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는 온몸 던져

[이수호의 잠행詩간](5)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려면
안경은 왜 쓰고 있냐고
너는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힘들고 피곤한 일을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그래서 결국은 몸 버릴 일밖에
무엇이 있겠냐고, 짜증은 아니라지만
너는 화를 내고 있다

난 눈을 더 깊이 감으며 반성할 밖에
그럼 어떻게 하냐고
그 산자락 아카시아꽃은 저렇게 흔들리며 지고
그 거리 은행나무 가로수 잎은 속절없이 푸른데
부드럽던 산색 깊어지고
비 그친 뒤 햇살은 또 저리도 맑아
계곡 바위 틈 하얀 돌단풍꽃 고운데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그리도 쉬우면
왜 어떤 새는 밤새워 피를 토하고
자벌레는 온몸 던져 절하며 아스팔트를 기어갈까?
내 너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이 정도 일지라도
이 어둡고 괴로운 계절에 깨어서
나를 지키는 일도 너무 힘들어
이렇게 너에게 숨고, 매달리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을

* ‘모두 내 탓이오.’ 오체투지 자벌레는 지금쯤 어딜 기고 있을까? 유족까지 잡아간 용산 그 학살의 거리, 은행잎은 눈부시게 푸르구나. 그 사내가 목을 맨 아카시아, 꽃이 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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