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저절로 조직화 되는 그런 건 없다”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6)]
인터뷰 : 홍준표 전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 위원장

9년 전, 2000년 10월11일 대전 산업대학교에선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지금의 KT 노동조합)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이날 한국통신 노조는 비정규직을 조합 가입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약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복수노조 금지 조항으로 법외노조에 있던 한국통신 계약직(한통 계약직) 노조가 합법노조가 되는 길이 열렸다. 정규직 노조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비정규 계약직 노동자 7천 명을 규약에 있는 가입대상임에도 가입을 거부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쳐내고 나서야 비정규직 노조는 태어날 수 있었다. 이런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탄생 과정은 다가올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운명을 예고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02년 5월 12일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 강당. 517일간 끈질긴 투쟁을 했던 한국통신 계약직 조합원 160여명은 눈물로 노조해산을 결정하는 총회를 했다. 그곳은 한통계약직 노조가 홍준표 위원장을 선출하고 노동조합 설립총회를 한 곳이기도 했다.

이날 총회에서 계약직 노조는 517일간의 파업투쟁의 결과로 처음이자 마지막 '노사합의서'를 인준했다. 합의서엔 도급업체 취업 알선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의 법적 절차에 따른 조합 자진해산이 담겨 있었다. 517일 동안 목동전화국 점거 투쟁에서부터 비정규직 투쟁의 모든 것을 보여줬던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는 한국사회에 비정규직 문제를 화두로 던져 놓고 해산했다.

2000년 10월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 대의원 대회 결정이후 9년이 흐른 지금 과연 정규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홍준표 전 한통계약직 노조 위원장은 여전히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절실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담당 부 위원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민주노총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듯 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1981년 홍 전 위원장이 첫 직장에 받을 딛은 곳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헙력업체(도급업체)였다. 그가 입사 후 3-4년쯤 되던 83년 무렵은 전화 가입 절정기 였다. 전화기가 전자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엄청난 물량이 들어왔고 매일 새벽에 나가 밤 10시나 11시에 들어왔다. 전화 한 통을 개통하면 건당 2,200원 정도 받았는데 하루 4-50건을 개통하러 다녔다. 매월 근 300만원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당시 공사 신규 정규직 기본급이 정말 얼마 안 되던 때라 굳이 정규직이 될 필요가 없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뒤 10년 사이 공사가 한국통신으로 바뀌면서 절반의 민영화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도급회사 직원들을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바꾼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오자 계약직 노동자들은 임금을 96년쯤 엔 88만원까지 깎인다. 처우는 계속 나빠져 갔다. 계약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 불만은 2000년도 계약직들의 집단적인 노조 조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규직들은 그들을 조합원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직들은 모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당시 정규직 노조가 계약직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홍 전 위원장은 “그때는 ADSL이라는 인터넷 망이 처음 터지던 때인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이 없었다”면서 “그런 것을 담보로 해 정규직이 계약직 인원과 함께 했다면 이후 많은 정규직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아웃소싱을 노동조합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규직 노조의 외면 속에 한통계약직은 517일 간 파업을 하지만 그 결과는 노조해산과 도급업체 취업알선이었다. 처절한 싸움이었기에 홍 전 위원장은 그 투쟁을 놓고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투쟁이었지만 온 힘을 다하고 싶었고 저부터 죽을 각오를 했다”면서도 “다시는 지는 싸움을 하고 싶진 않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하면서 느꼈던 비정규직 조직화 실패에 대한 문제의식을 솔직히 털어놨다.

홍 전 위원장은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현장 조직활동가 양성과 노동조합 간부들의 현장복귀를 통한 비정규직 조직화에서 찾았다. 그는 “조직화할 비정규직 현장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고 타격점을 찾아 그들을 조직 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앉아서들 그저 구호로만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의식을 갖춘 조직 활동가들이 일하는 노동자와 함께 그 업종에서 한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으면 조직화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자동차 노조를 예로 들고 “현대자동차는 조직화에 대한 내용만 놓고 보면 정말 조직화하기 쉽다”면서 “한 공장에서 유니폼을 달리 입고, 한 라인에서 일하는 그런 조직이지만 한통계약직은 전국의 500개 가까운 전화국에 떨어져 있는 소통도 안 된 이런 사람들 이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홍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기둥이라는 현대자동차 강성노조가 각 지역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을 받아 안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친다면 정말 불가능했을 것인가? 저는 그렇게 안 본다”고 반문했다.

홍 전 위원장은 “기득권을 가진 노동조합 간부들이 아무리 탁상공론을 하고 집회에 모여 깃발만 내세우고 외쳐봤자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게 지금 민주노총의 현실”이라고 꼬집고 “실천적으로 민주노총이 담보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조직화는 영원히 구호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저절로 조직화 되는 그런 건 없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홍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 전문

- 지금 다시 전화국 협력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하시는 일은?

유선 개통, 인터넷, IPTV 개통, 인터넷 전화 등 KT판매 상품 모두 취급합니다.

- 현장에 갈 때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81년 사회에 내딛은 첫발이 통신 일입니다. 거의 19년을 일하다 계약직 투쟁을 하게 됐습니다. 다시 현장에 오는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상급단체 임원이 되면서 현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 81년 당시 고용형태는 어땠습니까?

도급업체에서 일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어서 모두 일반 회선이었습다. 기계식이 전자식 유선전화로 바뀌면서 청약이 봇물 터졌습니다.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을 거친 지금의 KT) 직원만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 한국통신 계약직(한통 계약직) 노조를 만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임금과 처우 모두 현실적인 문제가 됐습니다. 처음 도급 당시엔 건당으로 받았습니다. 건당이라 83년이나 84년엔 매달 월급으로 300여 만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백색전화라고 해서 전화자체가 재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화가 전자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엄청난 물량이 들어왔고 매일 새벽에 나가 밤 10시나 11시에 들어왔습니다. 전화 한 통을 개통하면 2,200원 했는데 하루에 4-50건을 개통하러 다녔습니다. 하루에 10만원씩 벌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사 신규 정규직 기본급이 우리 도급직 보다 훨씬 적었을 때였습니다. 급여차이가 커 정규직이 될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처럼 비정규직이라도 전문적인 기술이 있으면 노동시간과 처우는 차이가 있더라도 임금이 됐습니다. 아침 7시에 나와 한여름에는 웃통을 벗고 캄캄해질 때까지 일했습니다. 반면 정규직들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 했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계약직은 어떤 과정으로 됐습니까?

공사가 한국통신으로 반 민영화 되면서 도급업체를 직영화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약직으로 채용을 했죠. 아마 92년, 93년쯤 이었습니다. 당시 조건이 특별기량이라고 해서 특별기술자란 표현인데 같은 계약직으로 넘어오더라도 그런 등급을 매겼습니다. 특별, 중, 보통기량으로 급여의 층을 뒀습니다. 저 같은 경우 경력이 있다 보니 특별기량으로 채용 돼서 200만원 정도 받았습니다. 당시 정규직 5-6년 차 수준과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통신이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그런 임금차이를 없앴습니다. 정규직 직원들 상여금도 전부 동결이 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차원으로 계약직 임금 삭감으로 내건 돈이 94만원이었습니다.

- 임금 절반 삭감은 너무 심한데요

그때만해도 상여금이 따로 없었습니다. 정규직들이 상여금 반납하는데 너희들도 뭔가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하는 엄청난 설득 후에 50%가 넘는 입금이 일거에 삭감돼 버렸습니다. 당시 그걸 결정하면서 전부 도장을 받았고 외환위기가 풀리고 정규직들 임금문제나 상여금 문제가 원활해 돌아가는 시기가 되면 다시 원래대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96년 10월쯤이었습니다. 그러고 5개월 지났는데 94만원이 88만원으로 또 삭감이 된다. 경제위기 막 터지기 시작하면서 그 후로 88만원을 받는 상태가 2년이 갑니다.

- 그런 상태에서 노조를 조직하게 됐군요

노조를 조직하기 전에 수차례나 회사에 따지고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조금만 기다리라 하면서 2년이 갔습니다. 99년 하반기부터 인근 전화국부터 해서 서울시내에서 일하는 계약직들을 살살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동대문 전화국에 있었는데 우리 전화국 생각부터 맞춰야 인근도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들부터 이해시켰습니다.

-당시 계약직들은 만났을 때 노조에 대한 반응은 어땠습니까?

계약직들은 이미 불만이 응어리져 있었는데 감히 노조를 생각 못 할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유덕상 위원장이 투쟁하던 시기여서 정규직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정규직노조의 성과를 옆에서 보면서 개인이나 일부 전화국만의 힘으로 바꿀 수 없겠다 생각하고 조직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 그때 정규직 노조 반응은 어땠습니까?

우리가 정규직 노조 규약내용을 쭉 살펴봤더니 일용직이나 한국통신 내에서 일하는 계약직이든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정규직 노조 개인가입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이 정규직 조합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 조직하고 나서 단체가입을 하려고 했습니다. 500명 정도 계약직 조합가입원서를 들고 노조를 찾아갔는데 거부당했습니다. 그때가 이동걸 위원장 시절이었습니다.(이동걸 전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현재 노동부 장관 보좌관으로 있다.)

- 당시 이동걸 위원장은 뭐라 얘기하고 거부 했습니까?

첫마디가 당신들이 조합원 자격으로 계약 해지되면 희생자 기금을 출연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정서가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솔직한 거고, 두 번째는 정말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 전화국 안에서 거의 같이 형 동생처럼 생활해왔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정서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저도 느끼지 못했던 현장 조합원과 중앙집행부가 가진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노동조합이 과연 진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금과 처우를 생각하는 노동자적 집단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결국 정규직 조직대상에서 빼달라고 했는데요?

2000년 9월인 걸로 아는데 우리가 그 문제로 계속 찾아가고 졸라대고 규약대로 하자고 얘기하니까 대의원 대회에서 안건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대의원대회에서는 우리를 받는 것으로 결정이 나 버립니다. 그러자 이동걸 위원장이 도망을 가버립니다. 받아주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독자 노조설립 신고를 했는데 복수노조에 걸려 법외노조가 됐다. 다시 1주일 뒤에 대의원 대회를 열어 계약직을 빼는 식으로 노조규약을 변경했습니다.

- 한통 계약직 투쟁이 정규직과의 연대가 잘 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때 우리가 정규직 노조로 한 조합원이 됐다면 많이 달랐을 겁니다. ADSL이라는 인터넷 망이 처음 터지던 때인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담보로 해서 계약직과 함께 했다면 이후에 노동조합의 힘으로 정규직의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아웃소싱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KT 노조는 그때 이후 허울뿐인 노조로 전락했습니다.

- 계약직 노조 파업 당시 정규직 노조의 반응은 어땠나요?

말일 날 해지를 앞두고 2000년 12월 13일 총파업 투쟁 선포를 하고 12일 상경 파업 지침을 내려서 13일 날 분당 한국통신 본사에 조합원들을 집결 시켰습니다. 같이 일했던 정규직 동료들은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너희가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소위 노조 간부들은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한테 물밑 작업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통신 민주동지회가 큰 힘을 줬습니다. 조합원들 정서도 정말 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간부나 대의원들은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 결국 노조가 해산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2002년 5월 12일 해산 통보를 받았습니다. 미리 저에게 교섭결과가 알려졌고 저는 동지들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 혼자 깃발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감옥 안에서는 한계가 있으니 조합원들 의견을 따랐습니다.

- 회사는 최종합의서에 일종의 도급 형태를 제시했습니다. 도급에서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했다가 다시 도급으로 제안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 까요? 또 노조 해산을 사측이 합의서에서 요구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당시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자체가 익숙하지 않던 때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우리 투쟁으로 매스컴을 타고 알려지면서 비정규직의 권리를 법제도 내에서 바꾸려는 움직임을 사용자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2년 이상 직접고용 시 정규직화에 대한 부담감이 사용자 입장에서는 컸습니다.

- 회사가 도급을 제시한 건 앞을 보고 한 것 같은데요

민영화 전에는 통신 쪽 일이란 게 거의 한국통신 독점이었습니다.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 때 PCS가 나오면서 SK나 하나로가 들어오고 이제 유선망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쟁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좀 더 나은 기득권을 통신시장에서 차지하기 위해서는 새로 출발하는 인터넷 사업으로 한국통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시기였습니다. ADSL이 나올 때 계약직들까지 교육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 움직임에 위험을 느끼고 그 인력 그대로 외주화로 전환을 시킨 것입니다.

- 정규직에게도 외주화에 대한 흐름이 있었습니까?

실제 마지막 정규직 채용이 제가 알기엔 97년입니다. 그러다 보니 KT에 남은 정규직들 평균 나이가 46세 정도입니다.

- 그때 한국통신 정규직들이 연대를 안 한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2000년 12월 19일 3차 상경투쟁이 있었습니다. 정규직 노조가 명동성당에서 파업을 하는데 지방에서 계약직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수도권 계약직 노동자들 500여명은 정규직들과 같이 투쟁을 하려고 결합했습니다. 지방은 천여 명이 결합했습니다. 정규직과 같이 파업을 해서 공장 문을 닫으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계약직이 함께하면 정규직 노조가 내건 투쟁에 대한 쟁취나 계약직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규직 노조는 너희와 함께 할 수 없다고 계약직 집행부에 통보했습니다.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얘기 하면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해 가지고... 그때 이동걸 집행부가 데이콤과도 함께 연대를 했는데, 우린 식구인데도 정말 함께 하자고 힘들게 올라왔는데도 다 결정된 내용을 몇 시간 전에 못한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어떤 이유로 파업을 해도 우리랑 같이 하면 배가된 힘으로 우리 문제도 일정 함께 할 수 있고 당신들이 원하는 문제도 푸는 계기 아니냐 했는데 그 문제로 사용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 처음 상급단체인 연맹 가입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한통계약직 해산 총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동자 조직이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의 절절한 입장을 나름대로 받아 안고 함께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민주노총은 10년 넘게 비정규직 문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었고, 저도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내적인 갈등이 많았습니다.

- 총연맹에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가 많았다는 건가요?

정말 안에서 많이 싸웠습니다. 실제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조합의 단체입니다. 비정규직 조직 퍼센트는 당시 2%도 안됐습니다. 그런 조직화로 비정규직 권리 찾기 슬로건을 통해 앞장서려 했지만 이미 대기업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도 비정규직을 조직해내는 힘들은 굉장히 미비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끌어내기 위해 나름 예산도 모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소위 조직가들도 영임해서 활성화 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이 이어져 가지 않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조건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제가 민주노총 임원으로 있을 때 현대자동차(현자) 안기호 비정규직 위원장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나마 의식이 많은 현대자동차였으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하나로 묶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제 눈엔 정규직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 표출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현대차 조합원 모두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무너지면 바로 우리한테 칼날 들어온다는 것도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이해시켜 나가는 막강 현자 중앙집행부조차도 그것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민주노총이라는 틀 내에 모자랐습니다.

솔직히 정말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는 조직화에 대한 내용만 놓고 보면 조직화하기 쉽습니다. 한 공장에 유니폼을 달리입고 한 라인에서 일하는 그런 조직입니다. 한통계약직은 전국의 500개 가까운 전화국에 떨어져 있는 소통도 안 된 이런 사람을 조직화 했는데 각 공장 내에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말 민주노총의 기둥이라는 현자 강성노조가 받아 안고 비정규직 철폐 외쳤다면 정말 불가능했을 것인가?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 정규직 노조는 절실하지도 않았고 슬로건만 내세웠다고 보시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현자 비정규직 투쟁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당시 손석희 시선집중에 인터뷰 제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비정규담당 부위원장이라 섭외가 들어왔는데 노노갈등에 대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소위 하청업체 노동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왜 같은 노동자인데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노동자를 받아 안지 못하냐는 질문을 저에게 했습니다. 그 새벽 프로그램에서 제가 당황했습니다. 얼굴이 하얘지고 창피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가장 강성이라는 현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노갈등을 물어보는데 제가 뭐라 했는지 알아요? 전국 공중파 방송인데 거기다 대놓고 “정규직은 마음이 없습니다. 조직화할 마음이. 그들은 아무리 강성노조라 해도 기득권만 생각하지 내가 구체적 내용을 잘 압니다”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잖아요. 민주노총 부위원장인데.

- 뭐라 하셨나요?

‘정규직 노동자 내에 그동안 가져왔던 기득권을 지금 비정규 노조가 탄생해서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일부 보이고 그런 것들이 차츰 모아지면 머지않아 함께하는 그런 때가 오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얘기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얘기하고서는 가슴속에 속상한 게 많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가까지 지나서 지금 보면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 계약직 투쟁을 평가 하신다면?

한마디로 무모한 투쟁이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투쟁이었다. 지나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투쟁을 하고 싶었고 저 자신부터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그 동지애라는 속에서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대 투쟁에도 우린 가장 솔선수범이었습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만의 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조조정, 민영화는 우리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질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투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 앞으로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가 있다면요?

전체 노동자 중 정규직 노동조합조차 현저히 모자라는 노조 조직률 속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정말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 속에서 조직화에 대한 저변을 넓혀 가려면 지금 방식으로는 절대 조직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됩니다. 현재 활동하는 조직활동가의 모습도 많이 퇴색된 것 같습니다. 연대도 많이 퇴색 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나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를 구호나 그저 회의의 안건으로 만 해서는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 치열하게 조직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비정규 사업장에 조직활동가들이 직접 들어가 그들이 가진 생각을 단체로 모아내서 가져갈 수 있는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 민주노총은 전혀 그런 준비를 안 한다는 건가요?

비정규 조직화라고 하는 것은 구호나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들과의 생활 속에서 그들의 불만을 내 가슴으로 껴안고 함께 하자고 호소했을 때 그들의 분노는 폭발할 겁니다. 공동의 경험과 그런 비전을 제시하고 그런 조직화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활동가가 먼저 전제되어야 한 발짝 나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것이 담보되면 법과 같은 제도적 문제나 주5일 등의 형평성이 어긋나는 제도적 문제를 교육적 차원에서 여론화 시키고 조직화 하지 못한 많은 업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제도권에서 자기 권리를 찾도록 여론화 작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 정규직의 태도문제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우리가 인간이라 내 밥그릇을 다른 사람이 건든다고 생각하면 가만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의식을 그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내 밥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밥그릇을 다른 사람이 건든다고 생각하는 의식을 바꿔나가는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합원들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간부역할을 제대로 할 때 바뀌어 나갑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이 요즘 대두하는데 저는 가소롭게 생각합니다. 노조전임자 임금에 대해서 그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한다면 그들이 전임자답게 중차대한 조직 내 비정규 문제나 조합원 의식고양에 힘썼는가 묻고 싶습니다. 노조 간부라면 노동자 권리를 위해 간부 임기를 마치면 본연의 노동자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준비들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득권 소리가 나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 안하면 그런 것이 기득권을 위한 싸움이 되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현자 노조 간부라면 언제든지 임기가 끝나면 라인에 가서 조립 일을 조합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술적인 역량이 되어야 간부로써 조합원이 띠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과연 노동조합의 투쟁목표에 대해 사용자는 어떻게 보겠습니까? 저놈만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조합원은 언제든지 통제 속에 가질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KT가 그랬습니다.

-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 어떻게 보십니까?

정규직보다 더 많아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은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잘 다듬어서 적어도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오함마로 치는 힘의 대결구도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이 우리 민주노총의 힘이어야 합니다.

의식이 한발 앞서 간 사람들이나 정말 비정규직 문제나 노동조합을 한번 경험한 사람들은 노동자적 모습으로 언제든지 환골탈태 할 수 있는 자기적 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그게 지금 노동조합의 모습을 바꾸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부들이 현장에 들어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토대를 만들려면 집중적으로 끈기 있게 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는 싸움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는 싸움이 아닌 제대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려면 노동자의 가장 큰 무기인 공장을 장악해야 합니다. 어떤 업종이든 노동자가 없으면 자기네들 호주머니에 돈이 안 들어오는 그런 힘을 키워야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그런 싸움은 이제 하고 싶지 않습니다. 큰 덩어리의 싸움도 있겠지만 조그만 사업장내에서도 그 사업장내 싸움거리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합니다. 그다음에 싸움을 붙여야 합니다. 안 되는 싸움을 그저 바람만 넣어 싸우게 하여 다 죽게 하는 그런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연맹들이 연맹 소속 업종의 비정규 조직화를 하려면 비정규직 현장에 대한 정말 상세한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격점을 찾아서 그들을 조직해야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 앉아서들 그저 구호로만 하면 그게 되겠습니까? 기득권을 가진 노동조합 간부들이 아무리 탁상공론을 하고 집회에 모여 깃발만 내세우고 외쳐봤자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게 지금 민주노총의 현실입니다. 실천적으로 민주노총이 담보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조직화는 영원히 구호로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조직화 되는 그런 건 없습니다.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 27일(금) 오후 2시 만해NGO기념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오는 27일(금) 오후 2시 만해NGO기념관에서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이 글은 토론회에 앞서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살펴보는 철폐연대와 참세상 특별기획 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 1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기 위한 논의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딪히며 조직화를 고민하고 계신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태그

비정규직 , 한국통신 , 노조간부 , KT , 홍준표 , 철폐연대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용욱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흠.

    당신 역시 말로만 비정규직외치고 있지는 않은지. 비정규투쟁때 얼굴을 거의 못봐서.
    왜 말로만 비정규직 이야기하는 인간들이 왜 이리 많은건지.참

  • 울산조합원

    동지의 말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05년 현대차에서 일어났던 비정규직 투쟁을 상당부분 소상히 알고 계신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은 말과 구호로 하는게 아닙니다. 그때 말과 구호 그리고 회의는 엄청나게 많았지요. 그런데.....
    반성하는 노조간부 못봤습니다. 그때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분노와 한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뿐입니다. 동지의 건투를 빕니다.

  • 흠흠

    그래요 흠님! 니는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05년 당시 노조간부들 한번 되새겨보길 바라오. 참으로 한심한 일들이 많지 않았나요? 나는 말로도 글로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말안합니다. 다만 진실되지 않는 개인이나 정파의 간악하고 음흉한 탐욕에 대해서는 폭로해야 하지 않을까요? 흠님 당신이나 열심히 해보세요. 남의 글 씹지나 말구요...

  • 글쓴분이 '진실되지 않는 개인이나 정파' 문제와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한 겁니다. 한통계약직 투쟁이후 비정규투쟁에서 보지도 못했고. 난 열심히 하려해도 그만큼 못했기때문에 저따위로 "해야한다, 해야한다" 주둥이 놀리진 않죠.

  • 예전

    아~~! 기획하신 내용의 취지가 이거였군요... 그렇지만, 웬지 아쉬운 부분이 많군요... 아쉬운듯한 내용이 남아있는자들의 숙제일거 같기도 하지만,./. 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