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에도, ‘보도’에도 도의가 있다

[살인진압] 보상금, 폭력시위, 배후세력으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

“이곳에서 지금까지 장사하면서 먹고살았는데 강제 철거를 하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 생계 대책을 우선 마련하라.” (철거민 요구)

19일 새벽 6시 철거예정이었던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 철거민 30여명의 점거농성이 시작된 것은 새벽5시였다. 점거를 시작한 이들은 작년 5월 용산구청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내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건물 세입자들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0일 아침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철거민들에 대한 강제진압이 시작됐다. 강제진압으로 인해 철거민 5명이 사망했고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 17명이 중상을 입었다.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이 사건을 보고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이들이 건물 점거를 푸는 조건으로 “용산구청과 시행사, 용산경찰서가 함께하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을 이야기했다는 것에 있다. ‘대화테이블’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답은 경찰특공대, 살수차와 소방호스, 경찰병력을 실은 콘테이너를 통한 ‘강제진압’이었다. 그 결과 5명의 사람이 죽어나갔다.

보상금이 생명 앗아갔다?

예상했듯 언론에서는 ‘보상금’ 문제가 등장했다. “적은 보상금으로 인해 개발을 반대”해왔다는 것이다. 재개발 조합에서는 2006년 1월21일 이전에 거주하던 사람들에게 이사비와 4개월치 집세를, 상가건물 세입자들에게는 2007년 6월7일 이전에 영업하던 상인에 한해 3개월치 수입을 보상하는 내용의 보상대책을 수립했다고 전해졌다.

철거민들이 요구한 것은 “재개발 하는 동안 장사를 할 수 있는 재래시장이나 임대상가를 마련해줄 것과 주택 거주자에겐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장사를 하던 건물이 하루아침에 철거되면 이들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할 ‘방법’을 달라고 했다. ‘재래시장’이나 ‘임대상가’였다.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철거되면 이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때문에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1월 20일 조선일보 9면 기사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얻으면 하루를 먹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면 평생을 먹고 산다’는 말이다. 이 이치를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철거민들이 요청했던 것은 먹고 살 수 있는 생존을 위한 방법이었다. 4개월치 집세와 3개월치 수입 보상이라는 적선하듯 내던지는 ‘돈’ 따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화염병 등장, 조선은 강제진압 종용, 동아는 배후세력

오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이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비슷했다. 1월20일자 조선일보 9면에서 “다시 불붙은 화염병”이라고 했다. 부제목으로 “용산 철거민들 건물 점거 시위 중 20여개 던져…서울서 26개월 만에 재등장…화학약품도 뿌려”라고 뽑았다. 1월 20일자 동아일보 역시 12면에서 “서울 도심 26개월 만에 화염병 재등장”이 제목이었다. 부제목으로는 “용인재개발 시위 현장서…경찰 물대포 대응”이라고 했다.

이들 신문이 주목했던 것은 ‘화염병’으로 상징되는 철거민들의 ‘폭력’이었다. 이어 조선과 동아는 강제진압을 이야기했다. 사실 보수언론들의 ‘수순’이다. 폭력이니 강제 진압하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면을 통해 “경찰은 이들이 왜 하필 이날 갑작스런 시위를 벌이게 됐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점거한 날은 철거를 시작하는 바로 당일이었다. 경찰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어 조선일보는 “이들이 던진 돌에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시위를 오래 방치할 수 없다”며 “강제진압 작전을 벌일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왜 ‘하필’, ‘왜’, ‘갑작스런 시위’라고 전제를 깔았을까.

동아일보 역시 경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시위자들이 경찰을 향해 던진 화염병이 잘못 날아가면서 지나던 시민들 쪽으로 떨어져 큰일이 날 뻔했다”고 ‘폭력시위’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경제난을 이용해 일부 운동권 계파가 ‘생존권 투쟁’을 놓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서 과격 시위를 배후에서 주도한다는 정보가 있다”며 배후론의 연기를 피웠다.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이들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연출됐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 신문의 ‘내일’ 보도가 기대된다.

철거에도 도의가 있다

전쟁에도 인권규약이 있다. 아무리 산 사람 내모는 무지막지한 철거라 해도 도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철거에는 없었다. 점거 하루만의 강제진압은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떠한 대화에도 응하고자 했던 생각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강제진압에 들어가게 되면 부상자가 속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진압에 들어간 것은 ‘살인’을 조장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예부터 동계철거는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겨울에 살기 힘든 빈민들이 집에서 쫓겨났을 때 겪어야만 하는 고통은 여름에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철거 역시 ‘동계’에 착수됐다. 갈곳 없는 이들을 겨울에 거리로 내모는 것, 이 역시 살인을 ‘방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왜 그토록 급하게 강제진압을 선택했을까. 어청수 경찰청장의 교체와 맞물려 김석기 경찰청장을 맞이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눈엣가시인 이 사안을 빠르게 처리해야할 당위는 있었겠으나 그 결과를 보라. 어리석은 선택과 무리한 강제진압의 결과를.

서울 용산구 4구역 재개발 지역은 지상복합 아파트 6개동이 들어설 예정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과 맞바꾼 주상복합 아파트. ‘개발’, ‘뉴타운’, ‘4대강 살리기’ 등 난개발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과연 지금 한국사회는 행복한가.(나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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