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철거민의 희망을 하루 만에 깨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녹취록] 용산참사 피고인 김 모씨의 최후진술

지난 21일 용산참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징역 8년에서 5년 사이의 구형을 받았다. 이날 피고인들이 한 최후진술 중 김 모 피고인이 전날 밤을 새워가며 작성해 읽어 내려간 최후진술 녹취록 전문을 싣는다.[편집자 주]

그동안 장시간 이 사건 사실을 밝히기 위해 고생이 많으신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검사님,
어려운 상황에서 날을 새 가며 꿋꿋하게 변론해주신 한없이 감사한 김형태 변호사님을 비롯한 여러 변호사님, 그동안 억울함을 꾹꾹 참아가며 재판을 지켜봐주신 유가족 분들과 많은 방청객 앞에서 조심스럽게 최후진술을 합니다.

철거민 다섯 분이 희생되시고 해결점 없이 어느덧 10개월째인 것 같습니다.

망루 속의 추위와 두려움, 망루 4층에서의 공포를 체감하며 생사의 기로에 섰던 저는 돌아가신 다섯 분이 마지막에 떠올렸을 얼굴들이 누구였을지 감히 알 것 같습니다. 바로 그동안 건설자본의 탄압에 상처받은 가족의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재개발과정에서 시청과 구청의 묵인 아래 시행사와 시공사, 조합에서 사들인 용역깡패에 의해 주민들이 폭행당하고, 어린 자녀들이 그들의 손에 들려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분노스럽고 답답했습니다. 제 가족구성원인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상처받고 가정생활이 파괴되어 것을 마냥 이해하고 참아 넘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약하지만 스스로 제 권리를 포기한다면 이 나라 국민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각오로 제 가정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망루로 내몰린 철거민들을 인간적으로 보아 주십시오.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들을 테러집단, 폭력세력, 반정부단체라고 하는 낙인을 찍은 경찰과 정치인들에 의해 저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그동안 건설자본의 탄압에 눌려 세입자들이 길바닥에 내몰렸는데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답답함을 해결 하기 위해서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철거민들과 인간적으로 서로 돕고 함께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단 말입니까.

이충연 위원장은 모 방송사의 인터뷰 중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동지들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동지들을 욕하지 마세요”하며 목멘 대목에 공감이 갑니다.

2-3시간만 도와주면 그들의 희망을 세울 줄 알았습니다. 공권력이 투입되어 용산 4가 철거민들의 희망을 만 하루 만에 산산이 깨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재판장님께서도 이미 통찰하셨을 바, 이 사건의 주범은 망루에 몰린 철거민도, 일방적인 망루 진압을 지시받은 젊은 경찰특공대원들도 아닌 탐욕스러운 자본권력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에서는 수사기록 3,000페이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모든 책임을 철거민에게 떠넘겨 화염병을 던져 같은 처지에 있는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특공대원을 희생케 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경찰특공대원들의 심문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철거민 중 그 누구도 경찰특공대원들을 향해 망루 안으로는 단 1개의 화염병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가 살고자 망루에 올라가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경찰이 조금이라도 철거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 듣고자했다면, 아니 안전만이라도 고려했다면 이 불행한 사태를 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마지막으로, 희생되신 다섯 분과 저희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해하려고 망루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욕심 많은 자본권력의 탐욕으로부터 그 누구도 아닌 상처받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분노와 답답함을 호소하려고 망루에 오르려 했던 것입니다.

망루 꼭대기로 내몰린 철거민들에게 마지막으로 재판장님께서 베푸실 온정이 있다면, 희생되신 다섯 분 그리고 유가족과 구속된 철거민들의 명예를 회복하여 저희가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을 지킬 수 있도록 일상으로 보내 주시길 간곡히 청하며, 최후진술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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