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

[이수호의 잠행詩간](7)

씀바귀 꽃 샛노랗게 핀 언덕길 걸으며
너를 생각 한다

잎보다도 먼저 피는 온갖 이른 봄꽃들의 호들갑
그 꽃들 소리 없이 지고
언덕이 쓸쓸해질 때
힘든 하루를 긴 그림자로 끌며 돌아오는
하루살이 고단한 삶을 맞아주는 꽃
처진 어깨 무거운 발길에
그냥 밟히는 꽃
쓰디쓴 하얀 피 흘리며
대신 쓰러지는 꽃

너는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밟히고 쓰러지고 있다
정말 두려워요
그러나 걱정은 말아요
밟히더라도 내가 그냥 당할 게요
그건 내 몫이고 내 일이잖아요
씀바귀꽃은 볼수록 참 작다
겸손하다 예쁘다

내가 너의 손을 그리워해도
나를 위해 너는 그 손마저 감춘다
언덕에서
내가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너는 말없이 그렇게 밟히고 있을 뿐이다
언덕길 샛노란 씀바귀 꽃

* 씀바귀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밟히는 게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노동자, 결국 사용기간을 일방적으로 2년 연장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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