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저린 반성

[이수호의 잠행詩간](41)

내가 대한문 앞에서 촛불 들고 앉았다가
왈칵 달려든 전경들에 팔다리 들려 끌려가면서
나는 왜 그렇게 악을 쓰고 발버둥 쳤을까?
못 이기는 척 끌려가면서 이놈들 이거 놔!
소리 정도 쳐도 품위는 유지하는데
손목이 비틀려 멍들고 옷이 찢어지고
차 안으로 끌려 올라가며 허리가 접히고
그렇게 저항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불법 마구잡이 연행
누구나 그냥 당하고 사는 세상인데
나이 환갑이 지난 놈이 무슨 처녀 겁탈당하는 것처럼
난리 호들갑을 떨었으니
애 같은 전경이 한심하다는 듯이
야릇한 웃음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차 안에서도 그렇지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시내를 돌고
오줌이 마려워 제발 어떻게 좀하고 가자는 말은
당연히 묵살을 당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 인권유린이니 가혹행위니 하며
사과하지 않으면 못 내리겠다고 버티는 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결국 새벽에 또 한 번 팔다리 들려 끌려나오며
당할 수모는 왜 생각 못했을까?
그랬으면 조용히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고분고분 조사 받고 나올 일이지
단식은 무슨 단식을 한다고
주변 많은 사람 귀찮고 짜증나게 하고
묵비권은 뭔 대단한 일 했다고
그냥 앉아서 노닥거리다 끌려온 주제에
조사관 입에서 한숨소리 나오게 했을까?
나는 조사 끝나고 유치장에 돌아와
쇠창살 부여잡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

* 요즘 불법 마구잡이 연행이 일상화되어 있다. 나도 오랜만에 닭장차에 실렸다. 사소한 일에 몹시 화가 났다. 생각해 보니 지난 십년 간 우리는 너무 편하게 살았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