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했던 클린턴보다 더 요란했던 언론

[1단 기사로 본 세상]

미국 장관에 기댄 자사 홍보

  중앙일보 21일 1면, 조선일보 21일 1면
21일 토요일 아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1면에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나란히 선 여기자 사진이 실렸다.

두 신문은 실세장관인 클린턴의 방한 내내 연일 큼직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클린턴 장관은 격을 뛰어넘어 일본 총리와 한국 대통령과 밥을 같이 먹었다. 미국의 차관보만 와도 대통령이 맞이하던 나라라서 그랬나. 그러나 클린턴은 외교적으로 미숙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를 언급한 장본인도 클린턴 장관이었다. 미국 언론조차 이 부분에선 외교적 ‘실수’라고 지적했다. 실세 장관임을 뽐내려는 듯 가는 곳마다 돌출발언을 쏟아냈다.

  조선일보 21일 국제면
두 신문도 클린턴처럼 자사 홍보에 열중했다. 연예인처럼 환히 웃는 모습 위로 ‘본지 000기자가 만난 클린턴 미 국무장관’ ‘본지 000기자 1박2일 동행취재’ 같은 제목이 붙은 이 기사의 내용들은 1면에 싣기엔 다소 허접한 클린턴의 방한 신변잡기들을 늘어놨다. 조선일보는 “국내 기자로선 유일하게 (클린턴 장관을) 동행 취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1, 3, 4면에, 중앙일보는 1, 4, 5면에 클린턴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다. 그러는 사이 두 신문은 오바마가 첫 외국 방문으로 캐나다를 찾아 양국 정상회담을 한 사실은 같은 날 국제면에 비중 없이 던져놓았다.

우리 정부는 한-캐나다 FTA를 준비하고 있고 한-미 FTA는 협상이 끝난 상태로 국회 동의절차를 남겨놓았다. 이런 때 미국 대통령의 첫 방문국이 캐나다였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소홀히 다룰 뉴스는 아니었다. 적어도 클린턴 장관이 21시간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한미연합사에 도착할 땐 검은 코트에 빨간색 스카프를 둘렀다거나 유명환 외통부 장관을 만날 땐 빨간 재킷에 검은 바지를 입었다’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자사 기자 얼굴과 함께 1면에 박는 것보다는 훨씬 비중 있는 뉴스였다.

이 나쁜 버릇은 언제 고칠까

  한겨레 19일 20면
한겨레신문의 19일자 20면 오른쪽 맨 밑바닥엔 <농진청 첫 여성대변인 000씨>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우리 언론은 모두가 ‘최초병’ 환자들이다. ‘최초’라면 덮어놓고 기사부터 쓴다. 이런 최초발 기사의 대부분 소재는 ‘여성’이다.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 최초의 여성 지점장, 최초의 여성 사무관 등 수없이 많다.

10여개 정부 부처와 그 외청에다 300여 개의 공공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인 농업진흥청의 대변인 자리가 무슨 큰 벼슬도 아닌데 한겨레는 왜 이렇게 기사를 썼을까. 대변인의 성별이 무슨 기사거리라고 굳이 제목에까지 반영했을까. 그냥 ‘농진청 대변인 000씨’라고 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여판사, 여교수, 여교사 식으로 여성만 차별해 그 앞에 꼭 ‘여’자를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판사 임용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는 얘기도 식상하다. 절반이 아니라 70%까지 넘었으니.

한겨레 기자는 이렇게 써 주었으니 남성 관료주의에 물든 농진청의 높으신 양반들로부터 취재는 한결 수월해 질지 모른다. 그러나 대변인 당사자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농촌진흥청 47년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 대변인’이 탄생했다”고 보도자료를 뿌려댔을 농진청 홍보팀의 사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일경제 24일 27면


하다하다 이젠 별짓을 다한다.

경찰이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 주변에서 휴대폰 통화를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단다. 보이스피싱이 주로 현금인출기 앞에서 휴대폰 통화로 이뤄지기 때문이란다. 경찰은 인출기 반경 2m 이내에선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단다.

경찰은 이를 위해 비슷한 사례가 있는 일본에 문의까지 해서 이 정책을 주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엊그제 마스크를 쓰면 현금인출 자체를 못하게 하는 정책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들어 줄만 했다. 수사기법은 개발하지 않고 강호순의 입만 쳐다보는 경찰이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경찰이 이 계획을 발표하자 엉뚱한데서 먼저 반발하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의 편의를 침해하는 이번 발표에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통신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