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용산 진압 vs 이명박 후보의 BBK

닮은 꼴 ‘해명’ 혹은 ‘거짓말’…검찰도 그때처럼?

당초 경찰은 “진압작전은 시민안전 차원의 결정”이라며 “용역업체 직원들은 작전 개시 전 모두 철수했다”고 발표했지만,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속속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용역업체와 합동 작전’을 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유정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공개한 경찰 무전통신 기록(20일치)을 보자.

“아울러서 용역 경비원들 해머 등 시정장구를 솔일곱(지참)하고 우리 병력 뒤를 따라가지고 3층에서 4층 그 시정장치 해제할 진중(진행중)입니다”(오전 6시 29분 42초)
“일팔(알았다). 경넷(경찰 네 명)과 함께 용역경비원들 시정장구 솔입곱(지참)하고 3단 4단(3층과 4층) 사이 설치된 장애물 해체할 진중. 일팔”(오전 6시 29분 59초)

이에 서울경찰청은 곧바로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건물 외곽에 있던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이 서울경찰청 경비과 관계자에게 무전으로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황을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며 “전날 용역업체 직원들이 내부진입을 시도하는 것을 경찰이 여러 차례 차단한 적이 있어 순간적으로 오인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2009년 1월 28일치 6면 기사

다시 김 의원은 24일 현장 특공대원과 지휘본부 간 오간 20일치 무전내용을 추가로 공개하며 경찰의 해명을 전면 반박했다.

“건물 2단에 철거반들이 있는데 왜 시정(잠금)이 됐지요?”(오전 6시25분08초)
“그 용역들은 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밖으로 전부 철수한 것 같습니다”(오전 6시25분16초)
“아니 철거반원들이 3, 4층에 있는 장애물 제거 설치를 해야지, 가급적이면 철거반원들이 설치하도록 하고 만약에 바로 설치가 안 되면 우리 경찰력이라도 3, 4층 장애물을 신속하게 제거하도록…”(오전 6시25분42초)

이에 대해 경찰은 “무전내용으로만 보면 오해를 살 만하지만 철거현장 밖에 있던 보고자가 착각해서 잘못 보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니까 무선교신 기록에 대한 경찰 해명의 핵심은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 경찰의 해명, 어딘가 익숙한 내용 같아 보인다. 지난 2007년 대선국면을 뜨겁게 달군 ‘BBK 주가조작사건’을 돌아보자.

당시 이명박 후보자는 해당 사건에 등장하는 여러 회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이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밝혀졌다. 이 후보자가 BBK 소유자임을 추론할 수 있는 2000년 당시 <중앙일보> 등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나 그의 대표직 명함들, e뱅크코리아 및 MAF 홍보책자에 회장으로 소개된 사실 등이 존재했고, BBK LKe뱅크, EBK 정관 등에 ‘발기인인 이명박과 김경준이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기재돼 있었다.

이외에도 대선 직전, 지난 2000년 10월 광운대 최고경영자특강에서 이명박 후보자의 “BBK를 내가 창업했다”는 육성이 담긴 이른바 ‘광운대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 증거들에 대한 이명박 당시 후보자의 해명은 “김경준을 홍보할 목적이었다”, “이 모든 (BBK 주가 조작) 과정을 김경준씨가 주도했으며 나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명박 당시 후보자의 해명은 “몰랐다”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경찰은 모두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이를 ‘주관적’으로 해명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치 청문회에서 부도덕과 비리 사실을 들이대면 저마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는 익숙한 변명을 내놓는 것처럼.

  한겨레 2007년 11월 12일치 5면 기사

이러한 해명을 대하는 검찰의 수사태도 또한 놀라웠다. 2007년말 BBK사건 특검은 △김경준씨와 이명박씨 등 당사자들 간 대질조사도 행하지 않았으며 △이명박 당선인과 식사를 겸한 불과 3시간 동안의 방문조사를 통해 피내사자 신분의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등의 수사태도를 보이며 수사를 종결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역대 특검 중 최단 기간인 36일로 수사를 끝낸 BBK특검팀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가조작 등 BBK 관련 의혹 △도곡동 땅, (주)다스 주식 등 차명소유 의혹 △상암DMC 특혜분양 의혹에 ‘관여하거나 공모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당시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특검의 수사 의지 및 공정성,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우리는 특검 수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으며, 국민적 의혹에 대한 당선인의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천명한다”고 특검을 맹비난했다.

2009년 초 검찰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찌감치 용산 철거시민 5명을 구속하고 관련자들을 서둘러 체포하는 반면, 경찰과 용역업체의 과잉진압에 대한 수사는 꾸물대며 진행하고 있다. 해당 동영상과 유족들의 ‘경찰·용역 합동 작전’ 의혹에도 움직이지 않던 검찰은, 김유정 의원의 무선기록 공개에도 사흘이나 지난 후 용역업체 수사에 들어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검찰은 김석기 서울지방검찰청의 소환을 놓고 상당히 고심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청와대가 문책을 미루며 검찰에게 떠넘기려는 꿍꿍이가 한몫 작용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 진상조사단은 보다못해 “경찰이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벌인 과잉 강제진압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만큼 업무상 과실 치사혐의가 인정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관계자와 용역업체를 고발하면서 검찰의 공정수사를 촉구했다.

야당은 용산참사와 관련 국정조사 실시와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용산 참사 관련 특검이 실시된다면, BBK 특검팀을 능가하는 초단기 수사 종료 기록을 갱신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 검찰이 수사하듯 하면 된다. 객관적 증거를 물리치고 주관적 해명을 채택하는 수사는 진실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므로.(정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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