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뉴스는 밥 먹으며 보면 안 된다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싸이코패스와 용산 철거민

요새 뉴스는 절대로 밥 먹으면서 보면 안 된다. 옛 노래 제목처럼 험한 세상에 다리는 못 되더라도 자기 몸 하나 보살필 수는 있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편히 앉아 오물오물 밥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찬과 밥그릇 사이를 오가야 할 내 시선을 한참 동안이나 비끄러매 놓도록 TV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죄다 욕지기가 치미는 것들 뿐이다. 젓가락질 몇 번 하다가 금세 어처구니가 없어지며 입안에 군침이 고이도록 멍하니 있게 되기 일쑤다.

2월 3일 화요일 오전,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고, 뉴스들은 요 세 가지 이야기가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 연쇄살인범 ㄱ모씨가 너무 혐오스럽다
- IMF가 한국 경제 성장률을 턱없이 후려 깎았다
- 용산 참사는 전부 철거민 탓이다

옆에서 빈 종이에 뭔가를 끼적이시던 어머니께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어쩜 저렇게 얼굴을 공개해 버릴 수가 있어요? 저 살인범 가족들이랑 친척들은 어떡하라구?”

어머니는 별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뜨악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당연히 공개를 해야지. 그렇게 나쁜 놈을 그럼 그냥 둬?”

“살인범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쳐도, 애꿎은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데두요?”

“자기 가족들이 피해를 받는 줄 알아야 다른 나쁜 놈들도 나쁜 짓을 안 저지를 거 아니니.”

“에이, 나쁜 짓 저지르는 사람들이 어디 자기 가족 생각해 가면서 저지르나요? 인터넷에 보면 가족들이랑,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얼굴 공개해야 한다고 난리 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거 연좌제 아니에요? 그리고 어차피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일 텐데,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거라면 다시 사회로 나와서 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닐 수도 없을 테니 굳이 얼굴을 공개할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살인범 얼굴 까 보이라는 게 무슨 놈의 얼어죽을 알 권리야?”

“너는 가해자 가족들 생각만 하니? 피해자들 가족 생각은 안 해?”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피해자들 유가족에게 도움 되는 게 있어요? 그리고 얼굴 공개해야 죄를 안 저지른다면 살인범 말고도 강도, 사기꾼, 폭력배 뭐 이런 사람들의 얼굴까지 전부 공개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얼굴 공개한다고 해서 범죄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어요.”


TV에는 ㄱ모씨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현장 검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고 일어나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몇몇씩 늘어나 있어서, 저 화면 속에 있는 거칠거칠하게 수염 난 사나이가 도대체 다 합해 몇이나 죽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하느라 입에 물고 있던 것들을 혀로 잘 섞어 꿀꺽 삼키고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떠올렸다.

원래 제목은 길지만 사람들이 줄여서 ‘우행시’라고 부르던 소설책이 있었다. 가뜩이나 좁아 터진 문학 출판 시장을 송두리째 휩쓸어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책이 되었고, 선남선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꽤나 인기를 끌었다. 사형수와 어느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알 듯 말 듯한 관계 맺음이 주된 내용이었던 그 책에서, 알베르 카뮈가 쓴 <단두대에 관한 성찰>의 한 대목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다. 뭐라고 썼더라. 사형의 본질은 결국 복수라는 말이었나? 이제는 널리 알려져 굳이 카뮈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누구나 들어본 적 있을 법한 유명한 표현이 되어 버린, ‘사형의 본질은 복수’.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 역시 사형이란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벌이는 화풀이 굿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축이다. 사형수가 죽든 말든 이미 저질러진 범죄는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형도 뭣도 아닌 그저 얼굴을 온 나라 사람들에게 뒤집어 까 보여 주는 것. 그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복수도 알 권리도 아닌 그저 심심풀이 호기심이 아닐까?

아니 그 전에, TV에서 툭하면 보여 주는 저 얼굴 거무튀튀한 사나이가 정말 범인이긴 할까? ㄱ모씨를 기소할 수 있는 모든 증거가 벌써 다 갖추어졌을까? 판결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저 용의자일 뿐 아직 범인이라고 하기는 이르지 않을까? (아마 그걸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부를 것이다.) 도대체 이놈의 정부가 하는 짓을 믿어 처먹을 수가 있어야지. ㄱ모씨가 범인이든 아니든 그동안 쭉 묵혀 두다가 용산 살인 진압에서 사람들 관심을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일부러 검찰 수사 발표가 얼마 안 남은 즈음에 짜잔 하고 터뜨린 건 아닐까? 물론 터무니없는 상상인 줄은 알지만, 걸핏하면 죄 없는 사람들 잡아 들여 못 살게 구는 이명박 정부를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일부러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쳐도, 언론이고 인터넷이고 왜 이리 마녀사냥 하듯 ㄱ모씨를 몰아 대는 걸까? 판결이 끝나고 형이 확정된 다음에 몰아대도 늦지 않을 텐데. 이제는 숫제 정신과 의사니 범죄심리학 교수니 하는 전문가들까지 방송국에 모셔다 놓고 싸이코패스가 어쩌니 범죄심리가 어쩌니 하는 강연까지 부탁해 듣는 판국이었다. 몇몇 신문들은 ㄱ모씨의 온전한 얼굴을 대문짝 만 하게 싣기도 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첫 화면, 가관이다.

싸이코패스. 일본 소설가 기시 유스케가 쓴 <검은 집>이라는 소설이 있다. 나는 싸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이 소설에서 처음 보았다. 나중에 소설이 한일합작 영화로 만들어지자 싸이코패스라는 말이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죄의식도, 동기도 없이 살인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싸이코패스는 그런 식으로 쉽게 뜻이 매겨졌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있어서 사회 구조적인 요인이 어느 정도나 차지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원래 싸이코패스였대, 라고 설명하기만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작 소설 <검은 집>을 보면, 사회 구조적인 요인을 빠뜨린 채 범죄의 원인을 오로지 인간에게만 덮어 씌우는 싸이코패스라는 개념이 과연 인간을 고민하는 데 있어 정당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물이 나온다. (영화 ‘검은 집’에서는 그 인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는 의심스러운 것이다. 왜 언론은 싸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뉴스를 도배해 가며 범죄의 책임을 몽땅 ㄱ모씨에게만 뒤집어 씌우고 있을까? 용산 살인 진압이나 비정규직법 개악은 정치꾼들에게나 맡기고 다같이 살인범이나 때려잡자는 듯 난리굿을 치고 있는 언론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정말 ㄱ모씨가 범인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는 인간 백정이 되었는지 추적해 보는 것이 전문가를 모셔올 돈푼이나 가지고 있는 방송국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ㄱ모씨가 배냇살인자라도 된단 말인가? 싸이코패스라고 편하게 얘기하고 넘어가면 끝일까? 정말 ㄱ모씨를 둘러싸고 있는 이 벌어 처먹을 놈의 사회는 아무런 잘못이 없을까?

아버지가 살인범인데 가족들이 무슨 낯으로 한국에서 사느냐고, 당연히 외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 연좌제 아닌가. 인권이고 뭐고 물에 밥 말아 먹듯 후루룩 처마셔 버린 사람들이 나는 무서웠다. 살인범에게 무슨 인권이냐고 거세게 을러대는 사람들, 이해는 갔다. 유가족들이 겪고 있을 상상도 못할 슬픔을 감히 짐작하려고만 해도, 생판 남인 사람들마저 ㄱ모씨를 찢어 죽이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인권이라고 해 봤자 ㄱ모씨를 풀어주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이라도 감추어 주자는 것이다. 판결이 떨어질 때까지만이라도 너무 죽일 놈 취급을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어차피 ㄱ모씨는 어떻게든 공권력의 손에 숨통이 끊어질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살인범의 인권은 지켜 줄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지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는 자기네들이 꾸리는 사업에 반대하려는 무리들(촛불 시민이라 해도 좋고 노동자 대오라 해도 좋고 철거민이라 해도 좋다)에게 간단히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인권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한 채로 무시무시한 짓거리들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감금, 고문, 협박, 녹화사업, 구타, 백골단, 의문사...... 옛 군사 독재 정권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독버섯처럼 키우던 흉측한 단어들이 머리를 스쳐 간다. 독재 정권이 반체제 인사들에게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우는 일은 세계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았나!

살인범의 인권은 필요 없다, 라는 주장에 사람들이 점점 무덤덤해지고 나면 아마 그보다 조금씩 더 낮은 단계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강간범의 인권은 필요 없다, 유괴범의 인권은 필요 없다, 사기꾼의 인권은 필요 없다, 도둑놈의 인권은 필요 없다..... 그러다가 사상범의 인권은 필요 없다, 불법 집회 가담자의 인권은 필요 없다, 라는 단계까지 간다면?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다 허무맹랑한 상상일 수도 있다. 나는 ㄱ모씨를 편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 주자는 것이다. 얼굴을 아무리 공개해도, 목을 매달든 사지를 찢어 버리든 전기의자에 앉히든 온갖 고약한 방법으로 죽여 버린다고 해도, 유가족들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ㄱ모씨의 인권도 인권이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ㄱ모씨의 가족이다. (심지어 ㄱ모씨와 이름이 같은 사람들까지 인터넷에서 테러를 당하고 있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ㄱ모씨의 가족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ㄱ모씨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ㄱ모씨의 얼굴만큼은 공개해선 안 되었다. 독자와 시청자들을 낚으려고만 하는 저질 언론들은 이미 사진을 입수해 버젓이 내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사형 제도 자체가 문젠데..... 사형을 집행하면 정말 유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왜 꼭 죄인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할까? 화풀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유가족들에게 화풀이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할까? 지금 상황에서 사형 제도 폐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꺼내다간 몰매 맞기 십상이겠지? 하지만 몇 주만 지나면 언제 이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람들은 다 잊어 먹을 테고.... 어느새 화면이 바뀐 뉴스는 IMF가 2009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다른 아시아 나라들 보다 한참 낮추어 잡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껏 침울해졌다.

경제 성장률을 재는 기준은 뭘까? 경제에 대해서라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뿐 아니라 기역자 보고도 낫을 모르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기가 어렵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껏 불쑥불쑥 종주먹질하듯 들이댄 정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졸 초임자들의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 고용 시한만 우격다짐으로 늘리려 하고, 고용을 창출한답시고 4대 강 정비 사업을 발표하고, 행정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직 일자리만 왕창 만들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여름에 자신을 물 먹인 ‘촛불 시민’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놈들 어디 한 번 쪼들려 봐라! 촛불이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에 내 속이 다 썩어 문드러졌다! 가난이 뭔지 배고픔이 뭔지 똑바로 깨닫게 해 주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부러 나라 살림 쪽박 차게 만드는 정책들만 쥐어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다 먹고 살기 바빠지면 촛불을 들 시간에 일하느라 정신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나는 밥을 씹다 말고 쿡 웃고 말았다. 있음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식과 무지와 몰지각을 흉내내 가며 궁뚱망뚱 복수를 한다는 발상은 이명박 대통령과 아주 잘 어울리고도 남았다.

갑자기 TV 화면에 낯익은 광경이 비쳤다. 흉하게 일그러진 거무칙칙한 건물, 용산 살인 진압 현장이었다. 곧이어 화면에는 험악하게 생긴 검찰청 건물이 비치며 “검찰에서는 용산 참사의 책임이 모두 용산 철거민에게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는 밥을 씹다 말고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뉴스 진행자의 감정 없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검찰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의 무리한 진압은 경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소환하지 않기로...... 경찰은 연행된 철거민들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철거민들을 모두 기소하겠다고.....”

2월 6일에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이쯤 되면 볼장 다 본 것이었다. 여섯 목숨이 억울하게 죽어 간 것은 모두 철거민들의 과격 시위 때문이니 박장규 용산구청장에게도, 김석기 경찰청장에게도,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소리였다. 앞으로도 거리에서 불법 집회가 열리는 날에는 경찰 특공대가 아니라 경찰 특공대 할아비라도 투입해 그악스럽게 진압하겠다는 소리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찍소리 말고 얌전히 코 박은 채로 따라오라는 소리였다. 물론 검찰이 어떻게 발표를 할지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검찰이 혹시라도 철거민들 편을 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현금 인출기에서 돈 뽑을 때 혹시라도 만 원 정도 더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검찰에 기대를 걸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화가 날 뿐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경찰들을 풀어 얼마든지 때려잡을 수 있으니, 그리고 때려잡았다는 소식도 언론에 안 나가게끔 할 수 있으니 딱히 거리낄 것 없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김석기 내정자를 경찰청장 자리에 앉히기만 하면 마치 인터넷 온라인 게임하듯 물대포와 전경들이라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다고 어린애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생각하는 것이다. ‘임기도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뭘..... 진보? 좌파? 인터넷에서 아무리 떠들어 봤자 소용 없어. 대한민국은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꾸려 나가는 게 아니야. 거리로 나오기만 해 봐. 바로 묵사발을 만들어 줄 거야. 어차피 늬들은 내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무서워하거나 관심을 끄게 돼 있어. 불법이라 낙인 찍기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가.....’

순간 나는 사레가 들려 캑캑거렸다. 콜록! 콜록!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도 아니었고 사랑은 기침처럼 감출 수 없단다, 도 아니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생각이 너무나도 빨리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 버린 것이다.

‘살인범의 인권은 지켜 줄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지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는 자기네들이 꾸리는 사업에 반대하려는 이들에게 간단히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인권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한 채로 무시무시한 짓거리들을 저지를 수도 있을 거야.....’

여섯 목숨이 스러져 간 책임이 모조리 철거민에게 있다고 이명박 정권과 검찰은 천연덕스럽게 선언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마땅히 구속되어 수사를 받아야 할 김석기 내정자가 실실 웃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 죄 없는 철거민들은 줄줄이 끌려가 재판을 받게 생긴 것이다! 전국철거민연합을 박살내기 위해, 더 이상 철거민들이 쓸데 없이 조직을 만들어 정부에 맞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몇몇만 골라 본때를 보여 주기로 한 것이다!

“살인 진압?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어요. 다 철거민들이 과격하게 불법 점거 농성을 해서 그렇게 된 거라구요. 결국 생목숨 여섯은 철거민들이 죽인 것과 다름이 없죠. 저희도 정말 안타까워요. 화염병과 새총만 안 썼으면, 시너로 불만 안 질렀으면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딴 식으로 정부와 검찰이 입을 모아 지껄이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용산 철거민들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에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라면 용산 철거민들과 함께 하려는 모든 이들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에 원인을 제공한 이들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일 테니, 폭력으로 진압하든 개 끌고 가듯 무작정 전경 버스에 처넣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검찰이 그 개떡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거리에서는 들불이 일 듯 규탄 집회가 벌어질 테니, 집회 대오를 폭력으로 마구 진압할 수 있는 명분이 이명박 정부에는 반드시 필요해진다. 그것이 이유다. 불법 배후 세력들은 어쩔 수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동원하면서까지 진압을 해야 한다고, 용산에서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그들은 징그럽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 것이 분명하다.

  지난 1월 20일 밤에 동원된 전경들과 물대포

무서웠다. 사레가 겨우 진정되고 나서도 나는 좀처럼 밥술을 뜨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을 싸이코패스 정권이라고 불러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싸이코패스는 없다. 싸이코패스라는 가짜 담론으로 온갖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안 보이도록 뒤덮어 버리는 교묘한 수작이, 싸이코패스 한 놈쯤은 인권이고 뭐고 마구 유린해도 상관 없다는 너무나도 무서운 공감대가, 용산 철거민들은 대참사의 원흉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동조하는 무리들은 전부 다 불순 세력이자 폭력으로 해산 당해도 상관 없는 불법 시위자들이라는 정부의 논리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김석기 내정자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수많은 이들이 전부 다 싸이코패스로 보일 것이다. 구제할 길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로 보일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회부적응자들 따위는 얼마든지 잡아 족쳐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미련한 놈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작년 여름에 오만 가지 힌트를 던져 주지 않았나! 색소 물대포, 경찰 기동대, 폭력 진압, 원천 봉쇄.....

광인, 즉 미친놈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예부터 누군가를 이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싸이코패스라는 개념은 그것이 기질에 지나지 않고 그 기질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 구조적인 부분이 어떻게 사람의 성장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논의가 있긴 하지만 성장을 해 가는 와중에 특정한 사건을 겪어서 그렇게 되었다고만 이야기할 뿐 그 일이 ‘왜’ 생겼고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맥락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그런 거라고 이야기하니 아무도 더는 할 말이 없게 된다. ㄱ모씨가 정말 범인이라면 그는 지금껏 드러난 범행들만으로도 감방에서 평생을 썩거나 교수형을 당할 것이다. 싸이코패스라고 부르든 말든 ㄱ모씨는 이미 죄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막상 중요한 것은 ㄱ모씨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지 ㄱ모씨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거나 가족들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막말을 퍼붓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언론은, 경찰은, 검찰은, 교수들은, 학자들은, 누리꾼들은) 오로지 ㄱ모씨를 싸이코패스라 부르며 모든 사회적 논의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빨갱이, 즉 불순 세력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예부터 누군가를 이 사회 바깥으로 밀어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불순 세력이라는 개념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덮어 씌운 이미지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순’이라는 규정을 내리는 것이 누구인지, 그 힘은 누가 쥐고 있는지, 누가 누구에 대해 불순하다는 것인지, 불순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논의가 있긴 하지만 법을 어기고 질서를 해쳤으니 불순하다고 할 뿐 법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 법을 휘두르는 권력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불법이니 안 된다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고 이야기하니 아무도 더는 할 말이 없게 된다. 경찰 한 명까지 모두 여섯 목숨이 한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런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무모한 재개발 사업을 모조리 집어치우는 것이지 돌아가신 철거민 분들에게 불순 세력이니 배후 세력이니 하는 낙인을 찍어 유가족들의 가슴에 두 번 세 번 거듭 못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언론은, 경찰은, 검찰은, 교수들은, 학자들은, 누리꾼들은) 오로지 화염병과 새총에만 초점을 맞춘 채 철거민 분들에게 과격한 농성꾼이라는 이미지를 덕지덕지 칠하며 이번 참사의 책임은 바로 그 과격 농성꾼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모든 사회적 논의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 뿐이다.

(일부러 두 단락을 단어만 살짝 바꾸어 가며 써 보았는데, 섬뜩할 정도로 들어맞는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ㄱ모씨에게 죄가 없다거나 ㄱ모씨를 풀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확실히 드러난다면 그는 아마 모질게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ㄱ모씨의 인권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책임을 ㄱ모씨에게 돌리기에는 ㄱ모씨가 지금껏 살아 온 이 세상 역시 불합리하고 더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착하고 바르게 사는 이상적인 세상이 있다고 치고, 그런 세상에서 갑자기 ㄱ모씨 같은 연쇄살인범이 튀어나온다면 그 사람의 인권은 무시당해도 될까? 이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역시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ㄱ모씨와 용산 철거민 분들을 같은 입장으로 묶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둘의 입장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언론과 정부가 주도해서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는 여론몰이의 작동 방식이랄지, 과정이랄지, 돌아가는 꼬라지가 너무나 닮아 있는 것이다. 싸이코패스라는 개념과 ㄱ모씨는 어떤 사회적 맥락에 위치하는지, 서울시 재개발 사업과 용산 철거민 분들 역시 어떤 사회적인 맥락에 위치하는지, 음흉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눈가림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왜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덧 TV 화면은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했다는 소식을 들려주고 있었고, 수화기를 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밥맛을 깡그리 잃어 버리고 말았다. 저승사자 같았다. 거대한 흑사병을 몰고 올 재앙의 사자 같았다. 나는 다시는 밥 먹으면서 뉴스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선 TV를 꺼 버렸다. 밥이 무슨 죄가 있을까, 시대가 죄지, 하는 생각을 하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먹어야 했다.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먹으려면 아무래도 꾹 다문 입을 벌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실없이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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