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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부러운 날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62) 꿈을 꾸다가도 멈춰야 하는 아이들

인간의 미래

하루는 마흐무드 집에서 놀았습니다. 마흐무드가 우리보고 언제 떠날 거냐고 묻습니다. 원래는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촬영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이 마을은 여성들이 촬영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야 될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 집니다. 마흐무드는 우리보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떠난다는 얘기가 나오니 우리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며칠 만에 든 것도 정이라고 정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묻는다는 거

팔레스타인에 와서 무언가 질문을 했을 때 답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누구를 두들겨 패거나 잡아가거나 검문을 했다 안 했다 하거나, 하여튼 이스라엘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봐도 언제나 대답은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미래에 대해 물어볼 때입니다.

  웃는 모습이 천하일품인 마흐무드

마흐무드 집 옥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마흐무드에게 만약 니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의 제약이 많기 때문에 ‘만약 니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굳이 붙인 겁니다.

별다른 대답 없이 웃으며 모르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점령 때문은 아니지만 팔레스타인인으로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괜한 걸 물었나 싶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마흐무드가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쩌면 무언가 희망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어 봤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떠나고 7남매를 키우고 있는 마흐무드 아버지(아부 마흐무드) 와 남게 되어서 물었습니다.

미니 : 나중에 아이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 있으세요?
아부 마흐무드 : 음... 없어요.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전 50이 넘으면 나이가 들어서 더 일을 할 수도 없고, 마흐무드는 저렇게 할 게 없어서 그저 잠을 자거나 와엘하고 어울리는 것 밖에는 할 게 없으니...

  우리를 위해 수박을 자르고 계신 아부 마흐무드

한국으로 치면 나이 50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여기는 수명이 짧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40대 후반만 되어도 환갑은 되어 보입니다. 아부 마흐무드 씨는 새벽 5시쯤 집을 나서서 6시에 옷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3~4시쯤 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예전에는 건축 일을 했는데 일하다 떨어져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4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고, 일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도 앉았다 일어서는 모습이 힘들어 보입니다. 남자들이 밖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많이 낳게 되었다며 웃던 아부 마흐무드 씨입니다.

지난 휴일에는 마흐무드 가족들과 집 앞에 소풍을 나갔습니다. 그 때도 아부 마흐무드 씨는 잠깐도 쉬지 않고 주변에 있는 포도와 사베르(선인장 열매)를 따서 모읍니다. 그야 말로 일, 일, 일입니다. 아부 마흐무드 씨의 손이 그가 살아온 세월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흐무드 어머니도 집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마흐무드와 동생 아셈도 어디 농장에 일거리가 있으면 가서 일을 합니다. 가끔 미국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 올리브유, 설탕, 소금 등을 원조하기도 하구요. 마흐무드의 두 누나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부모님은 뒷바라지가 수월치 않습니다.

불빛과 같은 미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저녁 밥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립니다. 가끔 있는 일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도 불은 들어오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 모두 불이 꺼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 멀리 이스라엘 마을 쪽에는 불이 환합니다.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에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 오직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마을에만 전기가 나간 겁니다. 순간, 검문을 받느라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는 이스라엘 차량들이 쉭쉭 지나가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전기가 끊긴 뒤 초를 들고 노는 아이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전기나 물 같은 것은 이스라엘 회사가 공급합니다. 그날 전기가 나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스라엘 회사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모든 것을 우선 공급하며 팔레스타인인들과 연결된 각종 시설은 유지․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시로 고장이 나곤 합니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전기요금 납부거부 운동이라고 하겠지만 여기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핸드폰, 수도, 전기, 가스 등 대부분의 것이 사용을 하고 나서 요금을 내는 방식이지만 여기는 핸드폰이고 전기고 미리 돈을 내고 카드를 기계에 끼워서 쓰는 방식입니다. 전기 회사에 가서 카드를 충전한 뒤 집 앞에 달려 있는 전기 계량기 같은 곳에 끼우면 전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전기조차 카드 요금이 다되면 바로 끊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기가 끊어지자 마흐무드 가족들은 익숙한 듯 초를 가져와 켜고는 밥을 차리고, 마흐무드는 촛불 아래 차려진 밥상을 보고 ‘로맨스’라며 웃습니다. 불빛이 어두워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어두워서 밥이 잘 안 넘어 갑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래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계획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치고 박고 싸웁니다. 이리저리 초를 들고 다니며 촛농을 떨어뜨리고, 촛불에 얼굴을 대며 자기 사진 찍으라고 합니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할 때 먼저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가자지구에 하나 밖에 없는 발전소를 폭격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이스라엘이 다시 가자지구를 두들겨 부술 때도 이스라엘 쪽에서 공급하던 전기를 끊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이 마을에 전기가 몇 시간 끊긴 뒤 다시 들어 왔지만 또 언제 이스라엘이 수틀리면 전기 공급을 중단해 버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일을 하러 다니다가도 멈추고, 학교를 가다가도 멈추고, 꿈을 꾸다가도 멈춰야 하듯이 말입니다.

  나비가 아니고서야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촛불을, 이스라엘은 전등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빛의 크기만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어딜 가나 이스라엘이라는 벽과 부딪혀야 하겠지요.

글을 쓰는 지금은 낮이라 창 밖에 햇살이 환합니다. 밖에 나가면 밝은 해가 있고, 푸른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창살 너머에 있는 것들을 바라만 볼 뿐 수이 넘지 못할 벽입니다. 눈에 보이는 검문소와 장벽뿐만 아니라 생활과 미래마저 누군가에게 매여 있다는 고립감이 저에게 조차 다가옵니다.

차라리 나비가 부러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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