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희망

[이수호의 잠행詩간](21)

아내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가사노동 전임자인 아내가 당의 최고위원인 나보다
정세전망이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전교조교사들이 시국선언 참여를 한다고 할 때 아내는
3년차 애송이교사인 한이는 제발 참가하지 않았으면 했고
그게 무슨 큰일이냐고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도 없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냐고 나는 윽박질렀다
어떻게 될 건가는 두고 보면 금방 알 텐데
그렇게 오래 운동했다는 사람이
이명박이 누군지 그렇게도 모르냐고
아내는 안타까워했고
결판은 의외로 빨리 났다
시국선언 참가교사 일만 칠천 몇 백 명 전원 징계
그게 말이나 되느냐고 길길이 뛰며 게거품을 물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이명박이었고
지금 그 미친 칼바람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는가
그냥 어쩔 수없이 모가지를 맡기고 전전긍긍할 수밖에
이제 한이에게는 확인서가 날아올 것이고
서명참가무효를 종용할 것이다
본의가 아니었다고 한 마디만 하면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확인만 해주면 징계는 없었던 걸로 하겠다고
교장, 교감은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겠지
그런 분위기에서 수업할 맛이 나겠는가?
그래서 아내는 아들을 염려하지만
그때도 그렇게 해서 목 잘리고 남편은
수십 년을 목도 없이 아스팔트 위로 뛰어다니며
지금까지 싸우고 있지만
학교는 무엇이 달라졌냐고 교육은 얼마나 나아졌냐고
그것을 대물림까지 해야겠냐고
아내는 울먹이며 다그치는데
무능한 진보주의자 나는 할 말이 없다
아 이런 칼 날 위 이 절망 앞에서
우리가 꿈꿀 아찔한 희망 한 자락은 없는가?

*20년 전 1500명 이상의 교사를 목 자르더니, 거꾸로 가는 세상이라 이제는 17000명 이상을 한꺼번에 징계하겠단다. 그렇게 전교조와 교사를 짓밟아 학교(교육)를 이명박 독재정권 유지의 도구로 삼겠다내. 헌법상의 교육의 자주성,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히는구나. 아! 전교조여. 목을 드리운 교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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