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연속기고](4) 겨울 대중강좌 - 맑스로 보는 경제, 맑스로 읽는 경제학 1강

강의 소개: 이 강의는 경제학 특히 마르크스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나 한국 경제 및 세계 경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려는 분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맑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계신 김정주 선생님(경상대학교 연구교수, 새움회원)을 모시고 마르크스 경제학이 사용하는 기본적 개념들을 함께 배우고, 그것이 기존 주류 경제학의 시각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생각해 보며, 그것을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입니다. 2007년에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가 2008년도에는 세계적 금융공황으로 이어져서 작년인 2009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도 작년 4/4분가 좋았을 뿐이지, 2008년 말부터 작년 3/4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굉장히 안 좋았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살기 힘들고 삶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상한 건 경제적 문제 혹은 경제학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런 것일까요?

물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통 경제학을 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진입장벽이 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사회학, 정치학에 비해서 경제학은 뭔가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에 덜 관심을 가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에 대한 무관심은 경제학 자체가 또는 경제적 현상의 분석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경제가 어렵고 문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이 경제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규정하는 경제적 조건들을 굉장히 체념적으로 혹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개선되고 더 나은 경제적 시스템을 모색을 해보는 것들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체념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대학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얘기해 보면,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아 많은 연봉을 받는 직업을 얻을 것인가가 학생들의 주된 고민인데, 이 친구들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자기들이 대학을 와서 왜 4년 내내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왜 영어공부에 몰두를 해야 하는지 등 자신들이 이런 경쟁을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심을 품고 있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회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겠느냐, 모순과 부조리에 가득 차 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겠느냐 라는 체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회적 질서, 경제적 질서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해서 체념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 자체를 공부하고 경제학적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념적이고 숙명론적인 인생관과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여러분들 스스로가 극복해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이 6주간의 시간이 여러분들에게 맑스 경제학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스스로 사회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던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6주간 진행될 강의의 내용은 맑스 경제학입니다. 맑스 경제학의 여러 복잡한 이론적 문제들을 모두 정리해서 소개하기에 이 강의는 너무 짧은 것이 사실이에요. 따라서 이번 강의에서는 맑스라는 사람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소개하고, 그 기본적 관점이 왜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혹은 유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맑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한국경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세계경제의 위기가 어떤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안들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첫 강의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주제로 진행을 해볼까 합니다. 맑스의 경제 이론에 대한 소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언론 매체를 통해 늘 접하는 시장(경제)이라는 관점이 이 강의에서 다루고자 하는 맑스의 관점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먼저 짚어보려고 합니다.

1. 경제학의 두 가지 관점

경제적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1) 하나는 “시장경제”라는 개념이고 (2) 다른 한 가지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가지고 경제적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입니다. 여러분들은 시장경제라는 말도 자본주의라는 말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별로 의미를 구분하지 않고 쓰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념은 사회현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무엇이고, 이 개념을 가지고 현실을 설명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우리가 거기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의 행위와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경제적 성과를 중심으로 해서 경제적 현상을 분석하고자 하는 관점입니다. 즉 모든 경제적 행위는 시장 안에서만 이뤄지고, 시장 안에서 경제적 주체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현실적인 경제적 성과들이 달라진다고 보는 거죠. 결국에 가서는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가지고 현실을 보게 될 경우에,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는 것은 시장이고, 시장 이외의 어떤 다른 제도나 관습이나 인간관계는 경제학에서는 분석할 필요가 없다고 보게 됩니다. 이때 인간의 경제적 행위와 관련해서 시장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시장에서 행위를 하는 플레이어(player)에 불과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 경제를 보는 또 다른 관점으로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맑스인데요,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시장경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 및 노동의 상품화에 기초해 자본의 이윤추구를 본질적 동기로 해서 작동하는 특수한 생산양식이라고 봅니다. 시장경제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실사회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는 운동장 같은 것이 아니라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초역사적인 즉 영원히 지속되는 사회가 아니라, 역사발전의 특정한 단계있는 사회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세의 봉건주의 사회가 소멸되어서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듯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 또한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회로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맑스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어떤 조건 속에서 자본주의가 생겨났고 어떤 조건에서 다른 사회로 이행해 갈 수밖에 없는지, 이 역사발전의 보편적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시장경제의 관점에서처럼 경제적 행위 및 경제적 성과 그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한 경제체제가 다른 경제체제로 이행해가는 조건 및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분석의 핵심이 됩니다.

이제 두 가지 관점에 따라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완전히 달라지죠. 시장경제론에 따르면,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사회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장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경제를 자본주의라는 관점을 가지고 볼 때는, 자본주의 사회는 전 인류 발전과정에서 특정한 시기에만 존재할 수 있는 사회죠. 미래에 이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열린 고민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시장경제”란 개념

현재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시장경제라는 관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사회발전과 관련해서 또 다른 전망이나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할 여지가 있지만 이런 관점에서 경제학을 배우는 친구들은 시장경제 또는 시장을 초역사적이고 사회보편적인 질서로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의 경제학 교육, 특히 경제학과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숙명론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주된 근거지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우선 시장경제라는 개념이 도대체 뭐고, 이 개념을 가지고서 현실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설명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합니다. “시장경제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대다수 학생들은 시장이 존재하면 시장경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도 시장이 있었는데 그러면 그리스 사회가 시장경제사회인가요?”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회를 시장경제사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즉 시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시장경제는 아닙니다. 시장이라고 하는 것은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공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시장경제라고 할까요?

시장경제는 시장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자원이 배분되는 경제적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는 시장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시장을 통해서 배분되지는 않습니다. 국가를 통한 명령체계를 통해서 자원이 배분되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어떻게 자원이 배분되느냐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자원은 대부분 물적 자본 또는 노동력이죠.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물적 자본과 노동력이 각 산업으로 배분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가격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 A라는 산업과 B라는 산업이 다음과 같이 있다고 해보죠. A라는 산업에 자본이 100만원, 노동력이 100명이 들어가 있고 B 산업에는 자본이 200만원, 노동력이 200명이 들어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죠.


이런 상황에서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는 가정아래에서 오직 A라는 산업에서 만들어진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보세요. 여기서 A 상품 가격의 변화는 A 산업의 (B 산업에 대비하여) 이윤(율)의 증가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B산업에 들어가 있던 자본가들이 A 산업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겠죠. 즉 일부 자본가들이 B산업에서 공장 문을 닫고 A산업에 새 공장을 짓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력의 배분, 즉 자본배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변화는 두 산업 중 어느 하나가 상대적으로 이윤을 많이 얻는 상태가 아닌, 즉 두 산업이 평균적인 수익을 거두게 되는 상태가 되면 중단이 되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원배분의 과정에서 누구의 명령이나 간섭이 없었다는 겁니다. 시장경제 시스템 하에서는 누구도 간섭하거나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자원배분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 했던 보이지 않는 손인데,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가격의 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경제학의 핵심적인 과제는 가격의 형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겁니다. 가격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학은 경제학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사실 가격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쉽게 생각하면 자동차 가격, 빵 가격, 자장면 가격 등이 있을 수 있겠죠. 즉 이것들은 모두 상품가격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품가격 말고도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 주식의 가격인 주가, 돈의 가격인 금리(이자)도 있습니다. 환율도 가격이겠죠. 여러분들이 경제신문을 볼 때, 경제신문 지면의 80%가 상품가격(인플레이션), 임금, 주가, 금리, 환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가격을 중시하는 이유는 시장경제론에서 가격의 형성과 변화가 자원배분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의 변화는 자원 배분상태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결국 사회적 자원배분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돈을 잘 벌고,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경쟁에서 낙오하고 실패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면 주류경제학에서 가격의 형성과 변화를 무엇을 가지고 설명할까요? 수요-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가격의 형성과 변화를 설명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론에서는 수요-공급의 법칙이 가장 중요한 법칙이 됩니다. 현대 경제학에서 수요-공급 법칙이 빠져 버리면 기본적인 이론 틀이 모두 붕괴된다고 할수 있죠. 여러분들 가운데서 대학에서 경제원론을 배워본 분들이 계시다면, 경제원론 첫 장에 소개되는 것이 수요-공급 법칙이라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시장경제론에서 또 한가지의 핵심적인 법칙은 희소성의 법칙입니다. 이 희소성의 법칙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데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은 유한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 후 진로를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 국회의원 등 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요. 대학교 4학년 되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죠. 여러분들은 그 고민을 왜 할까요? 여러분들이 하루는 대통령으로 살다가 또 영화배우로 데뷔했다가 피곤해지면 평범함 월급쟁이가 될 수 있습니까? 결국 대학졸업 후에 많은 진로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죠. 대학 졸업 전부터 가수 준비를 해서 가수 데뷔를 한다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은 접어야죠. 이 희소성의 법칙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데 충족수단은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장경제론에서 선택의 문제는 모든 인간이 직면한 제약조건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희소성의 법칙에 제약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이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관심은 이런 합리적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물적 자본이 1200조원이 되고, 노동력이 3000만 명이라고 했을 때, 무엇을 얼마나 만들어야 할까요? 혹은 이런 일정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서 빵, 신발, 비행기를 만든다면 각각 얼마씩 만들어야 할까요? 이런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배분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선택을 하는 순간 자원이 적절하게 분배가 되어야 하는데, 시장경제론에서는 선택과 자원분배의 문제는 가격의 형성과 변화를 통해서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가격의 형성과 변화라는 것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결정되겠지요. 이것이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에요.

시장경제 메커니즘 하에서는 가격을 통해서 사회적 자원배분이 조정될 수 있는 한, 그 누구도 간섭하고 조정하고 명령하지 않더라도 희소성의 법칙이 제기하는 선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경제학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결국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가격의 결정과 변화가 중요하겠죠.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왜곡이 되면 사회적 경제적 자원 배분에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류경제학자들은 시장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명령하고 간섭하는 순간부터 가격이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누군가가 독재자가 나타나서 즉 가격을 왜곡시키면 사회적 자원배분 상태가 왜곡이 되고,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하죠.
그렇다면 과연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우리가 사는 경제적 현실을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요?

3. 몇 가지 질문

앞서 말했듯이 시장경제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의 결정과 변화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통해 가격의 결정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수요법칙은 소비자의 효용극대화를 통해서 결정되고 공급법칙은 생산자의 이윤극대화를 통해서 결정됩니다.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시장의 균형이 도출되고 가격이 형성되지요. 결국 가격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행위를 반영한 것입니다. 가격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수요와 공급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합리적 행위에 의해 도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해관계에 충실한 소비자와 생산자는 누구의 간섭과 지시, 명령 없이도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달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간섭을 해서 경제주체들의 자기이해관계를 방해하면, 가격이 왜곡되기 때문에 자원배분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시장경제론자들은 정부도 필요 없다고 하죠. 그래서 항상 주장하는 게 작은 정부입니다. 즉 그들에게 국가는 치안 유지 기능만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영 기업들도 민영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봤자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국가가 운영하던 것도 다 시장에 맡겨야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장이 이렇게 시장경제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올까요? 어떻게보면 시장경제론자의 관점은 참 조화롭고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간섭하지 않는데도 경제주체들이 자기이해관계에 충실하면 가격이 형성되고 자원배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해결이 된다기보다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많죠.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도 그런 것 아닙니까? 2000년 무렵에 미국에서는, 미국이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한 새 천 년에 미국은 영원히 성장하는 경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2001년에 주식시장이 붕괴되지 않았습니까?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이 당황해서 주택시장의 투기붐을 일으켰는데, 2007년에 결국 신용위기가 왔죠. 이런 일련의 위기 과정에서 시장을 가만히 놔두면 시장이 위기를 다 알아서 해소하기 때문에 규제나 정책을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어요. 즉 시장경제론에 충실한 미국경제를 실제로 보면 오히려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양극화의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시장경제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지도 않는 문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인간의 욕구 실현과 무관한 생산양식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시장경제론에서 이야기하는 희소성의 법칙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희소성의 법칙은 인간의 욕구나 욕망은 무한한데, 상대적으로 충족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선택의 문제를 낳고, 시장에서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서 선택의 문제가 가장 바람직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욕구나 욕망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이것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문제입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문제는 욕구나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과 욕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실현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욕망 실현의 사회적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인간의 욕구나 욕망의 문제는 노예제라는 제도를 통해서 실현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시장경제론자들이 주장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자원배분 메커니즘으로서 인류사에서 출현한 것은 고작 200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경제학에서 욕구나 욕망의 문제를 끄집어내어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적인 문제를 초역사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시장경제론에서 경제학의 목적이 욕구나 욕망의 실현문제라고 하는 것은 시장경제라고 하는 개념을 역사적으로 절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현해야 할 목적과 이 목적을 실현하는 역사적 형태 사이의 자리를 바꾸고, 인간의 욕구실현을 위한 ‘선택’이라는 초역사적 개념이 경제학의 목적이 됨으로써 현존하는 경제질서를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경제학의 대상은, 희소성의 법칙 하에서 인간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생산 및 분배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 및 노동의 조직형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2) 수요-공급의 법칙은 가격의 형성과 변화를 설명해주는가?

다음으로, 과연 수요-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가격의 결정을 이론화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시장경제론에서는, 공급곡선은 생산자의 이윤 극대화 행위를, 그리고 수요곡선은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 행위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고 해요. 여기서 이론적 문제점이 있는데요. 생산자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먼저 자기가 만든 상품의 가격을 알아야겠죠. 즉 자신이 물건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 혹은 물건을 팔았을 때 예상되는 수입을 알려면 가격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효용을 극대화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품소비량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상품이 얼마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즉 가격이 이미 결정되어 주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이미 가격이 주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런 논리를 순환론이라고 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을 하죠. 시장경제론, 내지 주류경제학에서의 가격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빈틈없는 이론 틀 같지만, 사실은 허구적인 이론 틀이에요. 주류 경제학은 가격결정을 경제학의 핵심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가격의 결정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비판했던 문제점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신고전파의 대응은 두 가지 입니다. 한 가지는 그냥 무시를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시장에서 가격결정과 이윤극대화 및 효용극대화가 동시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자들이 가격을 설명할 때 주로 연립방정식을 풉니다. 연립방정식은 여러 변수가 주어질 때 이들을 구하는 것인데, 하나의 값을 구하면 다른 변수값들을 자동적으로 나오죠. 왈라스 일반균형이라는 개념도 이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입니다. 어쨌든 가격과 경제주체들의 행위들은 한 순간에 동시에 결정된다는 거죠. 사실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설명방식이죠.

위의 가정을 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남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가격 속에는 무엇이 있죠? 가격은 간단하게 생각하면, 생산원가에 이윤을 붙인 거죠. 이윤이 없는 가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수요공급법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고 해도 결정된 가격 속에는 이윤이 들어있을 텐데, 이윤이 어디서 나오고 이윤이 왜 가격에 반드시 들어있어야 하느냐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시중의 모든 경제원론 교과서에서 이윤이 무엇이다라는 설명은 한 구절을 찾을 수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주류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있을 때,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시장균형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빵이 100원이 되고 500개의 빵이 거래가 된다고 해요. 가격의 결정을 설명한 것 같지만, 사실 가격의 결정을 설명한 게 아니에요. 가격의 결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빵 500개가 거래될 때 101원도 아니고 99원도 아니고 왜 하필 100원인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사실 100원인 것은, 비용 + 이윤이 100원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100원이라는 가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수요-공급 이론은 상품의 가격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격을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어요.

시장경제론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론자들이 가정하는 경제적 주체는 항상 합리적인 개인적 주체죠. 비합리적인 경제적 주체는 있을 수 없어요. 만일 여러분이 대학 졸업 후에 실업자가 됐다고 합시다. 아니면 월급이 아주 적은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고 가정을 해 보죠.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자가 됐을 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답인데 그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경제적 주체로서 합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실업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실업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죠. 시장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개인이 합리적인 플레이어가 되지 못해서 시장의 복수로서 실업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실업과 같은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귀착이 되죠. 사회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경제학적 틀 속에서는 이 문제가 개인의 비합리적인 선택의 문제로 귀착이 됩니다.

3) 현실의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보편적 인간으로 존재하는가?

시장경제론의 마지막 세 번째 문제가 시장경제론에 등장하는 개인이 보편적인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장 내의 인간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이면서 비계급적 인간이에요. 보통 보편적 인간으로 드는 예가 로빈슨 크루소죠.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죠. 그런데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보편적 인간으로서만 존재합니까? 결국 시장경제론의 경우에는 인간과 인간 간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계, 계급적 관계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지요. 시장 안에 존재하는 인간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인간, 늘 합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간의 관계는 제외되고 오직 인간과 물질세계와의 관계만이 남습니다. 시장경제론이 희소성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인간의 욕구와 욕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인간이 직면한 물질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실현할 것이냐에 배타적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때 물질적 제약을 극복한다는 것은 경제적 성장의 문제이고, 결국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로 귀착이 되죠. 그런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보게 되면, 인간이 물질세계와 늘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물질세계의 제약을 당하는 것은 맞는데, 인간은 오직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물질세계에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물질 간의 대립관계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사회적 관계, 계급적 관계, 그리고 이것이 인간과 물질 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시장경제론에서는 이러한 문제설정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맑스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합니다 “무엇이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라 어떠한 노동수단 및 생산관계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경제적 시대를 구별짓는다.”

맑스에 따르면, 한 사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빵을 소비할 때 노예가 만든 빵과 공장 노동자가 만든 빵을 소비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결국 생산관계, 계급적 관계를 경제학적 틀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4. 결론

이와 같이 오늘날 대학에서 대부분 가르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는 이론 틀이라기보다는 불완전한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시장경제론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봤을 때는 현실이 가지는 진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과 다른 관점에서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새로운 설명 틀로서 맑스 경제학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음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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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시장경제 , 맑스 , 경제학 , 서브프라임 ,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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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독자

    이런 글은 경제위기가 촉발할 무렵부터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데...

    아무튼 잘 읽겠습니다.

  • 이지훈

    매우 유익한 내용입니다. 맑스이론만큼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이론은 없다고 봅니다. 이미 미국식 주류경제학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맑시즘을 부흥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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