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촌 가는 길

[이수호의 잠행詩간](51)

명동촌 가는 길
너무도 한가하고 평화로웠다
눈이 몇 자로 깊이 쌓여
거친 바람 밤낮없이 불어도
그렇게 완강하던 벌판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하지 않던 언덕
그 눈들은 하얗게 눈처럼
다시 산살구꽃으로 피어났다

어린 윤동주 이 길 걸으며
또 다른 고향의 십자가를 품었던가?
이 고운 꽃길에서
그는 왜 시가 되려 작심했나?
샛바람에 하늘거리는
그해 가장 먼저 핀 꽃잎 같은
여리고 고운 시

대륙의 끝자락 만주 벌판은
진달래 한 송이도
겨우내 눈바람에 맞서 시퍼렇게 날선
서릿발로 피우고 있었다

* 윤동주, 문익환이 함께 자랐던 만주벌 명동촌을 지난봄에 다녀왔다. 몸이 아파 815를 집에서 보내며, 윤동주를 다시 읽었다. 남의 땅 하숙방에서 시가 쉽게 씌어 진다고 괴로워하던 스물일곱의 윤동주를 만나며 몹시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윤동주는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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