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픈 사람의 치유자는 그 자신도 상처 입은 자”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 (34) 용산 학살 현장에서 쌍용자동차지부 동지들을 생각하며

“진정한 위로를 받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을 것”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서 살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들 가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가난과 주림에 떨면서 원망에 지친 자와 괴로워 우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히 사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용산 학살 186째가 되는 7월 24일 오후 7시, 남일당 앞에서 열리는 생명평화미사가 시작성가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로 시작된다. 오늘도 많은 신도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어제 이 자리에 오신 분은 기억 하실 것입니다. 지금 쌍용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가족 분들이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느끼고 말씀하시고 우리 유가족들과 만나고 이 자리에 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를 위로하는 자가 누구인가? 힘들고 어려워서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이 이곳에 와서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해달라고 그렇게 울부짖었던 이가 왜 여기에 와서 이야기할까? 이곳도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곳인데. 아마 이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위로를 받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을 나누고 유가족들과 만나고 하면서 처음에 그 힘들기만 했던 모습이 차분하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 계신 마음 아픈 분들이 다른 마음 아픈 분들의 의사선생님이 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승구 신부님 말씀에 故 이상림 열사의 아내이신 전재숙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용산투쟁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미사에 참석했던 나는 미사 중에 듣게 되는 신부님과 유가족의 말씀, 그리고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고 돌아가곤 했다. 생명평화미사에 오면 세 가지의 큰 기쁨이 있다. 첫 번째 큰 기쁨은 힘이 되는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간다는 것이고, 두 번 째는 천 원짜리 작은 초 하나로 유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큰 기쁨이다. 미사 중에 봉헌을 하고, 미사가 끝나면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분향소에 다시 봉헌을 하게 된다. 싹싹하지 못해 좀처럼 말 건네기를 잘 못하는 내 성격에 유가족들께 목례로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세 번째 큰 기쁨이다.

“그렇게 함께 살자는 것이 제 남편의 요구였습니다”

쌍용자동차 가족 분들이 떠난 후에도 그 여운이 남일당에 오래도록 남는 모양이다. 신부님들과 유가족이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얼마 전,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에서는 쌍용차 조합원 아내의 죽음에 대한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내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함께 살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6개월 전 용산 망루에 올라갔던 철거민들의 외침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지난 18일, 쌍용차 조합원과 가대위 동지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용산 유가족들과 함께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한 3보1배에 함께 했다. 너무도 간절한 자신의 마음을 또 다른 정말 간절한 곳에 엎드려 보태면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며칠째 주먹밥 하나씩 먹으면서 너무 억울하니까 그 안에서 같이 좀 살자고 같이 일해서 함께 살자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죽으라고 죽으라고 내몰고 있습니다. 오늘 조합원들이 공장 도장공장 벽에 대화를 안 할 거면 차라리 다 죽여라 이렇게 써놓으셨더라고요. 그렇게 함께 살자는 것이 제 남편의 요구였습니다. 저희들의 요구였습니다. 죽으면 더 이상 죽으면 안 되니까 다치면 안 되니까. 용산참사처럼 두 번 다시 이러면 안 되니까.... 내 집을 잃지 않겠다는, 내 주거지를 내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그런 너무나 소박하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그런 우리의 요구가 너무 쉽게 밝히고 너무 쉽게 무시되고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그것조차도 다 모르게 철저히 무시하겠다고 하는 대통령이 너무 원망스럽고 너무 화가 납니다.”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 中에서>


“용산과 똑같은 학살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공권력이 한도 끝도 없이 차 있었습니다. 용산과 똑같은 학살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헬리콥터가 위에 떠다니면서 사람이 눈도 못 뜨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독가스를 뿌렸어요. 또, 그 위에는 음식물은 반입하지 않았고, 가스와 물을 끊었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 그리고 용산과 똑같이 콘테이너 박스를 갖다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전자총을 살포한답니다. 이 나라 이명박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했는지 저희들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곳에 서있는 용역깡패들을 보았습니다. 옆에서 같이 일하고 같이 웃고 어깨를 맞대던 동지(동료)가 용역 짓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동지를 죽이려고 서있는 그 사람들이 정말 한심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시청 별관에 왔는데, 거기도 마찬가집니다. 오세훈은 무엇이 무섭고 답답한지 저희가 화장실에 갈까봐서 문을 아주 봉쇄를 했더군요. 그리고 공권력을 투입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많은 식구가 있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많은 신부님들이 계시고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한 치도 굴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저희 유가족 5가정 똘똘 뭉쳐서 평택과 함께 한다고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내일 3시에 또 거기로 집회를 갑니다. 가서 평택식구들에게 힘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들도 그 사람들과 함께 해 줄 테니까 우리 동지들도 모두 함께 해주실 수 있으시죠? 함께 해주세요.”


오늘, 오전 11시에 유가족들이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 기자회견에 다녀오셨다. 그 내용을 전재숙 님이 전달해주신다.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용산참사’라는 말을 할 때마다 유가족들은 얼마나 안타깝고, 고통스러울지... 직접 보고 오셨으니 그 아픔과 분노가 더 하셨을 거다. 오늘, 문정현 신부님과 전종훈 신부님은 평택 쌍용자동차 앞으로 미사를 가셨다고 한다. 이강서 신부님은 “용산에서 미사를 출장 가는 시대가 되었다. 용산이 역사적 현장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오늘 문정현 신부님 담당이던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와 DVD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판매는 나승구 신부님이, 평화의인사 할 때 날리시던 하트는 이강서 신부님이 대신하게 되었다.

고통을 위로받는다는 것

오늘, 나는 나의 고통을 위로받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아니, 나의 고통과 쌍용차 조합원들이 겪는 고통 사이에서 오는 고통을 위로받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쌍용자동차에 강제집행이 이루어진 20일 이후,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기록을 하는 것의 8할은 감성이다. 그만큼 차지하는 것이 이성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현장 기록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감성이 때때로 나를 견딜 수 없게 할 때가 있다. 요즘이 바로 그런 때다. 물과 음식물 반입이 안 되는 것도 힘든데, 매일매일 경찰과 용역깡패 구사대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을 쌍용차지부 동지들을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뭘 해도 편치 않은 나날이었다. 단수로 화장실 물도 내릴 수 없고, 씻을 수도 없는 곳에서 주먹밥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헬기소리와 하루 종일 투하되는 최루액으로 고통 받으며, 밤이면 사측의 선무방송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는 그 동지들을 생각하면 울컥 감정이 북받치곤 했다. 그 동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알량한 글 몇 편 쓰는 것 외엔 있을 것 같지 않은 내가 그 동지들에게 인간의 존엄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이 고통스런 투쟁을 계속 하라고 얘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차라리 며칠이고 비라도 펑펑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쳐서 최루액을 실은 헬기라도 뜨지 않았으면 싶었다. 비 피해가 예상되는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많이 와도 안 되겠지만, 비가 오면 그 동지들 잠시라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세수하고, 머리라도 감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남일당에 왔다. 신부님들 말씀이라도 들으면서 힘을 얻고 싶었고, 쌍용차 동지들을 위해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

오늘은 두 개의 초를 봉헌했다. 하늘색 초는 용산 학살 열사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연두색 초는 쌍용차지부 동지들과 가족들을 위해 올렸다. 바람이 불어 촛불이 금방 꺼지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자신의 상처가 없으면 다른 이의 상처도 올바로 볼 수 없습니다”

“저희가 이야기할 때,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장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치유자, 낫게 해주는 사람은 그 자신도 역시 상처 입은 자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없으면 다른 이의 상처도 올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계신 분들은 이제 세상 그 누구 아픈 사람도 따뜻하게 치유해줄 수 있는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아픈 이야기의 시작을 끝내는 아름답게 마무리지어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큰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아픔을 넘어서 기쁨과 행복으로,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이의 아픔까지 보듬어 안는 그런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나승구 신부님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쌍용차 동지들의 투쟁이 그 동지들만의 투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 동지들이 뿌리고 있는 씨앗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보듬어 안는 씨앗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대위 동지들은 2009년 이 땅에서 가장 상처가 깊은 곳 중 하나인 이 곳에서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위로받고 갔다. 또한, 가대위 동지들의 상처받은 마음 역시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깊이 느끼고 어루만져주고 갔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시대 아픔과 고통의 현장에 나의 고통을 위로받기 위해 온 이기심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다.


“경찰과 용역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진압을 거부해야 한다”

미사가 끝난 후에 사제단 천막에 있는 이강서 신부님을 찾아갔다. 말로는 쌍용차지부 동지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을 해달라고 했지만, 실상 나를 위로해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신부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난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우리 사회 선의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통로가 없을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의 심정으로 옥쇄파업을 결의한 조합원들의 절박한 투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고립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선이 닿지 않아 그러한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의 싸움이 의로운 싸움으로 견지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도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미사 중에 항상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또, 미사 중에도 말씀하셨던 “경찰과 용역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진압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그것이 죽을 때까지라면 죽을 때까지 기도 합니다”

‘만석동 기차길옆 작은학교’ 어린이들이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유가족들께 편지를 전달했다. 신부님이 “차렷, 절”하는데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하려해서 참석자들의 푸근한 미소를 자아냈다. 자판만 두드리는 사람들이라 체력이 저질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6.9작가선언’팀의 열정적인 <처음처럼> 율동도 큰 박수를 받았다. 반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함께 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강서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어진다.

“어느 천주교 신자가 하루는 꿈을 꾸었어요. 천국에 갔는데, 무엇이든 파는 소망가게가 있더랍니다. 예수님이 상점 주인이었어요.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곳이라 평소 원했던 것을 다 주문했습니다. ‘건강, 로또복권, 행운, 사랑, 아파트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얘야, 여기는 씨앗을 파는 곳이지 열매를 파는 곳이 아니란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일상은 그 씨앗을 자라게 하는 곳인데, 우리는 열매만 탐합니다. 평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제2 용산참사. 말로만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면 평택에는 끔찍한 대형사고가 발생합니다. 사람과 기계의 차이는 양심에 있습니다. 양심 없이 살겠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선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 마음으로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고, 마음을 모아주시고, 염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남일당 건물의 과제 기억하시죠? 수사기록 3천 쪽, 진상규명을 위해서 첫걸음은 검찰이 내놓고 있지 않은 3천 쪽 내놓을 때까지 기도한다. 언제까지 기도한다구요? 내놓을 때까지 기도한다. 그것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라면 죽을 때까지 기도하겠다. 우리 그런 각오로 함께 매일매일 기도합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마침성가 <그날이 오면>을 함께 부른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덧붙이는 말>
글을 마무리 할 즈음, 쌍용자동차 안에 살수차와 소방차가 집결 중이고, 헬기 2대가 최루액을 살포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생중계를 열어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진압에 들어가는 건가 싶어 불안해서 뭘 더 하기가 어려웠다. 노동조합 측이 “모든 것을 열고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이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잠시 후, 조금 전 상황이 ‘진압 실전을 대비한 훈련 상황’이었다는 멘트가 나온다. 사측은 댄스곡을 틀어 댄다. 안도감보다는 쌍용자동차와 그들의 하수인 경찰에 대한 분노가 컸다. 저들에게도 과연 ‘양심’이란 것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지금, 공장 앞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쌍용자동차와 경찰,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부디 좋은 말씀 들으면서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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