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크리스마스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강남성모 100일맞이 투쟁 문화제에서

“형, 빼빼로 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11월 11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후배가 묻는 말에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빼빼로 데이? 정욕과 상술의 음흉한 결합이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세밑이 되고 크리스마스라는 서양 명절이 점점 다가오면서 나는 ‘진담’이라는 반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는 무슨 날일까?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아기 예수는 누굴까? 기독교와 천주교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나는 아기 예수가 대강 ‘그쪽’ 종교에서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일 것이라 헤아릴 뿐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날이어야 한다. 종교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내가 써 놓고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점은 이 시대의 크리스마스가 TV든 라디오든 인터넷이든 길거리 광고판이든 온갖 매체들을 통해 어떤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으며 또 사람들은 그러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자기네들끼리의 소문으로 끌어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라 말하면, 이 시대의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딱 한 번 불우이웃을 생각하면서 자기 양심에 잔뜩 끼어 있는 때를 슬슬 미는 시늉만 하는 날이고, 남자와 여자라는 일방적인 이성애 관계만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심어 주는 날이며, 사랑하는 사람과는 늘 즐겁게 지낼 수 있기 마련인데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괜히 더 설레는 가슴으로 왠지 더욱 낭만적인 사랑(낭만적인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 와인 한 잔과 장미꽃? 결국 돈?)을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날이다. 결국은 조미료다. 이 시대의 사랑이란 그럴 듯하게 생긴 젊은 남녀에게만 온통 몰려 있다는 듯 장사꾼들은 연인들에게 무엇 하나 더 팔지 못해 안달하면서 ‘크리스마스엔 무엇 무엇을......’이라는 주문을 속삭이며 12월 25일이라는 하루가 뭔가 다른 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이라고 주입한다. 국을 끓일 때 다시다를 넣듯 장사꾼들은 25일이라는 날짜에 크리스마스라는 조미료를 솔솔 뿌려 가며 환상을 심는다. 종교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다.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 마땅한 시간들이 몽땅 성인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돌려지고, 이미지는 끝없이 불어나는 소문이 되며, 마지막은 결국 ‘소비’로 끝난다. 속고 있는 사람들 너무나 많다.

  값비싼 크리스마스 상품들

12월 24일, 강남성모병원 100일맞이 투쟁 문화제에 가서 친한 사람들 몇몇과 인사를 하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들 대뜸 똑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다. “이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왜 여기 있을까?” “오늘 데이트 안 하고 뭐해?” “내년에는 나도 꼭 애인이랑 놀러 갈 거야!”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진담 반쪽에는 화가 나고, 나머지 농담 반쪽에는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종교와 인간에 대해 하루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도 좋을(평소에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에다 언론과 입소문이 덧씌운 질퍽한 이미지들이 농담조차 그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인 만남’을 강요하는 그 거짓 이미지들에 난 진저리가 난다. 서양 명절에 굳이 신경 써야 되겠느냐는 둘째 문제고, 어차피 크리스마스라는 이미지도 세밑이라는 붕 뜬 분위기가 북돋아 주지 않는다면 이만큼 힘을 떨칠 수도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6월이나 7월쯤 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질펀한 분위기가 날까? 왜 하필이면 서양에서 들여 온 명절에 온 나라가 법석을 떨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할 말이 아주 많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나는 강남성모병원의 100일맞이 투쟁 문화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시작했으니.

  100일맞이 투쟁 문화제에 모여든 사람들

저녁 일곱 시 조금 넘어 강남성모병원에 다다랐다. 병원 입구 수위실 쪽에 있는 공터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림 잡아도 100여 명은 돼 보였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니 ‘100일떡’이라고 새하얀 백설기 한 모를 선뜻 안겨 주었다. 나는 냠냠 맛나게 떡을 베어먹었다. 조합원들은 떡집에 떡을 주문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9월 17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병원 행정동 앞에서 처음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12월 25일이면 꼭 100일이 된다. 그동안 천막 농성장이 몇 번이나 침탈 당했는지, 로비 농성장은 또 몇 번이나 박살이 났는지 하도 많이 당해서 이제는 셀 수도 없다.

어느덧 사회자가 나와 문화제를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사회자 말을 들어보니 지금 병원 로비에서는 병원 측 성직자들이 따로 성탄 미사를 올리고 있단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나는 사진기를 챙겨 들고 살짝 병원 로비로 들어가 보았다.

병원 입구마다 보안업체 직원들이 두 눈을 부라리며 장승처럼 서 있었다. 뭘 보냐고 쏘아붙여 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로비 쪽으로 가는 복도로 들어가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보안업체 직원들 투성이였다. 눈을 돌리는 곳곳에 옅은 분홍색 정장을 입은 보안업체 직원들이 마치 CCTV처럼 붙박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보안업체 직원들 말고도 아예 ‘MI-SUNG SECURITY’라는 글자가 새겨진 시커먼 점퍼를 입고 어깨를 쫙 벌린 채 서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보안업체 직원들 사이를 지나 로비에 이르니 예전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로비 농성을 하던 바로 그 자리에 커다란 연단이 세워져 있었고, 멋지게 차려입은 웬 어르신 한 분이 미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 넓은 로비가 미사를 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링거 병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사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뭐라 중얼거리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열기를 내뿜고 있는지 로비는 온풍기를 세게 틀어 놓은 것처럼 후끈했다.

  병원 로비에서 미사를 보는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환자가 어서 낫기를? 가족이 건강하기를? 하는 일마다 잘 되기를?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 말고 다른 이들까지 걱정해 주며 기도하는 사람은 없을까? 지금 바깥에서는 멀쩡한 노동자들이 찬바람 맞아 가며 우리도 살아 보겠노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이 따뜻한 안쪽에서는 성가대까지 불러 놓고 병원 측 성직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껏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느님은 밝고 따뜻하고 깨끗하고 널찍한 곳에만 내려오신다고 믿는 저 번들거리는 얼굴의 성직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든 기도 몇 번으로 얼마든지 홀가분해질 수 있는 그들이야말로 흉측한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라는 완벽한 존재 밑에서 종 노릇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라 비정규직 노동자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일까?

몰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보안업체 직원들이 서슬 푸르게 옆에서 자꾸 얼쩡거리는 탓에 나는 지레 겁 먹고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아는 사람과 얼마 후 다시 들어와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몇 장 찍어도 아무 말 않던 보안업체 직원들이 내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니 어깨를 툭툭 치며 가볍게 제지했다. 나는 웃으며 “미사가 참 멋있어서요. 이제 안 찍을게요”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나와 함께 들어갔던 사람도 사진을 찍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시비를 걸며 혹시 노조에서 나온 거 아니냐고 물었단다.)

밖으로 나오니 이영미 조합원이 나와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아까 인사를 하니 “동상! 왔나?”하면서 밝게 웃던 이영미 조합원의 목소리에 차츰 물기가 묻어났다. 조금씩 울먹이던 목소리는 어느새 강남성모병원을 집어삼킬 듯 드높아졌고, 어두운 밤하늘 위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우리는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있는지를 부르짖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지회 이영미 조합원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벼랑 끝에서 시작한 투쟁, 더 끝으로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까지 자랑스럽게 싸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라 기억될 수 있도록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갖가지 공연들이 이어졌다. 사회당 최광은 대표가 나와서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고 연세대 학생 모임 ‘살맛’이 발랄한 몸짓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용보증기금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투쟁 위원회 조영태 단장은 통기타를 들고 나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 ‘사노라면’을 불렀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신용보증기금 해복투 조영태 단장과 강남성모 조합원들

공무원 연금관리공단 비정규직 조합원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나는 처음 듣는 투쟁 사업장이었는데 그 조합원은 지난 1년간 벌써 두 번이나 해고 당한 ‘2관왕’이라고 했다.

“매주 화요일에 여기 올 때마다 저는 힘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부당한 것에 맞서 싸우는 일이 비참한 게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이니까, 팔려 다니기 싫으니까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저 안쪽 따스한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렇게 추운 길바닥에까지 나와서 싸워야 하는 게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마지막 공연으로 김성만 씨가 나왔다. 언제 봐도 정겨운 얼굴과 언제 들어도 구수한 목소리가 반가웠다. 강남성모병원의 신부님들을 비웃는 ‘마이신’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왠지 새 노래 같아서 얼른 가사를 받아 적었다. 제목을 ‘My 神’으로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빠른 노래라 전부 받아 적지도 못했다. 틀린 곳도 있을 것이다.

신부님 신부님 마이신 좀 드세요
썩은 내가 풀풀 나네요
까라마이신 구라마이신
마이신 좀 드세요

신부님 신부님 마이신이 좋나요
기도보다 약발이 좋나요
깡패마이신 도둑놈마이신
사랑보다 마이신이 좋나요

신부님 신부님 부자는 천국에 못 가죠
부자인 신부님은 괜찮은가요


문화제 공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촛불을 켜 든 채 우르르 일어섰다. 병원을 한 바퀴 돌면서 행진을 한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앞장을 서고 다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그 뒤를 따라갔다. 촛불과 피켓과 구호가 뒤섞여 넘실대는 행진이 시작되었다.

  촛불을 든 채 행진하고 있는 사람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호화판 새 병원에 비정규직 웬 말이냐!”
“불법파견 비정규직 강남성모 회개하라!”


  도로를 향해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조합원들

인도를 따라 병원 바깥쪽 길을 한 바퀴 돌고 사람들은 다시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이 나와서 발언을 하고는 다 같이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부르면서 집회를 마무리했다. 집회를 끝내기 전에 사회자가 병원 건물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힐끗 바라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

“저 현수막에 이렇게 써 있죠? ‘강남성모병원의 역사를 접고 서울성모병원에서 최첨단으로 모시겠습니다’. 저 말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네요. ‘비정규직 해고의 역사를 접고 서울성모병원에서 정규직으로 모시겠습니다’. 글자 수도 맞고, 좋네요.”

강남성모병원 옆에 막 공사를 끝낸 새 병원이 있다. 머지않아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그 병원의 이름이 바로 서울성모병원이라고 한다. 직원을 전부 다 비정규직으로 채워 넣을 것이라고 이미 공고가 났다. 이름을 무엇으로 바꾸든, 시설을 최첨단으로 바꾸든 말든, 병원 측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쓰다가 녹슬면 버리면 되는 메스나 핀셋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조합원들과 친구들

문화제가 끝나니 사람들은 뿔뿔이 가 버렸고, 서울대 학생들과 다른 몇몇 사람들이 남아 조합원들과 함께 병동 순회를 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전에 강남성모병원에 왔을 때 조합원들과 병동 순회를 함께 다녀 본 적이 있다. 병동이 있는 10층부터 2층까지(3층은 중환자 병동이라서 조합원들이 못 들어간다고 했다) 여덟 층을 훑어 내려오면서 소식지도 돌리고 가까운 직원들과 안부도 나누며 지금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는, 조합원들이 매일 밤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치르는 일이었다. 물론 조합원들은 병동 순회를 하는 내내 무전기를 든 보안업체 직원을 뒤꽁무니에 붙이고 다녀야 했다.

조합원들은 함께 온 사람들이 많으니 두 동아리로 나누어 순회를 하기로 했다. 나는 6층부터 2층까지를 맡은 동아리 틈에 끼어 함께 돌아다녔다. 층마다 병동 한가운데에는 간호사들이 앉아 업무를 보는 자리가 있었고, 조합원들은 그곳에서 간호사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며 내일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100일째 되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다. 피켓을 준비해 온 서울대 학생들은 조합원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간호사들에게 잘 보이는 쪽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대학생들

병실 문은 방마다 활짝활짝 열려 있었고 환자들은 누워 TV를 보거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링거 병이 여기저기 호스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꼭 나무덩굴이 잔뜩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환자복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밤마다 시끄러워 죽겠어. 뭐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 좀 자제해 주면 안될까? 나는 댁들이 어리석은 것 같아. 가만히 있으면 병원에서 또 사람 구할 거 아냐. 그때까지 기다리면 될 거 가지고......”

한 조합원이 가서 뭐라고 말을 붙여 보다가 그 환자가 등을 돌려 유유히 저쪽으로 가 버리자 멋쩍은 듯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떠오르는 몇 장면들이 있었다. 종로 세운상가 건물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현수막, ‘세운상가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집회 시위 반대한다!’ 기륭전자 구사옥 저녁 집회 때 어떤 할아버지가 대오 뒤쪽에서 길길이 날뛰며 하시던 말씀, “늬들도 여기서 살아 봐라!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너희들은 여기서 살지 않으니 몰라! 왜 여기서 이 지랄들이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가 집회를 여는 혜화동 주택가에 버젓이 걸려 있는 현수막, ‘주민은 열 받는다, 집회 허가하지 말라’. 그리고 온 세상에 평화만이 가득 깃들어 있는 듯 조용하게 병원 로비에서 미사를 보던 많은 사람들.

오해와 단절. 자신의 삶과 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하나로 이어질 리 없다는 생각들. 저쪽으로 멀어져 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진부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래야 할까? 아직도 이래야 할까?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이곳은 환자들이 편안히 쉬어야 하는 병원이고, 몸짓 공연을 할 때 트는 음악이든 노래패가 부르는 노래든 환자들에게는 똑같이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 소음 때문에 정말로 환자들의 몸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게 과연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 곰곰이 따져 보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울까? 아니면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보지 못한 조합원들 탓일까? 아니면 고상하고 근엄해 보이는 병원 측 성직자들보다 한낱 ‘사회부적응자’에 지나지 않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환자들에게는 더 만만해 보이는 것일까?

촛불 문화제 할 때마다 조합원들에게 커피 한 잔씩 타서 건네 주는 환자들도 많다고 했고, 싸움 어떻게 되고 있냐며 볼 때마다 물어봐 주는 환자들도 많다고 했건만, 순간 발끈한 나는 불티처럼 어지럽게 춤추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애 썼다. 이런 환자도 있으면 저런 환자도 있는 것이다. 시끄러우니까 시끄럽다고 한 것이다. 차분히 설명을 하면 그 환자도 지금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조합원들의 삶이 찌그러진 깡통처럼 보기 싫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자기 귀가 조금 불편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조합원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못된 힘은 다른 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아니,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조합원들은 하루하루 거르지 않고 병동을 순회하며 소식지도 돌리고 할 말도 하고 있다. 보안업체 직원이 따라붙든 말든 조합원들이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해 내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나머지는 강남성모병원 여기저기에 그림으로 조각으로 동상으로 자리하고 계신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복도를 걷던 홍희자 조합원이 어느 간호보조 노동자를 만나 손을 맞잡고 반가운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뒤에서 쭐레쭐레 따라오던 보안업체 직원이 어느 틈에 수첩을 꺼내 들고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적는 것일까? 보안업체 직원의 몸 속에도 분명 좋은 때를 만나 숨 쉬고 있는 청춘이 있을 것이다. 그 청춘이 안쓰러웠다. 한 청년의 청춘을 한낱 염탐질이나 하도록 탕진하게 만들고 있는 사악한 힘은 대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을까?

순회를 마치고 로비에 다다르니 열 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 순회를 먼저 끝낸 조합원들은 로비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성모병원에 수여했다는 표창장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동갑내기 김세영 조합원이 걸어왔다. 나는 김세영 조합원을 붙들고 잠깐만 인터뷰 좀 해 달라고 했다.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세영 조합원은 커피를 홀짝였고 나는 수첩과 펜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기분이 어때요?”

“나이 서른이 되면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할 수 있게 될 줄 알았어요. 모든 걸 초월한 성인(聖人)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웃음) 그게 아니더라구요. 서른이 되면 흔히 말하듯 사회적으로 좀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웬 걸? 내년이면 스물 아홉이고 내후년이면 서른인데..... 제가 나이를 너무 도식적으로 봤을 수도 있어요.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서른이면 그런 패턴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들 많이 그러잖아요. 근데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도 나름대로 고민과 사정이 다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에 맞는 삶이란 없는 것 같아요. 아까 문화제 때 ‘사노라면’을 불렀잖아요. 그 노래 들으니 정말 가슴 쫙 펴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20일까지 병원 측과 교섭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 교섭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지금까지는 계속 실무교섭을 했구요. 26일에 본교섭을 해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들의 문제가 해결될 확률은..... (잠시 침묵)”

“그리 높지 않은가요?”

“글쎄요. 굉장히 높지 않아요. (웃음)”

“근데 본교섭은 뭐고 실무교섭은 뭔가요?”

“본교섭 들어가기 전에 실무자들끼리 하는 게 있대요. 본교섭은 실무교섭 때 다 정한 것을 가지고 도장만 찍는 식이구요. 아미 26일이 되면 병원 측에서는 도장부터 찍자고 나설 것 같은데.....”

“교섭은 그럼 병원 측이랑 누가 하는 건가요?”

“강남성모병원 정규직 노조와 병원 측이 해요. 일종의 대리 교섭이죠.”

“정규직 노조 뒤에 본조인 보건의료노조가 있는 거구요?”

“네. 그렇죠.”

“정규직 노조에서는 교섭 끝나고 나면 교섭 내용에 대해 그때그때 이야기해 주나요?”

“끝나면 이야기해 주긴 해 줘요...... (이 부분에서 김세영 조합원은 많은 말을 쏟아 내었는데 바깥으로 내보내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투쟁 사업장 어디를 다녀도 정규직 노조랑 비정규직 노조가 사이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정규직 노조를 대놓고 꼴통이니 준 어용이니 부르는 비정규직 노조도 있고…… 이런저런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인터뷰 하다 보면 대부분 정규직 노조 이야기를 되게 조심스럽게 꺼내더라구요.”

“비정규직 노조를 생각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요. 비정규직의 고용이 점점 안정을 잃게 되면 정규직 일자리도 따라서 위험해지게 되는 건데, 자기 자리만 지키기 위한 고민만 하다 보면 움츠러들게 되는 거죠.”

  조합원들이 선물 받은 '투쟁 승리' 케이크

“어느덧 100일이 되었는데 기분이 어때요? 연애할 때 100일 넘어가 본 적 있어요?”

“있죠. (웃음) 연애할 때도 안 세던 날짜를 투쟁하면서 세게 되네......(웃음) 100일 오는 게 참 쉽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조합원들 여덟 명이 함께 있으면 참 즐거워요. (웃음) 여덟 명이 있으면 서로 마음도 잘 맞고..... 원래 다른 곳에 연대를 가도 두세 명씩 가지 여덟 명이 다 갈 수는 없거든요. 농성장을 지켜야 하니까. 근데 용역 깡패들이 천막 철거해 버리면 저희도 지킬 게 없으니까 여덟 명이 다 한꺼번에 연대를 가요. 그러면 참 재밌어요. 버스 같이 타고 가면 꼭 소풍 가는 거 같고…… (웃음)”

“병원의 무엇이 가장 싫어요?”

“음...... 너무 뻔뻔해요. 막말을 서슴지 않고 하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복직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느니,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안 좋은 말이 나온다느니..... 아니, 누가 관리자 동원해서 우리들 치라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관리자들과 우리들 이간질하고..... 복직할 의사가 없으면 우리가 왜 투쟁해? (웃음) 그리고 보안업체 애들 이용해 먹는 거. 우리 감시하고 농성장 철거해 가고 하는 식으로 보안업체 애들 일 시켜 먹으니까, 보안업체 직원들이 진짜 병원 일 열심히 한다고 병원에서는 떠받들어 주는 거예요. 어차피 하청업체 직원인 건 우리랑 똑같은데. 알고 보면 다 속여 먹는 거잖아요.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새 병원 열면 보안업체가 바뀐다는 소문이 있으니 업체는 더 아부를 떨겠죠. (로비 한 구석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안업체 직원을 가리키며) 저 친구들 사회 생활에서 장말 옳지 않은 경험을 하는 거 같아요. 나중에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고 뭔가를 깨닫게 된다면 모르겠는데, 자기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다른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아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 박병학 씨 인터뷰할 기회를 제게 주시면 좋겠는데..... (웃음) 넘어야 하는 산이 많아요. 병원과의 싸움, 우리들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와의 관계도 있고..... 하지만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잘 헤쳐 나가야죠. 매 순간마다 실패든 성공이든 잘 파악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반영하고, 그러다 보면 더디 가더라도 옳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복직을 못하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보안업체 직원들처럼 자신이 노동자인 것을 모르고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가치를 알고 자기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되면 좋겠죠.”


어느새 열한 시였다. 나는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차, 김세영 조합원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고속터미널 역으로 걸어가는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케이크 상자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인가 보았다. 안녕, 크리스마스. 가난한 이들의 어깨 위에 한 번도 내려앉은 적 없는 서양 명절이여, 안녕. 불행한 이들을 위해 십자기 위에서 쓸쓸하게 죽어 간 베들레헴의 혁명가가 동양에 외따로 떨어진 조그만 나라에서 자신의 생일을 해마다 요란뻑적지근하게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할까? 사는 게 워낙 힘들고 팍팍하니 세밑 하루 정도는 서양 명절의 상징성을 빌려와 덩달아 붕 뜬 마음으로 즐거워해도 좋은 것일까?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 먹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지 않으면 25일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이 될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크리스마스에서 자본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종교적인 상징이 남겠지. 아니, 그 상징도 이미 자본이 다 끌어안았어. 병원 로비에서 미사를 올리던 기름진 성직자들을 봐. 소박한 신자들의 마음을 녹차 티백처럼 거듭 우려먹는 성직자들...... 크리스마스에서 자본을 뺀다면 남는 것은 가난한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는 따스한 체온이겠지. 돈 한 푼 없이도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따듯한 체온이야말로 십자가 위에서 끝 간 데 없이 외로웠을 그 베들레헴의 혁명가가 그토록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안녕, 크리스마스. 돈 많은 자들에게 일회용 주사기 같은 대접을 받는 이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다시는 이 땅을 찾아오지 마라. 예수의 이미지를 팔아먹으며 자신의 배를 불리는 나쁜 족속들이 죄다 없어질 때까지 다시는 이 땅을 찾아오지 마라. 나는 비록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억눌린 자들 사라지고 억누르는 자들 없어지는 날이 정말 온다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기도를 중얼중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강남성모 비정규직 투쟁 100일맞이 크리스마스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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