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서 씁니다

[기고] 용산참사 제대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우리사회가 아직도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생각하면 한숨이 납니다. 용산 참사는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염치나 상식이 있는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살기위해 마지막 대화라도 해보기 위해 망루에 올랐습니다. 수 십년 살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심정으로, 이 매정한 사회를 향해 마지막 외침이라도 하려고, 그렇게라도 하면 조그만 관심이라도 가져줄 것 같아서, 그래서 망루에 올랐습니다.

정보 담당 경찰관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눈물을 훔치며 증언했습니다. 그 때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이명박 정권의 명을 받은 김석기 경찰청장은 대화를 하거나, 설득을 해야 할 시간에 특공대를 준비시키고 테러진압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 건설사 용역들과 함께 물대포를 쏘며 차근차근 섬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으면서 진압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뒤 과잉진압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경찰과 검찰의 비열한 행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자기들이 해 놓은 수사기록마저 3천 쪽이나 법원의 명령에도 끝까지 내놓지 않는, 아니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요.

용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니 용산의 본질과 실체,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족들은 불에 타고 난도질 당한 시신을 10개월 째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싸우고 있습니다. 종교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나서고 시민과 노동자가 나서고 정치인들도 함께 했습니다. 양심있는 국민 모두가 나섰습니다.

그래도 후안무치의 이 정권은 꿈적도 안했습니다. 오히려 더 짓밟고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용산의 ‘용’자만 나와도 (그렇게 강조하는) 법과 원칙,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됩니다. 집회도, 일인시위도, 삼보일배도, 종교행사도, 단식농성도, 심지어 주변에서 있기만 해도 짓밟고 잡아갑니다.

나도 한 정당의 간부를 떠나 이 땅에 사는 평범한 한 시민으로 그 동안 용산 문제로 당한 수치와 모욕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런 정도니 다른 관련자들은 어떻겠습니까.

어제 열 두 시 나는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다른 대표자들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제는 해결하라고, 10개월을 맞고 있는 유족들이나 영령들에게 정운찬 총리가 한 약속을 지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 다섯이 앉았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총리실에서 누구라도 나와서 사정도 알아보고 대화도 시도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민주공화국의 상식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군홧발이요, 다짜고짜 폭력적으로 우리를 들어 닭장차에 내팽개치는 일이었습니다. 힘이 없으니 당할 수밖에요. 이 거대한 제도적 폭력 앞에 법대로 하자, 우리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목소리는 짓밟히는 가랑잎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경찰서에 끌려와 현행범으로 구금당하고,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조직의 대표이자 목사님이 두 분, 정당의 최고 간부가 두 분, 노동단체 대표가 한 분. 이분들이 다른 일로 왔다 해도 형이 확정되기 전 까지는 최소한 거기에 맞는 예우가 뒤따라야 그것이 품위 있는 사회가 아닌가요. 진보연대 대표이자 목사님인 이강실 대표를 “아줌마, 뭐가 불만이에요”라고 윽박지르지 않나. 무슨 잡범 대하 듯 하는 그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천박한 사회인가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용산 문제만 제대로 해결되면 됩니다. 우리의 이런 수모가 용산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 보다 더 한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일선 경찰의 이런 행태가 경찰 간부, 검찰, 청와대, 정운찬 총리,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썩은 윗물이 그대로 여기까지 흐르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용산 학살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발생원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적절한 배상과 보상, 사후대책 등이 차례로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냥 대충 넘어가서는 우리사회는 언제나 이렇게 천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이나 민주주의를 말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한 정권의 문제를 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역사적 문제입니다. 이 나라가, 아니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가는가가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 경찰서 바깥에서 밤을 새며 촛불을 들고 저항하고 있는 그 분들이 그나마 우리나라의 품위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한 없는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2009년 10월 27일 광진경찰서 유치장에서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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