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장어를 구우며

[이수호의 잠행詩간](31)

같은 신세 반가운 얼굴들끼리
모처럼 꼼장어를 구우면서도
우리는 흥겹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대학로나 서울역 광장은
안타까운 깃발로 나부꼈지만
한 발만 비껴서면
일상의 주말 오후가
물먹은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
무거운 발길들에 묻혀
우리의 대화도 아스팔트 위로 깔리기만 하고
거대한 괴물 같은 이 도시를 끼고 흐르는
깊고 푸른 강물 위로
붉은 저녁 해 잠겨가고 있었다

이미 목이 잘리고 껍질이 벗겨진
꼼장어 몇 마리
불 위에 올라왔다
지글지글 연기와 김이 오르고
날 선 가위는 꼼장어를 싹둑싹둑 자른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
또 새로운 무엇이 된다는 것
한 점의 안주가 되는 일도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꼼장어는 불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는 소주와 꼼장어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헛웃음을 웃었다
우리도 목 잘리고 발가벗기고 싹둑싹둑 도막나
결국은 어떤 놈의 안주나 되는
꼼장어가 아닌가?
어쩔 수없이 불에 타서
너희들 입 속으로 들어가지만
비굴하지는 않아야지 하는데
바람에 몰려온 연기 탓인가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다

*주말마다 집회는 열린다. 소리도 치고 팔뚝질도 하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힘찬 결의도 해 보지만 끝나면 헛헛하다. 같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다. 소주가 간절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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