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2)

[연정의 바보같은사랑](29) 영남노동자대회, 굴뚝농성 25일 째 물품 공수투쟁

“다 올라갔다. 함성 한번 질러봅시다!”
“와~”
물대포 속에 첫 번째 비상 물품이 생명의 줄을 타고 굴뚝 위 두 동지들에게 닿자 함성이 울려 퍼진다.


“던지지마! 던지지마!”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던진 각목과 돌맹이, 볼트, 너트가 뿌연 소화기 분말가루 사이를 날라 다닌다.
1월 17일 오후,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에 올라간 두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비상식량을 올려 보내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굴뚝 아래에 다시 모였다. 오늘로써 이영도 김순진 동지의 굴뚝농성은 25일 째다.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한 후에 굴뚝농성장으로 오는 과정에서 트럭 뒤에 노동자들이 하나 가득 타기도 했는데, 광주항쟁 때 시민군을 연상하게 했다.


굴뚝 밑 촛불문화제는 민중의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현대중공업 경비들의 폭력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점화 되었던 촛불은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쏘아대는 물대포에 의해 순식간에 꺼져버린다. 굴뚝 맞은편 담벼락 밑에서는 굴뚝에서 내려온 ‘생명의 줄’에 물품을 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이 생명의 줄이 던져질 때, 굴뚝 위아래 모두 얼마나 긴장했을 것인가. 다행이 생명의 줄은 굴뚝 밑 동지들의 손에 무사히 쥐어졌고, 이들은 물대포를 몸으로 현수막으로 깃발로 막아가며 생명의 줄에 물품을 끼어 올려 보낸다. 물품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것이 다이다.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굴뚝 아래에서 낚시 대와 갈고리로 생명의 줄을 끊으려 했지만, 생명의 줄은 용케 잘 버텨준다.


“힘내라! 힘내세요!”
“땡겨! 땡겨! 밑에 더 땡겨요!”
“위에도 더 땡긴다”
“와아~!!”

굴뚝 꼭대기, 안간힘을 쓰는 분주한 팔놀림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물품 공수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굴뚝 위 이영도 김순진 동지의 두 번째 낚시질이 성공한다. ‘동상에 걸려 발에 아무 감각도 없다는데, 방한용품과 의약품은 올라가고 있는 건지...’

“뒤에 뒤에!”
“야, 내려가!”

고함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물품보급팀 바로 뒤 담벼락 위로 현대중공업 경비가 생명의 줄을 끊기 위해 낫을 들고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경비를 제지하고, 물품 공수 투쟁을 계속한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나중에 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원시시대 수렵채취 하는 장면 같다.”고 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단식이 인권문제 때문에 불법으로 되어있다. 유럽에서는 단식을 하면 강제 급식을 하게 되어있는데, 이 나라는 음식물을 먹이겠다는데도 저렇게 막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힘내세요!”
“다시 한번 힘찬 함성”
“와아~ 와아~”
“다 끝났다. 다 올라갔다.”
세 번째 물품 공수가 끝나자 농성장에 큰 박수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지들 승리할 자신 있으십니까? 투쟁! 투쟁! 동지의 힘으로 우리들 힘으로 오늘 위에 계신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았습니다. 연대투쟁을 오신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아가시는 길 편안하고 안전하게 돌아가시고 이 투쟁 적극적으로 알려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울산지역본부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해내겠습니다.”
물에 흠뻑 젖은 울산본부 김주철 본부장의 마무리 발언으로 촛불 없는 촛불 문화제가 마무리되었다.

“이영도 동지! 김순진 동지! 오늘 동지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다음에도 반드시 동지들을 우리 손으로 사수하겠습니다. 동지들 힘내십시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함성 시작! 와~”

아직 갈 길이 먼 투쟁. 비록, 아직 다음 약속을 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약속을 지켜준 동지들이 고마운 저녁이다.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100미터 굴뚝 위 두 노동자들이 내젓는 이별의 손짓은 애절하기만 하다. 노을이 지고 있다.
덧붙이는 말

취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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