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의 새벽

[이수호의 잠행詩간](89)

태일아!
나직이 불러본다
예순둘 태일이 스물셋 태일을 불러본다
네가 불탄 그날 새벽
너는 무얼 했니?
39년이 지난 오늘 새벽
오늘따라 물먹은 검은 하늘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어렵구나
그때도 그랬니?
이렇게 캄캄했니?
너는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뜨며
흐르는 뜨거운 눈물 닦지도 않은 체
가슴은 뛰고 있었니?
내 죽음의 고통, 그 절망보다도
다락방 어린 여공들의 아픔이
네게는 더 크고 절실했니?
너의 그 마음은 누가 준 거니?
어떻게 다듬은 거니?

태일이 형!
스물셋 태일이가 예순둘 태일을 부른다
아직도 세상은 그런가요?
아직도 그놈의 돈세상인가요?
모두가 돈의 노예인가요?
스물셋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건
돈이었어요
나는 왜 뼈빠지게 일하고도
어린 여공들 풀빵 몇 개 사주고 나면
그 먼 창동까지 걸어가야 하는 지를
아픈 다리를 끌며
주먹을 쥐고 또 쥐어 봐도
알 수가 없었어요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어요
그냥 그게 세상이야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묘한 표정과 함께 내게 돌아온 말
그걸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해가 안 되는 세상
살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태일이형!
내가 혼자 무슨 재주로 세상을 바꿔요
말도 안 되지요
그냥 꿈을 꾼 거예요
우리 동생들 좀 덜 힘든 세상
내가 무슨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일한 만큼이라도 대우받는 세상
그래서 우리끼리 오순도순
그렇게 정답게 사는 세상
그런 꿈을 꾸어 본 거예요
어때요?
형의 세상
좀 나아졌나요?

태일아!
네 말마따나 세상 그렇게 쉽게 바뀌겠니?
돈세상 그대로 있는데
돈은 더 많아져서
온통 세상에 넘쳐나는데
그럴수록 가난한 사람 더 많아지고
곳곳이 짓물러 터져
고통 신음소리 천지가 진동하고
돈의 노예들
강시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어찌 좋아지겠니?
그래도 꿈 한 자락
네가 뿌려놓은 꿈 씨알 하나
노동자들 가슴에 움트고 있으니
그게 희망 아니겠니?
그래도 태일아!
그땐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뜨거웠니?
얼마나 아팠니?

* 전태일 열사 돌아가신지 39년, 날이 흐려 아침 해를 볼 수가 없다. 마석 열사 묘에 오늘도 아픈 맘을 가진 태일이들이 모여 그날을 기념하겠지. 어머님, 요즘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시다. 태일이, 어머님에겐 너무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