 과연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집중 교섭 기간이라 병원 안에도 밖에도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농성장은 없지만, 생뚱맞은 공사는 시작되었지만, 날씨는 점점 추워지지만, 겉으로는 웃어도 막상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웃었다. 허연 입김이 막 쏟아져 나오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호호 웃었다.

“노동자들이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더 힘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이런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삶이 괴롭니? 청계천에 가 봐. 거기 가서 열심히 산다는 것이 뭔지 한 번 보라고. 그럼 힘이 날 거야.” 선배들이 툭하면 내게 해 주었던 이 말도 나는 끔찍이 싫어했다. 노동자들의 삶, 인간의 삶은 내가 두 눈 멀뚱히 뜨고 거기에 두 발 내리박은 채 양분이나 빨아올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장에 가서 자극을 받고 돌아와 삶을 더 알차게 꾸려가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괜히 삐리하게 굴지 말고 내일부터 집회 꼬박꼬박 나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전부터 선배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분들, 청계천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왜 내가 지켜보고 힘을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분들의 삶은 오로지 내게 보여지기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저렇게 불쌍한 사람들도 아둥바둥 열심히 사는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이렇게 아름답게 결론지어야 한다는 건가? 아니다. 내 삶에 절실히 필요한 것을 내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힘 받으러 돌아다니다가는 자칫 청춘이 다 가 버린다. 우선 홀로 똑바로 설 수 있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내 삶을 위한 동력을 얻으려 노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연대 대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내 마음 속에는 어떤 따뜻한 감정이 그득하게 차올랐고, 나는 이 느낌이 뭘까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많이 와 주었구나 하는 안도감? 사람들이 아직도 웃음을 잃지 않았구나 하는 뿌듯함?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내 문제는 아직도 갓 허물을 벗은 뱀처럼 내 안에 징그럽게 똬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될 즈음 나는 병원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글을 썼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던 시절 나는 무턱대고 조합원들에게 말을 걸어 가며 대화를 받아 적고, 대자보에 적힌 성명서를 몽땅 수첩에 받아 적으며 아주 기다란 글 몇 편을 썼다. 막 시작하는 단계였던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에 내가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강남성모병원에 잘 가지 않게 되었을까? 다른 투쟁 사업장 돌아다니면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미행)’ 전국 순회를 쫓아 다니면서? 아니면 마구 술 들이부으면서? 방황하면서? (방황이란 또 뭘까?) 그럼 여기 말고 다른 곳에는 많이 갔나? 사람들 좀 많이 만났나? 얼굴 몇 번 보고 낯 익힌 조합원들이 많아져, 집회 있으면 여기저기 인사 다니기 바쁘다는 사실에 나는 우쭐해 했을까? 그럼 뭐해. 쓴 게 없는데. 지금 쓰고 있는 게 없는데. 어제 기륭 주점에서 봐. 왜 요새는 자주 안 오냐는 말만 실컷 들었잖아. 현장에 안 가니까 글이 안 나오지.....

대오 뒤에서 뻑뻑 담배만 피우다 보니 촛불 문화제가 끝났다. 어찌 되었든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힘차게 싸우고 있었다. ‘힘차게 싸운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그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투쟁은 이곳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계속될 것이었다. 나는 신용보증기금과 주택금융공사 후원 주점으로 간다는 조합원들을 뒤로 하고 오늘만은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오늘도 술을 마시면 뱃속에서 창자들이 “야, 이 미친놈아!”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것만 같았다.

방안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어제 오늘 겪은 일로 글 하나 쓸 수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술을 너무 마신 탓에 뇌세포가 다 결딴이 났나? 나는 인터넷을 뒤져 ‘알코올 중독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테스트를 해 보니 ‘치료가 필요한 중증 알코올 의존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놀랐다. 정말 이제부터라도 술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가 바로 어휘력인데 술 마시느라 어영부영 낱말들 다 까먹어 버리면 큰일이었다. 건강보다는 그게 더 걱정이 되어 더럭 겁이 났다. 그렇게 술을 처먹었으면서 이때껏 해 놓은 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술을 처먹어서 해 놓은 게 없는 건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정말 글쓰기일까? 딱히 재능이 없는데도 오기로 깔짝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길을 찾아야 할까? 열심히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처럼 나도 현장 기사를 발 빠르게 써서 올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그쪽으로 공부를 더 해야 할까?

누가 나에게 “너는 이러이러한 것에 소질이 있으니 거기에다 너의 모든 것을 걸도록 하라” 이렇게 지령이라도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있으면 스물 아홉인데 아직도 내 손에 확실하게 틀어쥐고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지금껏 썼던 글은 나 자신을 위하는 글도 아니었고 내가 현장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을 위하는 글도 아니었다. 글을 쓰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위해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무엇을 쓰나? 나는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일까? 죽도 밥도 아닌 글 가지고 낑낑대느니 차라리 악기를 배워 볼까? 노래 연습해서 공연 다닐까? 얼마나 연습해야 연영석 씨만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돈이나 벌어야 하나?

결국 나는 책상 밑에 처박혀 있던 술을 꺼내 늦은 새벽까지 마셨고, 해롱거리며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지청구만 잔뜩 먹었다. 세상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고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좋은 글만 쓸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은데. 술 취해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니 마치 뱃속에 있는 창자들이 다 녹아내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들만 보면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시는 어머니께 나는 편히 쉬시라고 하고는 내 손으로 휘뚜루 밥을 차려 먹었다. 학원에 출근해야 했다. 해장거리를 만들기도 귀찮아 고추참치에 밥을 비벼 대충 먹고는 옷을 꿰어 입고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는 멀쩡했다.

그때까지는 멀쩡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전철의 어느 자리에 앉아 있었고 몸은 여전히 불덩어리였으며 뱃속에서는 전경들이 콰직콰직 방패질을 하고 있었다. 차창 밖은 어두웠다. 나는 지금 헤매고 있을까? 헤매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을 거야.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못 가고 있으니 헤맨다고 하는 거겠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헤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뭘까? 결국 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것일까? 시작한 것도, 해 놓은 것도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수많은 현장들, 노동 운동이든 빈민 운동이든 무슨 운동이든 뭐든, 나보다 더 열심히 많이 일하지만 나보다 더 적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모든 곳이 현장이라면, 나는 현장 글쓰기를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그릇이 되나? 내가? 이런 내가?

전철에서 내렸다. 발에 차꼬라도 채워진 듯 좀처럼 잘 걸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개찰구까지 가는 계단을 올려다보니 숨이 턱 막혔다. 집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넉장거리로 뻗어 버렸다. 좀 누워 있자니 정신이 돌아왔다. 보깨던 속도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약을 먹기 위해서는 밥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했다. 장롱에서 군 제대하며 몰래 빼온 방상내피(흔히 말하는 깔깔이)를 꺼내 입었다. 으슬으슬 너무 추웠다. 밥 먹으며 TV 뉴스를 보는데 오세훈 서울 시장이 나왔다.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주변에 넓다란 녹지를 조성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청계천도 어차피 너희들이 과시하려고 조성한 거 아냐? 청와대가 소유하는 정원만 슬금슬금 넓어지겠군. 세운상가 상인들은 청계 상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 강제로 쫓겨나겠지? 진저리가 났다.

  물컵과 감기약과 귤

뭔가를 쓰고 싶어져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약을 먹고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겼다. 방상내피를 입고 있자니 땀이 밴다. 나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감기 몸살 같은 시대에 감기 몸살에 걸려 시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서럽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투쟁 일정은 많고, 내 몸뚱이는 하나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몸은 아프고, 그런데 또 어쩌다 보니 이런 기다란 글 하나를 쓰고 말았고...... 내가 쓰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글이어야 다른 사람이 읽으면서도 행복해 할 수 있을 텐데...... 행복이란 건 또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딱히 없지만, 이 몸살 기운을 긴 밤 자며 온몸에 푹 삭혀 내 것으로 만들고 내일 기운차게 일어날 수 있다면, 다시 밥 잘 먹고 책 잘 읽고 사람 잘 만나고 다니게 된다면, 나는 무언가 달라지게 될까?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있게 될까? 나는 헤매고 있소, 쑥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될까?

어느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열이 내린 건지 안 내린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쓰면서 좋아할 수 있는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아마 얼마 못 가 좌초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서른도 채 안 되었으니 무언가를 섣부르게 포기하지는 말기로 하자.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일까? 내년은 그것을 밝혀내는 해로 삼아야 할까? 입안이 바싹 말랐지만 속이 더칠까 두려워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시고 있다. 그만 쓰고 자야겠다. 일단 푹 자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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