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은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하라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현대미포조선과 어느 글쟁이

여기 어느 글쟁이가 있다. 그는 지난 세밑에 너무 술을 마셔 댄 탓에 몸이 형편없이 망가져 버렸다. 방안에 누워 있으면 괜찮은 몸이 바깥에 나가 한겨울 찬바람을 쐬기만 하면 양철 난로처럼 달아올랐다. 입과 가슴으로는 증기기관차 소리 같은 기침을 뿜었다. 며칠 푹 쉬면서 몸을 추스를 생각은 왜 못했는지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 밖으로 싸돌아다녔다. 생계를 위해 일도 해야 했지만 그가 짬 나는 대로 하는 또 다른 일은 바로 사람들을 만나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컴퓨터 앞에 앉아 기침이 나오지 않도록 거푸 물을 홀짝이는 그를 보자.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고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컴퓨터 화면은 온통 새하얗다. 글을 쓰려고 하는 것 같다. 잘 써지지 않는 것일까? 코 푼 휴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자판 옆은 퍽 더럽다. 그는 몇 글자를 화면에 찍어 보지만 금방 지우고 만다. 마침내 팔짱을 끼고 조금 뒤로 물러서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뾰족한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떠오르길 바라는 눈치다.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잠시 후 양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나고 그는 다시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뭔가 실마리를 단단히 잡은 것 같은 얼굴빛이다. 곧바로 그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어지럽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아침 열 시쯤 일어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대충 옷을 꿰어 입은 채 밖으로 나왔다.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을 만나야 했다. 장소는 전교조 서울지부 관악봉천지회 사무실. 공교롭게도 전교조 관악봉천지회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현대미포조선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의원 사무실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열두 시쯤 총신대입구 역에 내려서 정몽준 의원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다다르니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큼직한 선전물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도 왔다. 1인 시위를 마치고 다 같이 점심을 먹고는 현대미포조선 김석진 조합원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전교조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포 노동자

촬영을 맡은 사람과 오늘 만남을 기획한 사람과 나, 이렇게 셋이 김석진 조합원 앞에 앉아 이런저런 물음을 던졌다. 아, 그런데 우리가 던진 물음들은 하나같이 먹물이 뚝뚝 묻어났고, 원하는 대답이 뭔지 물음에서부터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물음들이었다. 김석진 조합원은 우리에게 되도록 성의껏 대답해 주려 했지만 잔뜩 꼬여 있는 물음들에 당황하는 듯했다.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거듭 이야기했다. "저희가 서울에 올라온 것은 현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보기 위함도, 현장 조합 운동을 다시 살리기 위함도 아닙니다. 저희는 사람을 살리러 왔습니다. 위에서 사람이 열흘 동안 생수 몇 병으로 버티고 있는데, 다른 건 다 떠나서 일단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먹을 것과 물은 올려 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열쇠를 지금 정몽준 의원이 쥐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몽준 의원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정몽준 의원에게 (사람 좀 살려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더 이상 어떤 물음을 던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인터넷에서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굴뚝 농성'이라 검색하면 수도 없이 나올 기사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글을 쓰기 위해서, 단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올라왔다는 노동자를 더 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체 무엇을 더 묻는단 말인가? 허공 100미터 위에서 다 죽어 가는 두 사람을 살리러 왔다는데? 정몽준 의원 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데? 울산 지역 노동 운동이니, 시민들의 무관심이니, 노동 운동에 노동자들이 없다느니 하는 말들은 다 개소리였다. 두 노동자들이 한겨울 밤에 등걸잠을 자는 소각장 굴뚝 맨 위는 둥근 모양이라서 얼음장 같은 바람이 그 안을 파고들어 쌩쌩 돈다고 했다. 미치도록 춥다고 했다. 땅 아래 있는 이들의 10분이 그 위에서는 10년일 거라고 했다. 굴뚝 주변에는 혹시 누가 먹을거리라도 올려 주나 24시간 감시하는 경비원들이 10미터씩 사이를 두고 지켜 서 있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달려들어 먹을거리와 물품을 올려 보내려고 하면 경비원들이 최선을 다해 저지한다고 했다. 경찰들이 와서 올려 보내려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김석진 조합원에게 무엇을 더 물어 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달 전 피거품을 뿜으며 병원으로 실려가 아직까지 병상에 누워 있는 이홍우 조합원에게, 바람이 불면 양 옆으로 30센티미터씩 흔들리는 굴뚝 위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맞서고 있는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본부장 권한대행과 김순진 '현장의 소리' 의장에게, 도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매끈하게 뽑아내면 되는 기자들이 더 속 편하겠다는 데퉁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까지 쓰던 그는 지금껏 쓴 것을 찬찬히 한 번 읽어 보더니 갑자기 한숨을 하아 쉬고는 글을 모조리 지워 버린다. 컴퓨터도 꺼 버린다. 절레절레 도리질을 치고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든다. 한 장 두 장 읽다가, 그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에이'라는 신음소리와 함께 다시 컴퓨터를 켠다. 문서를 열고, 또 다시 한참동안 화면을 노려보다가,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자판 위에 손을 얹고는 타다닥타다닥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당신들 누구야?

의원님, 저희는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입니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

저희는 사람을 살리러 왔습니다. 제발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

누구를 살려달란 말이야?

정말 모르십니까? 지금 소각장 굴뚝 위에 저희 동지 둘이 열흘째 올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위험한 곳에 왜 올라갔어? 정신 나갔나?

제발 밥과 물만이라도 올려 보내게 해 주십시오.

무슨 소리야. 배고프고 목마르면 내려오면 되잖아. 내려와서 먹고 마시면 되잖아.

내려오는 즉시 두 동지는 구속될 게 뻔한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저희들 문제도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잖습니까?

문제라니,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저희들이 일하는 현대미포조선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6년 동안이나 거리로 내몰려 있던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승소했는데도 아직도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그악스러운 탄압을 받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안전시설도 부족한데 산업재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잔업 특근도 못하게 하고, 일상적으로 감시 통제하고, 부당한 징계 조치를 내리고...... 그리고 이홍우 조합원! 강제 진압에 쫓긴 이홍우 조합원이 4층 난간에서 뛰어 내리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 사람 목숨보다 기계를 더 걱정한 것은 누구였습니까?

이거 봐, 누가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라고 했나? 그러게 왜 4층에서 뛰어내려? 그것까지 내 책임이라 말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저희는 현대미포조선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작업 환경은 울산 동구청의 왕자님이시자 현대미포조선의 최대 주주이신 의원님께서 말씀 한 번만 해 주시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저희들의 소중한 두 동지가 왜 굴뚝 위로 올라갔겠습니까? 이홍우 조합원이 자기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현대미포조선은 민주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는데 아직도 현실은 변한 것 하나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희들 농성장만 철거 당하지 않았습니까? 의원님, 한겨울에 허공 100미터 위에 올라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열흘 동안 물로만 끼니를 때워 보신 적은요? 저희 두 동지는 그 둘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서는 결코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사람 좀 살려 주십시오. 핸드폰 배터리조차 못 올려 보내게 하니 두 동지들은 짤막한 통화만 하고서 바로 전원을 끄고, 나중에 다시 필요할 때만 전원을 켜서 저희들 쪽으로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위에서 어떤 잘못된 일이 일어나도 아래에 있는 저희들로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건 사람 목숨이 달린 급박한 문제입니다.

  굴뚝 농성 6일째 사진 [출처: 울산노동뉴스]

거 참, 말귀 못 알아듣네. 그러면 내려오면 되잖아! 동지든 팥죽이든 당신네들이 살리고 싶으면 당신네들이 끌어내리란 말야, 이 미련한 친구들아!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당신네들 몇몇 돈 조금 더 받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이 나라 국민들 전부가 조금씩 더 잘 살게 되는 게 중요한가? 내가 왜 국회에 있는지 알고는 있나? 나라가 잘 되면 경제가 잘 되는 거고, 경제가 잘 되면 당신네들도 자연스럽게 잘 되는 거야. 그걸 못 참아서 몇 푼 더 받겠다고 굴뚝 위로 올라가서 나를 협박해?

지금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을 일터로 보내달라는 것뿐입니다. 얼어 죽을지 굶어 죽을지, 어떻게 먼저 죽을지 모르는 두 동지들을 제발 좀 살려 달라는 것뿐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군. 이봐, 굴뚝 위에 있는 놈들 마음만 먹으면 끌어내리는 거 시간문제야. 좋게 말할 때 당신네들이 조용히 내려오게 해. 내 말 알아듣겠어? 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야? 일이 힘들다고 당신네들처럼 생떼를 쓰면 우리나라에서 굴뚝 위로 안 올라갈 근로자가 누가 있겠어? 그 나이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말이야. 그렇게 똥오줌 못 가리면 안 되지.

듣자 듣자 하니까. 야, 이 개새끼야! 너는 따뜻한 국회 안에서 배때기가 터지도록 잘 처먹으니까 우리 같이 기름 밥 먹는 노동자들은 눈에 뵈지도 않지? 사람이 죽든 말든 네 가족 아니고 네 졸개 아니니까 관심도 없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네가 6년 동안 복직 투쟁 하다가 결국 집안 작살난 하청노동자의 심정을 알아? 생계 때문에 하는 잔업 특근을 못하게 됐을 때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알코올중독에 걸려 본 적은 있어? 네 자식이 생활비 벌려고 나가서 일하다가 크게 다쳐서 들어오는 꼴 본 적은 있어? 네 자식들은 다 건강하지? 아주 무럭무럭 자랐지?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투쟁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야, 이 개새끼야! 네 목숨은 귀한 목숨이고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냐? 네 입에는 산해진미만 들어가야 하고 우리 입에는 똥만 처넣어야 하냐? 똥이라도 처넣게 해 주면 고맙지! 우리가 굴뚝 위로 똥 올려 보내겠다고 하면 올려 보내 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할 거 아냐, 이 씨발 새끼야!


한달음에 써 갈긴 글을 그는 다시 쓱 읽어 본다. 이번에도 한숨을 푸욱 쉰다.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헤집는다. 괜히 안경을 벗었다가 썼다가 한다. 그러고는 한동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까처럼 글을 전부 다 지워 버린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콧물이 흘러나와 흥 하고 코를 푼다. 이 모든 행동이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그는 결국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때가 구저분하게 묻은 수첩을 꺼낸다. 펄럭펄럭 수첩을 넘기다가 몇 장 남지 않은 뒤쪽을 펴 놓고 그는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두 동지가 올라간 지 열흘째입니다. 비상식량도 다 떨어지고, 밧줄로 물품 올려 주는 것도 실패했어요. 경비가 자꾸 막아요. 저지하는 경비들과 몸싸움하다가 조합원들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영도 동지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요. 뜨거운 죽이라도 올려야 하는데 그것도 실패했어요.

이 문제는 미포조선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에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상경한 것이구요. 결국 한나라당사와 국회, 그리고 정몽준 의원 사무실 앞까지 가게 된 거죠. 이따가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갈 거예요.

이영도 동지가 민주노총 울산지부 대책위원장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죠. 지역 단위가 많이 함께 하지 못했고, 농성장도 두 번이나 철거 되고...... 지역적 동력이 자꾸만 약해져 가는 시점에서 투쟁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해 그런 선택(굴뚝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들이 요구하는 건 헌법 33조에 있는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거예요. 산재를 비롯한 최소한의 문제들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더 큰 투쟁을 만들기 위해 굴뚝에 올라간 거죠.

서울에 온 이유는 미포 최대주주가 정몽준이고, 굴뚝이 미포 굴뚝이기에 이 문제(먹을거리를 올려주는 문제)는 정몽준 아니면 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그룹 하면 고용도 보장되고, 임금도 괜찮고, 최대주주가 정치인이고, 한 마디로 잘 나가는 회사잖아요. 근데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이고, 현장에 가면 다치고 죽고......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우리도 죽지는 않고 일해야 하니까. 우리가 다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거죠. 회사는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전시설이 굉장히 부실해요.

정몽준 씨 정도면 성공한 CEO이자 정치인인데 우리는 속말로 노가다 인생이에요. 현장에 들어와 보면 전부 3D 업종이고......

서울 올라오면서 한 번 통화를 했어요. 위에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국회 가서 빨리 좀 해결해 달라고 애원을 하더라구요.

무수한 압박을 받으며 농성장도 철거 당했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오로지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일 밖에 남은 게 없는데, 저희가 올라온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정몽준 의원을 압박해 보자는 게 전부예요. 사람 살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밥이나 물은 올려 보내야 하니까요.


피곤한 모양이다. 그는 안경을 벗고 고양이 세수하듯 눈을 비빈다. 벌써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었다. 그는 세 번째로 쓴 글은 지우지 않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 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코를 팽 푼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바탕화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휴지통'에 들어가 본다. 아까 지운 글 두 편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에이'라는 신음소리를 내며 글 두 편을 바탕화면에 복원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쓴 글을 다시 불러 내서 먼저 쓴 글 두 편과 함께 이리저리 편집을 한다.

그는 곁에 있던 손전화를 집어 들고 문자 메시지를 쓴다. 이런 내용이다.

'죄송해요이렇게밖에는못쓰겠습니다'

받는 사람 번호는 낮에 전교조 사무실에서 함께 있었던, 기획을 맡은 사람이다. 문자 메시지 전송이 끝나자 그는 탁 소리가 나도록 손전화를 닫고는 다시 컴퓨터로 몸을 돌려 인터넷에 접속한다. 전자우편을 보내는 곳으로 들어간다. 받는 사람 주소를 검색하다가, 며칠 전에 밥 같이 먹었던 아는 누나의 주소를 복사해 가져온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편지를 쓴다.

잘 지내시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걸 물어 보니 (마침 소띠 해이기도 하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네요. 밤을 꼬박 새우며 글이랍시고 쓰긴 썼는데, 뭘 썼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제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나요? 아니면 글 속에 슬쩍 끼어 이야기했었나? 구조적인 탄압이든 개인적인 이유든 둘 다든 어쨌든 간에 무언가를 이유로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 자신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상식을 멀찍이 벗어난 상황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상처 받은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마음속에 담아둔 채 있다가 때가 되면 글로 써 내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지요. 제가 이런 작업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마음이 허약해 빠진 사람은 할 수 없는 게 글을 쓰는 일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현장들을 조금씩 다녀 보고, 사람들과도 조금씩 얼굴을 익혀 가면서 희한하게도 제 속에서 어떤 단단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게 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슬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슬픔이라는 말을 예전처럼 쉽게 허투루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거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그 모든 것들을 품으려 하되 넘치는 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고, 내버려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시 제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죠. 말이 너무 어렵나? 하지만 저는 정직하게 쓰고 있어요.

어제는 서울로 상경 투쟁하러 올라오신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분들을 만났어요. 저 혼자 만난 건 아니고. 같이 취재하는 팀 있잖아요. 물론 평소에 이런저런 뉴스를 통해 울산 쪽 소식은 자주 들을 수 있으니까, 현대미포조선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 조합원 분을 앞에 모시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니까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음, 그러니까...... 장갑차처럼 강하게 가슴 속으로 돌진해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저랑 취재팀이랑 아무리 요리조리 물음을 던져 봐도 그분은 한결같이 "우리는 사람을 살리러 왔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대답을 끝막음하시더군요. 물론 다른 말씀을 안 하셨다는 건 아닌데, 저는 인터뷰 중간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어요. 상경 투쟁하러 올라오신 분들에게는 다른 게 없는 거예요. 친형제처럼 살갑게 지내던 동지 두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인 거예요. 그것밖에는 없는 거예요.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인데 무사히 서울까지 올라오신 게 신기할 지경이었죠.

저는 더 이상 뭘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쓰는 것과는 다른 글을 쓰겠지만, 아무튼 저처럼 현대미포조선에 대해 무언가를 쓰게 될 수많은 기자들과 제가 함께 끙끙 앓게 될 무시무시한 고민과 곧 맞닥뜨리게 되었지요. 물 한 모금 올려 보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정신 나간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글로 쓸 것이냐, 하는 것. 글을 써 봤자, 상경한 조합원들이 이러이러한 말을 했고 집회 때는 무슨 무슨 일이 있었으며 앞으로 우리는 이러저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너무나 진부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굴뚝 위에 올라가 계신 두 분의 싸움에 전혀 값하지 못하는 글이 나올 것 같았어요. 차라리 글을 쓰는 시간에 정몽준 의원 사무실 앞으로 가서 창문에 달걀이라도 던질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사당 역 근처에서 벌어진 정몽준 규탄 집회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사당 역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몽준 규탄 집회에 갔어요. 거기서도 아무 생각이 안 났지요. 집회가 끝난 뒤에 간담회를 하기 위해 대오는 아까 인터뷰를 했던 전교조 사무실로 우르르 옮겨 갔어요. 구석 자리에 앉아 간담회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고 있는데 찬바람을 종일 쐬어서 그런지 몸에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군요. 꾸벅꾸벅 졸았어요. 간담회가 끝날 때쯤 정신이 들었는데, 정몽준 의원 사무실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연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냥 집에 와 버렸어요.

집에 와서도 딴 짓만 하다가, 아니, 그냥 자 버리려고 했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결국 컴퓨터를 켰어요. '울산 지역 노동 운동의 승리'를 위해 올라오신 게 아니라 그저 친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올라오신 분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을 재탕해서 날탕으로 쓰는 글은 기사도 뭣도 아니잖아요. 기사는 지금껏 많이 나왔고 아마 저 말고도 많은 기자들이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분들의 상경 투쟁을 기사로 쓰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써야 할까. 기사가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을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망할 놈의 감기 기운은 끝끝내 사그라지지 않고 마치 여름 밤 모기처럼 귓가와 이마에서 윙윙거리더군요. 어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쓴다면 금방 쓰고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쓴다면 결국 아무것도 담아 내지 못한 빈껍데기 같은 글이 될 것만 같았어요. 어떻게 쓰든 실패할 것은 분명해 보였지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 사람들 무조건 살려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글에다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머릿속이 막 뒤숭숭했어요.

그러다가 생각했지요. 어차피 실패할 거라면 철저히 내 맘대로 실패해 주자, 라고 말이에요. 저는 멋대로 쓰기 시작했어요. 누더기가 될지 비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글을 잣기 시작한 거지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뒤엉킨 제 생각들을 기승전결이 제대로 틀 잡힌 형식으로 쓸 수는 도저히 없었어요. 수채화를 그리다가 물통에 서로 다른 물감이 묻은 붓을 한꺼번에 빨면 서로 다른 색깔들이 물속에서 막 엉키잖아요. 그 색색의 엉킴이 시간이 흘러 칙칙한 한 가지 색깔로 합쳐지기 전에, 그 엉킴을 얼른 건져 내서 글 속에 담아내 보고 싶었어요. 잠이 오든 말든, 밤을 새우든 말든, 눈이 아프든 말든, 생각나는 대로 쓰고, 생각나는 대로 이어 붙이고, 생각나는 대로 끊었어요.

쓰면서 현대미포조선의 관리자들과 정몽준 의원 생각을 하니 너무 화가 났지요. 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런 식으로 살면서도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지 않는지, 답답했어요.

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못 쓸 것 같은 순간이 왔을 때 저는 쓰는 걸 멈추었어요. 그래요. 거기까지였어요. 다 쓰고 나니 속에 맺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무엇 하나 당장 해결되는 것은 없었어요. 하룻밤 동안 저는 따뜻한 방안에 앉아 코나 풀어 가며 글을 썼을 뿐이지만, 굴뚝 위에 불어 닥치는 얼음장 같은 바람은 하룻밤 동안 조금도 따뜻해지지 않았겠지요.

나, 모르겠어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혹시 밤 새워 글 쓴 기억이 무슨 끔찍한 악몽처럼 떠오르게 되지는 않을까요?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로 나머지 하루를 보내게 되지는 않을까요? 지금 너무 잠이 와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렸던 간담회가 끝날 때쯤 서울 지역 단위들이 모여 1인 시위를 어떻게 나누어 맡을 것인지를 논의하더군요. 그때도 지금처럼 저는 잠에 취해 꾸벅꾸벅 졸았어요. 글을 쓰는 것으로 모든 놓쳐 버린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을 텐데, 하물며 뒤죽박죽으로 얽히고설킨 글이라면, 글쎄요, 저는 어쩌면 마이너스 통장인 줄도 모르고 마구 돈을 써 대는 난봉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만 쓸게요. 그날 밥 참 맛있었는데. 다음에 볼 때까지 안녕.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편지를 보낸 뒤 아까 편집해 둔 원고를 또 누군가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낸다. 컴퓨터를 끄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 눕는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각도와 깊이로 그는 입술을 일그러뜨린다. 후우 하는 깊은 숨을 내쉰다. 어느 글쟁이의 이야기도 이쯤에서 접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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