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전태일이다

[새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후마니타스

전태일은 여든의 노인이 돼 2009년에 살아있다.

여전히 그는 비정규직과 함께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것이 맞다”라고 노동자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마다 “힘내라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우라”고 외치고 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2008

살아있는 전태일은 바로 이소선 어머니다. 그녀가 오도엽 작가의 손을 빌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2008)라는 책을 냈다.

오도엽 작가는 참세상 기자로 근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소선 어머니의 목소리를 책에 담겠다며 참세상을 박차고 나갔다. 2년 뒤 책 한 권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책을 읽으며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이의 삶이 위대해서가 아니다. 그이가 전태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교 1학년 때 필독서라고 선배가 손에 들려 준 전태일 평전에서는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책을 읽고 거리로 나섰다는 대학생들 속에 나는 없었다. 전태일 열사는 그냥 책 속에만 있었다. 청계천에서 밤새 미싱을 밟던 여공들도 그냥 책 속에만 있었다. 이미 시대는 2000년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청계천과 동대문 일대를 생각하면 휘황찬란한 쇼핑타운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자”라고 하는 말을 온 몸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노동자대회면 당연히 외쳐야 하는 관용구 정도, 이해하든 말든 무조건 외쳐야 하는 공식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태일을 만났다.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녀는 “당장 달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금속노조가 한미FTA를 반대하며 총파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모든 언론들은 금속노조의 파업은 정치파업이고 그래서 불법 파업이라고 하루 종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2007년 6월을 살고 있던 전태일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리 다 나으면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다 파업하라고 할거야. 안 그러면 살수가 없으니까. 나 하나 잡혀가면 되잖아. 80살 먹었는데 감옥에서 죽으면 어때”

그 때 퍼뜩 깨달았다. 전태일이 살아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살아있는 전태일을 만났다.

배고픈 노동자들 밥 해주던 버릇 때문에 음식을 조금씩 할 수 없는, 밤새 노동자들과 함께 얘기하던 버릇 때문에 지금도 깊은 밤 혼잣말을 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를 걷던 것이 몸에 배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노동자들 앞에서는 여전히 강해보이고 싶어 지팡이도 짚지 않는. 이소선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을 보내고 40년을 전태일로 살았던 것이다. 대신 산 것이 아니다. 그이가 전태일이다.

그리고 그이는 우리에게 약속을 하자고 한다.

“엄마, 엄마, 내가 부탁하는 거 꼭 들어주겠다고 크게 한번 대답해 줘.”
크게 한번 대답해 줘, 그렇게 말하는데 여기가 계속 막 끓더라고.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p.84)


오도엽 작가는 글을 시작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회의하면서 살아온 나의 투정에 이소선은 이런 응답을 주는 것 같다. ‘누군들 미쳐 살 만큼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고맙다는 말, 다 못하고 헤어지고 떠나보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 모두가 내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고맙다. 지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립다. 보고 싶다.’ 이소선의 육성으로 우리에게 보내는 영원한 응원가이자 희망의 위안이다. 그 희망과 위안에 기대어 이제 ‘날 것의 목소리’를 세상에 날린다. - 프롤로그 中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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