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돌아가신 여섯 분을 생각하며

따지고 보면 학살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책 어디를 펼쳐 보아도 죽음은 페이지에 흩뿌려져 있는 잉크만큼이나 흔하게 보입니다. 멋으로 사람을 죽이는 할리우드 영화나 재미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전자오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쩌면 역사 교과서라는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이미 학살이라는 것에 꾸준히 익숙해져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폭탄 파편을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민간인들의 사진이 하루에도 수백 장씩 언론과 인터넷에 올라옵니다. TV로 생중계되는 전쟁은 광고와 댄스음악과 코미디 프로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에 배달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란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나 자신이 죽지 않으면 되고, 내가 아는 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억울하게 돌아가신 용산 철거민 분들을 함부로 욕되게 하는 무리들이 장마철 노래기 끓듯 여기저기서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화염병과 골프공에는 너도나도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곤봉과 방패와 용역 깡패들에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철거민 분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 갔는지 앞뒤 사정을 밑뿌리부터 샅샅이 더듬어 보려 하지는 않고 그저 그들이 무엇을 손에 든 채 어디로 그것을 던졌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불법이라 합니다. 합법적으로 항의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놈의 법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틀어쥐고 있느냐는 제쳐두더라도, 불법을 저지르고 싶어서 저지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것을 먼저 물어야 하는데도......

  1월 20일 저녁에 열린 추모 집회

이명박 정부의 손에 여섯 분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속에 처음 떠오른 것은 ‘학살’이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아마도 그 단어를 떠올리게 한 듯합니다. 그날 밤 현장에 들른 조세희 선생 역시 학살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학살. 학살. 저는 학살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굴려 보다가 아예 ‘학살의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을 던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언뜻 생각하자니 ‘학살의 시대’라는 표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지난 일 년간 벌어진 많은 일들을 마치 조각 그림 맞추기 하듯 그러모아 바라보는 데에 딱 맞는 표현인 것만 같았습니다. 촛불을 들고 매일 밤을 새우던 지난해 여름은 하루하루가 민주주의의 제삿날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재계약 할 때가 오면 노동자로서 사형 선고를 받기 일쑤였고, 농민들은 FTA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다가 살아났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권리가 하나씩 살해당하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되뇌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목 매달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모조리 학살당한 지난해였습니다.

용산 철거민 분들과 경찰 한 분이 세상을 등졌지만 죽어 버린 것은 그들 뿐이 아니었습니다. 여섯 명의 가족과 친척들도 죽었고,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도 눈물을 짓씹으며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거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지 못할 이 시대 사람들의 미래 또한 깡그리 죽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또 누가, 무엇이 죽임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학살이라는 단어야말로 여기저기서 죽어 자빠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데에 잘 들어맞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23일 저녁에 열린 추모 집회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을까요? 금요일 저녁 서울 역 광장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 범국민 추모 대회’에 가득 몰려든 사람들 틈에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무대 위로 유가족 다섯 분이 올라오셨습니다. 한분 한분 마이크를 받아 쥐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느 한 분도 눈물을 섞지 않고는, 울음을 삼키지 않고는 말씀을 못 하시더군요. 한 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이 터지고 나니까 비로소 저희들한테 기자들도 오고 국회의원들도 찾아오더군요. 왜 진작 우리를 돌아봐 주지 않았는지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습니다. 왜 진작 우리를 돌아봐 주지 않았는지...... 그렇습니다. 저는 여섯 목숨이 저 세상으로 가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용산 4구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다가 일이 터진 날 밤에야 부랴부랴 집회 현장에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슬슬 구경하다가 집에 들어와 글 한 편을 썼습니다. 제목도 그럴 듯하게 붙였습니다. ‘죽음이 너무 쉽다’. 그러고는 더더욱 그럴 듯하게 ‘학살의 시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살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답을 찾으면 저도 그렇게 쓸모 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범국민 추모 대회에 나갔고, 거기서도 수첩과 볼펜을 든 채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글감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오늘 밤엔 학살의 의미와 그것과 맞서 싸우는 방법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철거민 분들의 이야기는 글 속에 담아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글쟁이들이 쓰겠지 하는 생각에 오로지 제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잠자코 들여다보려고만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 한 편으로 오밀조밀 잘 꾸며서 원고를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학살이라는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처럼 저 역시 학살을 한낱 글감으로 다루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흐득흐득 울먹이며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말씀하시는 유가족 분들의 목소리는 너 또한 학살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놈이라고, 언제 우리 이야기 들으러 찾아온 적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고 저를 매섭게 다그치는 것 같았습니다. 철거민을 과격한 부랑자들쯤으로 그려 내는 추저분한 기자들은 적어도 비난이라도 듣지만, 이명박 정권은 살인 정권이고 지금 이 시대는 학살의 시대라고 언죽번죽 글 쓰는 저는 깨어 있는 지식인이네 보기 드문 젊은이네 하는 듣기 좋은 말 몇 마디쯤은 주워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쓰레기 같은 기자들이 철거민 분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면, 저는 학살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 저 자신을 멋들어지게 꾸미기까지 하니 철거민 분들을 세 번 죽이는 셈이 될까요?

  홍대 앞에서 정리 집회를 하는 사람들

범국민 추모 대회는 서울 역을 빠져 나와 행진을 시작한 대오가 신촌을 거쳐 홍대 앞에서 정리 집회를 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밤 열한 시 이십 분쯤이었습니다. 서울 역에서 홍대 앞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밤 거리를 재우쳐 걸어가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들과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무얼 얼마나 알고 무얼 얼마나 모르는지 좀처럼 짚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상처와 아픔과 눈물은 가없이 늘어만 가는데 폭력은 변하지 않는 괴물 같은 모습 한 가지로 오래도록 그 상처와 아픔과 눈물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하나? 비정규직? 장애인? 노숙자? 철거민? 가난? 상실? 절망? 이쪽을 보며 글을 쓰면 저쪽에서는 또 누군가가 짓밟히고 있고, 그래서 저쪽을 쳐다보다가 다시 이쪽을 보면 아까보다 훨씬 더 아프게 일그러져 있고, 무엇 하나를 써도 제대로 쓰면 될 텐데 그것조차 잘 못 하고 있고.......

학살에 대해 말하려면 학살을 몸으로 겪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학살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학살을 당해서도 안 된다면 학살을 몸으로 겪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너무나 아슬아슬하고 애매한 위치입니다. 연대 단위? 기록자? 촛불? 무엇이라 불리든 당장 그 어떤 폭력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물음이라면 글쓰기라는 것 또한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는 뒤에 붙어서 따라와야 하는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글쓰기는 ‘행위’일까요? 누가 읽어 줄지도 모르고, 누구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으며, 쓰는 사람조차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 없는 글쓰기도 행위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살인 진압이든 학살이든 글을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임 하나 꾸리고 깃발도 하나 만들어 집회에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철거민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고개를 흔듭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철거민 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인터넷에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와 이제 우리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을 끌어 내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 자체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재개발에 입맛을 다시게끔 만드는 우리 안의 허영심마저 죄다 끄집어 내 뜨거운 햇볕 아래 말려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쫓아낸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다 맞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라져도 박근혜나 정몽준 같은 사람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기다리고 있고,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나라 살림을 제대로 떠맡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며, 체제를 온통 뒤집어 바꾸지 않는 한 무엇을 시도하든 눈에 보이는 큰 성과는 거두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자신 안에 있는 허영심 같은 추악한 것들과 대결하는 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조차 알 수 없는 힘든 일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너무 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큰 이야기들에 너무 오래 몰두해 온 버릇이 지금껏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권 퇴진은 제쳐두더라도, 천민 자본주의가 언제 숨통이 끊어질지, 누구나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오는지 저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안에 허영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깃들어 있는지, 그것을 썩은 이 뽑듯 뽑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과는 반대로 자꾸 거대한 것에만 분개하다 보니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행동이 다짐과 자꾸만 엇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글쓰기가 꼭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권 퇴진이든 자본주의 해체든 우선은 가슴속에다 담아 두고, 먼저 해 나갈 수 있는 작은 것부터라도 좀 차근차근 궁리해 보면 될 것 같았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남은 임기 끝까지 해 먹는다고 해도 좋다. 자본주의가 나 죽을 때까지 끄떡없어도 상관 없다. 지긋지긋한 허영심이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다는 것도 인정하자.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조금씩 해 봐야 겠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이명박 정권을 압박하는 데에 힘을 실어 준다거나, 철거민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나’가 ‘우리’가 되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계속 가는 거다.

설 연휴에도 철거민 분들은 용산에서 계속 농성을 이어가실 거라고 합니다. 1월 31일에는 2차 범국민 추모 대회가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주변 사람들에게 31일에 꼭 함께 가자고 마구 꼬드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퍼하고만 있지 않는 것입니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들 만큼 맵짜게 추운 저녁이었는데도 서울 역 광장을 한가득 메워 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돌아가신 철거민 분들을 생각하며 분명 지독한 슬픔과 분노를 온 마음으로 끌어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슬픔과 분노를...... 나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가슴만 앓고 있는 사람의 슬픔과 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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