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용산에서 2

[이수호의 잠행詩간](14) 오늘 같은 밤

나에게도 그리운 얼굴 하나 있네
부등켜안고 볼 부비고 싶은 얼굴 있네
흐르는 눈물로 닦아주고 싶네
따뜻한 가슴으로 녹여주고 싶네

일백 하고도 오십일, 다섯 달이나 지났네
시커멓게 탄 채, 갈가리 찢긴 채
꽝꽝 언 얼음덩어리로 갇혀 있네
전경들 눈 부라리며 에워싸고 있네

영안실 지키며 외로웠네
여보, 우리 수박 한 쪽 먹을까?
허허 어색하게 웃으며
들어설 것만 같은 당신
언제나 가까이 있으나
아득히 아주 먼 당신
엎어져 숙제하던 애는
어느 듯 잠들고

저기 한남대교만 지나면
경부고속도로
둘이서 손잡고 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오늘 같은 밤

*용산 그 겨울의 학살, 훌쩍 다섯 달이 지났다. 누구는 ‘벌써’라고 쉽게 말하지만,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였다. 눈물이 마를 만도 하건만 새록새록 날이 갈수록 더 그립다.

지난 3월 21일, 참사 두 달 만에 열렸던 큰 굿판 때 썼던 글 다시 올린다.

다시 용산에서 - 빼앗긴 땅에 봄은 오지 않는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에서의 학살이
두 달을 넘기며
계절은 바뀌어 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시커멓게 불에 타고
일방적 부검으로 난도질당하고
또다시 꽁꽁 얼어붙은 채
냉동고에 갇혀 있는
억울하고 분한 영혼들과
하 기가 막혀 울음도 막혀버린
감옥에 있는 자식과 영안실의 가족들
그리고 함께 싸우는 가난한 이웃들이
모두 모여 굿판을 벌인다
황해도 진오귀 큰굿을 한다
큰 만신 춤사위가 흐린 하늘을 덮더니
유족들 소리 없는 통곡 흐르는 눈물
봄비 되어 내리기 시작하고
어제의 어둠은 오늘의 또 다른 절망으로
허울 좋은 뉴타운 용산4구역
허물어진 골목길을 덮어오고 있다

확실히 하자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학살의
명백한 원인제공자이자 최종명령권자요
그래서 분명한 직접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는다
대통령 이전에 유수한 기독교 교회의 장로요
집권여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야 한다
삼성 등 개발을 빙자한 투기자본이
공사기간의 단축을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해
가옥주나 세입자를 몰아내려고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가진 패악질을 하며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할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
국민을 단속하고 보호해야 할 경찰과 구청직원들은
오히려 용역깡패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철거민들을 괴롭히는 데 앞장서지 않았는가?
참다 참다 도저히 견디지 못한
쫓겨나도 갈 곳도 없는 동네사람 몇이
이웃을 대표해서 스스로를 볼모로
허물어져가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과 당신을 향해
억울과 분함을 눈물로 호소할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생명으로 생각했는가?
아니면 체제 구축이나 유지에 방해되는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했는가?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 사기범의 용의가 분명했음에도
국민경제를 살린다는 더 큰 거짓말에 속아
국민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대운하사업이나 747공약이다
사기가 또 드러날 것 같자
국민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해
KBS와 YTN을 짓밟아 재갈을 물리고
MBC를 겁박할 때부터 나는 보았다
이미 당신은 정상적인 이 나라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특히 지난해 여름부터 타올랐던
그 수백만의 촛불을
그 순수한 촛불의 외침을
결국은 공적으로 몰아세우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탄압의 칼을 휘두를 때도
우리는 눈치챘다
120용산학살도 결국은 그 선상이었다
그 옥상 위의 우리 이웃은 당신에게는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용역깡패들이 불을 지르며 위협할 때도
못 본 척했고
그 혹한의 날씨에 물대포를 쏠 때는
경찰과 깡패가 어깨 나란히 하고
얼려 죽이려 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인 당신께 다시 묻는다
그 불쌍한 당신의 국민이
무엇인가 당신께 호소하기 위해
그 옥상으로 올라가
그냥 끌려 내려오지 않으려고
시너 통을 안고 스스로를 인질로 삼아
목숨을 담보로 발버둥 칠 때
그들을 이해하고 설득할 노력을
단 한 번만이라도 해 봤는가?
불행스럽게도 없었다
아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지휘권 아래 있는 경찰책임자 김석기는
청와대의 직접 명령이거나
아니면 당신의 마음을 읽고
당신이 좋아하는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속도전으로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분들이 옥상에 올라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그 차가운 겨울 매서운 추위에
그것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미명 그 어둠 속에서
선전포고도 없이
적을 향해 대포를 쏘듯
그렇게 엄청난 물을 퍼부었겠는가?
많은 양의 시너와 화염병이 있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이
그 좁은 망루에 갇혀 있는 걸 알면서
테러 진압 특공대를 컨테이너에 싣고
이동식 크레인으로 그 높은 곳까지 끌어 올려
옥상으로 직접 투입시키는
이런 위험천만의 무모한 군사작전을 폈겠는가?
그것도 위험에 대비해서 반드시 설치해야 할
보호 장비도 없이 저질렀으니
당신에게는 정말
그 옥상에 있었던 사람은 과연 누구였냐고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보잘 것 없고 단순하며 평범한 상식으로
분명히 말한다
전쟁이라도 이럴 수는 없다
누구의 것이든 인간의 생명은 귀한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인간의 생명이 가볍게 취급될 수는 없다
확실하게 하자
그날 새벽의 일은 명백한 학살이다
수 백보를 양보해도
그것은 미필적고의의 살인이다
김석기를 비롯한 경찰이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
그날 새벽 수많은 사람들과
언론의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외쳤다
거기 사람이 있어요
물대포 제발 그만 쏘세요
특공대 올라가면 다 죽어요
거기 시너가 있어요
경찰도 위험해요
그러나 경찰 누구도 이 외침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특공대 컨테이너는 망루를 치고
망루는 불이 붙고
불길에 싸인 사람들이
애절하게 구호를 요청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갇힌 망루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넘실거리고
경찰특공대는 쇠몽둥이로 망루를 내리치고
망연자실 사람들과 카메라는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던
아 참담하고 참담한 학살의 현장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이여!
다시 묻는다
그때 대통령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당신은
당신의 충복 김석기를 비롯한
그 관계자를 비호하기에 바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학살에
당신도 구체적으로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망자나 유족을 위해
그 흔한 유감표시 한 마디조차 안하고 있다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2 제3의 범죄를 저질렀다
또 다른 충복 검찰을 동원
모든 잘못을 불 타 죽은 이웃에게 뒤집어씌웠다
죽은 자를 죽인 자로 만들고
정말 죽인 자는 더욱 기세 등등
남은 자를 괴롭히며 감옥에 가두는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르도록
뒤에서 사주하고 있었다

아!
봄은 오는가?
쫓겨난 집들과 불 탄 옥상
부서진 살림살이들과 해골을 그려놓은 붉은 낙서
비에 젖고 있는 국화 한 송이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분명히 말한다
뉴타운 재개발 용산 4지구
이 빼앗긴 땅에는
아직 봄은 올 수 없다
억울한 영령들 구천에 떠돌고 있는 한
죄 없는 이웃들 감옥에 묶여 있는 한
살인한 자 살인죄로 감옥에 쳐넣고
그 원한 풀고 그 명예 회복하지 않는 한
개발 앞세워 살던 사람 내쫓고
투기자본 재벌들 손 안 대고 코 풀고
뭐 빠지게 일해도
몸 눕힐 방 한 칸 장사할 구멍 하나 못 만드는
이런 뭐 같은 세상 뒤집어지지 않는 한
봄은 오지 않는다
아니 올 수가 없다
그렇다
봄도 누군가가 만드는 것
우리도 우리 손으로 우리 봄을 만들어야 한다
봄을 만들기 위해
민중의 가슴 가슴에 씨를 뿌리야 한다
누구나 땀 흘려 일하는 세상
누구나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
그런 세상 만드는 씨를 뿌려야 한다
보라
어느 날 봄비 온 뒤
땅속의 씨앗들 일시에 싹이나
산과 들 언덕과 계곡
단숨에 온 땅을 푸르게 바꾸듯이
우리 민중의 가슴의 씨앗들
일시에 돋아나
이놈의 세상 확 바꾸는 것
그게 진짜 봄이다
그런 봄 우리 만들어
용산 4지구 푸르게 뒤덮는 날
그때 우리 신명나게 노래 부르고
춤 한 번 걸판지게 출 수 있어야 한다

노나메기 대동세상 얼쑤!

큰굿판 바야흐로 흐드러지고
만신들 영령들 유족들 이웃들
함께 어울려 돌아간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2009년 3월 21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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