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법정에서 다섯 번의 눈물을 봤습니다”

용산참사 결심공판 열린 311호 법정에 퍼진 가슴 아픈 호소들

자기야, 자기야~. 8년 구형을 받은 남편은 끝내 아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영신 씨는 결심공판이 끝나고 법정 맨 앞에서 구치소로 가는 남편에게 손을 뻗었지만 남편 이충연 씨는 아내가 부르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8년이라는 형량을 구형받은 이충연 씨도 충격이 큰 듯했다. 이충연 씨는 법정을 나가기 전에서야 아내를 돌아봤다. 그는 그래도 아내에게 웃음을 보여줬다. 손마저 잡아보지 못한 아내는 손을 흔들었다. 그 몇 초 사이에 둘은 눈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충연 씨의 뒤를 따라 나서던 다른 피고인들의 가족들은 그나마 손이라도 잡아봤다. 교도관들은 소리까지 질러가며 이들이 손잡는 것을 막았다.

피고인들이 법정을 떠나고 나서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은 울음소리와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정영신 씨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변연식 천주교 인권위원장이 “아직 선고가 난 게 아니잖아. 이제 구형인걸. 힘내자”라고 다독거렸다.


2009년 10월2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강수산나 검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용산참사 피고인 철거민들에 대한 구형을 제시했다.

이충연 용산4상공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징역 8년. 그의 아버지 고 이상림 씨의 죽음을 참작한 형량이라는 것이 검사의 설명이었다. 검사에 따르면 이충연 씨는 범죄단체의 수괴가 되어 있었다. 검사는 이충연 씨가 법정투쟁을 주도했고 반성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더욱 강경하게 형량을 구형했다.

구형량을 들은 이충연 씨의 부인 정영신씨와 어머니 전재숙씨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김 모 8년, 천 모 7년, 조 모 6년.... 강수산나 검사의 입에서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도 흘러나왔다. 방청석의 흐느낌은 더욱 커져갔다. 검찰의 구형 의견 제시는 한 시간 여 동안 됐다.

곧이어 변호인단의 최후변론이 시작됐다. 변호인단에선 김형태 변호사가 최후변론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림이 있었다. 그는 목이 조금 씩 메였다. 김형태 변호사는 애초 이 재판의 변호인이 아녔다. 검찰이 경찰지휘부 수사기록 3천 쪽을 내놓지 않자 이에 반발한 변호인단이 변론을 거부하고 사임한 후 새롭게 변론을 맡은 게 한 달 반 전 쯤 이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사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평범한 세입자들의 농성에 경찰특공대의 출동을 최종 결재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증인으로 끝내 나오지 않았다.

김형태 변호사는 먼저 이 사건을 자본의 탐욕과 그에 동조한 국가와 경찰, 그리고 용역의 연관 관계로 규정했다. 그리고 검찰이 발화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화염병의 증거능력을 무력화 시켜나갔다. 그는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들이 한 증언을 상기시키고 상기시켰다. 자신들의 동료를 작전 중에 잃은 특공대원들이 철거민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런 특공대원들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와 다른 증언을 하기도 했다. “권성철 대원은 공소사실에 있지만 화염병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 모대원도, 김 모 팀장도, 신 모 제대장도... 특공대원 그 누구도 화재가 났던 2차 진입 때 화염병을 던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대원 두 명은 1차 진입 때조차 철거민들이 망루 안에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 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아직 망루를 다 짓지 않았는데도 하루 이틀 뒤에 위법이 예상 되니 미리 막는다고 특공대 투입을 결정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공무집행의 불법성을 지적했다. 그의 변론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첨단 치안 시스템을 묘사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켰다. SF적 상상력으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그 영화와 비슷하다. 검찰과 경찰은 하루에도 7만 여 대의 차량이 지나는 한강대로의 위험은 당연히 예상됐기에 특공대 조기 투입은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했다.

김형태 변호사도 한 시간에 가깝게 최후변론을 이어갔다. 그는 최후변론 말미에 이 법정에서 네다섯 번의 눈물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물을 마셨다. 그가 311호 법정에서 본 첫 눈물은 경찰 심문과정이었다. 망루 진압에 투입된 특공대의 한 팀장은 고 김남훈 경사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다. “팀장님도 오셨네요~” 죽음 속 망루 계단으로 올라가던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하다 그는 목이 메였다. 그는 자신이 철거민에 대한 분노로 처음에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 역시 2차 진입에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

두 번째 눈물도 경찰이 보였다. 증인석에 선 서울지방경찰청소속의 정보과의 한 직원은 용산참사가 협상 한번 못하고 벌어진 것을 가슴 아파 했다. 그는 그 사건 때문에 자책감으로 지방청에서 일선 경찰서로 스스로 갔다며 눈물을 흘렸다. 세 번 째 눈물은 전철연 연사국장이었다. 그녀는 5학년 아들을 둔 엄마였다. 그녀는 “애초 건설자본이 합의한 임대주택을 이행 했더라면 제가 또 이렇게 감옥에 왔겠느냐”면서 “저도 제 아들 학원에 보내면서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자본과 용역에 당한 설움을 법정에서 뱉어 냈다. 그리고 피고인들이었다. 피고인중 한 명은 자신의 부인이 용역에게 맡고 쓰러져 배를 발로 차이는 상황을 말하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힘없는 피고인들처럼 저 뿐 아니라 여기 있는 검찰이나 재판장님도 이렇게 부당하게 용역들에게 피해를 당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망루가 아니라 뭐라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고 변론을 마쳤다.

법정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이어졌다.

가장 먼서 최후 진술에 나선 피고인 A씨는 “법과 제도가 바로 서서 저희 같은 철거민이 양산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이번 일로 돌아가신 분께...”라며 말을 잇지 못하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도적인 방책이 세워졌으면 한다”고 진술했다.

C씨는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유가족에게 위로를 드린다.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농성을 했겠는가. 공권력이 급하게 들어와 여유와 인내로 협상을 배려하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 진실이 왜곡 되서 너무 안타깝다. 실체적 진실과 공정성을 재판장께 바란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관대한 선처와 용서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진술이 끝나자 긴 한숨과 울음이 법정 곳곳에 더욱 커져 갔다.

D씨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 뼈저리게 반성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어린 딸을 생각했다...” 그도 눈물을 터트렸다. 앉아 있던 피고인들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선처를 바랄 뿐입니다.”

E씨는 “저희들 1월 19일, 20일에 당한일은 공권력이 너무 압박해 방어했을 뿐이다. 큰 사고가 났지만 꼭 저희 잘못이라고만 몰아세우지 말아 달라.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충연 위원장은 “저희가 바라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재판부가 역사에 남을 정의로운 판결을 하시길 부탁한다”고 최후 진술을 했다.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최후진술을 할 때 방청석에서 피고인과 가까운 오른쪽 둘째 줄에 앉은 어머니 전재숙 씨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첫째 줄에 앉은 정영신 씨는 엎드려서 흐느꼈다. 법정 안에도 울음소리와 한숨소리는 더욱 커졌다.

F씨는 “일이 일어나고 보니 철거민이 아니었을 때 가족들이랑 많이 놀러 다니고 취미생활을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철거민이라 가난했어도 자식들 달래가면서 잘 키웠다. 아버지는 보통 자식이 옆길로 새지 말라고 때리지만 여기까지 오다보니 아버지한테 맞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부른 삼촌에게 여러 철거민이 맞아 개탄스럽다”고 진술했다.

G씨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자 적어왔다”며 3분여의 짧은 진술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재개발 과정에서 시공사, 용역깡패에 폭행을 당하고, 어린 자녀들이 들려 나오는 걸 보면서 답답했다. 아내와 어린 자식이 상처를 받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가족의 생존권이 파괴당하는 마당에 이해하고 참을 수 없었다”면서 “제 권리를 포기 않겠다는 각오로 가족을 지키려고 망루에 내몰린 철거민을 인간적으로 도와 달라고 외쳤다”고 최후 진술을 이어갔다. G씨는 “전철연을 반정부단체로 낙인찍는 경찰과 검찰, 정치인이 우리에게 관심도 갖지 않을 때,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이충연 위원장이 ‘우리 동지들 욕하지 마세요,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동지 밖에 없다’고 했던 말이 가슴에 남아있다”고 이어갔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차분히 읽어가는 그의 최후진술에 피고인석도 방청석도 눈물바다가 됐다.

그는 “경찰이 조금이라도 철거민 호소에 귀 기울여 줬으면, 아니 안전이라도 고려 했으면 이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망루에 오른 게 아니라 자본의 탐욕에 상처받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올랐다. 오늘 재판장님께서 철거민들에게 마지막 온정을 베푸셔서 저희가 가족을 지키도록 일상으로 보내주시길 간곡히 청한다”고 최후진술을 마쳤다.

H씨는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는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지 불과 22시간 만에 무자비한 공권력은 저희 동지들을 서늘한 시신으로 돌려주었다. 앞으로 자식에게 이 나라는 정직하게 살아도 살수 없다고 얘기할 것이다. 소원이 있다면 온 나라에 개발이 진행되는데 개발지역에서 우리 같은 처지를 안 겪고 같이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우리 처지를 잘 판단하시어 죄가 있으면 죄를 묻고 죄가 없으면 무죄를 선고해 주시라”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 재판의 선고공판은 오는 2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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