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송년 집회

12월 30일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조합의 송년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기륭전자분회의 송년 집회도 같은 날 잡혀 있는 탓인지 하이텍 송년 집회는 내내 단출한 분위기였다. 아마 다들 기륭전자 신사옥으로 몰려갔을 것이다. 지독한 감기 몸살 때문에 코로 숨쉬는 것조차 힘들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하이텍 송년 집회에 가기로 했었다. 어차피 기륭전자에는 내가 가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줄 것이므로.

벽에 기대기만 해도, 전철 손잡이를 부여잡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열이 올랐다. 눈과 코만 남겨두고 온몸을 꽁꽁 싸맸다. 취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누가 옆에서 훅 불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다. 길바닥에 앉아 하이텍 지회장의 발언을 들으면서도, 이화여대 몸짓패 ‘투혼’의 공연을 보면서도 나는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얼음장 같은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자니 순식간에 온몸이 펄펄 끓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이 “오늘 집회 구호 뒷구호가 뭐예요?”라고 물어 보았을 때도 대체 뒷구호가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회가 끝났다. 연방 흘러나오는 콧물을 훔치느라 코밑이 하얗게 헐었다. 하이텍 공장까지 행진을 한다고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도로로 나가 대오 뒤쪽에 슬쩍 끼어들었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니 마치 암모니아를 들이마시는 듯 콧속이 아렸다.

  공장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하이텍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

삼십 분쯤 걸어 공장에 들어가 정리 집회를 했다. 식당에 먹을 거리가 잔뜩 준비돼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하나 둘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묵과 쇠고기 수육과 떡과 과일이 날라져 왔다. 막걸리도 나왔지만 몸이 고장난 나는 한 잔도 마실 수 없었다. 사회자가 앞으로 나와 연대 단위들을 소개했고, 미리 준비해 둔 재미난 행사들을 진행했다. 자리에 앉아 있자니 또다시 열이 뻗쳐 올랐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나는 아까 도로를 행진하던 조합원들을 떠올렸다.

춥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차갑던 바람에 숨을 헐떡여 가며, 엉금엉금 기는 듯 도로를 행진하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저 앞에서는 하이텍 지회장이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른 연대 단위들도 비슷한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조 사수하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희끄무레한 머릿속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 저런 진부한 구호들 밖에는 외치지 못할까? 왜 무조건 투쟁 이야기일까? 다른 말은 할 줄 모르나? 추우면 춥다고, 힘들면 쉬고 싶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왜 말을 하지 않을까?

한 후배 녀석의 말도 떠올랐다. 학교에 영화 감독 한 명이 강연을 왔단다. 기륭전자 구사옥에서 집회가 열리던 시절에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그 영화 감독은 기륭전자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상영한 영상 이야기를 했다. 아마 ‘민중의소리’나 ‘참세상’에서 만든 영상들을 짜깁기한 것이었을 텐데, 그 영화 감독은 더 많은 사람들을 기륭전자 투쟁에 참여하도록 만들려면 기륭전자분회가 문화적인 부분에서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집회에서 상영한 영상이 저질이었다는 말 같았다. 후배는 맥주를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허구한 날 투쟁 일변도로 나가니까 사람들이 거부감 느끼는 거잖아요. 왜 좀 더 재미있게 못하죠? 투쟁도 좋지만 현실도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발끈한 나는 목소리를 높여 후배에게 쏘아붙였다. “투쟁에 오는 사람들의 현실만 현실이고, 노동자들의 현실은 현실이 아니니? 왜 집회를 재미없게 하느냐고 묻기 전에 노동자들이 집회를 그런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집회 재미있게 하면 좋지. 지금도 이런저런 집회에서는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색소폰도 불고 연극 공연도 하고 그래. 너는 기륭전자 집회 한 번도 안 가봤을 테니 잘 모르겠지만, 기륭전자 집회에서도 요새는 재미난 행사들 많이 하는 편이야. 근데 너 기륭전자 노조가 몇 년째 싸우고 있는 줄 알아? (후배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래 싸워도 사측의 반응은 변한 게 없어. 노동자들 많이 힘들 거야. 악밖에는 남은 게 없겠지. 그런 상황에서 집회를 열면 분위기가 어떨까? 누구는 재미있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 있나? 근데 그 재미라는 건 또 뭐야? 단순히 눈에 보이는 집회 현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집회가 네가 말하듯 ‘재미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만 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지. 안 그래?”

저 앞에서 하이텍 지회장은 거듭 팔뚝질을 해 가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끝까지 해 보자!” 말을 찾아 주어야 했다.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잃어 버리고 만 말을 찾아 주어야 했다. “추워 죽겠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노동자들은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배고파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승리하겠습니다!”, “여행 가고 싶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노동자들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너무 많은 말을 잃어 버렸다.

왜 투쟁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느냐고? 투쟁이 아니면 노동자들의 삶은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하이텍 투쟁은 이제 8년째로 접어든다. 기륭전자분회는 머지않아 투쟁 1300일째를 맞는다. ‘자본가’라고 불리는 사악한 무리들은 여전히 노조를 박살 낼 궁리밖에 하지 않는다. 투쟁을 하지 않으면, 맞서 싸우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권리는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말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말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가누기 위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는 행진 대오 저 앞에서 소리치고 있는 하이텍 지회장을 멀거니 건너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먹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등진 채 노동자들은 투쟁을 외치고 복직을 부르짖고 있었다.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빼앗겨 버린 노동자들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었다. 대중성을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의 ‘재미없는’ 집회 진행을 비웃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이들 아닌가! 그들은 ‘재미있는’ 집회만을 바랄 뿐 노동자들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누가 노동자들의 말을 빼앗아 갔는지 그들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오로지 투쟁과 복직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속마음이 어떤지 그들은 알려 하지 않는다.

막걸리가 돌려지고 사람들은 조금씩 취해 갔다. 나는 감기에 좋다는 귤을 두어 개 까먹었지만 가뜩이나 뉘엿거리던 속만 더치고 말았다. 이 상태로 술을 마시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더럭 겁을 먹은 나는 막걸리에 입도 대지 않았다. 하이텍 지회장이 선고 공판에서 결국 2년 형량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집행유예 몇 년이 포함된 형량인 듯한데 자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도 할 말을 잃었는데 하이텍 지회장은 오죽할까. 조합원들은 또 오죽할까.

땅따먹기 하듯 자본가들이 야금야금 빼앗아 먹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뿐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말도 빼앗기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까무룩 더 가라앉아 갔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멍하니 앉아 무언가 보이지도 않는 것에 시선을 대충 박아 둔 채 나는 뒤숭숭해져만 가는 머릿속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려 애썼다.

이런저런 집회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만나면 갖가지 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노동자들. 정규직 노조가 꼴통이라 속상해 죽겠다고 불평하고, 왕년에는 문학 소녀였다고 자랑하고, 군대 보낸 아들을 걱정하고, 천막에 올 때마다 밤참을 먹으니 자꾸 살찐다고 푸념하고, 투쟁 끝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그렇게 사연 많은 노동자들이 집회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오직 투쟁만을 외칠 수밖에 없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생존권과 의식주와 일할 권리와 매 맞지 않을 권리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의 삶이 완전히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고 말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기본적인 조건을 모조리 다 끌어안고 사느라 그것이 기본적인지도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직 한 곬으로 기본적인 조건을 부르짖는 노동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이다. 어쩌면 자본가들의 몰상식보다 더 나쁜 것인지도 모른다.

으스스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들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웃으며 즐겁게 재깔거리고 있었다. 같은 입장인 노동자들끼리 모였을 때 피어나는 말들이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번 내뱉으면 허공으로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잊혀지는 것이 말이지만, 하고 싶은 말을 죄다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말이란 너무나 흔해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빼앗겨 왔는지, 노동자들에게 남아 있는 말이 얼마나 되는지 말하는 사람들은 없다. 나는 그제서야 아까 도로를 행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났다. 앞서 가는 방송 차량 뒤에서 구호를 외치며 맞바람을 뚫고 행진하던 사람들은 꼭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고난에 찬 행군을 하는 군대 같았다.

한 해가 저물어도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이들에게 새해에는 더 많은 힘을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춥다. 거리로 나오거나 허공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누구도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세상. 아직은 겨울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한겨울 지내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들 내키는 대로 지껄이는 사람들은 넘쳐 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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