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너무 쉽다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2009년 1월 20일, 학살의 날 밤에

무엇보다도 먼저, 돌아가신 분들,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 한 분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란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무릇 언젠가는 숨이 끊어지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목숨이 다해 자연스레 죽는 생명도 있고, 나쁜 힘이 억지로 숨통을 끊어 죽는 생명도 있다. 죽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도,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생명은 언젠간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죽지 않아도 되는,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생명이 죽는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죽음은 생명이 지닌 모든 의미를 앗아가 버리고 말기에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함부로 강요할 수 없다. 생명은 시간이고, 시간은 곧 삶이며, 삶은 생명에게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 주기 때문이다.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 모든 당연한 이야기들을 이명박 정권은 순식간에 죄다 개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여섯 명이 불타 죽고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여섯 명에게 딸린 가족과 친척들도 모조리 죽었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지켜본 이들도 모두 죽었다. TV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 사람들도 다 죽었다. 용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앞으로도 모를 사람들도 남김없이 죽었다. 아니, 그들은 전부 다 학살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두가 죽어 버린 가운데 자기네들끼리만 살아 있는 이들이 그들을 죽였다. 청와대와 국회와 경찰청에서 지금도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렸다. 재개발에 탐욕스럽게 눈독 들이던 배불뚝이들이 그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여 버렸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무 죄 없이 죽어 가고 있는 숱한 사람들을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나는 밥 때만 되면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했다. 아무 탈 없이 제대로 움직이는 창자들을 몸 속으로 느끼며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연결돼 있다고 믿었던 내 오랜 신념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뉴스를 보면 들것에 실려 가는 피투성이 아랍 소년이 나오지만, 죽어 가는 사람이 뉴스에 나온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죽어 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훨씬 더 많다는 것! 나는 배고픔을 이겨 내기 위해 허겁지겁 밥을 뱃구레에 처넣으면서도 왜 나의 식욕은 다른 이들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왕성하기만 한지 궁금했다. 내 몸과 마음은 너무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거기다가 뒤늦게 발견된 또 한 명까지 여섯 명이 죽었다고 했다. 나는 그 뉴스를 귤을 까먹으면서 보았다. 마음속에 경악과 분노가 한가득 들어차기를 기다리며 나는 조용히 귤을 다 먹었다. 귤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뭔가 섬뜩한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오후 7시 신용산역에서 살인 진압 규탄 추모제, 라는 글귀가 불로 지진 듯 가슴에 남았다. 오전부터 종일 쓰던 글을 던져 버리고 옷을 꿰어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용산 역에 내려 조금 걸어 가니 바로 신용산 역이 나왔다. 인도 가장자리에는 전경 버스들이 가득 늘어서 있어서 길을 건너지 않고서는 저쪽 편 인도를 볼 수 없었다. 시커멓게 타 벌집이 된 건물이 저 앞에 보였다. 고개를 뽑아 건너다보니 깃발 두어 개가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솟아나 있었고, 전경들 한 떼거리는 사람들이 도로로 나오지 못하도록 건물 앞 인도 가장자리를 울타리처럼 둘러 싸고 있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사람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재우쳐 갔다.

  만신창이 건물에 붙여진 선전물들

“촛불 집회 오신 분들은 두 줄로 서세요!”

“마스크 필요하신 분들 마스크 가져가세요!”


좁은 인도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복대기고 있는 통에 건물 앞까지 가기 힘들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벌써 집회가 시작된 것일까? 전국철거민연합 방송 차량에 달린 확성기에서는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거푸 흘러나왔다. 보도블록은 물대포가 쏜 물이 흥건히 괴어 거무튀튀한 빛을 띠고 있었고, 유리 조각이며 돌 파편이며 하는 것들이 발에 밟히느라 발밑에서는 자꾸만 우지직우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잔해들도 많았지만 곳곳에 고인 더러운 물웅덩이 때문에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온통 구중중했다.

전경들은 아스팔트에 박아 놓은 커다란 대못처럼 꼼짝 않고 서서 인도와 도로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윽고 경고 방송이 들렸다. 어딘가에 경찰 쪽 방송 차량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방송 차량을 이용한 야간 미신고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경찰 쪽 방송이 사람들을 자극했는지 건물 앞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깃발이 하나 둘 늘어 갔다. 건물 입구 쪽으로 가 보니 스님 한 분이 목탁을 치며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고, 한쪽에 마련된 자그마한 분향소에서는 국화꽃을 든 사람들이 초록빛 대궁을 촛불 옆에 가지런히 얹어 놓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돌쳐나와 다시 반대쪽으로 길을 건너 대체 전경 버스들이 어디까지 인도를 가로막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전경 버스들은 사오백 미터는 족히 인도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었다. 버스 가까운 곳에는 어서 진압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전경들 무리가 우쭐우쭐 모여 있었다. 몸에 걸친 것들을 보니 멀쩡한 사람 진압하는 흉흉한 시범 동영상으로 유명한 경찰 기동대들이었다. 체포 전담조 또는 백골단으로도 불리는 바로 그들이었다. 저녁을 먹으려는지 빵과 우유가 담긴 상자와 철제 식판이 날라져 왔다. 마음이 짠했다. 다른 사람들도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지 먹어야 산다는 것을, 고작 빵으로 허기를 끄려 하는 저 전경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쁜 정부와 화난 사람들 사이에 껴서 죽도록 고생만 하는 불쌍한 청춘들. 그런 불쌍한 청춘들을 무리하게 부려먹다가 결국 목숨이 끊어지도록 놔두기만 한 나쁜 놈들도 그 숨진 경찰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독한 생각을 했다.

  살인 진압 규탄 추모제에 참여하러 온 사람들

다시 길을 건너 건물 앞으로 돌아오는데 아까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불어나 있었다. 전국철거민연합,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한국대학생연합, 자본주의연구회, 한국대학생문화연대 등등의 깃발들이 대오 속 여기저기에 우뚝 솟아 있었다. 거기다가 각 대학 총학생회들까지 제각기 깃발들을 들고 나와서 아예 밤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MBC, SBS, KBS, YTN, MBN 같은 언론사 차량들도 보였다. 모르긴 해도 온갖 인터넷 매체들에 소속된 기자들도 잔뜩 몰려왔을 것이다. 취재진이며 기자며 방송국 카메라며 오늘 밤은 몽땅 이곳에 동원된 것 같았다.

경찰 쪽에서는 거푸 경고 방송이 들려 왔다. 이름값 하는 ‘방송녀’였다.

“저희 경찰은 여러분이 다치는 걸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경찰은 (잠깐 사이에 ‘저희’가 ‘우리’로 바뀌었다. 뭐가 맞는 표현인지 고민했을까?)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뒤에는 꼬부장한 목소리의 남자가 해산을 명령하는 방송을 했다. 전국철거민연합 방송 차량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자 경찰 쪽 방송은 묻혀 버렸다. 국화꽃 한 송이와 촛불을 든 사람들이 아직도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일곱시 반쯤에 집회가 시작되었다.

대오 뒤쪽으로 가 보았다. 뒤쪽에도 방패를 든 전경들 한 떼거리가 모여 있었다. 그 뒤로는 지긋지긋한 물대포도 보였다. 노란색 한 대와 파란색 한 대, 물대포만 두 대였다. 아니나다를까 휴대용 색소 물대포를 짊어 진 전경들도 있었다.

미쳤구나. 사람을 죽여 놓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걸까. 나는 다시 대오 앞쪽으로 걸어갔다. 가득 들어찬 사람들 덕분에 비좁게 된 인도를 지나가기 위해 온몸을 앞으로 쑤셔 박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전경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살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폭력 경찰이 아니라 양아치 경찰이로구나!”

“이 살인 정권의 하수인들아!”


분노한 사람들은 KBS 기자들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KBS가 여긴 왜 오냐? 가서 명박이랑 놀아!”

“찍지 말고 꺼져 이 새끼들아!”


  ‘견찰’은 정부의 청부살인을 중단하라!

집회는 연사들이 하나 둘 나와 발언을 이어가는 식으로 흘러갔다. 한 연사가 발언을 마치자 마이크를 넘겨 받은 사회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철거민 동지 한 분이 치료 도중에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동지를 추모하며 잠깐 묵념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목숨 하나가 또? 그러면 일곱이 죽었단 말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회자가 이야기한 사망자는 뒤늦게 신원이 확인된 철거민이었고, 그 철거민은 처음부터 사망한 채로 병원에 실려왔다고 한다. 목숨을 잃은 철거민은 이 글을 쓰는 현재 모두 다섯 명이다.) 우두망찰한 기분으로 연사들의 발언을 한쪽 귀로 흘리고 있는데 사회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귓전을 때렸다.

“경찰이 시신을 탈취해 갔다고 합니다! 지금 유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뭐? 시신을 훔쳐가? 군사 독재 정권 때나 벌어졌던 시신 탈취 아닌가! 하긴 시신을 경찰이 훔쳐가는 일은 2000년대에도 변함없이 일어났었지. 시신 탈취는 으레 강제 부검으로 이어질 텐데..... 나는 생각했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가 자꾸 히틀러와 비교되는 게 싫어서 일부러 박정희나 전두환이 저질렀던 정신 나간 짓거리들을 따라 하는 것은 아닐까? 농지거리나 다름없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송경동 시인이 나와 시를 낭송했다. 아주 긴 시였다. 일이 오늘 벌어졌는데 언제 저렇게 긴 시를 썼대? 나는 거듭 속으로 농지거리를 하며 억지로라도 웃으려 해 보았지만 얼굴 근육은 마치 고무로 만들어진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집회가 끝난 뒤 행진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

여덟 시 반쯤에 집회가 끝났다. 대오는 서울 역 쪽으로 행진해 간다고 했다. 징그럽게 번들거리는 투구들이 대오 앞을 막아서며 저지선을 쳤다. 금세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국철거민연합 방송 차량에서는 쉴 새 없이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학살 정권 퇴진하라!”

“이명박이 살인마다!”

“이명박 정권 처단하자!”

“우리 동지 살려 내라!”


갑자기 전경들 한 무리가 저지선을 벗어나 도로 저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건물 앞 저지선을 뚫고 나갈 것 같으니 미리 저쪽에 다른 저지선을 쳐 놓겠다는 속셈일까? 몸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저쪽에서는 또 다른 전경들 한 무리가 개떼 같이 몰려와 저지선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노가 힘이 더 셌는지, 아니면 지은 죄가 있으니 섣불리 폭력 진압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전경들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인도로 빠집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전깃줄에 닿을까봐 깃발을 내린 사람들이 인도를 통해 꾸역꾸역 전경들의 저지선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전경들은 도로에만 가득 모여 있을 뿐 인도까지 가로막지는 않았다. 나도 인도 속 사람들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뒤에서 밀어 주는 대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뒤로는 방송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순천향 병원에 와 있는 시신 다섯 구를 유가족 동의 없이 경찰이 부검을 했다고 합니다! 불에 타 신원도 밝혀지지 않아서 유가족도 찾지 못한 시신들을 경찰이 유가족 동의도 없이 부검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시신을 훔쳐 간데다가 부검까지 해 버렸다는 것은 경찰 쪽에 뭔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도대체 그게 뭘까?. 무엇을 숨겨야 하길래 인륜까지 저버리는 행위를 그처럼 천연덕스럽게 저질러 버렸을까? 설마 온몸이 불살라지기 전에 이미 용역 깡패들에게 얻어 맞아서.....?

아무런 증거도 없는 황당한 상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철거민들과 경찰이 어떻게 죽었는지 분명하게 밝혀 내기도 전에 시신부터 쓱싹 처리해 버렸다는 것은 오만 가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도대체 왜 경찰은 자꾸만 무언가를 감추려고만 할까?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왜 자꾸 집으로 돌려보내려고만 할까? 왜 멋대로 부검을 해 버렸을까? 왜 속 시원히 진실을 말하지 않을까? 왜 무작정 사람들을 때려 잡으려고만 할까? 송경동 시인이 낭송한 시구절처럼 이명박 정권은 ‘폭력으로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부’라서 그럴까?

인도를 통해 전경 대오를 돌아서 나온 사람들은 다시 깃발을 들고 도로 한복판으로 나왔다. 도로 한가운데 서서 건물 쪽을 바라보니 전경들은 어느새 방패를 이쪽으로 돌려세운 채 진압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경들 뒤쪽으로는 험악하게 생긴 물대포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정거리였다.

  전경들과 물대포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찰은 여러분의 불법 도로 점거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해산하지 않으면 잠시 후에 살수하겠습니다. 해산하지 않으면 잠시 후에 살수하겠습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자리를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자리를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아홉 시였다. 도로를 완전히 점거해 버린 사람들은 뒤쪽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전경들을 등진 채 서울 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전경들과 마주 선 채로 있었지만 서울 역 쪽으로 가는 대오를 따라 가야 할지 아니면 이곳을 지켜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대오를 향해 눈부신 불빛이 쏟아 부어졌다. 살수하겠다는 경고 방송이 장송곡처럼 흐르는 가운데 전경들은 방패를 아스팔트에 찧어 대며 마치 살코기를 분쇄하는 톱니들이 콰지직거리며 맞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불법 행위와 폭력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시 살수하겠습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물줄기가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전경들이 앞으로 튀어 나왔다. 얼른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홉 시 십이 분이었다. 정신없이 앞으로 뛰었다. 신용산 역 2번 출구가 보였다. 전경들은 방패를 휘두르며 2번 출구 쪽 도로까지 밀고 들어왔다. 대오는 인도 쪽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행히도 물줄기는 오래 퍼부어지지 않았다. 인도에 올라간 사람들이 다시 도로 쪽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전경들은 인도 가장자리에 촘촘히 붙어 서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다른 전경 한 무리는 1번 출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더니 그쪽에서 저지선을 치는 것 같았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아예 인도까지 막아 버리고는 아무도 저지선을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왜 인도까지 막느냐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사람들이 거칠게 항의해도 전경들은 차갑게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인도 가장자리를 점거한 전경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서울 역 쪽으로 갔을까? 자동차 한 대 지나지 않는 거무칙칙한 도로 위에 비닐봉지들이 바닷속 해파리처럼 날아다녔다. 찬바람이 불어 왔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에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건물 앞으로 가 보기로 했다.

아까 그 자리에서는 여전히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도로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전경들은 기를 쓰고 사람들을 밀어 내려 했지만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사람들은 온갖 험한 욕설을 전경들에게 퍼부으며 막무가내로 맞섰다. 그러고 보니 오늘처럼 사람들이 숨김없이 화를 내며 입으로 욕설을 씹어 뱉는 집회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들 무진장 화가 나 있었다.

“이 살인자 개새끼들아!”

“늬들 창피하지도 않냐! 이 명박이 노예들아!”


전경들이 불쌍하긴 했다. 동료 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살인 집단 취급을 받아야 하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전경들은 어차피 권력자들이 손 안 대고 코 풀기 위해 싼값에 부려먹는 장난감 병정들에 지나지 않는데. 원래 그런 게 군대인데. 꾹 참고 잘 견디다가 어서 몸 성히 전역해서 우리 쪽으로 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2번 출구 쪽으로 가 보았다. 2번 출구를 지나 1번 출구 쪽으로 가는데 인도에는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표정 없는 전경들만 인도 가장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1번 출구과 2번 출구 사이를 바장이고 있는데 건물 쪽에서 전경들 한 떼거리가 인도를 통해 척척척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점점 가까이 올수록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숫제 뛰는 것이었다. 나는 한쪽으로 비켜 선 채 내 앞을 휙휙 지나치는 전경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발 조심해 임마!” “아, 다리 아파 씨발!” “줄 맞춰 가라고!” “빨리 빨리!” 흉악한 주문이라도 외울 것 같아 보이는 전경들의 입에서는 의외로 평범한 말들이 흘러 나왔고, 나는 왜 꼭 집회 때마다 전경들도 나와 똑같은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지, 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일이 그처럼 새삼스러워야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건물 쪽으로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전경 버스들은 어느새 전경들을 다 태웠는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철수하는 것일까? 아니면 서울 역 쪽으로 갔을지 모르는 대오를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건물 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목이 터지도록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건물 앞에 세워져 있던 전경 버스 한 대가 떠나려는데 까만 복면을 쓴 사람이 갑자기 버스 앞에 주저 앉았다.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사람을 붙잡아 인도로 다시 밀어 넣었다. 복면 쓴 사람이 억지로 끌려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채로 몰려들어 전경 버스를 가로막았다.

“사람이 죽었잖아!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

“대운하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제는 사람까지 죽여? 늬들이 사람이야?”


  전경 버스를 가로막은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온 전경들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향한 분노가 돌림병처럼 번지며 사람들을 열에 달뜨게 한 것 같았다. 언제 또 방패를 치켜들고 덤벼들지 모르는 전경들에게 사람들은 삿대질까지 해 가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전경들이 더 몰려와 버스 앞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어 내고는 버스를 출발하게 했다. 마지못해 인도로 다시 올라온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욕지거리를 쏟아 냈다.

어느덧 열 시였다. 집에 들어가 봐야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뒤숭숭했다. 지난해 촛불 집회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한창 집회가 벌어질 때보다 집회가 끝난 뒤에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밤 열두 시에서 새벽 두세 시 사이에 전경들은 짓쳐들어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두들겨 맞으며 질질 끌려갔다. 정말 대오는 서울 역까지 갔을까? 아무 일 없을까? 여섯이나 목숨을 잃은 날이지만 이 미친 정권은 전과 다름없이 사람들을 움켜잡고 함부로 패대기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분향소에 아직 꽃 한 송이 얹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분향소 옆에서 국화꽃을 나누어 주는 분에게 꽃 한 송이를 얻었다. 향로에는 누군가가 꽂아 놓은 향들이 매캐한 향연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꽃을 들고 가만히 서 있자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는 너무 형식적인 생각 같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꽃을 향로 옆에 얹고는 분향소를 나왔다.

국화꽃을 얹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개 같은 세상, 죽음이 너무 쉽구나.

  분향소 안에 놓인 향로와 국화꽃

집에 가기 위해 용산 역 쪽으로 가는데 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화를 참지 못해 식식거리는 사람들이 웬 젊은이들을 둘러싸고 소리소리 지르며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사람이 몇이 죽었는데 그딴 소리가 입에서 나와? 미친 거 아냐?”

“빨리 나와서 사과하라고 해! 사과 안 하면 늬들 집에 못 가!”

“그 새끼 빨리 이리로 안 데려와?”


사정을 알 듯한 사람을 붙잡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젊은이가 “전경 파이팅!”을 외쳤다고 했다. 가뜩이나 몸도 피곤한데 마음고생 하느라 서러운 사람들에게 그 말 한 마디는 마치 등에 칼침을 맞은 것처럼 쓰리고 아팠을 것이다. 성난 사람들이 금세 그 젊은이를 에워싸려 했고, 겁에 질린 젊은이는 친구들을 남겨 둔 채 가까이 있던 상가 건물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했다. 친구들이 진땀을 흘려 가며 변명을 해 보았지만 사람들은 그 젊은이를 여기 데려다 놓지 않으면 절대로 물러가지 않겠다는 기세로 나왔다. 결국 더 뻗대지 못하고 상가 건물에서 주춤주춤 기어 나온 그 젊은이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고, 분을 삭이지 못한 사람들은 흩어지면서도 연방 욕설을 퍼부어 댔다.

“지금이 어느 땐데 그딴 헛소리를 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저렇게 개념이 없으면 안 되지. 에이, 미친 새끼 같으니.”


새파란 젊은이가 무심코 내뱉은 어수룩한 말 한 마디에도 불 같이 들고 일어설 정도로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죽음이 너무 쉬운 시대에 제 정신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분노다. 살인자들을 향한 분노. 살인자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미친 땅따먹기에 중독된 이들을 향한 분노.

그러나 죽음은 쉽지만, 분노는 쉽지 않다. 처음과 끝이 일직선으로 이어진 작살처럼 한 흐름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분노는 분노가 아니다. 아무것도 꿰뚫지 못한다. 정권 퇴진이라는 작살을 이 나라 사람들은 지난해 여름에 거의 벼리어 낼 뻔했다. 여전히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은 지금, 그자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인천행 전철을 타서 자리에 앉는데 나도 모르게 끙 하는 소리를 냈다. 피곤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죽인 사람들이 너무 많은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악몽 같은 시대다.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무지막지한 악몽.

  기어이 살인 정권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이명박 정권

(집에 와서 글을 쓰다가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니 대오는 서울 역을 지나 명동까지 이르렀고, 거기서 전경들과 맞서다가 결국 진압 당했다고 했다. 전경들에게 얻어 맞아 풀썩풀썩 쓰러지는 사람들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나는 치를 떨었다. 그저 치를 떨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며 또 한 번 치를 떨었다. 21일 저녁 일곱 시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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