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이라 ‘단정’ 못하는 용산 1심 재판부

[기자의 눈] “~로 보인다”, 애매한 화염병 발화 판결

“사자후 동영상에 나타난 7시 5분 55초의 불꽃은 화염병 불로 보인다. 유증기에 의한 화재는 아닌 듯하다” “현장 검증 시 계단 1층의 깨진 유리와 3층에서 4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용융된 유리파편은 불을 붙여 던진 화염병의 흔적으로 보인다” “안 모 대원은 불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 했지만 그는 수월하게 진입한 것으로 보아 후미에 있어 못 본 것으로 보인다” “농성자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졌다는 대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 내부 진입 경찰관에 병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1차 진입당시 농성자들은 불붙은 병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2차 진입 시에도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영후는 불똥을 보았다. 최윤식은 2-3층 중간에서 1개의 불빛을 봤다. 이창원은 여러 개의 병이 깨지는 소리를 동시다발로 들었다”

  용산참사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통곡하는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 전재숙 씨는 6년 형을 받은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으로 보인다”
한양석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어가면서도 불붙은 화염병이 확실하다는 의견은 밝히지 못했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용산참사 선고공판에서 검찰이 주장했던 발화원인으로서의 화염병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양석 판사가 읽어 내려간 판결문에는 화염병이라는 단정은 없었다. “화염병으로 보인다”라는 추측성의 애매한 문구가 대신했다. 재판부는 망루 내부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화재로 특공대원이 사망했다며 용산 망루 농성자들에게 징역 6년과 5년등 중형을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불탄 망루 내부에서 농성자들이 특공대원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는지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죄를 판단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됐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던 특공대원들은 누구도 2차 대형화재의 발화 원인이 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두 명의 대원은 아예 망루 내부에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한양석 부장판사는 “특공대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진입순서, 위치, 내부에 머문 시간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소화기 분말이 많아 상황에 따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모순된다고 볼 수 없고 획일적이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 될수록 진압에 들어간 특공대원들의 진술이 애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두 발화당시 원인을 화염병으로 추정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각 층의 높이가 얼마 되지 않는데다 어두운 망루의 좁은 철제계단 사이에서도 불붙은 화염병을 못 본 특공대원까지 나왔다.

수많은 발화가능성은 제외, 화염병만 유일한 발화가능성?

검찰은 망루 계단위에 깨져 용융된 유리조각이나 특공대원들의 진술조서를 통해 화염병 투척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증인으로 나온 화재 전문가 중엔 계단위에 녹은 유리조각이 불붙은 화염병의 조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러 증인 심문과정에서 발전기의 조작가능성과 전기배선의 누전 가능성, 전동그라인더 사용가능성, 세녹스 유증기(기름증기)의 낮은 발화온도 등 수 많은 발화원인이 제기 됐다.

재판부는 모든 발화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양석 판사는 “발전기 스위치 조작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민 모의 영상에는 빠루와 망치소리는 들리나 전동그라인더 소리는 없고 소방관이 발굴 당시 전동그라인더를 사용한 것이 인정된다. 1월 하순이라는 추운날씨와 살수로 인해 세녹스 유증기에 스파크나 정전기가 일어 난 화재라 보기 어렵다”라고 변호인이 제기한 다른 화재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런데도 그는 “화염병으로 보인다”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발화원인을 화염병으로 단정하지는 못한 채 결론을 확정지었다. 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화염병은 발화가능성에서 제외하지 않은 것이다.

무리한 특공대 투입 작전, 용역과의 합동 작전 등 의혹은 여전

특공대 투입이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재판부의 판단도 도마에 올랐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검찰의 경찰지휘부 수사기록 3천 쪽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결론은 경찰지휘부에 대한 면죄부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인근 건물과 한강대로 변에 벽돌과 화염병, 염산 병을 투척하고 이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많은 증인들은 일반인에 대한 무차별 투척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건물내부에 남아 있던 용역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경찰과 용역의 합동작전 등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시위용품의 위험성을 주로 강조했다. 경찰의 대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엔 높게 평가하고, 농성자들의 ‘경찰병력 선 철수’를 주장한 것 때문에 대화가 무산됐다고 결론 냈다.

망루가 지어진 남일당 건물이 서울시내 간선도로인 한강대로에 접해있고 농성자들이 약 1톤이 넘는 세녹스와 화염병, 골프공 등 위험한 시위용품과 장시간 농성용품을 보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경찰이 파악한 1200리터가 넘는 세녹스 양은 정작 특공대 투입시에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무리한 2차 망루 진입에 따른 책임문제 등 재판부는 급박한 특공대 투입작전에 따른 진압실패와 희생자 양산에 대해선 의견을 밝히지도 않았다. 이런 의혹은 수사기록 3천 쪽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재판부는 오히려 검찰이 제시한 새총의 사거리를 구체적인 위협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일반 시민에 위협적이었는지는 논란이다. 참사현장 앞 한강대로를 지나는 수영학원 통학버스를 운전하던 한 운전기사는 그날 종일 10여 차례 버스를 운행했지만 큰 위협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피고인들에 불리한 정황들은 대부분 검찰이 1주일 전 구형 의견서에서 제시한 내용들이었다. 한양석 판사는 “이런 정황 때문에 경찰지휘부의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을 결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고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석기 전 서울지방 경찰청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김석기 전 총장은 끝내 재판의 증인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의견을 밝히는 김형태 변호사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장이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받았다”면서 “그 좁은 계단에서 화염병을 던졌는데 화염병을 못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경찰이 한명이라도 불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면 그걸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또 “순수한 증거법 적으로 봐도 공무집행방해치사는 무죄를 확신한다”면서 “판사가 판결을 해 놓고도 부끄러워보였다. 자신의 양심은 알기 때문에 판사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판을 해야 하는데 화재가 왜 났는지도 모르면서 발전기나 유증기에 대해선 정치적인 판단을 했다”면서 “무죄를 주게 되면 정부에 타격이 컷을 것이다. 결국 사법부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정치재판을 강조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오늘 재판처럼 1주일 전 검찰의 구형의견을 복사한 것 같은 판결문을 본적이 없다”면서 ”재판장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단정을 지은 것은 정치적으로 판단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재판부가 공판에서 나왔던 얘기들을 부정하고, 양심적인 진술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특공대가 투입된 문제를 이렇게 판단하면 앞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이 합법화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서 “지금도 시민을 연행하고 기자회견을 연행하는 경찰의 횡포가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라고 정치적 결정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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