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좌파와의 전쟁에 과감히 나서라”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좌파와의 전쟁’을 부추겼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국민의 저항에 부딪혔을 때 ‘MB 일생일대의 결단’을 촉구한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강도는 더 세다.
김대중 고문은 지난 해 6월 16일‘MB 일생일대의 결단’에서 “이 대통령은 실패자가 될망정 배신자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어떤 경우라도 현상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이나 어설픈 행동을 하지 말 것, 둘째, 정부를 다시 짜고 사람을 다시 쓸 것, 셋째, 정치적 결단을 내릴 것 등이었다.
그런데 오늘 자 조선일보에서 김대중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맞닥뜨린 장애물로 ‘인사’와 ‘좌파’를 직접 거론했다. “‘인사’가 용인술(用人術)에 관한 자기 자신의 문제라면 ‘좌파’는 자신이 싸우고 다스려야 할 객관적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김대중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용인술을 두고 ‘소아적 리더십’으로 깎아내렸다. 그리고 용인술 보다 더 큰 문제를 “호시탐탐 그의 발목을 잡는 ‘좌파’의 공세”라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정적까지도 폭넓게 기용하며, 좌파와의 일전을 선언하고, 그의 대통령직을 급진적(radical)으로 수행”하라고 주문했다. “공연히 좌파도 끌어안고, 경제도 살리고, 안보도 키우는 식의 ‘만능 지도자’를 자처할 것이 아니”라 “좌파와의 싸움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들이 잡은 발목을 빼내기 위해서라도 그 싸움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중 고문의 칼럼 두 개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 탈출법을 공통 소재로 하고 있다. 지난 해 6월에는 용인술 정도를 거론했지만, 이번에는 용인술에 얹어 좌파와의 전쟁을 강조했다. 남은 게 대통령이라는 권위와 공권력 뿐이라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쉽게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은 진압작전에서 용역업체가 한 역할을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하루 빨리 명확히 해야 한다. 사실 규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엉뚱한 세력들에게 멍석을 깔아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엉뚱한 세력’은 누굴까.
공권력 외에 남은 게 없다면
검찰은 단일 사건으로는 1986년 건대사태 이후 최대의 검찰력을 동원해 수사에 나섰다. 1월 20일 참사 이후 연행자 22명에 대해 21명의 검사를 투입했다.
검찰은 증거 제시 없이 ‘불이 붙은 화염병’을 화재 원인으로 제시하고, 유족의 동의 없이 사체를 부검했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을 사건의 배후로 몰아 용산 세입자와 전철연을 분리시키고, 시위 도구와 방식을 문제삼았다.
검찰의 이같은 수사 양상은 돌격대,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허점과 의혹이 속속 드러났다. 화재 당시 망루에 있던 철거민의 증언과 동영상, 사진 등을 대조하면 망루를 탈출한 철거민이 사망한 경우도 확인된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를 집중 조사하는 가운데, 현장 검증을 요구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밝힌 당일 경찰과 용역 간 무선교신 내용은 검찰의 발표를 무색케 했다. 검찰은 컨테이너 박스와 망루의 충돌은 없었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이 아니었고, 용역이 진압장소에 없었다고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검찰은 1월 30일로 예정했던 수사결과 발표를 2월 6일 경으로 미뤘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슴아픈 일”이라고 했지만 사과하지는 않았다. 김석기 경찰총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여론을 보며 사퇴와 유임을 저울질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오늘 사설에서 “그는 이유없이 물러나도 안 되고, 물러나야 하는데 버텨서도 안 된다”고 언급했다. 김대중 고문의 조언대로라면 ‘사퇴’보다는 ‘유임’으로, 정면돌파의 강수를 두는 게 수순으로 보인다.
지난 해 광우병 촛불집회의 경우는 여러 수준의 수습책이 있었지만, 철거민 참사를 수습하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의 묘는 없어보인다.
범대위, 시민과 호흡하며 지구전 펼쳐야
이성과 상식은 불길에 휩싸였다. 주검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 비상한 시국이다.
범대위는 1월 20일 사건발생 이후 긴급 대응체계를 구성, 21일 대표자회의를 열고 대책위를 구성했다. 진상조사단 활동에 들어갔다. 범대위는 농성현장에서 매일 저녁 7시 촛불추모제를 열고, 공정한 수사 촉구와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뉴타운재개발정책 철회 등을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
23일 1차 범국민대회에 이어 31일 제2차 범국민대회는 대규모 추모행사로 치를 예정이다. 2월 2일에는 천주교정의평화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갖는 등 청계광장에서 제2의 촛불을 밝혀나간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고문의 말처럼 ‘좌파와의 전쟁’을 불사한다면 이는 매우 불행하고 슬픈 일이다. 용인술은 이미 실패한 것이니 친위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이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시민을 모두 좌파로 몰아 전쟁을 펼치겠다는 건데, 제2, 제3의 참사가 불가피하다.
김대중 고문은 ‘좌파’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뤄 짐작컨대 광우병대책위에 가입한 단체들을 일컫는듯 하다. 응당 범대위를 지목한 셈이다. 비슷한 논조의 문화일보 사설은 “용산 참사를 정략과 선동의 제물 삼아선 안된다”며 내놓고 범대위를 비난하고 있다.
범대위는 이같은 ‘좌파공세’의 프레임에 빠져서는 안 될뿐더러, 감성에 호소하는 선동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시민사회 전체의 공분을 모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범대위 내부의 기조와 요구사항의 쟁점은 시간을 두고 토론해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무리한 대응보다 촛불을 하나씩 더 밝혀나가는 것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29일로 예정된 대표자회의와 31일로 예정된 2차 범국민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가 꼭 중요하다.
김대중 고문이 제기한 전쟁은 이명박 대통령과 친위부대만을 위한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과 흡사하다. 파시즘적 광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떻게든 피해야 할 전쟁이다. 촛불은 생존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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