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너 붓는 동영상' 기사 사실 왜곡

[살인진압] '농성자' '시너' 모두 추정에 불과

조선일보 등 일부언론이 “(서울중앙지검이) 농성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망루 안에서 시너를 계단으로 붓고 있는 동영상을 확보”했다고 보도했으나, '농성자' '시너' 등이 모두 추정에 불과해 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검찰 ‘시너 붓는 동영상’ 확보> 제하의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망루 밖에서 뜯어진 함석 사이로 촬영된 이 동영상에는 경찰특공대가 망루에 1차 진입했다가 후퇴한 뒤 2차 진입을 앞둔 시점에 농성자로 보이는 사람이 시너통을 들고 3층과 4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시너를 뿌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28일 sbs뉴스는 정병두 수사본부장의 말을 빌어 "액체가 '뿌려졌다 멈췄다'한 점으로 미뤄 물대포일 가능성은 적고 농성자가 갖고 있던 '시너'로 추정된다. 다만 누가 이 액체를 뿌렸는지 제대로 영상에 나오지 않아 대검찰청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고 보도했다. 사진/sbs뉴스 캡쳐

이에 대해 진상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장서연 변호사는 “‘농성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동영상에 나오지 않았고, ‘시너’에 대해서도 추정에 불과한데 마치 철거민이 시너를 뿌려 화재를 일으킨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연 변호사는 “검찰이 밝힌 동영상은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다가 발견한 것으로, 당시 3면에서 망루를 향해 물대포를 집중 포화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물인지, 시너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장서연 변호사는 “화재 발화지점과 감식 결과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처럼 보도하는 것은 유죄 여론을 꾀하는 것으로, 철거민에 대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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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용산 , 철거민 , 참사 , 살인진압 , 장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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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지

    충격증언 | 전국철거민연합의 추악한 실체


    "그들이 철거민들을 테러하고 쫓아냈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은 항상 철거민 운동의 맨 앞에 있었다. '지상의 방 한 칸' 조차 누릴 권리도 없이 용역깡패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뭉게지는 철거민들의 싸움마다 전철연이 함께 있었다. 이 '처절한' 싸움의 과정에서 철거민의 '죽음' 까지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겠지만 이 투쟁의 배후에는 생존권을 볼모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전철연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오성 기자 dodash@digitalmal.com


    기자는 지금 참담한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수구권력의 폭압을 고발하거나 파렴치한의 비도덕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싸우는 한 '민중운동 조직'의 행태를 폭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호에서 「취재수첩/전철연과 철거민들과의 씁쓸한 불화」를 통해 전철연과 안암동 철거민들 간의 갈등상황을 보도한 바 있다. 전철연측이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안암동 철대위에게 본때를 보이기 위해 학생규찰조를 철수시켰고, 그로 인해 안암동이 철거용역들에 의해 초토화됐다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그 후에도 사과와 반성은커녕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민을 철대위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등 주민분열을 '획책'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안암동 사태를 취재하는 내내 전철연의 '실체'에 대한 부정적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확인되지 못한 여러 소문들이 떠돌기도 했다. 대부분 안암동의 경우처럼 자신들을 '추종'하지 않는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기자가 지난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동3동 철거투쟁에 대해 '충격적인' 증언을 들은 것은 9월호 마감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이었다.
    1977년7월25일 서울시 전농동 재개발지역 철거 중 망루에서 떨어져 사망한 고 박순덕씨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 직후 많은 운동단체들과 대학생들이 철거싸움에 헌신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감추어진 진실은 또 다른 곳에 있었다. 8월14일 밤. 기자와 마주 앉은 김홍섭씨(51, 당시 전농3동 철대위원장)는 박순적씨가 사망하기 한 달 전 전철연측이 주민들을 '테러'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악몽'을 떠올리듯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6월23일 새벽 4시였다. 검은 옷에 복면을 쓴 15명의 사람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골리앗(철거민들이 세운 고공망루)을 침탈했다. 당시 골리앗을 지켰던 주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쇠파이프로 온몸을 두들겨 팼다. 처음엔 이들이 철거 용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같은 주민들이었다. 박순덕씨도 거기 있었다. 골리앗 근처에 살던 주민들마저 모조리 쫓아냈다. 6월23일은 바깥에 알려진 것처럼 그들의 골리앗 농성을 시작한 날이 아니라 디데이를 잡고 골리앗을 빼앗은 날이다."

    6월23일. '주민테러사건'의 진실
    1977년 당시 전농동 철거민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었다. 이날 '테러'를 자행한 이들(7가구)은 전철연에 속해 있었고, 김홍섭씨를 비롯한 나머지 주민(30여 가구)들은 전철연과 거리를 둔 상태였다. 전철연측에 속해 있던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과 단절한 채 모든 일을 전철연 중앙과 논의하면서 골리앗 규찰에도 나서지 않았다. 안암동 이영철 위원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김홍섭씨도 전철연에 의해 여러 음해를 당하고 있었다.

    이들이 전철연의 지시를 받은 건 어떻게 알았나?
    "사건이 벌어진 후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전철연의 이태교 의장, 남경남씨(현 전철연 의장), 수색 철대위원장 등이 사수대를 끌고 골리앗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이 들여보낸 15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철연이 타지역의 철거민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네 군데에서 밀고 들어갔다. 그들은 골리앗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선 우리 주민들이 짐을 챙기려고 자기 집에 접근만 해도 화염병과 돌맹이를 던져댔다. 같은 주민들한테 말이다. 그날 저녁쯤에 그들이 우리 주민 전부를 전농동 네 거리까지 몰아냈다. 그때에도 전철연 간부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골리앗을 뺏은 이유는 뭔가?
    "내가 주민들을 설득해서 SK 건설로부터 돈 받아먹고 싸움을 끝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와 임원들을 제명하면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했다. 결국 자기쪽 사람들로 전농동을 접수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날 '철거민으로부터 쫓겨난' 30여 가구의 주민들은 졸지에 철거민이 아닌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쫓기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만도 30명을 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피부에 경련이 인다. 같은 철거민을 어떻게 그렇게... 그런데 당시에 누구도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전철연은 우리를 돈 받고 타협하려 하는 더러운 놈들로 몰았다."
    '내전'이 벌어진 다음 날. 경찰이 골리앗 주위를 샅샅이 포위한다. 30여 가구의 주민들은 자기 집을 빼앗긴 채 근처에 천막을 치고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전철연측 주민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였지만, SK측과의 합의를 거부하고 가수용단지를 계속해서 요구했다. 박순덕씨가 투신한 7월25일,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박순덕씨만 골리앗에 남아 있게 된 이유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 후 골리앗에서 하도 돌과 화염병이 날아오니까 우리가 SK측에 안전모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골리앗에 남아있던 부녀자 7명이 SK측에 쳐들어가 왜 주민들에게 안전모를 지급하느냐며 항의를 하다 붙잡혔다. 우리가 SK측과 내통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날 박순덕씨는 밥하는 당번이라 빠졌고, 결국 여자로선 박순덕씨 혼자 골리앗에 남게 된 상태에서 7월25일 강제철거가 자행된 것이다"
    결국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결과,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끝내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주민들을 분열시켜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전철연이 어떻게 운동조직인가"라며 "박순덕씨를 죽음으로 내몬 데에는 전철연의 책임이 크다"고 치를 떨었다. 그는 "나 말고도 이를 증언해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진실을 알려줄 것을 호소했다.
    김홍섭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거쳐 SK측과 합의를 시작한 것은 박순덕씨의 사망사건이 일어난 후였다. 이들은 모두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골리앗을 침탈하면서까지 극한 투쟁을 벌였던 나머지 7가구는 수감생활을 끝내고 1999년 7월에서야 SK측과 임대아파트 입주문제를 '합의'한다. 오히려 세월만 낭비했을 뿐, 마찬가지 결과였다.(전철연은 자신의 홈페이지(www.nodong.com/junchulyun)를 통해 이 '합의공증서'를 승리쟁취의 '증거'라며 내세우고 있다.)

    전철연은 '안암동 침탈'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커다란 문제는 전철연의 이 같은 행태가 여전히 '현재진행'이라는 점이다. 전철연은 왜 이처럼 주민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일까. 이영철 안암동 철대위원장은 "자꾸 주민들을 제명시키라고 하는 것부터 이상했다"고 주장한다.
    "규찰 못 서면 벌점 10점, 집회에 안 나오면 벌점 30점, 이런 식으로 벌점이 어느 정도 되면 회원을 제명토록 한다. 먹고살기 힘든 철거민들이 어떻게 매번 집회에 참가할 수 있나? 결국 전철연을 개처럼 따르는 몇 명만 남겨둔 상태에서 건설회사측과 손쉽게 합의를 보고 우리가 승리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지금 전철연에 속한 지역들 중에 다섯 가구 이상 남은 지역이 거의 없다. 이건 건설회사가 원하는 숫자 아닌가."
    침탈사건 이후 안암동 주민들과 학생들은 전철연의 '음모'를 파헤칠 수 있는 여러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다. 지난 7월17일. 이들은 철대위 규찰부장으로부터 "전철연이 7월9일 철거용역의 침탈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충격적 증언'을 확보한다. 침탈이 있기 전 전철연 고천만 부의장이 '자기 사람'인 정중영 총무에게만 "빠져나가라"는 지시를 내렸고, 정 총무가 측근인 규찰부장에게 이를 알렸으나 그가 결국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규찰부장이 털어놓은 고 부의장의 지시사항은 이렇다.
    "일주일 이내에 전철연 중앙이 안암에서 손을 떼고, 주민들을 몰아낼 것이다. 학생 단위들도 며칠 안으로 한 명도 못 들어오게 하겠다. 며칠 뒤에 철거용역들이 안암을 칠 테니까 정 총무는 빠져 있어라. 짐까지 빼면 명분이 없으니까 몸만 나가라. 침탈 후에 주민들이 분산되면서 철대위가 금방 와해될 것이다. 그때 다시 학생들과 함께 들어가서 골리앗을 건설한 후 중앙의 지원을 받으며 목숨을 걸고 싸워라. 목숨을 내걸겠다는 약속을 해라."
    침탈 직후부터 제기됐던 전철연의 '음모설'이 사실임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침탈 당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영철 위원장이 전철연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고 부의장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안암동 주민들이 훈련이 덜 됐으니까 적당히 싸우다 말아라"며 태연히 대답했다. 침탈소식을 듣고 안암동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전철연측 간부들이 입구에서 막았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규찰부장의 증언대로라면 '안암동 침탈'은 전철연의 '자작극'이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그는 전철연이 철거투쟁 때마다 골리앗 설치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주장했다.
    "건설회사와의 합의과정에서 골리앗 철거비용으로 3천만 원을 받아낸다고 한다. 2천만 원 정도는 주민들 주고, 1천만 원 정도는 저희들끼리 먹는다고 전철연 의장단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철연이 주민들에게 카드빚을 내서라도 골리앗 건설비용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고 있다. 이게 빈민운동인가."

    가난을 파는 운동의 추악함
    기자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며 놀라움과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복마전'을 연상케 하는 전철연의 실체에 놀랐고, 이들이 여전히 '비타협적 빈민해방투쟁'을 이끄는 '운동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데에 참담했다. 전철연으로부터 '타협적 개량주의자'로 비난받고 있는 '전국철거민협의회'의 이호승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철거민이 목숨을 잃는 데에는 철거민운동진영의 책임이 절반은 된다"며 "철거민을 노숙자, 범죄자로 만드는 도시게릴라전 같은 철거투쟁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지난달. 『말』의 취재요청에 전철연 간부는 "철거민들의 목숨을 건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에 흥밋거리 같은 이야기를 취재해서야 되겠느냐"며 취재를 거부했다. 이제 이 사태는 '흥밋거리'의 도를 훨씬 넘어섰다. 전철연측은 이 사태에 대해 '조직의 생명'을 걸고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2002년 현재. 전철연의 '그물망'에 노출돼 있는 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이 전국적으로 2백만 명에 이른다는 현실이 비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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