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발생하여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용산참사가 내일 29일이면 100일이 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한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무시하고 탄압으로 일관해왔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초반 뜨거웠던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도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를 불신한 지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우리는 언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인의 날 전날인 19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 일산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아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에 신문, 방송 등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일제히 이 대통령의 눈물 사진 또는 영상을 큼지막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눈물은 전혀 반갑지 않다. 그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장애인에 대한 당신의 편견은 없어진 것인지 묻고 싶다.
그의 눈물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것은 악어가 종종 자기 입보다 훨씬 큰 먹이를 삼킬 때 흘리는 눈물처럼 위선의 눈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용산참사에 대해서 가슴을 아파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에게 희생된 철거민들과 유가족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요 소통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고소영 강부자’로 상징되는 소수의 기득권들만 섬기면서 소통하고 있다.
한국에서 땅과 집은 거주의 공간이나 주거의 목적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투기와 이윤의 대상이며, 모든 이들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다. 부자들에게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해주고 빈곤층에게는 빈곤에서 해방될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을 비롯한 지배세력의 욕망만을 충족시켜줄 뿐이며, 빈곤층을 비롯한 일반 서민들에게는 잔혹한 역사의 현장이 되고 있다. 용산참사가 바로 대표적인 야만의 현장인 것이다. 뉴타운, 재개발로 상징되는 주거지정비사업은 생활환경 개선이나 삶의 질 향상 보다는 많은 수의 주택 공급과 더 많은 개발이익을 창출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번 용산참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문제의 핵심은 삼성, 대림 그리고 포스코 등 건설자본이 그 배후에 버티고 있으며, 이들 자본은 국가권력과 강고한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청과 시청 그리고 경찰과 철거용역업체의 유착은 바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노리는 건설자본과 생존을 위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의 충돌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며, 이들 철거민들의 희생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용산 참사는 바로 철저하게 계급적인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 권력과 법과 정치는 바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봉사한다. 어느 누가 말했듯이 부동산 계급사회인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노동시장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먹이사슬’이 하나 더 작동되면서 굴러가고 있다. 부동산 먹이사슬의 최정점에는 재벌, 관료, 정치인, 보수언론을 비롯한 대표적인 부동산 계급이 있고, 맨 밑바닥에는 무주택자가 있다.
그래서 뉴타운, 재개발은 이들 모두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작동되며 욕망의 공감대가 쉽게 마련된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쓰나미와 같아서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세입자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단독주택을 모두 쓸어버리고 수십 억대 주상복합아파트로 개조한다. 사람도 개조해서 상가 세입자, 주거 세입자 그리고 돈이 적은 집주인 등 서민들을 모두 청소하듯 쓸어버린다. 이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다른 동네에 살던 부유층이 투기목적으로 들어오거나, 상층 중산층이 좋은 주거여건을 찾아 들어온다. 용산 4구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용산역세권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서울시내 35개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 지역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권력은 정말 비루한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대통령, 총리, 장차관, 수석들, 경찰, 검찰, 용역, 심지어는 군대까지 일사불란 할 정도로 한 통속이고 비굴하다.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투기꾼들의 삶 또한 동일하다. 이들 집단권력은 음모를 꾸며 집 한 채 마련해서 가족 및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려는 서민들의 소박한 열망을 짓밟다 못해 불에 탄 시신처럼 뭉개버리고 말았다.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용산에는 삼성의 포클레인이 삽질을 시작하고 있다.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용산의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집단권력에 의해 진실은 영원히 묻힐지 모르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재개발 문제는 제도나 정책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인간의 문제이자 의식의 문제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인간과 인간 생명이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왔더라면, 그리고 자본과 정치권력에게 이런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에 앞서 있었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박한 생각을 해본다. 야만의 현장인 용산에서, 잔혹한 현장인 용산에서 원과 한이 맺혀 이승을 떠돌고 있는 희생자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대들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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