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만행을 보라!

[추모시] 용산 참사 진실회복 촉구 문화예술인 선언 중에

이것이었던가, 아
2009년 1월 20일 아침 6시,
이 나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가운데
21세기 최첨단 매머드 빌딩숲 가운데에서
검은 연기에 휘감기며 치솟는 화염을 보았는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는가!
붉은 화마에 휩싸인 피끓는 절규를 들었는가!
아, 이것이던가
언제부턴가 밤마다 꿈마다 가위눌리게 하던 악몽이
뜬눈으로도 무시로 덮쳐오던 공포의 검은 그림자가

이렇게 시작되는가
이렇게 오고야 마는가, 오지 말아야 할 것이,
꾸지 말아야 할 악몽이, 흐린 안개의 시간을 걷어내고
저 불길처럼 주저 없이 오고야 마는가

바로 이것이었던가, 그렇다, 우연은 없었다
모든 건 예정된 시간이었다
분단의 역사를 건국의 역사로 뒤집어놓더니
피흘려 이룬 민주주의를 시궁창에 내다버리더니
백색테러로 세운 나라를 역사의 정통으로 세우려하더니
마침내 인간의 마지막 생존권마저 화마에 밀어넣기에 이르렀다

아, 그렇다
처음부터 저들이 철거하려던 것은 낡은 집들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였다
저들이 강제로 부수고 내쫓으려던 것은 낡은 도시가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자들의 권리와 주권과 생존권이었다

민주주의를 철거한 자리에
거대한 재벌타운을 세우고
생존권을 철거한 자리에
1프로 귀족들의 화려한 도성을 쌓고
생존의 저항권을 짓밟은 자리에
극우제국의 나라를 건설하려던 것이다

그렇다, 그날 새벽에 아무런 우연도 없었다
모든 건 계획되고 예정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스스로 위장 가면도 벗어 던졌다
그날 아침 투입된 경찰 특공대는 경찰이 아니라
재벌의 용역임을 선언하였다
정부와 청와대가 재벌의 특공대임을 스스로 선언하였다

그렇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이미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은 이미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적용할 법도 없다
협상도 필요없다, 설득도 필요없다
경고방송도 필요없다
UN의 인권규칙도 필요없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이 나라 평균치의 서민들이 아닌가!
아, 이들은 이 나라에 얼마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손바닥만큼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저들이 함부로 소각해버려도 좋을
헌신짝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이 참혹한 학살만행 앞에서
저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인간들이다
저들은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비용 대신 헐값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댓가로
축적한 거대 자본이었다
노동자의 피와 허기로 버무린 콘크리트를 쌓아
재벌의 제국을 만든 자들이다!

그렇다, 이제 더 이상 안개의 시간은 없다
이 나라에 더 이상 애매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의 시간이냐, 죽음의 시간이냐
굴욕적으로 살 것이냐, 타도할 것이냐!
그 중간은 없다

그리하여 이제 기억하시라!
2009년 1월 20일 아침 6시,
이 나라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
21세기 최첨단 매머드 빌딩숲 한가운데서
고달프지만 이대로 살고 싶다! 우리를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절규에 기름을 부어 몸뚱아리를 태우며
솟아오른 불길은 이제 봉홧불임을 기억하시라
재벌과 신자유주의자들과 극우세력의 도발로 시작된
침략전쟁을 알리는 봉홧불임을 기억하시라!

더 이상 안개의 시간은 없다
더 이상 애매한 시간은 이 나라에 없다
생존의 시간이냐, 죽음의 시간이냐
정의의 역사냐, 굴욕의 역사냐
인간의 시간이냐, 야만의 시간이냐
그 중간은 없다 !
2009년 1월 20일 6시,
이 나라의 모든 건 결정되었다!
덧붙이는 말

이 시는 2월 10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열린 '용산참사의 진실회복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중 낭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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