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자장암금와보살 친견기

[이수호의 잠행詩간](55)

우리가 또다시 통도사 자장암을 찾은 때는 8월도 늦은 어느 날 해그름이었다 자장암이 서향으로 앉았으므로 영축산 산마루를 힘들게 넘어온 저녁햇살이 암자 대청마루에 퍼질러 앉아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쉬고 있었고 더위를 피해 담벼락 그늘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이름 모를 빨간 꽃들은 정겨웠다 그 옛날 자장율사가 이 곳 꼭대기 큰 바위 앞에 암자를 짓고 그 한 바위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시고 그 구멍에 금와보살을 모셨다 그 때부터 이 보살님 그 구멍에 살면서 가끔은 구멍 입구에 나와 바람도 쐬곤 하셨다 그런 때 구멍 밖에서 보살님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가엾은 민초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절하며 소원을 빌곤 했는데 그 소원이 곧잘 이루어져 바람결에 소문이 퍼지고 그 산꼭대기 암자가 사람 끊길 날이 없게 되었다 그 날도 우리는 훠이훠이 자장암에 올라 오늘은 보살님 꼭 뵈리라 간절한 마음으로 바위 앞에 이르렀으나 역시 구멍만 저녁 햇살에 졸고 있었다 우리 중에 신심이 깊은 누구는 아쉬운 마음에 까치발을 하고 구멍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누구는 애절히 두 손 모으고 구멍에 절하고 있는데 어떤 지나가는 청년이 보살님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뒤뜰에 계십니다 하고 홀연히 사라지니 우리는 황망히 서로를 쳐다보다가 우루루 뒤뜰로 몰려갔다 거기 온갖 풀들이 촉촉한 담벼락 그늘 밑에 한 여인이 정성스레 두 손 모으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끝없이 주억거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 여인 등 뒤로 가 풀섶을 살폈으나 보이는 게 없었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또 누군가 그 여인의 간절한 눈길 끝을 살피다가 거기 풀 사이 그늘에 꼼작 않고 앉아 있는 금와보살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아 탄성을 지르며 두 손 모으고 예를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그 시선을 좇아 풀 속을 뒤지며 거기 눈도 깜박 않고 앉아 있는 애기 손가락 한 마디만한 산개구리 한 마리를 찾아내곤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 모두 각자 소원을 빕시다 우리는 돌아가며 두 손 정결히 모으고 기도하며 각자 소원을 빌었다 경사진 산길을 내려오며 누가 당신은 뭘 소원했어? 은근히 묻자 그 사내 씩 웃으며 이명박 좀 어떻게 해보라고 했지 뭐 하고 쓸쓸히 눈길을 하늘로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만약 이명박이 어떻게 되면 그건 전적으로 통도사 자장암 금와보살님 가피라는 사실을

* 통도사는 말사, 암자 이백여 개를 거느린 큰절이다. 부처님이 직접 머물러 계시는 곳이다. 조용했다. 세봉 스님이 아침 일찍 따서 만든 백련 연잎차의 하얀 맑은 향이 신정희요의 신한균 사기장이가 구워내는 사발에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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